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화
“무경아!”
하윤은 버둥거리는 무경의 몸을 짓눌렀다. 의식을 잃은 무경은 무의식중에 염동력을 사용했다. 주변 가구들이 두둥실 떠오르고 무경의 작은 움직임을 따라 이리저리 움직이다 충돌하여 깨지거나 바닥으로 떨어졌다.
하윤은 제게 날아오는 유리 조각을 피해 급히 몸을 틀었다.
“이 새끼가 진짜!”
하윤을 맞추지 못한 유리조각은 소파에 날아가 꽂혔다. 하윤은 질린 눈으로 무경을 쏘아보았다. 그러나 무경은 아직 눈을 뜨지 못했다. 그는 숨이 쉬어지지 않는지 목을 잡고 몸을 들썩거렸다.
“백무경, 제발, 제발! 야!”
하윤은 무경의 가슴팍에 올라타 그의 양손을 잡아챘다. 무경의 힘을 이겨 내는 게 쉽지 않았다. 결국, 무릎으로 어깨를 짓누른 다음 두 손을 이용해 한 팔씩 내렸다. 관절을 짓눌린 무경의 손이 하윤의 종아리를 움켜쥐었다.
그러쥐다 못해 손끝에 살이 패일 것만 같았다. 끔찍하게 아팠으나 하윤은 물러나지 않았다. 계속해서 무경을 저지하며 기도를 확보하고 인공호흡을 시도했다.
하윤이 억지로 숨을 불어넣자, 무경은 그제야 내내 참고 있던 숨을 터트렸다.
“무경아, 괜찮아. 괜찮아. 숨 쉬어. 천천히, 계속 쉬어. 괜찮아, 정말.”
하윤은 무경의 가슴팍을 도닥이며 계속해서 속삭였다. 거칠게 들썩이던 무경의 움직임이 잦아들었다. 숨은 아직 헐떡였으나 이제 곧 괜찮아질 것이다. 하윤은 한숨을 내쉬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 순간 공중에 떠 있던 테이블이 거실 창을 향해 날아갔다. 하윤은 머리 위로 인 바람에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급히 머리를 숙였기에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병원에 실려 갔어야 했을지도 몰랐다.
“다 부숴라. 다 부숴. 내 재산이냐? 네 재산이지.”
작은 목소리로 투덜거린 하윤은 무경의 팔을 풀어 주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하윤의 종아리를 움켜쥐고 있었다.
하윤은 익숙한 손짓으로 무경의 손을 치워 내며 그의 얼굴을 흘깃거렸다. 감은 눈꺼풀 밑 눈동자가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다시 친구가 된 지도 이 년이 훌쩍 지났다. 그사이 무경은 더 자주 폭주하고, 더 빨리 정신 차렸다.
‘어쩌면 서로 연관 있는 게 아닐까.’
힘을 제대로 빼지 못한 채 억지로 정신을 차렸기 때문에 다시 상태가 나빠져 폭주하는 게 아닐까.
‘그리고 어쩌면 무경이가 그걸 유도하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무경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하윤은 이내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경의 눈이 움직이는 것으로 보아 곧 깨어날 것 같았다. 하윤은 시계를 바라보며 무경의 폭주 시간을 가늠했다.
‘삼십팔 분.’
예전에는 안정된 후 반나절은 정신을 잃고 있었으나 요즘엔 시간 단위도 아니고 분 단위로 들어왔다. 이번엔 얼마나 짧아졌을지 가늠도 되지 않았다.
하윤은 발에 채는 물건들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조금 전 유리가 날아왔던 게 기억났다. 밟기 전에 치워야겠다고 생각했으나, 생각하기 무섭게 조각을 밟았다.
“아야.”
바닥에 앉아 양말을 벗자 양말에 꽂혔던 유리 조각이 떨어지며 피가 배어 나왔다. 따로 다른 조각이 들어간 것 같지는 않았다.
“넌 유리컵 쓸 자격이 없어. 플라스틱이나 스테인리스 컵이나 써라.”
하윤은 무경을 노려보며 쏘아붙였다. 늘 그랬듯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하윤은 한숨을 삼키며 주변을 대강 치우기 시작했다.
“내가 어딜 가든 내 손으로 청소해 본 적이 없었는데. 이게 뭐냐 대체.”
