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5화 〉 해적들과의 해상전3
* * *
레이시는 배 안에서 에일렌을 껴안고 한숨을 내쉬었다.
전투가 많은 건 이제는 대충 이해하고 있었다.
엘라가 평범한 사람이 아니고 엘라가 하는 일이 평범한 일이 아니니까 좋든 싫든 이런 일을 겪을 수밖에 없다는 건 받아들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어도 본격적인 전쟁이라고 말해도 좋을 정도의 규모의 전투를 해야 한다는 사실은 꽤 스트레스였다.
엘라는 위험하지는 않을 거라고 말했지만 전쟁이라는 게 그렇게 통제될 리가 없을뿐더러 자기와 에일렌이 무사하더라도 거기에서 오는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감당하는 것도 큰 문제였다.
물론 에일렌을 죽이려고 하는 순간 반대로 이쪽에서 죽이겠지만…….
그렇게 생각하던 레이시는 눈을 깜빡이다가 자기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잠에 빠져있는 에일렌을 보며 배시시 웃었다.
뭐가 어떻게 됐든 에일렌만은 지키지 않으면 안 되겠지.
이제는 제법 걸어 다니는 흉내를 낼 수 있게 된 에일렌을 떠올린 레이시는 그렇게 생각하다가 에일렌을 요람에 눕힌 다음 자리에서 일어났고, 레이시가 갑판으로 올라오자 미스트는 레이시의 어깨에 담요를 덮어주면서 왜 밖으로 나왔냐고 물어봤다.
“안에 들어가서 에일렌하고 있으시지.”
“으응, 배를 보고 싶어서요. 제가 직접 전투에 참여하는 건 아니지만 하여튼 저도 관계가 있잖아요. 그럼 배가 가라앉는 거라도 봐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요.”
“그런가요? 그렇다면 여기에서 나오지 말아주세요. 여기까지는 배가 공격 받더라도 안전하니까요.”
“네.”
미스트가 그어준 선을 보고서 고개를 끄덕이는 레이시.
레이시는 미스트가 평소와 다르게 단검을 손바닥에 숨겨두는 걸 보고는 침을 삼키다가 해상전은 어떻게 이루어지냐고 물어봤고, 미스트는 레이시의 질문에 싱긋 웃으면서 여기에서 자기나 아샤가 나설 일이 전혀 없을 거라고 말했다.
“보통은 배를 우현으로 돌리든 좌현으로 돌리든 측면을 서로 마주 본 다음 포격을 쏘아내는 게 기본이에요. 배의 방어력과 포격 능력을 그대로 맞부딪치는 거죠. 하지만 고위급 마법사가 있으면 이야기가 달라져요.”
“마법사가 포격을 대신하면 되니까요?”
“네. 그러면 적의 공격을 최대한 피하는 게 중요하니 배의 면적을 최대한 덜 노출하는 방식으로 거리를 조절하는 쪽으로 움직이게 되죠. 저희도 그렇게 움직일 거예요.”
기본적으로 적의 포격을 정면에서 받아내고 할 수 있다면 배로 들이 받아서 배의 옆면을 박살낼 거라고 말하는 미스트.
레이시는 미스트의 말에 최대한 안전하게 해달라고 부탁했고, 미스트는 레이시의 말에 걱정하지 마라며 레이시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애초에 저희가 배를 들이받을 기회도 안 날 거예요. 상대방이 어떤 해적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섬에 보물을 숨기려고 하는 걸 보면 본격적인 해적이 아닐 거거든요.”
“본격적인 해적도 있어요……?”
“네, 있어요. 지상에서의 전투와는 다르게 해상에서의 전투는 개개인의 능력보다는 배의 능력이 더 중요하고 근처의 해류를 읽는 게 중요하다보니까 국가에서도 건들기 힘든 해적들이 있어요. 그런 곳을 본거지로 삼고 활동하는 해적은 저도 쫓아가기는 힘들고요.”
“정말요?”
“네. 굳이 간다고 한다면 바다를 얼리고 폭풍이 치는 곳을 걸어간다거나 그러겠죠. 그렇게 잠입해서 들어간다면 뭐가 어떻게 되든 제가 그들을 이길 수 있을 테니까요.”
“헤, 헤에에에에…….”
미스트의 말에 어색하게 웃는 레이시.
레이시는 미스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다가 그런 일은 없으면 좋겠다고 말했고, 미스트는 레이시의 말에 애초에 이런 섬에 보물을 숨기려고 드는 해적인 이상 그렇게 규모가 있진 않을 거라며 레이시를 다독였다.
“그보다 은근히 멀지 않은 곳에 있었나봐요.”
“네?”
“저기에 오네요. 배를 불태워서 봉화를 피웠으니 저희보다 먼저 움직였을 거라고 생각은 했었지만, 보물을 들고 나르지는 않을지 감시하고 있었나봐요. 아하하. 하긴 인어의 보물은 꽤 귀한 보물이죠.”
