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화
무경은 굳은 눈으로 회백색으로 변한 괴수의 시신을 바라보았다.
괴수는 퇴근길로 정체되었던 사거리에 떨어졌다. 처음 떨어졌을 때는 이 미터여의 짐승의 모습이었으나, 떨어진 직후 급격히 부풀다가 터져 버렸다. 몸에서 터져 나온 점액질은 정체되어 있던 차량을 덮치며 순식간에 몸집을 키웠다.
점액질 안에는 염소의 눈알과 같은 것들이 수십 개가 있었는데, 몸집을 키우면서 눈 또한 많아졌다. 그 눈이 정신을 교란하고 교란 과정에서 나오는 어떠한 에너지를 나름의 방법으로 흡수하고 흡수한 에너지를 토대로 계속해서 증폭하고 있는 것이리라.
단 한 개체에 불과하고 정확한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았으므로 어떤 에너지를 어떻게 흡수하지는 알 수 없었으나, 그렇다고 손 놓고 있기에는 피해가 컸다. 또 얼마큼 더 커질지 알 수 없었다. 특히나 지성체로부터 에너지를 수급받는다면 인구밀집도가 높은 서울은 특히나 위험했다.
더욱이 거리공원 사거리에서 신도림로로 들어설 무렵부턴 괴수의 몸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연기가 퍼지자 직접 눈을 보지 않았음에도 이상증세를 보이는 이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괴수의 범위를 제한하려 했다. 도심의 특성 및 사후처리를 고려하여 빙결계 능력자와 살수차를 동원했지만 당초 예상했던 것과 달리 별 효과가 없었다. 윗선에서도 어떻게든 막으라고만 할 뿐 뚜렷한 방도를 내지 않았다.
그러다 나온 게 점액질 속에 있는 눈을 파괴해 보자는 것이었다. 괴수의 성장을 저지하며 추가 접촉을 막아 말려 죽이자. 다소 무식한 방법이나 이것 외엔 달리 할 게 없었다. 문제는 점액질 속에서 눈을 빼내는 것이었고 이를 위해 막 합류한 무경이 나섰다.
무경의 염동력에 괴수의 점액질 몸에서 안구가 위로 솟구쳤다. 그러나 점액질을 완전히 뚫지는 못했다. 염동력에 의해 공중에 솟구친 만큼 괴수의 몸뚱어리도 늘어졌다. 그러나 이전보다는 안구를 감싼 두께가 얇아졌다.
모두가 때를 놓치지 않고 공격을 쏟아부었으나, 점액질 몸을 퉁퉁 두들기기만 할 뿐 뚫지 못했다.
무경의 힘을 이기지 못한 도로가 뜯겨 올라가고, 그 사이에 있던 자동차들이 일그러졌다. 괴수의 몸에서 피어오르는 연기가 짙어지면서 뒤에 주둔하고 있던 군인들이 이상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중 누군가가 자기 자신을 쐈다.
타앙-!
이상하리만치 선명한 총성과 동시에 괴수의 잿빛 섞인 투명한 몸이 일순 불투명한 회백색으로 변하며 움직임이 멈췄다. 숨이 끊어진 것이다.
“…….”
에스퍼들은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이때 다른 에스퍼가 개입했다. 그는 적인지 아군인지 알 수 없었다. 어쩌면 미등록된 에스퍼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이 사태를 한 번에 처리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한 힘을 가졌다는 것이었다.
에스퍼들은 각기 능력을 끌어 올리며 주변을 경계했다. 보조계열의 에스퍼는 부근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무것도 찾지 못했다.
직접적인 전투가 종료되자 에스퍼들을 즉각 철수시키라는 명령이 내려왔기 때문이었다. 정신계 능력을 사용하는 괴수이니만큼 피해 여부를 확인하기 어렵고, 또 문제가 터졌을 때 수습 범위를 한정하기도 어려웠다.
방호복을 입었다 한들 그것이 효과가 있었을지는 미지수였다.
에스퍼들의 즉각 철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카운트다운이 진행되었다. 한숨을 내쉰 에스퍼들은 무기를 보관 상자에 넣고 근처 바닥에 드러누웠다. 카운트다운이 종료되자 현장현장 지휘를 맡은 무경을 제외한 에스퍼들의 방호복 내에서 마취제가 분사되었다.