특히나 백무경 앞에선 그럴 일이 없었다. 무경이 미리 치웠거나, 치우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것도 과거의 영광에 불과했다.
‘벌써 또 일 년.’
금방 돌아오지 않을 줄은 알았지만, 막상 시간만 흐르자 덜컥 겁이 났다. 이대로 영영 돌아오지 않으면 어쩌지.
‘어쩌긴 어째. 영원히 못 보는 거지.’
하윤은 숨을 크게 들이켰다. 이제는 말랐다고 생각한 눈가가 화끈거리고, 속이 뜨끔거렸다. 하윤은 생각하지 말자며 스스로 다그쳤다. 암만 생각한들 답이 나오는 문제가 아니었다.
“이것도 깨져 버렸네.”
하윤은 바닥에 엎어진 액자를 주웠다. 싸구려 액자라 유리판이 없었지만 날아가다가 모서리를 맞았는지 액자 틀이 깨어졌다. 하윤은 근처에 있는 액자 조각을 주워 사이를 맞추려 했다. 그러나 액자가 뒤틀려 조각이 들어가지 않았다.
“오늘 깨진 게 아닌가.”
깨지기 전에 이미 망가트린 것 같았다. 하윤은 뒤틀린 액자 틀을 반대 방향으로 살짝 비틀었다. 평평해지기는커녕 뚝 하는 소리와 함께 깨어졌다.
“…….”
하윤은 말없이 사진을 빼냈다. 무경의 졸업식에 찾아가서 함께 찍은 사진이었다. 무경을 붙잡아 갖은 애원 끝에 겨우 사진 한 장을 찍었다. 지나가던 학부모의 참견이 아니었으면 제대로 된 사진 한 장 남기지 못했을 것이다.
“꼴이 참.”
달음박질 친 탓에 얼굴은 발갛게 달아 있고 머리는 정전기로 붕 떠 있었다. 마음이 상한 상태라 표정은 또 왜 그렇게 어색했는지.
“꽃이라도 좀 받아 주지.”
하윤은 문득 입학식 때 무경과 함께 찍은 사진을 떠올렸다. 입학식엔 서이주와 백진하가 참석했었다. 고등학생이 되었으나 중학생 때와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그랬기에 그들의 참석이 새삼스럽고 창피하게 느껴졌다.
그랬기 때문일까. 하윤은 입학식 사진에 다소 뚱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대신에 무경은 그런 하윤을 보며 웃고 있었다. 꽃과 가방도 모조리 그가 들고 있었다.
‘완전히 뒤바뀌었네.’
“내가 졸업식 가는 게 얼마나 힘들었는지도 모르지.”
하윤은 가볍게 웃으며 사진에 묻은 나무 조각과 스티로폼 알갱이를 털어 냈다. 사진이 구겨지지 않도록 가방 속에서 참고서를 꺼내 사이에 끼워 넣었다.
마저 거실을 치우고 있을 때,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싶더니 무경이 일어났다. 어지러운지 비틀거리면서도 억지로 몸을 일으킨 그는 집 안 곳곳을 뒤지기 시작했다. 문이란 문은 다 열어젖히고도 찾던 것을 찾지 못했는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등을 떨었다.
작은 소리 하나 내지 않았으나 그가 어떤 감정인지 확연히 느껴졌다. 하윤은 손을 말아 쥐며 조심스레 뒷걸음질 쳤다.
무경은 뒤돌아보지 않았다. 하지만 하윤의 존재를 눈치챘는지 바닥을 나뒹굴던 물건 하나가 하윤의 발치에 떨어졌다. 명백한 축객령에 하윤은 몸을 돌렸다.
삼십팔 분의 폭주, 십칠 분의 회복. 확실히 이전보다 짧아졌다.
내일을 두려워하며 꾸역꾸역 하루하루를 삼키고 살다 보면 당장엔 날이 지나지 않는 것 같다가, 어느 순간에 보면 훌쩍 날이 지나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일이 두렵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내일이 두렵고, 오지 말았으면 했다.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하윤은 지난 삼 년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잘 기억나지 않았다. 일반고에 진학해서 적응하는 것만으로도 힘들었다. 거기다 중간중간 김희원의 집에서 발견한 표식을 찾아 서울과 경기도 일대를 돌아다녔다.
