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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라스트-6화 (6/162)

6화

무경은 조금 전과 달리 차가워진 눈으로 하윤을 바라보았다. 눈동자가 아래위로 움직이며 하윤의 얼굴을 훑었다.

“창피당할 일이 있을진 모르겠지만, 그래. 나랑 연습해. 엄한 데 가는 것보다 훨씬 낫지.”

무경은 앞으로도 비슷한 연습을 할 작정이면 저랑 하자고 속삭였다. 하윤이 대답하지 않자 무경은 하윤의 목덜미를 살살 쓰다듬었다.

하윤은 어째 온몸의 털이 삐죽 서는 느낌이 들었다. 무경의 능력이 제게 들지 않음을 알고 그가 어떤 방법으로라도 절 해치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그랬다.

“연습한다며. 안 해? 빨리하고 과제 해야지.”

“…….”

연습이 빨리 끝난다고 해서 과제를 빨리할 것 같진 않았다. 아마 다른 재미난 것을 찾아 나설 것이다. 원래 시험과 과제를 앞두면 세상 온갖 일이 재미있어지니까.

‘과제는 무경이가 해 주면 좋겠다.’

기대를 담아 바라보자 무경은 맥이 풀린다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왜 또 그렇게 봐.”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뭔가 있는데.”

당장 과제 이야기를 하면 암만 백무경이라도 들어줄 것 같지 않았다. 하윤은 과제 이야기는 미룰 수 있을 때까지 미루기로 했다.

“눈 감아 봐.”

무경은 하윤의 말에 곧장 눈을 감았다. 그러나 하윤은 무경을 믿지 못했다. 혹시나 그가 눈을 뜰까 봐 자신의 손으로 무경의 눈을 덮었다. 눈을 뜨려는지 손바닥 안에서 무경의 속눈썹이 움직이는 게 느껴졌다.

“뜨지 마.”

“눈 가렸잖아.”

“그래도 감아.”

“넌 떴잖아.”

“아냐, 나도 감았어.”

사실은 감지 않았다. 하윤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억울해했다. 하지만 아직 눈을 감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사이, 침묵이 내려앉았다.

아직 TV를 틀어 놨음에도 그 소리가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하윤은 고개를 기울여 입 맞춰 보려다가 다시 몸을 일으켰다.

어째 생각한 각도가 나오지 않았다.

하윤은 무경의 허벅다리 위에 앉아 무경을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왜 안 하고.”

“있어 봐. 각도가 안 나와서 그래. 각도가.”

하윤의 변명에 무경은 코웃음 쳤다. 씩 올라가는 입꼬리를 본 하윤은 무경을 향해 고개를 내밀었다. 하지만 정확히 맞추지 못해 입술보다 코끝이 먼저 닿았다. 살짝 찧고 뒤로 물러나자 무경이 하윤의 허리 잡고 슬쩍 끌어당겼다.

하마터면 무경의 눈에서 손을 뗄 뻔했다. 하윤은 움찔거리다가 이번엔 고개를 살짝 틀었다. 여전히 눈을 감을 자신이 없었다. 하윤은 소파 귀퉁이를 보며 무경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붙였다.

맞닿은 입술 안쪽이 부드러웠다. 반면 입술 선은 조금 단단하게 느껴졌다. 하윤은 살짝 입을 벌려 무경의 아랫입술을 머금었다. 무경의 입술이 살짝 움직이자 가슴이 철렁 내려갔다. 심장이 떨어졌는지 아래에서 자꾸만 펄떡 뛰는 느낌이 들었다.

하윤은 입술을 살짝 떼고선 무경을 올려다보았다. 눈을 가리고 있어 표정이 보이지 않으나 입꼬리가 굳어 있었다. 하윤은 무경이 아직 눈을 뜨지 않은 틈을 타 재빨리 그의 입가를 문질러 닦았다.

입술을 조금 핥았다고 습기가 묻어 나왔다.

무슨 생각으로 입 맞추자고 했을까. 만용에 가까웠던 용기는 어느새 모습도 찾을 수 없었다.

이제 끝내고 싶었다. 하윤은 무경의 어깨를 짚으며 슬쩍 몸을 뒤로 뺐다. 눈을 가리던 손이 사라졌음에도 무경은 눈을 뜨지 않았다. 허리를 끌어안고 있던 손도 마찬가지로 풀지 않았다.

신경이 쓰였던 하윤은 살짝 몸을 뒤척였다. 그러나 여전히 불편했다.

이유를 찾아 고개를 숙였을 때, 무경이 하윤의 턱을 들어 올렸다.

“다시 해 봐.”

“…….”

“얼른.”

무경은 하윤의 턱을 은근히 쓸다가 귀를 만지작거렸다. 조금 전 입맞춤으로 귓바퀴에 열이 올라 무경의 손이 반갑지 않았다. 떼어 내려 잡은 순간, 무경이 얼굴을 들이밀었다. 하윤이 놀라 몸을 뒤로 뺐으나, 무경이 더 빨랐다.

