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원 라스트-8화 (8/162)

8화

하윤은 말없이 서이주를 바라보았다. 서이주는 여태 단 한 번도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언제나 하윤의 머리 꼭대기에 서서 내려다보고 있었다. 문을 여는 데 시간이 걸린다는 기색을 한번도 느껴 본 적이 없었다.

하윤은 그래서 서이주가 저와 같은 줄 알았다. 자신이 어떻게 기술을 써야 할지 그녀는 미리 내다보았고 또 하윤을 가르쳤다.

“하지만 네겐 그런 일이 없었지. 아직 경험이 적기는 하지만 열고자 해서 못 연 문이 없었고 닫고자 해서 못 닫은 문이 없었어.”

서이주는 하윤의 안경을 쥔 채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그녀는 공간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정확히는 공간을 이루고 있는 문들을 보고 있었다.

“네가 태어난 날 내 주변의 모든 문이 네게 인사를 보냈단다. 어쩌면 경배일지도 모르지.”

하윤은 불안한 눈빛으로 서이주를 좇았다.

“네가 태어난 날, 무경이를 낳으면서 숨이 넘어가기 직전에도 난 널 질투했단다. 아마 정기오나 문태강도 그 자리에 있었다면 똑같은 감정을 느꼈겠지.”

“선생님.”

“내 미운 감정을 네게 드러내는 건, 네가 그만큼 대단하기 때문이란다.”

하윤은 서이주에게 다가갔다. 그녀 홀로 두는 게 자꾸만 불안하게 느껴졌다. 서이주는 다가온 하윤의 머리칼을 다정스레 쓸어 넘겨 주었다.

“너는 우리 연구의 아주 큰 변수였어. 우리의 지식으론 널 증명해 낼 수가 없었거든. 우리는 오래전부터 문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었어. 우리가 열 수 있는 문과 미궁의 문이 연관 있지 않을까. 어쩌면 우리가 힘을 합한다면 직접 미궁에 들어가지 않고도 미궁의 문을 닫을 수 있지 않을까. 물론 그렇게 닫는다고 해도 단발성 게이트로 중간중간 튀어나오는 놈들은 있겠지.”

하윤은 잠자코 고개를 끄덕였다.

“미궁의 문과 이 세상의 문은 평소엔 겹치지 않지. 하지만 공간과 공간이 겹쳐 출입문이 만들어지는 순간, 미궁은 닫히기 이전까지 이 세상을 틀어쥐고 놓아주지 않지.”

“문을 닫으면 본래 흐름대로 겹치지 않겠군요.”

“그래. 그런 생각으로 오랜 연구를 거듭했지. 하지만 이런 생각은 우리만 한 게 아니야.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지. 그리고 어떤 고서에서는 사람이 아닌 불길한 존재로 쓰이기도 했단다.”

“…….”

“우리 문지기들은 다른 공간과 통하는 문을 열 수 있어 도주에 쉬웠지만, 문을 열 때는 문의 허락이 필요했지. 또 문마다 통과할 수 있는 이들의 수도 정해져 있었고. 문을 여는 틈에 우리를 죽일 수 있는 자가 있다면 어떻겠니.”

“……죽겠죠.”

“그래. 아주 많은 사람이 죽었단다. 하지만 또 마냥 다 죽은 것도 아니었어. 그러던 중 그들은 어떤 법칙을 찾아냈단다.”

“법칙요?”

“문지기가 많이 죽은 해에는 강한 힘을 가진 존재가 생겨. 태어나든 각성을 해서든.”

“…….”

“반대로 강한 문지기가 죽으면 여러 아이가 태어났지. 하지만 그 아이들은 강한 힘을 갖진 못했어. 기껏해야 빌고 빌어 문 하나를 여는 게 고작인 아이도 있었고. 이를 의아하게 여긴 조정에서 실험을 해 보게 돼.”

하윤은 일반 교과 과정을 배우기도 했지만, 에스퍼들을 위한 특수 교과 과정도 함께 배우고 있었다. 그중 에스퍼들의 역사에 관해서도 배웠다. 비록 하윤의 성적이 좋진 않았지만 그래도 십수 년의 세월 동안 들어 온 게 있었다.

하지만 서이주가 하는 말은 난생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동능의 에스퍼인 서이주에게조차 듣지 못했다.

“문지기를 잡아다가 해부를 하게 됐지.”

머리를 쓸던 서이주의 손이 하윤의 가슴팍을 찔렀다. 하윤은 문득 최근에 일어나는 연쇄 납치 살해 사건을 떠올렸다.