그러는 와중에 또 무경을 찾아가 무경의 의지와 상관없이 그를 돌봤다.
예전같이 즉각적인 반응이 나타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무경은 하윤을 싫어하는 것과 별개로 하윤이 곁에 있으면 능력이 안정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전과 달리 무경의 힘이 자신에게 통하기 때문에 알 수 있었다.
함께하면 제게 닿는 힘이 아주 조금 약해지고, 떨어져 있다가 간혹 만나면 닿는 힘이 강해진다.
하지만 무경은 하윤과 자주 만나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윤은 무경의 힘에 곧잘 나뒹굴었다. 이와 관련하여 접촉이 뜸해지면서 무경의 폭주가 늘었으나 반면 정신을 차리는 속도도 빨라졌다.
하윤은 무경이 이를 알고 있는지 궁금했다. 하지만 무경은 하윤과 대화도 피했기 때문에 하윤이 알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하윤은 평소같이 무경을 찾아가 그가 듣든지 말든지 수다를 늘어놓았다.
“지하 고거 평소엔 오빠한테 관심도 없다가 수시 원서 넣을 때 뭐라고 했는지 알아?”
“…….”
“그 얼굴로 그 등급이 말이 되냐고, 대체 수업 시간 내내 뭘 했냐고 그러더라.”
“생긴 대로 그랬는데 왜.”
무경은 하윤의 말에 흔치 않게 대꾸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소파고 뭐고 다 부숴 버린 탓에 맨바닥에 앉은 하윤을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너 멍청하잖아. 말귀도 못 알아듣고.”
“야, 내가 어디가 어때서.”
“……그래, 그러니까 그 등급을 받지.”
“넌 내 등급 모르잖아.”
무경은 고개를 저으며 방으로 들어가려 했다. 하윤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무경의 뒤를 따라갔다.
“너 근데 내 졸업식 올 거지?”
“내가 왜?”
“나도 네 졸업식에 가서 축하해 줬잖아.”
“……오지 말라고 했었잖아. 필요 없다고.”
“야아, 그래도 내가 안 가면 네 졸업식에 누가 가냐.”
“제발.”
“……?”
“제발 말귀 좀 알아들어. 싫은 건 싫은 거야.”
무경은 하윤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의 손끝이 하윤의 어깨를 가볍게 밀었다. 그러나 가벼운 손짓과 달리 하윤의 몸은 공중에 떠올랐다. 하윤이 어어 소리를 내는 사이 무경은 몸을 돌리며 문을 닫았다.
문 닫히는 소리와 함께 하윤은 바닥에 주저앉았다. 소파에 걸리리라 생각했던 것과 달리 그 자리에 소파가 없었고, 순간 휘청거리다 보니 중심을 잃은 탓이었다.
하윤은 뚱한 표정을 지었다.
“……네가 뭘 알아. 진짜 아무것도 모르면서.”
하윤은 속삭이듯 아주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무경이 아무리 저를 싫고 귀찮아하더라도 그에게는 자신이 필요했다. 그러니 자신이 그의 곁에 있어야 했다.
그래야 백무경이 행복해질 수 있으니까.
무경이 행복해질 수 있다면 하윤은 뭐든 할 수 있었다.
적어도 아직은.
가만히 있어도 다가왔다 지나가는 날이 무섭지만, 또 왔다가 지나가기에 다행이었다. 목구멍에 온갖 감정을 꾹꾹 밀어 넣고 참는 동안 날은 빠르게 지나갔다. 겨울이 지나가고 봄이 왔고 또 여름이 지나갔으며 다시 가을이 왔다가, 아차 할 사이에 겨울로 접어들려 했다.
속절없이 지나간 계절에 있던 일을 이야기하자면 무경은 하윤의 졸업식에 오지 않았다.
하윤은 사실 무경이 오지 않을 줄 알았다. 많은 민간인이 모이는 장소에 폭주 위험이 큰 에스퍼의 등장은 환영받지 못했다. 거기다 용무가 단순히 지인의 졸업을 축하하기 위해서라면 더더욱.
또 무경은 하윤의 일에 신경 쓰고 싶지 않아 했다. 여러 번 거부 의사를 밝히기도 했었다. 그런 중에 하윤이 계속해서 자신의 졸업식에 찾아와 달라고 부탁한 까닭은 무경이 기억을 되찾았을 때를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내 졸업식에 사진 한 장 남기지 못했다고 서운해할까 봐서.’
