57화
서너 번 벨이 울리다가 전화기가 꺼져 있다는 알림이 흘러나왔다. 무경은 굳은 눈으로 휴대전화를 노려보았다. 분명 전화벨이 울렸을 텐데 자신이 귀찮다고 아예 전원을 꺼 버린 것이다.
무경은 재차 전화를 걸었다. 전화기가 꺼져 있다는 알림음을 들으면서도 계속해서 전화를 걸었다.
‘아, 집에 전화기를 설치해 뒀어야 했는데.’
휴대전화를 갖고 있다 보니 집 전화기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그게 있었다면 휴대전화는 끄더라도 집 전화는 끄지 못하고 받았을 텐데.
무경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초조한 듯 제자리를 서성였다.
‘또, 또 안 받지. 기다리는 사람은 생각도 안 하지. 연락 한 번 해 놓는 게 뭐가 그렇게 바빠서. 아니, 전화 한 번 확인하는 게 어려운 일도 아니면서.’
사람 걱정하는 줄도 모르고. 이게 얼마나 약 오르고 불안한 일인지도 모르고.
무경은 재차 전화를 걸었다가 또다시 연락되지 않자 휴대전화를 바닥에 내던졌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액정이 산산이 조각 났다. 무경은 거친 숨을 내쉬다가 눈을 질끈 감고 돌아섰다. 도무지 화가 가라앉지 않았다.
진정하지 않으면 집에 돌아갈 수 없었다. 확인도 안 되는데 집까지 돌아가지 못한다면 그가 돌아 버릴지도 몰랐다.
‘김하윤 진짜 내가 한 번 만에 받으면 여러 번 전화 걸지도 않는다고 누누이…….’
“누누이 말했는데.”
머릿속에 있던 생각을 입 밖으로 내뱉은 순간, 무경은 제게 찬물이 쏟아진 줄 알았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은 하윤에게 전화를 건 적이 몇 번 없었다. 그 몇 번도 물건이 어딨는지 묻는 게 고작이었다.
오히려 연락을 자주 하는 사람은 김하윤이었다.
김하윤은 쓸데없는 일로 그에게 곧잘 연락하곤 했다. 답변할 가치 없는 말이 대부분이었고 무경은 단 한 번도 대꾸한 적도 없었다. 하지만 신경이 아예 쓰이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 말라고 일러도 보고 수신 거부를 해 놔도 당장 잠깐만 괜찮을 뿐, 그가 방심한 사이 수신 거부를 몰래 풀곤 했다.
“…….”
자신이 착각한 것일까. 무경은 거칠게 얼굴을 쓸어내렸다. 집에 가야 할 진짜 이유가 생겼다. 지금 제가 떠올린 것이 김하윤이 아니라 김희원에 관한 것이 아닐까 싶었기 때문이었다.
‘일단 김하윤을 만나자. 만나서…….’
만나서 모든 걸 물어보자. 희원에 관한 것도 묻고 어제 묻고 싶었으나 묻지 못했던 것도 묻자. 단순히 자신의 망상이 아니라 잃어버린 기억일 수도 있지 않은가.
그러려면 일단 집에 김하윤이 있어야 했다.
김하윤은 차가 없어 대중교통을 이용해 출퇴근했다. 지하철을 먼저 타고 집 근처에 와서 버스로 갈아탔기 때문에 괴수가 나타난 사거리에 직접 노출되었을 린 없었다.
‘평소같이 퇴근했으면 회사에 있을 것이고, 일찍 나왔으면 지하철 대피소에 있었을 거야.’
김하윤은 허우대가 멀쩡한 데다 은근히 맷집도 셌다. 사람들이 밀려들었어도 제 한 몸 건사해서 잘 피했을 것이다.
‘괜한 오지랖만 안 부렸으면.’
이유를 알 수 없는 식은땀이 이마에 송골송골 맺혔다. 자꾸만 건물에서 떨어져 곤죽이 된 김하윤의 모습이 떠올랐다. 실제론 한 번도 본 적 없는, 단순히 망상에 불과한 장면이 실제같이 계속해서 떠올랐다.
문득 괴수의 시체를 잘라 내다 마주친 눈알이 해당 장면과 겹쳤다. 오랫동안 침잠해 있던 오랜 기억이 떠올랐다.
아주 예전에 이제는 생김새도 기억나지 않는 탐욕스러운 괴수가 그에게 물었었다.
[네가 가장 두려운 것이 무엇이냐.]
□□이 나를 떠나는 것.
하지만 아무리 해도 □□가 무엇인지 생각나지 않았다. 김희원일 것이라고, 김하윤이 말했던 대로 희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처음 김하윤에게 들었을 때처럼 그럴싸하게 들리지 않았다.
송골송골 맺혔던 땀에 아래로 뚝 떨어지는 순간 무경은 이대로는 빼앗긴다는 불안감에 사로잡혔다.
집에 가려 멀쩡한 척했으나, 어떤 정신으로 집까지 돌아왔는지 모를 일이었다. 현관문을 열어젖히며 무경은 맨 먼저 신발을 확인했다. 마침 낡은 구두 한 켤레가 삐뚤게 놓여 있었다. 무경은 곧장 안방으로 향했다.
