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화
무경의 집을 나왔을 땐 저녁때가 훌쩍 지난 뒤였다. 하윤은 바쁘게 걸음을 옮겼다. 무경의 집이 도심 내에 있었기 때문에 버스를 타야 했다. 바쁘게 걸음을 놀린 덕에 금세 버스정류장이 보였다.
골목 하나만 지나가면 되는데, 이상하게 점점 걸음이 느려졌다.
‘괜찮아. 다 잘 끝났어.’
무경을 완전하게 속여 넘겼다고 보긴 어려웠다. 그러나 혹시나 하는 여지를 남겨 두었다. 아마 날이 밝으면 자신이 이야기한 것 중 몇 가지를 확인해 볼 것이다. 하윤은 자신의 말이 맞다면 선생님의 마지막 흔적이 남은 곳을 함께 가 달라고 부탁했다.
흔적이 온전하게 보전되어 있다면 서이주의 사망 처리를 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결혼기념일 전에. 그렇게 할 수 있으면 좋겠다.’
느려진 걸음은 어느새 멈춰 있었다. 하윤은 화들짝 놀라며 다시 걷기 시작했다.
다 잘됐다고 확신할 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럭저럭 잘 해냈다. 하윤은 입술을 앙다물었다. 오늘 일이 고되었던지 자꾸만 고개와 허리가 앞으로 숙여졌다. 꾹 참아 내려던 시도가 무색하게 자꾸만 눈물이 흘러내렸다.
참 이상한 일이었다.
결국, 하윤은 자리에 주저앉아 엉엉 울며 사과를 쏟아 냈다. 누구에게 하는지도 불분명한 사과는 거리에서 맴돌다 그저 그렇게 흩어지기를 반복했다.
그날 집으로 어떻게 돌아갔는지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다. 그저 엉엉 우는 중에도 착실히 발을 놀렸더니 어느새 집에 도착해 있었다. 하윤의 이성이 돌아온 것도 그때쯤이었다. 그는 문 앞에 서서 들어가기를 망설이다가, 겨우 안으로 들어갔다.
다행스럽게도 생각보다 괜찮은 목소리가 났고, 무사히 상황을 넘길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으나 금세 모친에게 들키고 말았다.
그야말로 집안이 발칵 뒤집혔다. 모친은 하윤을 때린 게 무경이라는 것을 바로 알아차렸다. 경찰에 살인미수로 신고하겠다는 것을 가까스로 말렸다. 그 탓에 이 주간 외출이 금지되고 말았다.
외출이 금지된 이 주 동안 하윤은 일반인이 되었다. 한 가지 검사와 자필 서명이 들어간 다섯 개의 서류를 제출하여 이뤄 낸 결과였다.
다니던 학교도 정리했다. 학교를 떠나던 날, 모친이 학교에 들어가서 친구들에게 인사라고 하겠느냐고 물었으나, 하윤은 거절했다. 아이들이 뭐라고 수군거릴지 안 봐도 뻔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사이 무경은 하윤에게 네 번의 전화를 걸었다. 이전에 말했던 것들을 재차 묻고, 희원과의 추억을 말해 주길 바랐다. 첫 번째 통화에서는 조금 울 뻔했고, 두 번째 통화에서는 울진 않았지만 조금 멍청하게 굴었고, 세 번째는 적당히 무난했다. 그리고 네 번째 통화에서는 제법 그럴싸한 거짓말을 했다.
무경은 하윤의 말을 믿지 않으면서 또 믿고 싶어 했다. 그래서 이따금 날카로운 의심을 던졌다가, 또 아무 반박 없이 하윤이 쭉 이야기하게 두곤 했다.
하윤은 무경과 통화를 할 때나 하고 난 뒤에 자신이 한 내용들을 정리했다. 혹시나 나중에 말이 꼬이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다 보니 필수 불가결하게도 김희원에 관해 알아야 할 필요가 있었다.
이 주간의 외출 금지가 풀리는 그날, 하윤은 김희원의 집을 찾았다.
