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6화 〉 아멜리아로 가는 길1
* * *
“해적들은 어떻게 됐어요?”
“인어들이 인어의 방식대로 사형했어. 어떻게 했는지 들을래?”
“아뇨, 일이 끝났으면 됐어요. 그런 걸 들어봤자 딱히 좋진 않잖아요?”
에일렌의 귀를 가리면서 웃는 레이시.
레이시는 엘라에게 눈짓을 주더니 다음 인어들과 휴식할 수 있겠냐고 물어봤고, 엘라는 레이시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더 이상의 해적은 없으니까.”
“다행이네요.”
“그러게, 이제 좀 규모가 커지려고 하는 해적이었나봐. 다행이지 규모가 커졌다면 귀찮아졌을 건데.”
“으응, 산적들하고 달라요?”
“응. 꽤 다르지. 산적들은 작은 규모든 큰 규모든 은근히 쉽게 찾을 수 있는데 해적들은 커지면 찾기가 힘들거든.”
한숨을 내쉬면서 고개를 좌우로 젓는 엘라.
레이시는 엘라의 반응에 꽤 복잡한 이야기가 나올 거 같아서 엘라를 자기 옆에 앉힌 다음에 편하게 이야기해달라고 부탁했고, 엘라는 레이시의 온기에 레이시의 어깨를 가볍게 감싸 안으면서 해적이 귀찮은 이유를 설명해주었다.
“그리고 해적의 생활 방식도 한 몫하고 있고.”
“생활방식이요?”
“응, 산적들은 기본적으로 약탈밖에 없어. 지나가는 상인에게 보호비를 걷겠다고 하더라도 상인들은 모험가나 용병, 그리고 국군을 믿지 산적들을 믿지 않아. 그래서 보호비를 걷지도 못하고 블랙마켓에다가 물건을 팔려고 해도 기록이 어떻게든 남으니까 작정하고 찾으려고 하면 찾을 수 있어.”
“해적은 찾기가 힘드나요?”
“아무래도 그렇지. 지상에서와는 다르게 해상에서는 모험가는 거의 없는 데다가 해상 용병들을 고용한다고 해도 배 한 척이나 두 척 빌리는 게 끝이야. 그런데 규모가 큰 해적들은 최소 군함으로 5척 이상이니까 용병을 고용하는 효과가 적지. 그리고 해적들은 자기 흔적을 없애기 위해서 자기 제안을 안 받아들이면 그냥 다 죽여서 바닷속으로 가라앉히니까 다른 곳의 도적과는 다르게 피해 상황 발견이 더욱 안 돼. 그러니까 발견하는 즉시 사형해도 그다지 별 말이 없는 거고.”
“아아…….”
“그리고 안 들키는 이유 중 하나가 해적들은 바다 괴물들을 처리하고 그 부산물을 유령 용병회사를 통해 돈세탁을 해버리거든. 일정 크기 이상의 바다 괴물을 사냥하는 건 어디까지나 합법인 일이라 그 부분으로 조사하기도 힘들고.”
“그렇군요.”
하긴 그렇게 다 죽여버린다면 그냥 해적들에게 보호비를 내고 도망치고 다니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무리한 부탁을 한다면 국가에 보고해버릴 테니 해적도 무리한 부탁을 안 할 거고 상인 길드를 통해서 바다 괴물의 부산물을 처리할 수도 있을 테니 어쩌면 공생의 관계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해도 사람을 죽여서 억지로 교섭을 성립시키는 사람들이니 범죄자일 뿐이지만.
순기능이 있다고 해도 악당은 악당이다.
레이시는 그렇게 생각하며 힘들겠다면서 엘라를 다독여주었고, 엘라는 레이시의 다독임에 어깨를 으쓱이면서 국가의 공인을 받고 활동하면 훨씬 안전해지는데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정부 지원으로 커다란 배까지 구할 수 있는데 말이야. 그깟 범죄를 좀 안 저지르는 게 힘든 걸까 싶어. 공창가에 못 가게 막는 것도 아니야 독한 술을 못 마시게 하는 것도 아니야, 대체 뭐가 문제인 건지 모르겠어.”
“아, 아하하하…….”
“아니, 진짜 모르겠다니까? 마약을 하지 말라고 했을 뿐인데 왜 굳이 마약을 빨아서 효수되는 건가 싶어.”
한숨을 푹 내쉬면서 인상을 확 찌푸리는 엘라.
엘라는 아무리 고급이라고 해도 마약을 계속해서 먹으면 정신에 영구적인 손상이 생겨서 이상해지는데 왜 그런 걸 좋아하는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좌우로 저었고, 레이시도 엘라와 같은 생각이었기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전생에서 들었던 명대사를 그대로 말해주었다.
“사고방식 자체가 저희랑 완전히 다르니까 이해하는 건 무리 아닐까요?”
“킥! 하긴 그건 그렇다.”
레이시의 말에 웃음을 터트리는 엘라.
