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7화 〉 아멜리아로 가는 길2
* * *
“공주님.”
“응.”
“인어들은 이틀 뒤에 출발하기로 했습니다. 그동안에 인어의 보물은 저희가 관리하기로 했고요. 보물은 인어가 아멜리아에 정착한 다음 어떤 행동을 보이는지에 따라서 건네줄지 말지 결정하겠습니다.”
“역시?”
“네, 안타깝게도 그렇게 됐네요.”
인어들을 협박하고 일정을 조율한 미스트가 한 일은 엘라에게 보고하는 것이었다.
미스트는 엘라에게 아샤가 인어들에게 쩔쩔맸던 것부터 시작해서 자기가 개입해서 강제로 일정을 정한 것을 보고했고, 엘라는 미스트가 어떻게 보고할지 대충 예상했다는 듯 나비의 등 위에서 포도를 먹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이래서 사회에서 살아보지 않은 난민은 싫다.
왕족이나 귀족의 힘을 모르니까 적당한 선을 모르고, 적당한 선을 모르니까 좋게 설득을 해도 듣지 않고 굳이 협박해야만 말을 듣는다.
물론 안 그런 난민들도 많지만, 여태껏 만난 난민의 대부분은 이런 느낌이었기에 엘라는 정말로 싫다면서 몸서리를 치다가 몸을 일으켜 세웠고, 미스트는 엘라의 반응에 인어들을 몰래 줄이면서 인어들이 엘라의 말에 복종하도록 만들지 물어봤다.
“아니, 우리끼리 있으면 몰라도 레이시도 있는데 그런 짓을 하면 안 좋을 거야. 일단 수를 줄이지는 말고 힘과 권력으로 상하 관계를 인식시켜.”
“알겠습니다.”
“그리고 너도 이제 조금 있으면 엄마니까 일단 죽이고 본다는 식의 해결방법은 좀 참아.”
“어머, 제가 언제 그랬다고.”
“지금 그러고 있잖아.”
“아하하, 공주님도 참, 제가 왜 그러겠어요? 저는 살릴 수 있는 선택지가 있다면 살린답니다?”
“팔다리 다 잘라놓고 살려뒀다고 하면 그게 살아 있는 거야?”
“살아는 있잖아요?”
엘라의 말에 히죽 웃으면서 자기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식으로 말하는 미스트.
엘라는 미스트의 대답에 한숨을 내쉬다가 먹다 남은 포도를 미스트에게 건네주었고, 미스트는 엘라가 건넨 포도를 받아 포도알을 입안에서 굴리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아멜리아에 도착하면 가을이지? 아멜리아의 근처에 온천이 있을까?”
“글쎄요? 아멜리아에서 온천이 발견되었다는 이야기는 못 들어봤네요. 그리고 온천이 있다고 하더라도 아멜리아는 항구 도시니까 해수 온천이겠죠.”
“해수 온천이라, 싫은걸. 왠지 피부에 소금기가 남을 거 같아.”
“100% 남죠. 해수가 소금물인걸요.”
“으으, 원래라면 온천에 가서 레이시랑 이것저것 할 생각이었는데 해수 온천이라면 그런 걸 못 하잖아.”
“이건 레이시가 원한 일이니까 어쩔 수 없잖아요?”
엘라의 투정에 히죽 웃으면서 너스레를 떠는 미스트.
미스트는 이렇게 계획이 틀어진 건 레이시가 손에 닿는 사람들을 도와주면서 움직여서 그런 거라고 말하면서 엘라에게 그저 받아들이라고 말했고, 엘라는 미스트의 말에 눈을 확 찌푸리면서도 미스트의 말을 부정하지 못하고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계획된 여행이었으면 레이시도 일정을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만 사람들을 도와줬을 것이다.
하지만 이건 레이시와 함께 다시 서서히 일하려고 하다가 귀찮은 일에 휘말려서 그 일로부터 도망치면서 생긴 일.
계획된 건 아무것도 없고 그냥 즉흥적으로 일을 벌리면서 시간을 끌고 있을 뿐이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레이시가 벌인 일들은 시간을 끌기 참 좋은 일들이고 사람들을 도와주면서 아멜리아에 힘을 보태 다른 사람들이 레이시를 건들기 어렵게 만드는 아주 효율 좋은 일이었다.
한 마디로 레이시는 아주 잘 하고 있는 중으로, 그렇기 때문에 레이시에게 온천에 가고 싶었다고 투정을 부릴 수도 없었다.
여기에서 투정을 부리면 레이시가 들어주긴 하겠지만…….
“레이시에게 조르면 역시 좀 부끄럽겠지?”
“어린애 같겠죠? 국왕님은 공주님을 아직 어린애로 보시지만요.”
“시끄러워. 하여튼 못 간다면 됐어. 이번만 기회가 있는 것도 아니고 다음에 하면 돼.”