익숙하게 받아들이는 에스퍼도 있었고 화를 내는 에스퍼도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이 잠들자, 지원업무를 나온 팀에서 에스퍼들을 수거했다. 군대가 아닌 파견업체에 소속된 헌터들은 업체에서 보낸 관리직원이 수습을 도왔다.
그사이 무경은 가이드라인을 넘어 괴수의 사체에 다가갔다. 여태 대한민국에서 등장 사례가 없었던 괴수였기 때문에 괴수생태연구소에서 괴수의 사체를 요구했다. 호송을 책임질 특수차량이 속속들이 도착해 신원과 허가서를 확인 받는 사이, 무경은 전투 중에 느꼈던 것들을 곱씹었다.
괴수는 사거리에서 등장하여 인근 도로와 일 층 상가 및 지하철로 흘러내렸다. 단순히 지면에만 있었다면 조금 힘들고 말았겠지만, 이번 경우는 지하와 상가 건물, 서울 도심 내 빼곡히 들어선 건물 사이사이를 파고들어 갔었어야 했다.
초능력의 제어 범위가 넓은 무경 본인 또한 일부는 포기했을 만큼 복잡했다.
‘괴수의 범위를 한정하여 증식을 막았다.’
하지만 상대는 괴수가 손을 뻗은 모든 범위를 제어하고, 또한 더 흘러가지 못하도록 옭죄었다. 다른 이들은 몰라도 괴수를 들어 올리고 있던 무경은 분명하게 느꼈다. 상대는 무경의 염동력이 발휘되고 있던 틈을 파고들었으니까.
상대는 능력치가 높을 뿐만 아니라 능력을 사용하는 데 있어 매우 능수능란했다. 게다가 무경 본인과의 합이 좋았다. 익숙하게 틈을 파고들었고, 또 무경의 힘을 이용하기도 했다.
‘범위를 제한하고 그 범위 내에 있던 눈알들을 파괴했다.’
전부 다 터트렸는지는 확인해 봐야 할 일이지만, 일단 상대는 괴수의 핵을 건드렸다. 그렇지 않았다면 괴수가 이렇게 맥없이 거꾸러지진 않았을 것이다. 핵이 어디 있는지, 어떻게 건드렸는지 알 수 없었다. 대한민국의 내로라하는 에스퍼들조차 괴수의 점액질을 뚫지 못했다.
점액질의 흡수율이 과하게 좋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괴수생태연구소에서 사태가 일단락되자마자 눈 뒤집고 달려온 것이리라.
하지만 이 모든 것 중에서 무경을 자극하는 건 상대의 기운과 싸움 방식이 매우 익숙하다는 점이었다. 정작 그 익숙함에도 누군지 떠올리지도 못하는 점이 답답했다.
작전 중이 아니었다면 상대를 찾아 뛰쳐나갔을지도 몰랐다. 당장 그이의 위치를 찾지 못한 것도 이유 중 하나였다.
이만큼 강한 힘을 쓰는 상대임에도 어디 있는지 특정조차 할 수 없었다. 탐색 범위 밖에 존재한다면 터무니없이 강한 존재라는 소리이고, 탐색 범위 내에 있으나 저희가 찾지 못했다면 그건 그것 나름대로 문제가 되니까.
‘상대가 거리에 상관없이 능력을 사용할 수 있다면?’
무경은 자신의 상상에 작게 코웃음 쳤다. 암만 감춘다고 할지라도 이 좁은 땅에선 티가 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저 잘 숨는 거라고 봐야겠지.’
무경이 생각을 마무리할 때쯤, 괴수의 사체 인수를 맡은 생태연구소 소속 연구원이 무경의 눈앞에서 얼쩡거렸다. 차마 말 걸 용기는 없었던지 그는 몸을 반쯤 숙인 채 무경의 눈치를 살폈다.
그러다가 무경이 알은체를 하자마자 지척에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그는 짧은 인사 뒤에 무경에게 허가증과 자신의 신상을 증명할 수 있는 자료를 내밀었다. 무경은 확인 도장과 사체를 인수할 차량 번호를 확인했다.
