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화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어찌나 세게 두드리는지 닫힌 문이 휘청였는데, 그 사이로 누군가 자신을 보고 있었다.
사람의 눈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린 순간, 하윤은 눈을 떴다.
“……!”
악몽에 가슴을 쓸어내리다가 이내 자신이 왼쪽으로 돌아누워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차 싶어 급히 몸을 돌리려 하자 이불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하윤은 습관처럼 숨을 참았다.
그때 무경이 하윤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렇게 자면 떨어지잖아. 이쪽으로 와.”
어두워서 무경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하윤은 무경에게 잡힌 손을 보다가 입술을 달싹거렸다. 뭐라고 해야 할지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하윤이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자 무경은 제 옆자리를 통통 두드렸다. 그래도 하윤이 가만히 있자 아예 몸을 일으켜 하윤을 안아 들었다.
“왜 이렇게 떨어져서 자? 안 그래도 좁은 침댄데.”
“…….”
좁은 침대. 하윤은 무경의 말을 곱씹었다. 그럴 리가 없는데 생각하면서도 반박하지 않았다. 자신을 안아 든 무경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 그러나 눈을 감지는 않았다. 이대로 감고 다시 잠들면 안 될 것 같았다.
하윤이 눈에 힘을 주자 무경이 나직이 웃었다.
“잠이 안 와?”
하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무경의 커다란 손이 하윤의 머리와 뺨을 쓰다듬었다.
‘아, 맞아. 이랬었지.’
무경은 하윤을 안은 채로 몸을 좌우로 기울였다. 그러다가 아직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하윤을 보고선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잠이 안 오면 업어 줄까? 밖에 잠시 산책하고 오면 괜찮을 거야.”
하윤은 대답하지 않았지만, 어느 순간에 무경의 등에 업혀 있었다. 무경은 하윤을 업은 채로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걸음을 뗄 때마다 마룻바닥 삐걱이는 소리와 함께 몸도 살짝 흔들렸다. 아직 이른 새벽인지 사방이 온통 컴컴하기만 했다.
하윤은 무경에게 말을 거는 대신 발끝을 꼼지락거렸다. 그러자 어디선가 모포가 날아와 하윤의 등과 발을 감쌌다.
‘맞아. 무경이 이런 거 할 수 있었지.’
하윤은 무경의 등에 얼굴을 비볐다. 그사이 무경은 계단을 지나 현관문을 열고 바깥에 나왔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바람 한 점 느껴지지 않았다. 주변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그 이유을 알아챈 하윤은 손끝을 말아 쥐었다. 분명 잠들지 않으려 눈을 부릅뜨고 있었는데, 자꾸만 눈앞이 흐려졌다.
“…….”
무경아.
하윤은 무경을 불렀으나,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무경은 자신이 부르는 줄도 모르고 앞만 보고 있었다. 드문드문 끊어지는 허밍 소리에 하윤은 떨리는 입술을 이로 짓눌렀다. 그러다가 무경의 어깨를 세게 후려쳤다. 그러나 손에 닿는 감촉이 없었다.
‘한 번만. 한 번만 돌아봐. 얼굴 좀 보여 줘.’
무경이 보고 싶었다. 지금의 무경이 아니라 자신을 사랑했던, 자신이 사랑했던 무경이 보고 싶었다.
‘나도 네가 너무 보고 싶어.’
하윤은 계속해서 손을 휘둘렀다. 그러나 무경은 돌아보지 않았다.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그저 앞을 보며, 이따금 허밍을 흥얼거리며 걸을 뿐이었다. 하윤은 때리는 것을 포기하곤 무경의 옷을 그러쥐었다.
그러나 고운 모래를 쥔 것처럼 자꾸만 옷자락이 손에서 빠져나갔다. 하윤은 손끝이 하얘지도록 힘을 주었다. 그러나 옷자락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을 순 없었다. 완전히 놓친 옷자락에 아차 싶어서 고개를 든 순간, 큰 소리와 함께 코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
하윤은 코를 움켜쥔 채 숨을 헉 들이켰다. 코도 얼얼하고 머릿속도 얼얼했다. 땀과 함께 가슴이 세차게 쿵쾅거렸다. 하윤은 놀란 눈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러다 무경을 발견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으며 몸에 힘이 쭉 빠졌다.
“내가 붙지 말랬잖아.”