엘라는 레이시의 볼에 입을 맞추더니 레이시에게 산책을 마저 이어가도 좋다고 말했고, 레이시는 엘라의 말에 나비와 하양이를 잘 부탁한다고 말했다.
“오늘은 에일렌하고 있을래요.”
“그래?”
“네, 잘 부탁해요.”
“그럼 미스트 불러줄까?”
레이시의 배를 힐끗 쳐다본 다음 자리에서 일어나는 엘라.
레이시는 엘라의 말에 얼굴을 붉히다가 엘라의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대었고, 엘라는 레이시의 입맞춤에 지금은 미스트에게 전혀 못 이기겠다면서 쓰게 웃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스트, 레이시에게 가.”
“네? 일은 어떻게 할까요?”
“산책은 내가 할게. 안에 들어가서 레이시 달래줘. 꽤 놀란 거 같아.”
“알겠습니다.”
그동안 산적들을 상대하면서 이런 일에 익숙해진 것 같았는데…….
미스트는 잠시 그렇게 생각했다가 지금은 평소와 다른 상황이라는 걸 떠올리고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아래로 내려가 배 안에 있을 레이시를 찾아갔다.
“좀 어때요?”
우유를 따뜻하게 데운 다음 건네주면서 레이시의 상태를 물어보는 미스트.
레이시는 미스트의 질문에 괜찮다고 말하면서 배시시 웃었고, 미스트는 레이시의 웃음에 다행이라며 레이시를 껴안고 레이시를 천천히 침대로 데리고 갔다.
“낮잠이나 잘까요? 피곤한 일도 있었잖아요.”
“저는 아무것도 안 했는데.”
“지켜본 것만 해도 충분히 하셨는 걸요. 자, 조금 자요.”
미스트는 레이시를 억지로 눕힌 다음 볼에 입을 맞춰주었고, 레이시는 미스트의 입맞춤에 어쩔 수 없다는 듯 어색하게 웃다가 이불을 슬그머니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자, 그럼 자요. 레이시가 완전히 잘 때까지는 옆에 있을게요.”
“으응, 에헤헤…….”
레이시는 미스트의 말에 배시시 웃다가 미스트를 꽉 끌어안았고, 미스트는 그런 레이시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천천히 레이시를 재우기 시작했다.
해적들과 싸울 때 아무것도 안 했다고 말했지만 그런 것과 별개로 사람이 죽는 걸 직접 봐서인지 스트레스가 심한 모양이었고, 미스트는 금방 잠들어서 숨을 고르게 내쉬는 레이시의 얼굴을 보다가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레이시의 등을 토닥여주기 시작했다.
“으응…….”
그러자 신기하게도 같이 졸리기 시작했고, 미스트는 이대로라면 자버릴 것 같다고 생각해 눈을 비비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수마를 쫓기 위한 뜨개질을 시작했다.
레이시에게 허벅지를 내어주고 에일렌이 겨울에 입을 옷을 만드는 미스트.
미스트는 한참 뜨개질을 하다가 누군가가 방에 들어오려고 하자 고개를 들어 방문을 바라봤고, 미네르바가 날개를 쭉 펼치다가 접으면서 방에 들어오자 미네르바에게 산책은 더 안 해도 괜찮냐고 물어봤다.
“괜찮다. 그다지 놀고 싶은 기분도 안 들고.”
“그런가요?”
“뭐 만드는 거냐?”
“에일렌의 겨울 옷이요. 미리 준비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준비하고 있어요.”
“그런가?”
“네에~. 다른 사람들은 뭘 하고 있나요?”
“아샤는 인어들하고 이야기하고 있고, 엘라는 나비의 등 위에 타서 나비와 산책을 나갔다.”
“그렇군요. 혹시 두 분 중에 여기에 며칠 동안 머물면 좋겠다고 이야기하신 분이 계신가요?”
“엘라가 하루나 이틀 쯤 쉬자고 말했었다.”
미스트의 연이은 질문에 대답하던 미네르바는 조심스럽게 침대에 앉더니 미스트에게 눈치를 주기 시작했고, 미스트는 미네르바의 눈치에 작게 웃다가 자리를 비켜주었다.
그러자 미네르바는 기다렸다는 듯 레이시에게 팔베개를 해주면서 날개로 레이시의 몸을 덮어 따뜻하게 만들었고, 레이시는 잠시 불편한 듯 눈을 찌푸리다가 이내 미네르바를 껴안으면서 편안하게 잠을 청하기 시작했다.
“후후…….”
레이시의 반응이 만족스럽다는 듯 작게 웃는 미네르바.
미스트는 그런 미네르바의 웃음에 작게 웃음을 터트리다가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자리에서 일어났고, 미네르바는 미스트에게 어디로 가려고 그러는 거냐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샤를 도와주게요. 아샤는 협상이나 설득을 잘 못 하니까 지금쯤 난감해하고 있을 거예요. 레이시가 일어난다면 제가 어디로 갔는지 말해주시겠어요?”
