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원 라스트-55화 (55/162)

55화

“……누가 갖다 박은 것 같은데.”

방호벽 때문에 창밖이 보이지 않음에도 하나둘 창가로 다가갔다.

“창가에 가까이 가지 마! 그러다가 무슨 일 있으면 어쩌려고 그래? 안전 수칙 몰라?”

“소리가 들리니까 저도 모르게. 가까이 가게 되네요.”

이름 모를 직원은 잘못을 시인하면서도 뒤로 물러나지 않았다. 보다 못한 다른 직원이 그를 끌고 창문에서 가장 먼 곳으로 데려갔다.

“단독 행동할 생각하지 마. 지금은 훈련이 아니라 실제 상황이니까.”

부장은 영업부 직원들의 얼굴 하나하나를 바라보며 당부했다. 오랜 연륜으로 작금의 사태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낀 것이리라.

때마침 라디오에서 정부 소속 에스퍼들과 헌터들이 파견되었다는 소식을 전했다. 구체적인 정보로 신뢰를 주기 위해서 정부 소속 에스퍼들과 헌터 전문 파견업체, 통칭 길드에서 협조하여 차출한 인원들의 신상 명세가 이어졌다.

뛰어난 능력과 외모 등으로 준 연예인과 비슷한 인기를 누리는 에스퍼들이 대거 소속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중엔 무경의 이름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어 라디오 방송에서는 금번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믿어 달라는 호소가 이어졌다. 또한, 정부 기관의 지침이 내려오는 채널과 일반 라디오 청취를 겸용하길 추천했다.

가짜뉴스나 루머에 휘둘리지 않도록 당부의 말도 이어졌다.

방송을 듣던 몇몇이 혀를 차며 일반 라디오를 들을 정신이 있겠느냐며 정부 관계자를 욕했다.

“진짜 속 모르는 소리 하네. 저 소리 할 시간에 구하러 오겠다. 안 그래? 하윤 씨.”

“어차피 안에만 있으면 할 것도 없잖아요. 괜히 가짜뉴스나 루머만 들으면 마음만 어지럽고.”

하윤은 동료직원의 말에 대꾸하며 방송에서 들었던 말을 곱씹었다. 짐작했던 대로 정신계 능력을 사용하는 괴수가 맞겠구나 싶었다.

‘어떤 형태로 능력을 사용하는지 알 수 있다면 좋을 텐데.’

하윤은 무심결에 생각하다가 곧장 반박했다.

‘알아서 뭐 하게.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데.’

문득 이 상황이 예전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1 무렵, 실기 수업을 하러 갔다가 하급 괴수와 마주쳐 대피했었던 때를.

사뭇 자아가 비대해 보일 수도 있으나 그때는 강한 힘을 갖고 있어 그 상황이 지루하게만 느껴졌다. 반면 지금은 힘이랄 게 하나도 없었다.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딱히 두려움이 없는 상태라는 게 그때와 비슷한 기분이 들었다.

하윤은 습관처럼 책상 위에 있던 머그컵을 집어 들었다. 먹다 남은 차가 있을 줄 알았는데 아무것도 없었다. 텅 빈 머그잔을 바라보던 하윤은 문득 안경알 옆 틈 사이로 보이는 [문]에 움직임을 멈췄다.

이미 그 자리에 있는 줄은 알고 있던 문이었다. 다만 그 문이 들썩이고 있었다.

하윤은 안경을 벗었다. 안경을 벗자 더는 문이 보이지 않았다. 차라리 이게 나았다. 하윤은 한숨을 삼키며 아예 몸을 돌렸다.

그때 다 같이 모여 있던 직장 동료들이 눈에 들어왔다. 걱정에 매몰되지 않도록 일상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그중 한 명이 울음을 터트렸다. 잘 웃고 떠들다가 갑자기 눈물을 보이자 다들 의아해했다. 본인도 이유를 알지 못하겠노라 대꾸하더니 울며 웃기를 반복했다.

“아, 이게. 이게 왜 이러지? 아하하하, 하하! 하하! 왜 이러지. 아니, 끄읍, 끅, 아니, 이게. 대체……!”

깔깔거리다가 꺽꺽거리며 울자 얼마 안 있어 호흡 곤란이 찾아왔다. 그러나 그러는 중에도 웃음과 울음을 멈추지 못했다. 괴로운 나머지 스스로 바닥에 머리를 찧으려 했다. 곁에 있던 동료들이 기함하며 말리자 온몸을 버둥거렸다.