나비의 등 위에서 한숨을 푹 내쉬는 엘라.
엘라는 나비의 등을 쓰다듬어주면서 나비가 원하는 대로 산책을 즐기다가 나비가 산책을 그만두고 싶다는 듯 자리에 주저앉자 배로 돌아가 레이시와 잡담을 떨면서 시간을 죽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틀 뒤, 미스트는 인어들의 체력이 충분히 회복된 걸 확인한 배를 움직였고, 레이시는 배가 움직이자 갑판 위로 나와 인어들이 헤엄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나름의 소감을 남겼다.
“이거 겉으로 볼 땐 아름다워 보이는데 실상은 난민이 자리를 잡기 위해서 강제로 마라톤을 뛰는 거랑 같죠?”
“네? 네. 그렇죠.”
“……불쌍하네요.”
어색하게 웃으면서 어깨를 으쓱거리는 레이시.
미스트는 레이시의 말에 도와주겠냐고 물어봤지만, 레이시는 고개를 좌우로 저으면서 엘라와 미스트가 계산했으니 자기는 그저 따르겠다고 말했다.
“이런 일은 전문가가 아닌 사람이 끼어들면 괜히 복잡해지고 힘들어지니까요.”
“믿어줘서 고마워요.”
“에헤헤, 뭘요. 그나저나 올해 여름의 끝은 배 위에서라니, 뭔가 감회가 새롭네요.”
뱃사람에게 있어선 나름 흔한 일일지도 모르겠지만, 배 위에서 이렇게 오래 있는 건 처음이라서 신기하다는 감각을 좀처럼 지우지 못하는 레이시.
레이시는 포대기에 싸여 품에 안겨 있는 에일렌에게 신기하지 않냐고 물어보면서 에일렌의 손을 잡고 흔들어봤고, 에일렌은 레이시의 말에 바다를 바라보다가 이내 레이시의 가슴을 손으로 만지작거리면서 자기가 잘 자리를 마련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레이시는 웃음을 터트리면서 에일렌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배 위에서 한 달이라는 시간을 보낼 일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배 위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레이시의 생각보다 은근히 많았다.
아샤, 미네르바와 함께 낚시를 한다거나 에일렌의 걸음마를 도와준다거나 에일렌과 놀면서 말을 가르쳐준다거나, 중간중간 해류가 약한 곳이나 섬에 도착하면 하양이와 나비를 산책시킨다거나…….
“미스트, 이 책 다 읽었는데 다른 책도 주시겠어요?”
“네, 이번에는 이런 책은 어떤가요?”
“감사해요.”
하지만 그런 많은 일 중에서 레이시의 흥미를 가장 많이 끈 것은 육아와 관련된 책을 읽는 것이었다.
미스트는 괜찮다고 했었지만, 아이를 낳은 엄마가 다른 것도 아니고 자식의 상태를 모른다는 건 아무래도 무책임한 것 같아 레이시는 이런저런 일을 하면서도 한 달 동안 꾸준히 아이의 발달 과정과 관련된 책을 읽으면서 아이를 키우는데 필요한 것들을 배우기 시작했다.
“아이를 키우는데 포옹이 이렇게까지 중요할 줄은 몰랐어요.”
“에일렌을 그렇게 자주 안아주시면서요?”
“그건 제가 기분이 좋아서……. 에, 에헤헤헤…….”
“푸훗, 그런가요? 하긴 육아할 때는 부모의 기분도 무척 중요하니까 그래도 괜찮을지도 몰라요.”
“에헤, 에헤헤…….”
“이 작가님은 포옹의 효능에 대해서 많이 알려주시니까 많이 읽으시면 좋을 거예요. 여기 이 책하고 이 책도 읽어보세요.”
“감사합니다~. 그나저나 날씨도 꽤 선선해졌네요. 바다라서 잘 몰랐는데 이제 얇은 옷은 조금 추워요.”
“이제 아멜리아까지 가는데 하루도 채 안 남았으니까요. 이거 걸쳐요.”
레이시에게 숄을 건네주면서 하늘을 바라보는 미스트.
시계는 오후 2시를 가리키고 있었지만 출항했을 당시와 비교하면 해의 위치는 꽤 달랐고, 미스트는 그런 해의 위치에 시간이 꽤 흘렀다는 걸 실감했다.
확실히 조금 있으면 가을.
바다 위에서 방한 도구를 준비해야만 하는 시기였고, 미스트는 그런 정보를 떠올리다가 엘라가 말했었던 온천을 떠올리면서 온천이 안 된다면 대형 목욕 시설이라도 찾아봐야겠다면서 아멜리아 근처의 도시를 떠올려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좀처럼 대형 목욕 시설이 있는 도시가 떠오르지 않았고, 미스트는 안 되면 자기가 온천을 파낼 수밖에 없겠다고 생각한 다음 배를 몰기 시작했다.
“슬슬 도착해요.”