“갓 죽은 문지기의 몸을 가르자 녹색의 빛이 반짝였다고 해. 그 빛을 따라 몸을 뒤집은 결과, 사리 비슷한 게 나타났단다.”

“사리……요? 담석 같은 게 아니고요?”

하윤의 대답에 서이주는 소리 내 웃었다. 그녀는 고개를 젓다가 품에서 작은 목함 하나를 꺼냈다. 목함은 노란 부적이 붙어 있었는데, 아직 부적에 바른 풀기조차 가시지 않았다. 하윤은 목함에서 피 냄새를 맡았다.

문득 하윤은 목함 안에 심장이 들어가 있는 것만 같았다.

“담석이라고 하면 슬픔은 덜하겠구나. 어쨌든 사리는 손가락 한 마디 정도, 외부에 노출되는 일정 순간 동안 녹색으로 빛난단다. 방사성 물질이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야.”

서이주는 목함을 하윤에게 넘겼다. 얼떨결에 목함을 받은 하윤은 그것을 쥐지도 놓지도 못하고 어정쩡한 자세를 취했다.

“사람들은 그걸 [곡옥]이라고 불렀어. 모양이 비슷해서 그런지 직관적인 이름이지?”

“……곡옥이요?”

“하지만 우린 그걸 열쇠라고 불렀단다.”

서이주가 돌연 얼굴을 들이밀었다. 깜짝 놀란 하윤이 몸을 들썩이자 목함에 들어 있던 것이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냈다.

“편의상 곡옥이라고 부르마. 곡옥은 해부 즉시 추출하여 물에 담그지 않으면 소실되었다고 해. 물은 봉인의 성질이 있으니 일리가 있지. 어쨌든 신기한 것을 손에 넣은 그들은 계속해서 곡옥을 추출하기 시작했지.”

혹시 모를 소실을 막기 위해 문지기를 잡는 족족 몸을 갈라 곡옥을 추출했다. 그 과정에서 많은 문지기가 죽었으므로 문지기들은 자연히 강한 문지기가 태어나리라고 여겼다.

그러나 한 세대가 지날 때까지 강한 힘을 가진 문지기는 태어나지 않았다. 태어나는 문지기의 수 자체가 줄어든 것이다.

반면 물에 봉인해 두었던 곡옥은 하나로 뭉치기 시작했다. 조각이 모자라 온전한 모양을 갖추지 못했다. 하지만 모이는 양상을 유추했을 땐 원형을 이루리라는 것이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게 뭘까?”

“…….”

“네가 한번 대답해 봐.”

서이주는 대답을 종용했다. 그러나 막상 대답하라고 하니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머뭇거리며 한참을 생각하던 하윤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문지기의 수가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

“그리고 또?”

“……또라뇨. 하나도 겨우 대답했는데.”

“또.”

서이주는 마저 대답해 보라며 고개를 까딱였다. 어쩔 수 없이 하윤은 다시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떠올린 것이 앞과 별반 다른 것 같지 않았다. 대답을 망설일 때 서이주가 팔짱을 꼈다. 슬슬 인내심에 한계가 온 것 같은 모습에 하윤은 일단 대답하기로 했다.

“곡옥의 수가 문지기의 수에 영향을 끼친다?”

곡옥은 문지기의 사후 즉시 해부하여 축출한 뒤 물에 담그지 않으면 소실된다고 했다. 소실된 곡옥은 그대로 사라지는가, 아니면 다른 곳으로 전승되는가.

문지기를 죽인 건 문지기가 아니었다. 그들을 미워한 이들의 손에 목숨을 빼앗겼다. 하지만 그런 상태로 죽었다면 시체라고 온전할 리 없다. 더군다나 달아나기 바쁜 문지기들이 죽은 문지기들의 몸에서 곡옥을 빼냈을 것 같진 않았다. 곡옥의 수가 문지기의 수에 영향을 끼친다면 문지기의 사후 곡옥은 해당 문지기의 몸속에서 사라져 다른 문지기의 몸속에서 나타나는 것 아닐까.

“그리고 또……. 자잘하게 퍼져 있을 땐 뭉쳐지지만, 뭉쳤다가 깨졌을 땐 자잘하게 흩어진다?”

“맞아. 하지만 아직 정확하게 어떤 법칙이 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어. 남아 있는 사료도 매우 적고, 현대에 동능을 가진 자들도 적어. 우리와 같은 문지기들이 얼마나 적은지는 너도 알겠지.”