“소윤 씨, 소윤 씨 정신 차려요!”

호흡이 제대로 되지 않아 얼굴이 파랗게 질리고 손발이 구부러졌다. 다른 동료가 장비를 가져와 응급처치를 돕지 않았다면 숨이 넘어갔을 것이다.

“세상에, 하하, 하하하!”

“하하하!”

그리고 그 광경을 지켜보던 이들 중 몇몇이 웃음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스스로 이상하다고 생각했는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입을 막았으나, 얼마 가지 못하고 다시 웃기 시작했다. 이상을 눈치챈 이들이 서로 눈을 마주쳤다.

하윤은 손목을 주물렀다. 뼈를 파고드는 듯한 날카로운 통증이 느껴졌다.

위험한 무언가가 제게 다가오고 있다고, 오랫동안 잊고 있던 감각이 경고하고 있었다.

‘막아야 하는데.’

그러나 자신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안경 없이는 문을 볼 수도 없었다. 그러니 문을 여닫는 것도 할 수 없었다.

하윤은 미련을 지워 내려 눈을 질끈 감았다. 눈꺼풀이 내려앉는 순간 뚜둑거리는 소리가 다시금 이어졌다. 콧등이 얼얼해지며 주변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

조심스레 눈을 뜬 순간, 어둠이 내려앉은 사무실이 아닌 새빨간 세상이 하윤을 맞이했다.

하윤은 숨을 헉 들이켰다. 이제는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던 익숙한 공간이었다. 수많은 문으로 이루어진, 서이주의 시신을 두고 왔던 자신의 공간.

‘실제가 아니야.’

실제일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자신은 문을 열지 못하니까.

하지만 환상인 줄 알면서도 둘러볼 수가 없었다. 둘러봤다가 서이주와 마주칠까 봐서였다. 그녀가 썩어 있든, 이전 모습 그대로 남아 있든 마주 볼 자신이 없었다.

그때, 아래에서 황금빛 빛이 번졌다. 고개를 숙이자 제 머리통보다 조금 큰 황금색 구체가 있었다.

다만 구체는 드문드문 이가 빠져 있었는데, 빠진 조각은 금색 빛 입자의 꼬리를 매단 채 구체 위에 떠 있었다. 각기 떠 있는 위치가 달라서 어떤 건 구체 가까이 닿아 있고, 어떤 건 하윤의 가슴께까지 떨어져 있기도 했다.

하윤은 손을 뻗어 구체 바로 위에 있는 조각을 밀었다. 얼마 솟아 있지도 않았으면서 저항이 거셌다. 손끝이 희어질 정도로 세게 힘을 준 뒤에야 밀어 넣을 수 있었다.

뚜둑.

조각을 맞춘 건 황금색 구체인데, 소리는 제 속에서 났다. 하윤은 혼란스러운 눈빛으로 자신의 가슴을 내려다보았다.

“…….”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꼭 몸 안에서 파도가 치는 것만 같았다. 하윤은 혼란스러운 눈빛으로 구체를 바라보았다.

그때 또다시 손목이 시큰거렸다. 손목을 움켜잡던 하윤은 자신의 손목에 얇은 줄이 걸려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언제 이런 걸 끼고 있었던가. 오래된 기억이 다시금 끌려 나왔다.

짤랑거리던 소리와 수많은 곡옥. 그리고 그 곡옥들이 깨어지며 뱉은 이름들. 그리고 사이에 낀 황금 장식. 불길한 마음에 하윤은 팔찌를 끊어내 버리기 위해 줄 밑으로 손을 밀어 넣었다. 힘주어 당기던 순간에 구체가 천천히 회전하기 시작했다.

완벽한 구체인 줄 알았으나 뒷면은 깨져 있었다. 그러나 깨어진 조각들은 빛 입자의 꼬리를 달고 떨어져 있을 뿐이었다. 아마 저 조각들이 다 맞춰진다면 구체는 이전의 모습을 되찾게 될 것이다.

“……씨발.”

발끝에서부터 전율이 솟구쳤다. 하윤은 구체를 향해 양손을 뻗었다.

그때 왼손 손목에 걸려 있던 줄이 구체에 반응하듯 요동치기 시작했다. 가까이 가면 갈수록 더 빠르게 움직였다.

‘조금 전엔 이렇지 않았으면서.’

하지만 생각해 보면 그땐 팔찌조차 없었다. 어쩌면 자신이 구체를 건드렸기 때문에 팔찌가 튀어나온 것일지도 몰랐다.