그러나 무경이라고 해서 뭔갈 더 한 건 아니었다. 그저 입술을 지그시 맞추고 있을 뿐이었다. 그게 우스웠던 하윤이 키득거리는 순간, 무경의 혀가 하윤의 입술 틈새로 들어와 하윤의 혀끝을 살짝 핥고 떨어졌다.

“으악. 기분 이상해.”

낯선 감촉에 하윤은 몸을 바르르 떨었다. 무경은 마찬가지로 키득거리다가 하윤을 소파 위로 눕혔다. 물 흐르는 듯 자연스러운 동작에 이의를 제기할 틈도 없었다.

무경은 하윤의 위로 엎드렸다. 그러고는 뒤 입 맞추기 편한 각도를 찾아 고개를 이리저리 갸웃거렸다. 그러다가 쿠션을 찾아 하윤이 베게 했다.

하윤의 고개가 올라가자 무경은 곧장 다시 입 맞췄다. 하윤이 처음 한 것처럼 아랫입술을 머금었다가 놓고 다시 윗입술을 빨다가 입술 사이를 혀로 느릿하게 핥았다. 금세 젖어 든 입술 위에 쪽쪽 소리 나게 입 맞추다가 손끝으로 하윤의 턱밑을 살살 간질였다.

“입 벌려 봐.”

하윤은 순순히 입을 벌렸다. 틈 사이로 무경의 혀가 들어왔다. 따듯하고 물컹거리며 축축한 살덩이. 이상하고 낯선 감각에 좀처럼 익숙해질 수 없었다.

그러나 이상하게 초조하고 가슴이 쿵쾅거렸다. 하윤은 발끝에 힘을 주었다. 뽀드득 가죽 소파 특유의 소리가 신경을 거슬렀다.

하윤은 눈을 감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다 뜨지도 못했다. 무경과 눈이 마주쳐선 안 된다는 생각만 이따금 떠올랐다.

숨을 언제 쉬어야 할지, 침을 삼켜도 될지 모르는 게 많았다. 하윤은 조심스레 숨을 내쉬었다. 조금씩 끊어 쉬다가, 아예 참아도 봤다가. 그러다가 더는 참지 못해 헐떡이며 내쉬자 무경이 잠시 입술을 뗐다.

몸을 일으킨 무경은 하윤의 복부를 짚었다. 그러나 어딘가에 가로막힌 듯 더 내려가지 못했다. 손끝에 들어간 힘이 견디다 못해 손가락을 구부렸을 때, 무경은 애절한 목소리로 하윤을 불렀다.

“하윤아.”

“…….”

“김하윤.”

하윤은 대답하지 않았다. 무경의 시선이 어디에 닿았는지 알았기 때문이었다. 반면에 저 또한 보지 않아도 무경이 어떤 상태인지 알았다. 그러나 모르는 척했다.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모른 척했던 지난밤처럼.

하윤은 망설이다가 무경의 목에 팔을 둘렀다. 무경은 눈을 가느스름하게 뜨다가 다시 웃으며 입을 맞췄다.

처음에는 더듬더듬 어색하게 입 맞추고 혀를 얽었으나 시간이 지나자 점점 능숙해졌다. 영화에서 보던 것처럼 진득한 입맞춤이 이어졌다.

어디 달아나는 것도 아닌데 무경은 다급하게 입 맞췄다. 능숙해졌음에도 이따금 이 끝이 닿았다. 반면 하윤은 또다시 숨을 참았다가 호흡이 흐트러졌다.

무경은 하윤이 숨을 고를 동안 하윤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입술로 맥을 짚는 것처럼 가만히 대고서 하윤이 숨을 고르는 것을 기다렸다.

“아직도 혀 닿는 게 싫어?”

“……이상해, 이거.”

“나는 좋은데.”

“…….”

“하윤아, 나는 너무 좋아.”

“…….”

“또 대답 안 할 거지.”

“알면 묻지 마.”

무경의 손이 점차 위로 올라왔다. 소파를 짚는 소리가 점점 더 가깝게 들렸다. 마침내 바로 귀 옆에서 소파 가죽 눌리는 소리가 들렸을 때 하윤은 빠르게 눈을 깜빡였다.

“무경아, 야, 잠시만.”

“하윤아. 모르는 척하면, 없는 일이잖아.”

뼈가 있는 말이었다. 하윤은 몸을 비틀어 무경에게서 벗어나려 했다. 일어나기만 하면 문을 열고 달아날 수 있었으나, 이를 눈치챈 무경은 하윤의 몸을 제 몸으로 짓눌렀다.

“네가 싫어하는 건 안 할게.”

“내가 싫은 건 안 한다며! 비켜 그럼!”

“난 네가 좋아하는 것만 할 거야. 그래야 네가 좋아하니까.”