저녁을 먹을 때쯤, 레이시가 만든 밥을 먹으면서 말을 꺼내는 미스트.
미스트는 분신을 통해 정보를 받으면서 배가 언제쯤 도착할 것 같다고 말해주었고, 엘라는 미스트의 말에 눈을 깜빡이다가 기지개를 켜면서 아멜리아에 도착하고 나서 할 일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우선 가장 먼저 해야 할 건 인어들에 대한 설명이겠네.”
“아무래도 그렇겠죠. 미리 말하기는 했지만, 수정구를 통해서 말한 건 그다지 영양가 있는 정보들이 아니었으니까요.”
“그 부분에 대한 건 레이시랑 아샤가 해줬으면 좋겠어. 부탁할게.”
인어들을 정착시키는 과정에서 생기는 실랑이들은 레이시와 아샤가 처리하기엔 두 사람이 너무 사람이 좋고, 미네르바가 맡기에는 미네르바는 너무 지식이 없다.
여기에서는 가차없이 사람을 내칠 수 있으면서 이런 일을 자주 해본 나와 미스트가 낫다.
엘라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일행에게 일을 배정해주었고, 미스트는 엘라의 배분에 작게 웃으면서 미스트와 아샤에게 정리한 자료를 건네주었다.
“이걸 언제 다 정리하셨어요?”
“자는 시간을 줄여서 준비했죠. 한 달 동안 정리한 거라 자기 전 10분만 투자해도 괜찮았어요.”
“어어어……. 으응, 여전히 대단하시네요…….”
자기는 그렇게까지는 하지 못했을 거라며 어색하게 웃는 레이시.
레이시는 저녁을 먹은 다음 아샤와 함께 미스트가 정리한 걸 읽어보겠다고 말하면서 서류를 얌전히 다른 의자에 올려두었다.
“너희들은?”
“인어들을 설득해야지. 이런 일은 확실히 하지 않으면 귀찮아지잖아. 나중에 인어들의 요구사항을 정리해줄 테니까 그 부분에 대해서 루룬과 이야기해줘.”
“알았어. 수고해.”
아샤의 말에 한숨을 푹 내쉬면서 레이시에게 매달리는 엘라.
레이시는 엘라의 행동에 못 말린다는 듯 등을 토닥여주다가 에일렌이 자기도 안기고 싶다면서 옹알이하자 자리에서 일어나서 엄마와 딸이 둘 다 어리광쟁이라면서 두 사람을 같이 안아주었다.
“돌아갈 때까지만 이렇게 있자. 아, 혹시 저녁 다 안 먹었으면 저녁 먹어.”
“저녁 다 먹었어요. 에일렌이 안 먹기는 했는데……, 엘라, 죄송한데 제 셔츠 좀 벗겨주시겠어요? 에일렌에게 밥 먹여줘야 할 거 같아요.”
“응. 이렇게 벗기면 돼?”
“네. 고마워요.”
엘라가 셔츠를 벗기고 속옷을 위로 올려주자 에일렌에게 가슴을 물려주면서 싱긋 웃는 레이시.
엘라는 에일렌에게 밥을 먹이는 레이시의 모습을 빤히 쳐다보다가 괜히 질투가 난다면서 레이시의 가슴을 빤히 쳐다봤고, 레이시는 엘라의 시선에 자기 딸에게 질투하지 마라면서 엘라를 어처구니없다는 듯 쳐다봤다.
“나중에는 지금 제 배 안에 있는 아이들에게도 질투하시겠어요.”
“할 건데?”
“너무 당당하게 말하지 마요.”
“그치만 그 전까지는 레이시의 가슴은 내 거였는데 이젠 에일렌이나 다른 애들이 더 많이 차지하잖아.”
“원래 제 가슴은 제 거였거든요!?”
“그랬나?”
“그랬어요. 바보 엘라.”
엘라의 볼을 꼬집으며 한숨을 내쉬는 레이시.
엘라는 레이시의 한숨에 키득키득 웃다가 그럼 그런 거로 치자면서 기지개를 쭉 켰고, 레이시는 엘라의 반응에 어처구니없다는 듯 쳐다보다가 에일렌이 놀라서 가슴에서 입을 떼자 에일렌을 달래주기 시작했다.
“아, 공주님.”
“응? 왜?”
“한 달 전에 저에게 하셨던 말씀 기억나세요?”
“…….”
“기억하시나 보시네요.”
킥킥 웃으면서 엘라를 놀리는 미스트.
엘라는 미스트의 놀림에 눈을 깜빡거리다가 이내 자기는 아무것도 모른다면서 손을 휘휘 내젓고는 레이시를 옆에서 끌어안았고, 둘이 한 달 전에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 전혀 모르는 레이시는 엘라의 반응에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뭔가 멋쩍어하는 엘라의 얼굴에 웃음을 터트리면서 에일렌에게 마저 가슴을 물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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