하윤은 무경의 힐난에 자신이 왼쪽으로 돌아누웠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무경은 자는 중에 닿는 것도, 저와 얼굴을 마주하는 것도 싫어했다. 자세를 보아하니 닿은 것뿐만 아니라 얼굴을 마주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아차 하는 순간 하윤의 코에서 핏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급히 고개를 젖히며 코밑을 훔쳤다. 정통으로 맞았는지 코피가 났다. 그사이 무경은 방과 연결된 욕실로 들어갔다. 하윤은 욕실 문 닫히는 소리에 조심스레 자리에서 일어났다.
얼굴을 씻고 코를 틀어막았다.
‘붙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랬다면 좀 더 괜찮은 아침을 시작했을지도 몰랐다. 하윤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잠시 힐긋거리다가 고개를 숙였다. 차마 눈 뜨고 봐줄 수 없는 꼴이었다.
하윤은 안경을 낀 다음 방을 나가 베란다로 향했다. 창문틀을 밟고서 베란다 창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마자 꿈에서와 달리 찬바람이 훅 불어왔다.
바로 욕실에 들어간 것을 보아 무경은 곧장 출근 준비를 할 것이었다. 잠결이지만 손을 휘두를 정도로 예민해진 무경을 자극하고 싶지 않았다.
‘출근할 때까지만.’
수치심에선지 아니면 그냥 욱했던지 뺨이 한껏 달아올라 있었다. 하윤은 손등으로 뺨을 식히다가 자신이 손을 떨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얇은 방충망에 이마를 기댄 채 떨림이 잦아들기를 기다렸다. 이른 시간이었던지 바깥은 아직 푸르스름한 새벽에 잠겨 있었다.
하윤은 다시금 떠오르는 꿈 생각에 거칠게 얼굴을 쓸어내렸다. 하윤은 요즘 들어 부쩍 옛날 일을 꿈꾸곤 했다. 더 나은 미래를 꿈꿀 수 없어서 과거에 골몰한 것일지도 몰랐다.
‘더 나은 미래.’
미래를 곱씹는 순간 하윤의 시선이 베란다 창 밑을 향했다. 아래를 보는 것과 동시에 눈앞이 컴컴하고 현기증이 돌았다. 하윤은 비틀거리다가 거실 창을 짚었다. 머리를 쿵 박는 순간 막 거실로 나오던 무경과 눈이 마주쳤다. 무경은 하윤을 향해 피식 웃다가 그대로 몸을 돌렸다.
“…….”
꿈에서나 현실에서나 말이 나오지 않는 건 매한가지였다. 하윤은 거실 창에 등을 대고 미끄러지듯 주저앉았다.
‘무슨 꿈을 이중으로…….’
분명 바닥을 딛고 있는데 딛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하윤은 무릎을 세워 몸을 웅크렸다. 가슴이 쿵쾅거리고 숨이 찼다. 코피를 쏟아 낸 콧등과 머리도 시큰거렸다. 무엇이 버겁고 힘든 줄도 모르면서 막연하게 괴로웠다.
그래서 그저 조금이라도 괜찮을 방법을 찾고 싶었다.
그때, 왼쪽 손목이 단단한 실로 옭아매듯 조이는 느낌이 들더니 창틀 밑에 붙어 있는 스티커가 눈에 들어왔다. 창호시공업체 명과 연락처가 인쇄된 스티커였다. 하윤은 손으로 읽듯 스티커에 인쇄된 숫자를 더듬었다.
전화번호가 아닌 익숙한 숫자의 나열이었다. 그러나 그 익숙한 나열 뒤에 숫자가 더 붙어 있었다. 하윤은 그것이 뜻하는 바를 알았다.
‘다른 문과 이어지는 샛길.’
하윤은 고개를 기울였다. 안경이 아래로 쏠리며 틈새로 이제껏 보이지 않던 [문]이 보였다. 그리고 그 문이 어디로 향하는 문과 연결되었는지도 함께 보였다.
‘어?’
하윤은 손목을 움켜쥔 채 문을 빤히 바라보았다. 여전히 안경 틈새로만 문이 보였다. 이전처럼 표기를 읽고 어딘지 어림짐작하는 게 아니라 문의 이름이, 어디로 향하는지가 선명하게 읽혔다. 물론 틈새로만 보이는 탓에 글씨를 읽으려면 이리저리 고개를 돌려야 했지만.