말이 통하지 않았다. 하윤은 한 번 더 몸을 들썩였으나 무경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사이 무경은 하윤에게 다시 입 맞췄다. 물컹한 혀가 맞닿자 재차 생경하고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하윤은 질끈 눈을 감았다. 눈을 감기 전 무경의 웃음이 들렸다. 평소라면 쏘아붙였겠지만, 지금은 그럴 수가 없었다.

머리만 숨겨지면 제가 숨었다고 생각하는 키위새같이, 눈을 감아 까만 세상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윤은 무경이 자신을 좋아한다는 것을 진작 알았지만, 그 정도가 위험 수위에 다다랐다는 것을 안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둘은 아직 미성년자였고 보호자의 보호 아래 있었다. 일반적으로는 이것이 큰 제약이 되지 않겠지만, 그들의 보호자는 에스퍼이자 에스퍼 관련 기관의 간부직을 맡고 있었다.

검사 방식의 발전으로 이전에 비하면 에스퍼가 늘어난 편이지만 전체 인구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적은 수였다. 그중에서 조각을 만나는 경우는 드물었다. 하지만 서이주와 백진하는 얼마 되지 않는 사례를 두루 알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이른 나이에 조각끼리 붙어 있을 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에 대해서도 미리 인지했다. 더군다나 하윤의 부모가 에스퍼가 아니라 양육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해서 서이주 부부가 대신하여 김하윤의 양육을 맡았다. 그 덕에 백무경은 어릴 적부터 비교적 자유롭게 김하윤에게 집착할 수 있었다.

최대한 공평하게 양육하더라도 은연중에 혈육에게 신경이 더 쓰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김하윤이 주눅이 들어 백무경의 강압에 넘어가지 않도록 서이주는 정신계 에스퍼를 통해 백무경에게 암시를 걸었다.

김하윤의 동의가 있어도 스물이 넘기 전에는 관계할 수 없다는 암시였다.

비록 일곱 살 남짓 어린 나이에 둘 다 뭐가 뭔지 알지도 못하고 동의하기는 했으나, 해당 암시는 삼 년마다 보완해 오고 있었다. 백무경과 김하윤이 뛰어난 에스퍼이기 때문에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덕분에 뭣도 모르는 것에서 조금 알 만한 때까지 흘러왔다. 무경은 작년 열여섯에 암시를 보완받았다. 여태 그래 왔던 것처럼이라면 열아홉 살에 한 번 더 받겠지만, 정신계 초능력에 오랫동안 노출되는 것도 좋지 않고, 암시가 끝나는 스무 살이 코앞이라는 점에서 사실상 그때가 마지막 보완이었다.

하지만 보완한 지 일 년 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물론 암시가 아니더라도 하윤은 무경이 자신을 건드리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그가 자신을 다른 방식으로 보고 있으리라는 것조차 생각하지 않았다.

하윤에게 무경이 자신을 좋아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날은 뭐에 삐쳐서인지 하윤은 친부모가 있는 집에 가서 잠들었다. 그 집은 방 세 칸짜리 아파트였는데, 남는 방 두 개는 세 살 아래 이란성 쌍둥이 동생들이 하나씩 차지하고 있었다. 남자 동생 방에 가서 자려니 쿰쿰한 냄새도 나고 싫어서 거실 소파에서 잠을 청했다.

낮잠 잘 땐 잘만 잠들던 소파가 그날따라 왜 그렇게 불편한지 하윤은 좀처럼 잠들지 못했다. 시계는 이미 새벽으로 넘어간 지 오래였다. 그때 문득 자신이 없는 집에서 무경이 제 방에 와 있진 않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엄연히 무경에게도 방이 따로 있지 않은가.

고민하던 하윤은 자신의 방을 엿보기로 마음먹었다. 무경이 없다면 방으로 넘어가서 문을 잠그고 잠들어야지.

그런 생각으로 슬쩍 문을 열어 방을 엿봤다. 혹시 누가 있을 것을 예상하여 책상 아래, 구석진 곳과 이어지는 문을 아주 조금만 열었다.

[……하윤아.]

[……!]

문틈 새를 엿보기도 전에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자신이 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일까? 아니, 그럴 리 없었다. 의심을 미처 지우지 못했을 때 무경은 재차 하윤을 불렀다.

[하윤아……, 김하윤.]

문틈 사이로 보인 장면에 하윤은 입을 틀어막았다. 그간 받은 훈련이 아니었다면 소리를 질렀을 것이다.

무경은 하윤의 침대에 올라가 있었다. 하윤의 베개에 주저앉아 벗어 두고 간 잠옷에 얼굴을 묻고 있었다.

무경은 절절한 목소리로 하윤을 불렀다. 마치 하윤이 그의 목숨줄을 쥐고 있는 것처럼. 그런다고 자신이 무엇을 해 줄 수 있는 것도 아닌데, 해 줄 것도 아닌데.

하윤은 얼굴을 쓸어내리며 몸을 돌렸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문을 닫을 수가 없었다.

감이 좋은 무경이 저를 발견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이어졌으나, 하윤은 무경의 모습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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