줄지어 있는 차량의 수가 많았다. 괴수의 등장 소식을 듣자마자 차량을 공수한 게 틀림없었다. 무경은 서류를 더 뒤적거리다가 그들이 요청한 사항을 확인하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요청 범위가 과하군요.”
“아하하, 아무래도 대한민국에선 처음 등장한 개체다 보니……. 아, 물론 해외에선 나타난 개체일 순 있지만 그래도 저희가 조회한 자료에는 없어서 연구가 많이 필요할 것 같아서요. 샘플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 않습니까? 여러 가지 실험도 해 볼 수도 있고.”
“팔 수도 있고.”
“에이, 판다니요. 그냥 협동 연구차, 인류의 미래를 위한 연구를 위해 다 같이 협력하는 거죠. 비용은 운송비용 빼면 없어요, 없어.”
연구원은 무경을 향해 비굴한 웃음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무경 본인 또한 에스퍼들이 수거될 때 수거되었어야 했다. 다만 무경 본인이 워낙 안 좋은 상태에서도 업무를 맡아 진행한 경우가 많았고, 또한 이번 사체 수습을 위해선 무경의 힘이 필요했다.
그가 없다면 거대한 괴수를 절단하여 운송 차량에 싣는 과정까지 수많은 노동력이 필요할 것이고, 그사이 사체가 부패하는 등 손상될 위험이 컸다.
그리고 그만큼 복구 작업도 늦어질 것이고, 복구 작업이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건물에 대피하고 있는 시민들의 불만이 커질 것이다. 무경은 문득 누군가를 떠올리고 눈을 깜빡였다. 생각이 이어지지 않도록 곧장 몸을 돌렸다.
무경은 한숨을 한번 내쉰 다음, 연구원의 요청대로 괴수의 시신을 절단하기 시작했다.
생전과 달리 경화가 진행되는 중인지 사체를 잘라 내는 게 수월했다. 이를 눈치챈 연구원의 안색이 어두워졌으나 무경이 상관할 바는 아니었다.
괴수를 절단하여 옮기면서 그 아래 깔려 있던 참상이 드러났다. 미처 대피하지 못하고 참상에 휩쓸린 이들은 전원 사망하였으며, 눈알이 없었다. 무경은 괴수의 시신을 들어 올리다가 미처 터지지 않은 눈알과 눈을 마주하고는 입술을 짓씹었다.
조금 전과 같은 힘을 발휘하진 않았지만, 불쾌감을 주기엔 충분했다.
괴수의 사체를 자르고 들어내 운송 차량에 싣고, 나머지는 도로 외곽에 깔아 놓은 방수포 위에 올렸다. 작전에 참여하지 않았던 길드 소속 빙결계 초능력자가 파견되어 남은 사체를 얼려 적재를 도왔다.
어느 정도 현장을 정리한 다음 간단히 보고하고 나자 날을 훌쩍 넘겼다. 마취된 채로 운반되었던 다른 초능력자들과 달리 무경은 제 발로 병원으로 걸어 들어갔다.
간단한 검사를 마치고 별 이상이 없다고 판정 났다. 하지만 혹여 환각이나 이상증세가 나타날 때를 대비하여 하루 입원하는 게 어떻겠냐는 권고를 받았다. 평소라면 이의 없이 받아들였겠지만, 무경은 그냥 집에 돌아가고 싶었다.
“…….”
집에 가고 싶었다.
가서 해야 할 것도 없고 하고 싶은 것도 없었다. 기자가 깔려 있을 수도 있고, 주민들이 불안을 호소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데도 이 모든 것들을 감수하고서라도 집에 돌아가고 싶었다.
호송 차량을 기다리는 동안 무경은 휴대전화를 꺼냈다. 한가득 쌓인 메시지를 무미건조하게 확인하다가, 이내 이름도 저장되지 않은 누군가가 엊그제 보낸 문자를 확인했다. 창을 나갔다가 다시 들어와도 새로 들어온 메시지가 없었다. 무경은 곧장 상대에게 전화를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