어느새 하윤의 두 손은 구체에서 떨어져 나온 조각들에 닿았다. 가장 가까운 순서부터 힘주어 누르자, 조금 전보단 수월하게 밀려들어 갔다. 다만 비교적 멀리 떨어져 있는 것들은 들어갈 생각도 하지 않았다.

조각을 밀다가 하윤이 밀려날 정도였다.

어쩌면 힘이 다해서 그렇게 느끼는 것일 수도 있었다. 한 조각 한 조각 밀어 넣을 때마다 힘이 쭉쭉 빠졌다. 알싸한 통증이 느껴지던 코에선 기어코 코피가 쏟아졌다. 하지만 하윤은 닦을 생각도 하지 못하고 조각을 밀어 넣는 데 집중했다.

넣을 수 있는 마지막 조각을 밀어 넣고 나자 하윤은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였다. 머리가 어지럽고 속이 메스꺼웠다. 헛구역질을 하며 몸을 웅크린 사이, 얼추 모양새를 찾은 구체가 천천히 돌기 시작했다.

하윤이 끼고 있던 팔찌 또한 느릿하게 파동 치며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윽고 하윤을 감쌀 만큼 길어졌다.

“흐…….”

하윤은 팔찌가 단순한 금속이 아니라는 것을 발견했다. 팔찌는 수많은 이름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그중 익숙한 이름을 발견한 하윤은 고통스럽게 얼굴을 일그러트리다가 웃음을 터트렸다.

쌍욕이 목에 걸렸으나 차마 뱉어 낼 수가 없었다. 공간에 들어오기 전 회사 사람들처럼 하윤은 울면서 웃었다. 뜨거워진 눈시울에서 눈물방울이 떨어졌다.

파동 치던 팔찌는 이윽고 어느 한 면을 하윤에게 들이밀었다.

[김▒ㅇ], [ㄱㅎ▣], [¿ㅎ玧]

글씨는 하윤이 반응하지 않자 곧장 모습을 계속해서 바꾸었다. 하지만 그런 수고가 무색하게도 변환을 잘못한 글씨처럼 알아보기 힘들었다.

[김ㅎ玧]

최종적으로 변한 형태를 바라보며 하윤은 입을 열었다. 자신이 모르려야 모를 수 없는 이름.

“……김하윤.”

깨어졌던 글씨가 변하기 시작했다.

온전히 자신의 이름으로 바뀌었을 때, 하윤은 일어나기 위해 바닥을 짚었다. 몸이 이렇게 무거운 적이 없었다. 가까스로 상체를 일으키자 벽을 이루고 있던 [문]들이 황금색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하윤은 팔찌 속에 있는 자신의 이름을 새기듯 바라보다가 눈을 감았다가 떴다. 그러자 몸이 가벼워지며 현기증이 돌았다. 몸의 중심을 잡지 못해 다시 바닥에 쓰러진 순간, 하윤은 자신이 어느새 사무실로 돌아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

다시금 소음이 쏟아졌다. 이제는 울부짖고 웃는 소리 대신에 절규가 가득했다. 하윤은 거친 숨을 내쉬었다. 이것들이 전부 환상이었던 것일까. 내내 참고 있던 욕설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씨발.”

이 와중에 능력이 돌아오는 환상을 봤다는 게 수치스러웠다. 내내 괜찮은 척 이제 미련이 없는 척하다가 능력을 되찾을 수 있을 것 같자 허겁지겁 달려들었던 작태 때문이었다. 하윤은 거칠게 얼굴을 쓸어내렸다. 자괴감이 밀려들었다.

“가지가지 한다. 진짜.”

코피를 쏟았는지 숨을 내쉴 때마다 피 냄새가 났다.

하윤은 코피를 막을 생각도 없이 손등으로 대강 한번 훔치기만 했다. 밀려든 자괴감을 좀처럼 떨쳐 낼 수가 없었다.

“……?”

그때 멍하니 천장을 응시하던 하윤은 천장에 문이 보인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안경 틈새로만 겨우 문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에 평소에 볼 수 없는 위치이긴 했으나, 문이 있으리라는 느낌조차 받지 못했었다.

‘잠시만.’

하윤은 책상을 잡고 몸을 일으켰다. 천장에 보이는 문은 이 층에 있는 게 아니었다. 훨씬 더 윗층, 최소 육 층여 위에 존재하고 있었다.