하윤은 얼굴을 거칠게 쓸어내렸다. 조금 전 꾼 꿈 탓인지 아직도 머릿속이 얼얼했다. 잠시 숨을 고르고 무릎걸음으로 다가가 창문을 더듬었다. 문은 창문 크기와 얼추 비슷했고, 방충망 너머 베란다 난간 사이에 자리하고 있었다.
하윤은 곧장 방충망을 열었다. 그러자 차고 매서운 바람이 훅 불어닥쳐 하윤의 옷자락과 머리칼을 사정없이 헤집어 놓았다. 하윤은 그러든 말든 문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나 문은 하윤의 손에 잡히지 않았다.
“……!”
통과한 손이 허공을 휘저었다. 마음이 급해 손동작이 컸더니 몸이 흔들렸다. 하윤은 곧장 창틀에 등을 붙이려 했으나, 몸의 중심이 앞으로 쏠렸다. 하윤은 깜짝 놀라 베란다 난간을 힘껏 잡아챘다. 놀이기구를 탄 양 가슴이 철렁였다.
어느새 문을 보고 흥분했던 마음이 차게 가라앉았다. 하윤은 난간을 잡은 손에 힘을 풀며 고개를 숙였다. 겨울이 지나 이제 봄이 만연하다는데, 저만 아직 겨울에 갇혀 있는 것만 같았다. 하윤의 시선이 아래를 향했다.
아까 전과 다른 충동이 훅 치솟아 올랐다. 하윤은 난간 위를 붙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난간을 디디며 봉에 몸을 반쯤 걸쳤다. 성인 남자의 무게에 난간이 듣기 싫은 소리가 났다. 그러나 하윤은 물러나지 않았다.
그냥 이대로 끝을 내는 것도 좋지 않을까.
마침 아래 사람도 없었다. 하윤의 발끝에 힘이 들어가며 몸을 위로 올려 보낼 준비를 했다. 막 몸을 움직이려는 순간, 문이 쾅 닫혔다. 몸을 띄우려던 발끝과 손이 그 소리에 굳은 듯 움직이지 않았다.
하윤은 숨을 헉 들이켜며 뒤로 물러났다. 몸에 열기가 훅 피어오르더니 식은땀이 맺혀 흘러내렸다. 하윤은 열린 창문으로부터 시선을 돌렸다.
“……정신 좀 차려. 이게 대체 뭐야.”
하윤은 스스로 뺨을 쳤다. 찬바람 때문인지 아픔이 잘 느껴지지 않았다. 좀 더 세게 자신의 얼굴을 내리쳤다. 제법 큰 소리가 나자 그나마 눈이 번쩍 뜨였다. 하윤은 재차 반대쪽 뺨도 때렸다.
무경에겐 이제 서이주도 백진하도 없었다. 그런 중에 저 또한 없애 버릴 순 없었다.
“……씨발.”
하윤은 울분에 찬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복장이 들들 끓는 것만 같았다. 하윤은 바닥에 엎드리며 몸을 떨었다. 견뎌야 하는 걸 알면서도 견디기가 어려웠다. 차라리 꿈을 꾸지 않았더라면 오늘 하루도 그냥저냥 넘어갈 수 있었을 것이다.
‘얼굴이라도 봤으면 억울하지라도 않지.’
하윤은 다정하게 절 부르던 무경의 목소리를 떠올렸다. 이제는 잘 생각도 나지 않았다. 반쯤 흘러내려 귀에 걸려 있기만 한 안경알 위로 물방울이 떨어져 내렸다.
괜히 분한 마음이 솟구쳤다. 하윤은 손에 잡히는 것을 문을 향해 던졌다. 그러나 박스 조각이라 문에는 닿지도 못한 채 도로 제게 날아왔다.
하윤은 어처구니가 없어 짜증을 내다가 스티커를 노려보았다.
‘이게 뭐라고. 이 와중에 저게 눈에 들어오냐.’
하윤은 한숨과 함께 제 손에 돌아온 박스 조각을 바닥에 던졌다.
울어서 그런지 비교적 머리가 맑았다. 하지만 맑아진 것과 별개로 스티커가 가리키는 문이 거슬려 참을 수 없었다.
‘예전 집 마당에 있는 문으로 이어지는 샛길.’