저 멀리서 보이는 함선들.
배가 네 척이나 보이자 레이시는 다소 걱정스러운 얼굴로 배들을 보면서 어떻게 하냐고 물어봤고, 엘라는 레이시의 말에 미스트에게 손을 내밀었다.
“지팡이.”
“네. 여기에 있어요.”
“엘라.”
“응? 왜?”
“엘라는 지팡이 없이도 마법 쓸 수 있죠? 그런데 왜 지팡이를 쓰는 거예요?”
“좀 더 섬세하게 마법 쓸 때 필요해서 그런 거야. 바다째로 쓸어버려도 상관은 없는데 자칫 잘못하면 해일이 일어나거든.”
“……에? 해일요?”
레이시는 엘라의 말에 자기가 잘못 들었나 싶어서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엘라를 바라봤지만, 다른 사람들은 엘라의 말에 대충 그럴 거라고 생각했었는지 엘라의 마법을 기다렸다.
그리고 잠시 후 하늘이 어두워지기 시작하더니 전투에 있어서 둔한 레이시도 뭔가 일어나고 있다는 걸 확실히 알 수 있을 정도의 마력이 요동치기 시작했고, 레이시는 그 감각에 침을 삼키면서 하늘을 올려다봤다.
눈이 부실 정도로 쨍쨍할 햇빛이 있을 하늘에 있는 건 검은색 구름들과 시릴 정도로 차가운 푸른빛의 띠를 보여주고 있는 검은 태양.
레이시는 고블린들을 없앨 때 봤었던 그 풍경에 멍하니 입을 벌리고 있다가 이내 하늘에서 광선이 떨어지자 그대로 엎드려서 곧 있으면 몰아칠 바람에 대비했다.
“으갸아아아아아아!”
레이시의 대비를 헛된 것으로 만들지 않겠다는 듯 몰아치는 광풍.
레이시는 갑자기 이게 뭐냐면서 당황하다가 배가 부러져서 난파되는 풍경에 멍하니 입을 벌리다가 이내 부는 바람에 비해서는 너무나도 잔잔한 파도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바람이 세게 불면 파도도 세게 분다.
그건 너무나 당연한 과학적인 사실이다.
물리력이 다르게 적용되지 않는 이상 바람이 세게 부는 이상 파도도 세게 몰아쳐야 한다.
하지만 지금 바다에서 일어나는 파도는 그 광풍을 맞았다고 보기에는 너무나 잔잔했고, 레이시는 자기도 모르게 엘라를 바라보면서 설명을 요구했다.
그러자 엘라는 엎드려 있는 레이시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마법의 직격 지점을 적당히 조정해서 바다에는 직접 타격이 가지 않도록 조절했다고 말해주면서 파도가 심해지지 않은 이유를 설명해주었다.
“그 위에 배까지 있었으니까 충격은 덜하겠지. 해적은 대부분이 죽었겠지만.”
“……그런게 가능한 거였어요?”
“응. 가능하니까 하지?”
어깨를 으쓱이고는 미스트에게 난파선이 된 배로 가달라고 말하는 엘라.
레이시는 태평한 엘라의 모습에 대학교 교수들의 모습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할 수 있어서 했을 뿐이라며 태연하게 말했었던 교수님들.
왜 엘라에게서 그런 교수님들의 모습이 보이는 걸까?
레이시는 잠시 그렇게 생각하다가 이내 어색하게 웃으면서 바다 위에 둥둥 떠다니는 나무 조각들을 보고는 배 뒤로 가서 인어들에게 조심하라고 일러주었다.
“응, 알았어. 조심해서 따라갈게.”
“네, 감사해요~.”
“레이시는 착하네. 어차피 저 인어들도 방금 전 포격 때문에 어련히 알아서 할 텐데.”
“그래도 말하는 게 좋잖아요.”
“그런가? 내가 다가가면 무서워서 지리던데. ……물리적으로.”
“아, 아하하……. 아무래도 저런 걸 할 수 있는 사람이 직접 가면 무섭겠죠? 아무리 해칠 마음이 없어도요.”
“하긴, 그렇겠네.”
레이시의 말에 피식 웃더니 고개를 끄덕이는 엘라.
엘라는 앞으로도 이런 일이 있으면 잘 부탁하겠다고 말했고, 레이시는 엘라의 말에 배시시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인 다음 다시 배 앞으로 달려가서 배가 어디쯤에 도착했는지 확인했다.
육지와 다르게 기준점이 될만한 것이 없어서인지 거리를 정확하게 재기 힘든 해상.
그 때문에 레이시는 한참 왔는데도 은근히 멀리 있는 것 같은 잔해를 보고 너무 멀리 있는 것 같다고 말했고, 미스트는 레이시의 말에 손을 쭉 뻗어 단검과 함께 배를 보기 시작했다.