이전의 하윤은 위치와 상관없이 문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하윤은 이전처럼 문을 보고 있었다. 암만 눈을 감았다가 떠도 계속 보였다. 아니, 이제는 이 건물 내에 있는 모든 문이 어디 있는지 느낄 수 있었고, 또 그것을 보고자 하면 볼 수 있었다.

‘힘이 돌아왔다.’

하지만 속단하긴 일렀다. 이번에도 단순히 문을 보는 것에 그칠 수 있었으니까.

‘내가 힘을 어떻게 썼더라.’

하윤에게 있어서 문을 여는 건 숨 쉬는 것과 같았다. 당연한 일이었고, 어떠한 노력도 필요 없었다. 하고자 하면 됐으니까.

[문]은 하윤이 바로 열지 못하고 헤매자 안달이라도 난 양 일제히 덜그럭거렸다. 하윤은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 흥분으로 인해 떨림을 주체할 수 없었다. 양손을 맞잡은 채 이 건물의 모든 [문]을 닫아 괴수의 영향으로부터 막아 낼 것을 바랐다.

하윤의 공간 안 붉은 문들이 순식간에 황금색으로 변해 간 것같이, 하윤의 주변에 있던 모든 문들이 하윤의 바람에 응했다.

건물 내에 있던 [문] 수십 개가 닫히고, 누군가 탈출을 시도하느라 벌어졌던 건물 틈새를 막았다. 겉으로 보기에는 여전히 열린 것으로 보일지 모르나, 그곳으로 들어오는 괴수의 힘은 문과 연결된 다른 곳으로 흘러갈 것이다.

코에서 피가 멎지 않고, 귀에선 이명이 그치지 않았다. 중심을 잡을 수도 없이 어지러워 다시 바닥에 고개를 처박았지만, 하윤은 활짝 웃었다.

“씨이발.”

그래, 이 느낌이었다. 하윤은 바닥에 이마를 비비며 숨죽여 웃었다. 눈을 까뒤집듯 올리던 하윤은 다시금 문을 열고 그 틈 사이로 작금의 사태를 초래한 괴수를 찾았다.

하지만 막상 마주한 괴수는 괴물에 가까웠다. 실패한 슬라임 같은 몸과 찢어진 짐승의 몸뚱어리가 함께 있었다. 아마도 이곳으로 오며 변형이 있었을 것이다.

하윤은 찢어진 짐승의 몸뚱어리를 중점적으로 살폈다. 뿔이 있고, 짧고 검은 털을 갖고 있었다. 두 개로 갈라진 발굽과 뭉툭한 치아.

그리고 점액질로 이루어진 몸에 그득 담겨 있는 눈은 염소를 떠올리게 했다. 비록 그 수가 한 마리의 염소라고 하기엔 너무 많았지만.

어찌 됐든 괴수의 몸에선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고, 역한 냄새를 풍겼다. 그리고 그로부터 꽤 먼 곳에 저지선이 만들어져 있었다. 방호복을 입은 군인들이 주둔하고 있었으나, 별 도리가 없어 보였다.

군인들 앞에는 그들과 다른 방호복을 입은 이들 다섯이 서 있었다. 셋은 괴수의 부속물로 만든 무기를 갖고 있었고, 둘은 무기가 없었다.

또 비슷한 복장을 한 이들이 동쪽 건물 옥상에 두 명, 서쪽 건물 옥상에 세 명이 더 서 있었다. 이들 뒤에도 군인들이 다수 포진해 있는 것을 보면 그들이 누구고 군인들이 어떤 역할인지 알 것 같았다.

에스퍼들이 괴수를 처치하지 못하고 오히려 정신이 잠식되어 폭주를 일으킬 경우, 군인들은 그들을 저지할 것이다.

물론 에스퍼들이 잘못되었을 때 그들이 사태를 수습할 수 있을 정도로 멀쩡할 리는 없겠지만.

그리고 이미 상황이 썩 좋아 보이지 않았다. 멀찍이 자리 잡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미 몇 번 밀린 흔적이 있었다.

뒤집혀 있는 살수차들과 높이 치솟아 있는 얼음벽이 그 증거였다.

소리가 들리지 않아도 깊은 절망이 흐르고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아마 이들로서는 저 괴수를 막을 수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때, 저지선 사이에서 누군가가 걸어 나왔다. 방호복 때문에 얼굴을 볼 수 없었지만, 하윤은 그가 누구인지 단번에 알아차렸다.

무경이었으니까.

그가 나아가 능력을 사용하는 것을 보며 하윤은 저만 들리는 소리로 주문같이 중얼거렸다.

“김하윤, 문을 열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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