김희원의 집은 찾기 쉬웠다. 그는 하윤과 같은 관할구역으로 묶여 있었고 같은 교육 기관을 다녔다. 물론 십여 년이 넘게 같은 교육 기관을 다녔다는 사실을 안 것은 며칠 되지 않았지만 어쨌든 하윤에겐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초등학교 앨범 맨 뒤쪽에 졸업생의 주소지와 이메일, 그리고 연락처가 쓰여 있었다. 지금이라면 어림도 없는 일이지만 편지라도 쓰길 바랐던 모양이었다. 중간중간 가짜번호가 섞여 있었지만, 주소나 이메일 주소는 제법 정직하게 쓰여 있었다.
하윤은 앨범의 정보를 토대로 김희원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이메일 주소에서 본 아이디로 그가 인터넷에 남긴 글들을 확인했다. 김희원은 실종되기 삼 주 전에 가정폭력에 관한 상담 글을 올렸었다.
또 그 이전엔 인터넷 커뮤니티에 자신이 어렸을 적, 유복했던 시절에 관한 추억을 써 놓기도 했었다.
길지 않은 글이었으나 정보가 많았다. 희원의 아버지는 연구원이었고, 어느 날 집에 불이 나서 어머니가 돌아가셨으며, 아버지는 그날 이후 상실감에 능력도 잃게 되었고, 그 바람에 다니던 연구소에서 실직하여 술로 인생을 보내느라 가세가 궁핍해졌다는 이야기였다.
‘연구원, 화재, 능력 소실.’
나름 조사하기는 했으나, 하윤이 다룰 수 있는 정보엔 한계가 있었다. 실컷 시간과 정성을 쏟았음에도 이렇다 할 만한 것은 없었다. 얄팍한 조사를 마친 뒤 하윤은 김희원의 집을 찾아갔다.
그러나 쉽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실컷 찾아간 김희원의 집은 도로가 되어 있었다. 하윤은 주소를 적은 종이와 인근 건물을 한참 번갈아 봤다.
그 모습이 수상쩍어 보였던지, 지나가던 주민이 왜 그러냐 물었다. 하윤은 이 근처에 집이 있지 않았는지 물었다.
“그건 왜 묻는데?”
뭐라고 말해야 할까. 하윤은 잠시 고민했다.
“예전에 절연한 이모님이신데, 더 늦기 전에 보고 싶어 하시더라고요.”
“어머니가?”
“예에.”
작고 소중한 양심 때문에 두루뭉술하게 말했으나, 주민은 알아들었다.
“어머니가 왜, 왜 절연했는데?”
“결혼 상대 때문에요.”
“쯧쯧쯧.”
“혹시 이 주소에 사시던 분 아세요?”
“알다마다. 내가 여기서 삼십 년이 넘게 살았는데. 여기, 그 그 김씨 살던 집 아니야. 그 새댁이 이모였나 보네.”
김씨. 김희원의 부친을 말하는 것일까. 하윤은 주민이 기억을 떠올리는 동안 얌전히 기다렸다.
“이층집이었지. 정부 어디 연구원이라던가, 그랬어. 그래서 집에 사람도 안 들였어. 찾아가도 야박하게 커피 한잔 안 주고 문 앞에서 말하고.”
주민은 어찌나 쌀쌀맞았는지 십수어 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히 기억난다고 말했다. 커피에 맺힌 응어리가 제법 큰 듯했다. 하지만 또 계속 듣다 보니 응어리가 맺혀 기억하는 것만은 아닌 것 같기도 했다.
남의 불행이 맞는 흔한 결말을 맞이했을 뿐이었다.
“그러다가 불이 나 버렸지 뭐. 희한한 게 소방차가 와서 물을 한껏 때려 부어도 불길이 안 꺼지고 그 집만 활활 탔지 아마. 혹시 모른다고 주변 집들 다 대피하고 그랬어.”
초능력으로 인한 화재였기 때문에 에스퍼들이 동원되었으나, 이미 집은 다 타 버린 뒤였다. 잔해 속에선 두 구의 시신이 나왔다.