또다시 문을 열어젖히곤 이번엔 침대를 확인했다. 이불이 동그랗게 부풀어 있었다. 황급히 다가간 무경은 곧장 이불을 젖히곤 그 안에 몸을 웅크리고 있던 하윤을 확인했다. 바짝 곤두섰던 신경이 가라앉으며 머릿속이 따끔거렸다.
무경은 가만히 하윤을 내려다보다가 그를 흔들어 깨웠다.
“일어나, 일어나 봐. 김하윤.”
평소라면 예민하게 반응하고 일어났을 김하윤이 움직이지 않았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치솟았다. 무경은 제가 흔드는 대로 흔들리는 하윤을 아예 억지로 일으켰다. 그제야 눈을 뜬 김하윤이 신음같이 그의 이름을 불렀다.
“……무경아?”
“하자, 해야겠어.”
왜 해야겠는지, 왜 이 진창에 자신을 처박아야 하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저 자신을 뿌리째 뒤흔드는 불안감에 미쳐 버릴 것만 같았다. 그게 썩은 지푸라기일 김하윤일지라도 붙잡아야 했다.
“…….”
하지만 김하윤은 대답하지 않았다. 잠시 눈을 뜬 게 고작이었던 듯 다시 눈을 감고 있었다. 무경은 다시금 하윤을 흔들었다.
“김하윤, 나 좀 봐 봐.”
속삭이듯 튀어나온 말에 무경은 이질감을 느꼈다. 분명 자신이 말했는데, 자신이 말한 것 같지 않았다.
그때 김하윤은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한숨 소리에 가슴이 순간 덜컥 내려앉았다. 눈앞이 컴컴해져 벙벙한 사이 김하윤이 그를 끌어안았다.
“…….”
옷과 이불이 바스락거리는 소리, 고르게 내쉬는 숨결. 방 안의 훈기와 맞닿은 몸의 촉감. 익숙하다면 익숙한 것이나 또 어찌 보면 낯선 것들이 뒤섞여 있었다. 예를 들면 제 어깨와 목덜미에 닿은 김하윤의 얼굴이 그랬고, 조각을 맞추듯 끌어안은 몸이 그랬다.
무경은 하윤을 끌어안지도, 떨쳐 내지도 못한 채 손끝만 움직였다.
잠결에 대충 끌어안은 것에 불과한데 조금의 틈도 없는 곳에 갇힌 양 숨이 턱 막혔다. 이를 인식하자 더없이 갑갑하고 괴로워졌다. 호흡을 미처 고르지 못해 무경은 숨을 헐떡이기 시작했다.
마디가 희어질 만큼 주먹을 꽉 쥐었으나 하윤을 밀어내지 못했다. 작금의 현상이 우스워 견딜 수가 없었다.
‘이게 뭐라고, 대체 이게 뭐라고.’
무경은 김하윤을 밀어내기 위해 곧장 그의 어깨를 짚었다. 축 늘어져 있어 그저 밀기만 하면 떨어질 것이었다.
“……괜찮아, 다 괜찮아.”
“…….”
“아무 일도 없었어.”
중얼거리는 소리라 혼잣말을 하는 건지, 제게 말하는 건지 알아듣기 힘들었다. 이어 김하윤은 무경의 등허리를 살살 도닥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등허리를 도닥이던 손이 아래로 힘없이 뚝 떨어졌다.
무경은 하윤의 머리가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뺨에 닿는 머리칼과 온기가 그렇게 싫지는 않았다.
어쩌면 김하윤이 하던 헛소리처럼 그가 하나 남은 가족 비슷한 존재라 신경이 쓰였는지도 몰랐다. 더군다나 김희원과 자신의 관계를 증명해 주는 유일한 증인 아니던가. 김하윤이 없고서는 무경은 김희원과의 추억을 아무것도 생각하지 못했다.
‘내겐 아무것도 없으니까.’
□□□에 관해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니까.
불현듯 어제 꾼 꿈의 잔재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이미 휘발되어 제대로 기억하지도 못하면서 희미한 모습과 불안만 떠올랐다.
‘그때도 분명 이렇게 안았던 것 같은데…….’
아니, 안은 게 아니라 업고 있었다. 무경은 기억을 정정했다. 하지만 한 몸인 것처럼 딱 붙어 있었던 건 맞았다. 그도 그럴 게 딱 이런 느낌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때의 자신은 지금 이렇게 갑갑하고 괴롭지 않았다. 오히려 내내 그를 괴롭히던 공허함이 사라졌으니까.
생각을 곱씹던 무경은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당연한 거 아닌가. 그건 김희원이지 김하윤이 아니니까.’
다른 사람이니까 다른 느낌이 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를 인지하자 지금 느끼는 느낌이 몹시 불쾌하게 느껴졌다. 아니, 그렇게 느껴야 한다고 생각했다. 김희원에게 느껴야 할 느낌을 김하윤에게 찾으려 했으니까.
그러나 이상하게도 김하윤을 밀어내려 해도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꼭 김하윤의 어깨에 손바닥이 자석 붙듯 붙은 것만 같았다.
“……기분 나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