하윤은 푸르스름한 새벽녘 상갓집에 다녀와 담배를 피우던 서이주를 떠올렸다. 그리고 동시에 그녀의 손이 마당 어느 한구석을 가리키는 것 또한 함께 떠올렸다.
‘타임캡슐을 묻은 자리.’
당장 힘들다고 헐떡거리다가 왜 여기에 정신이 쏠리는가 싶었다.
‘다른 생각이라도 하고 싶은가 보지 뭐.’
하윤은 짜증스레 숨을 뱉었다.
스스로 생각해도 생각이 제멋대로 튀고 있었다.
‘하지만 선생님이 가리켰던 장소는 내가 다 확인했었어.’
하윤은 이전에 서이주의 마지막 흔적을 찾아냈을 때 잊고 있던 타임캡슐의 존재를 상기해 냈다. 그리고 그날 뒤부터 타임캡슐을 찾고자 서이주가 가리켰던 부근을 죄다 파헤쳤다. 그러나 암만 부근을 파헤쳐도 타임캡슐은 나오지 않았다.
물론 ‘그날’에 집이 전소되면서 유실되었을 가능성도 있었다. 아니면 누군가가 먼저 파 갔거나.
“……서해. 대소산.”
서해.
하윤은 천천히 숨을 들이켰다. 숨을 들이켜고 내쉴 때마다 남은 울음 때문에 숨이 덜덜 떨렸다.
“선생님, 그리고 서해.”
하윤은 떠오르는 단어들을 계속해서 중얼거렸다.
“결혼기념일, 기념 여행, 서해, 선생님.”
하윤은 서이주가 했던 말을 떠올리려고 애썼다. 기억이 휘발된 탓인지 흥분한 탓인지 잘 생각나지 않았다. 하윤은 자신의 머리를 퍽퍽 때려 댔다.
“가족, 추억 만들기. 추억을 남기려고 만든 타임캡슐.”
하윤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혹시’라는 단어와 함께 생각나는 것이 있었다. 하윤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급히 옷을 갈아입고 지갑과 가방을 챙겨 집 밖으로 나갔다.
무슨 정신으로 예전에 살던 서이주의 집까지 왔는지 모를 일이었다. 하윤은 가쁜 숨을 내쉬며 집터로 들어갔다.
서이주의 집에 공사용 철골 구조물과 천이 둘러 있었다. 이전에는 무경이 미성년자에다가 서이주의 사망신고가 작년에야 겨우 처리되었기 때문에 패인 터만 대충 매운 채 방치되고 있었다. 주거지 한가운데, 그것도 꽤 넓은 평수가 그대로 방치된 까닭에 꾸준히 민원이 들어왔었다.
덕분에 무경은 정식으로 상속받게 되기 전부터 상속받은 후 해당 토지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에 관한 계획을 세워 관할 부서에 제출해야 했었다. 국방부 소속 초능력자라는 것도 제법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일단 국가기관과 관련되면 민원에 조심해야 할 테니까.’
어찌 됐든 이제 이 집은 상속 절차가 완료되어 무경의 소유였다. 무경은 소유권을 갖자마자 계획대로 공사를 진행했다.
‘그게 며칠 안 되어서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이곳에 들어가지도 못했을 것이다. 하윤은 아직 인부들이 도착하지 않은 것을 확인하며, 샛길과 이어진 문이 있는 장소를 찾기 시작했다.
폐허나 다름없는 곳이었지만 아직까지는 예전 모습을 추억할 수 있었다. 하윤은 어렵지 않게 서이주가 손으로 가리켰던 장소, 그리고 자신이 파헤쳤던 일대를 찾아냈다.
‘왜 이 생각을 못 했지.’
문과 문이 만나지 않는 장소. 샛길을 만들기에 이것만큼 좋은 장소가 없었다. 하윤은 안경 사이로 보이는 문의 명패를 읽었다. 손목을 쓸 일도 없었는데 자꾸만 왼쪽 손목이 아팠다.
짤랑.
하윤은 희미하게 들린 짤랑거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누가 자전거 벨이라도 울리는 줄 알았으나, 아직 이른 시간이라 거리엔 사람이 없었다. 하윤은 손목을 움켜쥐며 미간을 찡그렸다. 아프긴 하지만 영 못 참을 정도는 아니었다.
짧게 명패를 기록한 하윤은 곧장 몸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