“알겠다.”
“그럼 부탁할게요.”
미네르바의 대답을 들은 미스트는 레이시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춘 다음 밖으로 나가 인어들을 상대로 끙끙 앓고 있을 아샤에게 갔고, 아니나 다를까 예상대로 인어들에게 이런저런 설명을 해주던 아샤의 모습에 키득키득 웃으면서 다가갔다.
“그러니까 이틀 뒤까지는 컨디션을 회복하라고. 인어의 보물도 있잖아. 그거 쓰면 해온이나 이런 것들을 적당히 조절할 수 있잖아. 그럼 이틀이면 충분히 해결할 수 있겠네.”
“인어의 보물을 우리가 쓸 수 있게 조절하는 것도 힘들고 땅을 걷는 것과 다르게 바닷속을 움직이는 건 꽤 힘들어. 3일은 줘야 해.”
“일정은 이미 정해져 있거든? 거기에 맞춰. 이틀이면 충분해.”
“자자, 아샤. 진정해요.”
“뭐야, 레이시랑 같이 있는 거 아니야?”
“네, 아샤가 이럴 거 같아서요. 그리고 인어분들?”
“응……?”
“징징거리지 마세요. 저희가 안 구해줬으면 당신들은 어딘지도 모르는 곳으로 가서 해적에게 착취를 당하거나 바다에 사는 몬스터에게 뜯고 먹히거나 둘 중 하나였잖아요? 저희가 기분 좋게 나가니까 마냥 좋은 줄 아시는데 그런 건 아니라는 걸 인식하고 행동해주세요.”
“…….”
미스트의 말에 적대감을 내비치는 인어들.
미스트는 그런 인어들의 반응을 대충 예상했다는 듯 피식 웃더니 한 명 죽고 시작하겠냐면서 단검을 꺼내들었고, 인어들은 미스트의 행동에 당황한 듯 미스트를 올려다봤다.
“농담이에요. 하지만 정말로 저희가 당신들을 상전 대접하듯 움직일 거라고는 기대하지 말아주세요. 저희는 딱히 당신들이 없어도 문제가 없고, 당신들은 저희가 없으면 곤란한 입장이잖아요? 심지어 당신들은 저희 왕국의 사람들도 아니고요. 그런데 왜 저희가 당신들의 사정에 맞춰서 움직일 거라고 생각하세요?”
“그, 그건……, 그래도…….”
“보물이 없으면 이틀만에 움직일 수 있는 거죠?”
“뭐?”
“그렇잖아요? 인어의 보물은 저희도 쓸 수 있다고요? 장식품으로 쓰면 다른 사람의 부러움도 사니까 레이시에게 선물해줘도 괜찮고요. 그런데 저희는 레이시가 돌려주자고 해서 돌려줬던 거예요. 그런 저희의 호의를 이런 식으로 무시하면 저희도 좋게는 못 대해드려요.”
미스트는 인어들이 자기 말에 당황하는 틈에 인어들의 보물을 빼앗아 손에 든 채 웃는 얼굴로 인어들을 압박하기 시작했고, 인어들은 미스트의 행동에 당황하며 소리를 치다가 이내 미스트가 정말로 여기에서 한, 둘쯤은 아무렇지 않게 죽일 수 있다는 걸 깨닫고 천천히 입을 다물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아샤는 침을 삼키면서 굳이 이렇게 강하게 할 필요가 있냐고 물어봤고, 미스트는 아샤의 질문에 피식 웃으면서 자기는 별 같잖은 항의를 들어줄 정도로 여유롭지 않다고 대답해주었다.
“아샤는 츤츤대면서도 이런 종류의 사람에게는 너무 착해서 문제에요.”
“너는 반대로 누가 됐든 죽지 않을 정도로 굴리는 게 문제고.”
“어머, 저희가 호의를 베푸는 건데 이 정도 노력도 못 한다면 굳이 구할 필요가 없죠. 저들이 무슨 다른 사람들은 하지 못하는 기술을 가진 입장도 아니고 해적 기지를 털면 나오는 인어들과 똑같은데 저희가 왜 굳이 저들의 입장을 배려해줘야 할까요?”
“……그건.”
“난민은 언제나 이러니까 문제에요. 저희가 호의와 사람으로서의 최소한의 도의로 받아줬으면 거기에 감사해하고 거래할 거리를 만들어서 더 나은 대접을 요구해야 하는데 그러질 않잖아요? 마치 자기 권리처럼 생각하고.”
“네 말이 맞는 말인데 그 말은 레이시 앞에서 하지 마. 레이시가 난처해 할 거야.”
“네에~ 물론이죠.”
자기가 그렇게 눈치가 없진 않다면서 히죽 웃는 미스트.
아샤는 그런 미스트의 웃음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다면서 한숨을 내쉬다가 이내 심각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인어들을 뒤로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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