“으음, 그러네요. 한 1km는 더 가야겠어요.”
“에? 은근히 가깝네요? 그런데 그거 어떻게 알아요?”
“아, 여기 이 단검의 리카소가 1cm거든요. 제 눈에서 45도 각도로 10cm 떨어져 있었으니까, 그 다음부터는 삼각함수로 거리를 재면 돼요.”
“……에?”
“후후, 그냥 그렇다고요. 편하게 보시려면 여기 이 망원경으로 보면 괜찮아요. 배율이 적혀 있고 배율에 따른 거리를 잴 수 있게 해뒀으니까요.”
레이시의 반응에 작게 웃으면서 망원경을 건네주는 미스트.
레이시는 미스트의 선물에 눈을 깜빡이다가 왜 이걸 쓰지 않는 거냐면서 고개를 갸웃거렸고, 미스트는 레이시의 질문에 망원경을 쓰면 반대쪽 눈을 감아야만 해서 부득이하게 암산 능력을키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 어……, 네.”
그 말을 들은 레이시는 어색하게 웃기만 했지만.
대체 cm랑 m단위의 암산은 어떻게 하는 걸까?
암산이라고 한다면 두 자리 숫자의 곱셈이 한계인 레이시는 어색하게 웃으면서 미스트를 바라봤고, 미스트는 레이시의 어색한 웃음에 피식 웃으면서 레이시를 가볍게 끌어안았다.
“하다 보면 나름 할만하다고요? 해상전에서는 m단위만 맞추면 적을 섬멸할 수 있으니까요.”
“아, 아하하하……. 저라면 중간부터 계산이 꼬여서 못 해요.”
“후후, 그래요?”
“네, 절대로 못 해요. 제가 받는 월급을 관리하는 것도 장부에다 적어가면서 관리해야 하는 걸요.”
“어머, 얼마나 쓰셨나요? 1년 좀 넘게 받았으니까 2000만 정도는 받았잖아요.”
“600만 좀 넘게 썼어요. 에일렌에게 쓰면서 꽤 많이 쓰긴 했는데 그 외에는 딱히 뭔가 하지는 않아서…….”
“후후, 그래요?”
미스트는 레이시의 말에 귀엽다는 듯 레이시의 허리를 쓰다듬었고, 레이시는 미스트의 손길에 얼굴을 붉히다가 배의 잔해와 가까워졌다고 말하면서 배를 가리켰다.
그러자 미스트는 손을 휘적거려서 배를 멈춰 세웠고, 레이시는 배의 잔해를 바라보면서 혹시 살아있는 사람이 있냐고 소리쳤다.
처음에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지만, 레이시가 다시 한번 소리를 외치자 이대로 죽으나 레이시에게 걸려 죽으나 죽는 건 매 한가지라고 생각했는지 배의 잔해 사이에서 사람이 나오기 시작했다.
“은근히 많이 살아있네.”
“그러게요.”
“해일 일으키는 것보다는 몇 배는 낫잖아.”
“그냥 배에 올라타서 싸우면 안 되는 건가?”
“으, 으음…….”
그들을 보고 꽤 많이 남았다고 말하는 엘라와 미스트.
아샤는 두 사람의 반응에 해일이 일어나서 귀찮은 일이 생기는 것보다는 이렇게 대충 끝내는 게 낫지 않겠냐며 작은 조각배를 띄우기 시작했고, 미네르바는 아샤를 도와주면서도 차라리 배에 올라타서 전부 쓸어버렸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거라며 귀찮다는 얼굴을 했다.
“살아남은 사람은 어떻게 할 거냐? 죽이면 편하다.”
“그건 그렇지. 해적은 다른 곳과 다르게 사살이 기본이고……. 그냥 죽일까?”
“네? 굳이 그럴 필요 있어요? 저 사람들도 무서워서 떨고 있는데…….”
“저렇게 보여도 사람을 죽인 사람이니까 죽일 수 있을 때 죽이는 게 좋아.”
“그렇다면 저도 이견은 없지만요. 으음, 그래도 인어들의 보물을 훔친 사람이니까 인어들에게 심판을 받는 게 낫지 않을까요?”
“하긴 그것도 그렇다. 미스트, 인어들에게 의견을 묻고 와줘.”
“알겠습니다, 공주님.”
엘라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배의 뒤편으로 가는 미스트.
해적들은 미스트의 행동에 빠르게 눈을 굴리다가 자기가 살아날 방법은 레이시밖에 없다는 걸 깨닫고 레이시에게 매달리기 시작했다.
전이었다면 통했을 애원.
하지만 레이시는 이미 적과 아군의 구별이 확실해져 있었고, 레이시는 해적들에게 동정심을 느끼긴 해도 거기에서 그칠 뿐 곧바로 에일렌이 놀라지 않았는지 확인하러 들어가며 해적들의 희망을 앗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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