하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문지기의 수가 워낙 적고 능력도 측정하기 어려워 하윤은 텔레포터로 분류되어 있었다. 그건 서이주도 마찬가지였다.

“문지기들은 대부분 혈연으로 이어졌어. 우리의 피에 어떤 형질이 숨어 있는진 몰라도 대부분은 그랬지. 우리 집에선 우리 증조할아버지가 문지기였다고 해. 정기오와 문태강도 마찬가지였어. 하지만 너희 집엔 그렇지 않았지. 어쩌면 우리가 아직 찾아내지 못한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8대 이전엔 없지.”

“…….”

“우리는 현대에 문지기들이 적은 까닭이 수많은 곡옥이 봉인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어. 그래서 뭉쳐 있을 곡옥을 찾아 헤맸지. 아주 오랫동안.”

“……그래서 찾으셨어요?”

“아니. 찾지 못했어. 다행이지 뭐니.”

찾지 못한 것을 왜 다행이라고 말할까. 하윤은 영문을 몰라 눈만 깜빡였다. 하지만 어째 마음 한구석이 서늘하게 느껴졌다. 초조하고 불안했다.

“그게 왜 열쇠라고 하는지 아니?”

“예?”

“사료로 남은 실험 결과 중에 추출한 곡옥을 다른 문지기의 몸에 삽입한 적이 있다고 해. 그 문지기는 일시적으로 많은 문을 열 수 있었지만 결국, 문에 끼여 죽었다고 해.”

어째서 문에 끼여 죽었던 걸까. 문이 거부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외적인 어떤 문제가 있었던 걸까. 그러나 서이주는 거기까진 대답해 주지 않았다. 사료가 적어 그녀도 몰랐던 걸까.

“네가 가진 곡옥은 문태강 거야. 놈들에게 납치되었다가 가까스로 탈출했지. 문태강은 나이가 있고 부상도 심각해서 스스로가 회복하지 못하리라 생각했어. 그래서 우리를 부르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지. 우리가 도착한 건 문태강이 죽은 뒤였어.”

문태강은 자살을 선택하며 서이주와 백진하에게 유언을 남겼다. 휴대전화로 영상을 찍은 것이었다. 문태강은 슬하의 자녀가 외국에 거주하고 있었기 때문에 서이주와 백진하는 그의 유지를 이행하며 장례를 치렀다.

“우리에게 남긴 건 이게 그놈들 손에 들어가지 않길 바랐기 때문이야.”

“그래서 타임캡슐을 만들려고 하신 건가요?”

하윤의 질문에 서이주는 빙그레 웃었다.

“맞기도 하고 아니기도 해. 이건 처음부터 네게 줄 것이었거든. 이것들을 포함해서.”

서이주는 또 다른 목함을 하윤에게 내밀었다. 그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하윤은 보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하지만 넌 이걸 기억해선 안 된단다.”

“예?”

“그래야 해.”

서이주는 하윤의 안경을 손끝으로 톡톡 건드렸다.

동시에 하윤의 눈앞이 검어졌다.

“……!”

하윤은 거칠게 숨을 들이켜며 잠에서 깼다. 눈을 뜨자마자 벌떡 몸을 일으키자 무경이 덩달아 잠을 깼다.

“왜, 무슨 일이야?”

하윤은 말없이 무경을 바라보았다. 자신이 놀란 이유가 생각나지 않았다. 머릿속이 새하얗기만 했다. 하윤은 머리를 긁적이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왜, 나쁜 꿈이라도 꿨어?”

“꿈?”

“그래. 얼굴이 희게 질렸어.”

“모르겠어.”

“……?”

“무경아, 나 아무것도 모르겠어.”

왜 이렇게 기분이 이상한지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뭔가를 잊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한데 무엇을 잊었는지 몰랐다. 하윤은 이어 방을 두리번거렸다. 시계를 보니 새벽 두 시 반이었다.

“나, 나 언제 잤어?”

“너 여덟 시쯤에 졸린다고 방에 들어와서 잤잖아. 내가 같이 놀자고 했는데도 안 듣고.”

“내가?”

“그래, 네가.”

“나 기억 안 나.”

무경은 하윤의 이마를 짚었다.

“열 없는데.”

“나 오늘 뭐 했어?”

“평소랑 똑같았지.”

“아니야.”

“뭐가 아니야?”

“아니라고.”

하윤은 억울한 마음에 무경의 손을 뿌리쳤다. 제법 세게 뿌리쳤으나 무경은 다시 하윤의 손을 잡았다. 평소와 달리 하윤의 손이 찼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