무경이 기억을 잃은 지 삼 년이 지난 지금, 그 누구도 예전의 무경을 떠올리지 않았다. 무경은 예전보다 더 강한 에스퍼가 되었고, 이대로 살아남기만 한다면 서른 즈음엔 높은 자리에 올라 있을 것이다. 물론 줄을 잘 타거나 큰 공훈을 세운다면 더 빨리 자리 잡을 것이고.
어쩌면 지금의 무경이 다른 사람들이 바라는 이상적인 모습일 수도 있었다. 사람들은 강한 에스퍼에게 조각이 존재하길 바라지 않았으니까. 무경에게 조각이 있다는 건 아는 사람은 아는 소리였다. 하지만 언젠가 듣기론 아는 사람이 그날 전후로 많이 죽어 없어졌다고 했다.
이대로 몇 년만 더 지나면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자신뿐이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면 때때로는 무섭고, 때때로는 다행일지도 모르겠다고 자위하기도 했다.
나중에 제게 무슨 일이 생겼을 때, 무경은 아무 영향도 받지 않을 테니까. 그리고 계속해서 김희원을 찾아 헤맬 것이다.
과연 김희원은 살아 있을까, 아닐까.
하윤은 그간 김희원과 김응과 관련된 문들을 조사했다. 조사라고 해 봤자 어디로 이어지는지 기록할 뿐이었지만, 어찌 됐든 그곳에 찾아가면서 흔적을 남겼다. 혹시나 살아 있다면 그 흔적을 보고 뭔가를 남기지 않을까 싶어서.
하지만 여태 따로 뭔가가 남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하윤은 이것 또한 때때론 다행이라고 생각하곤 했다.
김희원이 살아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아직 아무것도 생각하지 못한 탓이었다.
나이가 들면 뭐든지 척척 알 것으로 생각했으나, 어찌 된 게 예전에 모르던 것도 모르고 앞으로 닥쳐올 것도 몰랐다. 그리고 가장 모르겠는 건 무경이 자신과 함께 사는 것을 받아들인 것이었다.
슬슬 김희원에 관해 할 말이 바닥나고 있었다. 어느 추억에서 자신을 빼고 김희원을 넣었는지, 아니면 김희원에 관한 말 없이 원래대로 말했는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무경에게 말하고 난 다음이면 메모를 하긴 했으나 공책이 여러 권이 되자 엉키기 시작했다.
밑천은 떨어져 가고 무경의 폭주는 잦아지다 못해 상습적으로 일어나고 있었다. 어떻게 해서든 막아야 한다는 생각에 조바심이 났다. 김희원을 운운하지 않아도 무경의 곁에 있을 방법이 필요했다.
그러나 벌써 머리가 굳은 것인지 별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다가 가까스로 생각해 낸 것이 일단 밀어붙여 보자는 것이었다.
얼굴을 마주한 채로 밀어붙이면 예전처럼 제 말을 들어줄 때가 있었다. 물론 돌아서면 동의한 적 없다고 하기는 했으나, 또 책임을 운운하면 약속을 지키기도 했다.
사실 말을 꺼내는 순간에도 하윤은 기대하지 않았다.
미리 말을 준비하기는 했으나, 겁먹어서 빠르게 말하는 바람에 순식간에 생각했던 말이 동났다. 그 뒤는 있는 온갖 억지를 써가며 말을 이었다. 그러나 어김없이 말이 끊어지고 침묵이 찾아왔다.
무거운 침묵에 하윤이 짓눌려갈 때, 무경은 그러자 하고 대답했다. 심지어 소파에서 자기 싫으니 네 침대를 같이 쓰자는 말에도 닿지만 않으면 괜찮다고 대답했다.
말만 보면 그간 쌓아 온 미움이 덜해진 것 같지만, 마주한 얼굴은 그렇지 않았다.
무경은 왜 터무니없는 자신의 제안을 수락한 것일까. 하윤은 그 이유가 궁금했으나 괜히 물었다가 무경이 무르자고 할까 봐 차마 묻지 못했다.
그저 어떤 의도가 있다는 것만 알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