하나는 김희원의 모친, 그리고 다른 하나는 알 수 없는 사람. 누가 그렇게까지 세세한 소식을 전해 줬는지는 모르나, 사람들은 희원의 모친이 바람이 났었다고 짐작했다. 사실인지 아닌지 모르지만, 그렇게나 동네 사람들을 들이지 않던 집에 남편 아닌 사람들이 오갔었노라고.
희원의 모친의 외도가 한두 세월이 아니었노라고 수군거렸다.
김희원의 부친은 화재 당시 먼 곳에 출장을 갔었기 때문에 그다음 날에야 집에 도착했다. 그는 불타 없어진 집을 망연자실한 눈으로 바라보다가, 가까스로 넋을 챙겨 김희원을 찾았다.
‘김희원은 화재 소식을 전해들은 학교 측에서 보호하고 있었고.’
주민이 주절주절 늘어놓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하윤은 새삼스레 자신이 타인의 일에 무감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일반 초등학교와 달랐기 때문에 이런 소식이라면 소문이 파다하게 났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다.
‘일반 교육 시설이 아니라 반도 몇 개 없었는데.’
무경은 알고 있었을까? 하윤은 잠시 생각했으나 그 또한 저와 별반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다. 하윤이 자신 말고는 관심이 없었다면 무경은 하윤 말고는 관심이 없었다. 그때도 그냥 하윤의 곁에서 헤헤 웃으며 과제나 대신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 뒤로 다른 집으로 이사 가는가 싶더니만, 추스르지 못하고 맨날 술만 마시더라고. 어린것만 딱하게 됐지. 그러다가 도로 들어선다고 이야기가 나왔는데, 제일 먼저 동의하고 보상금도 일등으로 받아 갔지 아마?”
일반적인 화재가 아니었지만 그래도 보험금도 나왔고, 도로 보상금도 받았다. 제법 목돈을 갖고 있었음에도 희원의 부친은 예상 밖의 장소로 거주지를 옮겼다.
“저쪽 동네로 갔다고 하던데.”
주민이 가리킨 곳엔 언덕을 따라 빼곡히 들어선 주택가가 보였다. 서울이 괴수의 침범과 전쟁의 흔적으로 부서지고 재생하길 반복하는 동안 안전한 주거지에서 밀려나고 또 밀려난 이들이 당장 살 곳을 짓느라 만들어진 동네였다.
하윤은 대화를 마친 뒤, 주민이 가리킨 동네로 찾아갔다. 빼곡히 들어선 집들 때문에 길이 복잡했다. 어디에 사는지도 모르면서 무턱대고 들어온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지만, 하윤은 계속해서 걸었다.
언덕의 꼭대기에 다다라 갈 때쯤엔 날이 저물기 시작했다. 길 끝에 있던 가로등이 껌뻑거리다가 불을 밝혔다. 어둠 속에 숨어 있던 고양이들이 모습을 드러낸 것도 그쯤이었다. 영역 다툼을 하는지 고양이들은 서로를 빤히 바라보며 울기 시작했다.
숨 막히는 대치가 이어지다가, 돌연 한쪽이 다른 한쪽에게 달려들었다. 격한 발짓이 오가고, 격아 된 울음소리가 공기를 찢듯 울려 퍼졌다. 그때 철문이 덜컥거렸다. 어귀가 안 맞은 지 거친 소리를 내기만 하고 한 번에 열리지 않았다.
고양이들은 움직임을 멈췄고, 덩달아 놀란 하윤은 근처 폐지 수레 뒤로 몸을 숨겼다.
“쉬이익!”
문을 열고 나온 주민은 입으로 거친 소리를 냈다. 그 소리에 고양이들이 사방으로 흩어졌으나, 그중에서 얼마 움직이지 않은 고양이도 있었다. 주민은 그 고양이가 있는 방향으로 빠른 발소리를 냈다.
고양이가 잽싸게 도망가자마자 주민은 구시렁거리기 시작했다. 웅얼거려 제대로 듣지 못했지만 고양이에 관한 불만이 분명했다. 그때 조금 먼 곳에서 저벅저벅 걸어오는 소리가 들리더니, 아까 나왔던 주민과 인사를 나눴다.
“드라마 보려고 음식물 쓰레기 조금 일찍 내놓으려고 하니까, 고양이들이 아주 기승이야. 놓고 갔다가 죄다 엎어 놓는 거 아닌지 몰라. 아까는 시커먼 놈이 눈 동그랗게 뜨고 날 쳐다보는 거야. 그놈 고양이 아닐지도 몰라.”
“아, 요새 고양이 형 괴수가 돌아다닌다구 조심하라고 하더라고요. 소형괴수라 생명에 위협까진 아닌데, 미궁에서 나오다 보니까 병균 있을지도 모른다구 건드리지 말래요. 괜히 긁히기라두 하면 안 되니까.”
“어휴, 나도 무서워서 그렇게까지는 못 해.”
“구청에 신고 좀 넣어야겠어요. 확인해 달라고.”
“그래, 새댁이 신고 좀 넣어 봐. 난 그 핸드폰으로 하라고 하는 건 어떻게 하는지 도통 모르겠어. 마음 같아선 진작 신고 했다구. 고양이도 고양이구, 고양이가 헤집어 놓은 쓰레기도 그렇구.”
“쓰레기요?”
“그래, 쓰레기. 저 집에서 나온 거. 내가 다른 쓰레기면 치우겠는데, 그 집에서 나왔다고 하니까 께름칙해서 손을 댈 수가 있어야지.”
주민은 갑작스레 목소리를 줄였다. 그러나 조금 전처럼 쩌렁쩌렁하지만 않을 뿐,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어휴, 그날만 생각하면 소름 끼쳐. 말 잘못 섞었다간 뭔 일 당할까 봐 그 집 작자랑은 내가 눈도 안 마주쳤어. 그런데 그 집에서 하도 썩는 냄새가 나고 벌레가 들끓는 거야. 여름도 다 지나갔는데 문을 못 열고 이건 아니다 싶어 참다가 참다가 쓰레기 좀 치우라고 갔는데 문도 안 잠그고 사는지 그냥 문이 획 열리는 거야.”
주민은 그때를 떠올리면 끔찍하다며 신음을 흘렸다.
“쪽지라도 남기려고 들어갔는데, 세상에 글쎄. 마당 한구석에서 자루 같은 게 있는데 거기에 구더기가 버글버글 끓고 있고, 파리는 미친 듯이 날아 다니구. 자세히 보면 후회하겠다 싶은 거야. 그래서 자세히 보지도 않고 나와서 경찰에 신고했는데, 이 새끼들 일이 밀렸다고 한 이틀 뒤에 오는 거야. 글쎄.”
“이틀이나 뒤에요?”
“어어. 내가 기가 막혀서. 와서도 주변에 슬렁슬렁 보다가 근처에 구경 온 사람들한테 탐문인지 뭔지 슬쩍 물어보고 말더라구. 근데 뭐 몇 년을 여기 살았어두 다들 상종하기 싫어서 말을 안 섞었으니 아는 게 있나.”
“그런데 그 집 아들도 실종이라면서요?”
“어휴, 애만 딱하게 됐지. 살아는 있어야 할 건데.”
“근데 쓰레기 처리는 왜 다 하지 않은 거예요?”
“차가 안 들어와지니까. 들어와 봤자 저어기 밑에까지 밖에 안 되잖아. 수레에 실어 나르기 힘들어서 그런지, 종량제 넣었고 마침 수거일이라고 내놓고 간 거야. 근데 저희도 힘들어서 안 들고 간 거 쓰레기 수거하는 사람이라고 여기까지 들어올 리 있나. 내가 그래서 저 밑에 두라고 했는데, 알겠다고 하고 내빼 버렸잖아.”
주민은 혀를 차다가 다른 주민에게 시간을 물었다.
“어머, 시간 좀 봐. 인사만 한다는 게 이렇게 시간을 잡아먹었네. 얼른 들어가 봐. 나도 드라마 보러 들어가야겠어.”
“예, 들어가세요. 저도 가 볼게요!”
예, 예예 하는 인사가 조금 더 이어지다가 그쳤다. 하윤은 두 집 다 문 닫히는 소리가 들릴 때까지 기다렸다가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