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6화 〉 일은 대충 임기응변으로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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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샤가 마차에서 나올 무렵, 세크트의 한 주점에서는 아갈레타 가문에 생긴 이변에 대해서 떠들기 시작했다.
“어떻게 하지.”
“떠나야지 뭐. 아니면 다른 조직에 몸을 맡기거나. 우리는 어차피 고기 방패잖아.”
“……떠날 수는 있으려나.”
“안 그럼 뒤지는데?”
“씨발, 그럼 너는 약 없이 견딜 수 있어?”
“……그건.”
경비에게도 완전히 퍼지지 않은 정보이지만, 뒷골목에서 종사하는 사람들은 이미 레이시가 날뛰었다는 걸 듣고서 어떻게 해야 할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주된 이야기는 세크트를 떠날 건지 말 건지.
먼 옛날부터 천천히 가세가 기울고 있던 아갈레타가 망하는 건 확신하고 있었던 사람들은 새로 세크트의 암흑가를 지배할 조직이 누구인지 이야기하면서 그 조직에 붙을지 말지 고민하기 시작했고, 이내 아갈레타의 마약을 공급만 해준다면 충성을 맺기로 했었다.
어차피 하는 일은 변하지 않는다.
자기는 사람을 죽이고 아갈레타 가문은 사람을 죽이고 죄를 뒤집어쓰는 대가로 약과 돈, 그리고 술을 쥐어준다.
그걸로 여자를 사고 하룻밤의 쾌락에 모든 걸 잊을 수만 있으면 아무래도 좋다.
이미 마약으로 뇌가 망가진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술을 마시다가 이내 주점의 문이 열리자 시선을 옮기고 가볍게 휘파람을 불었다.
커다란 가슴.
잘록한 허리라거나 스치기만 해도 좋은 향기가 나는 체취라거나 풍만한 엉덩이라던가 그런 것들도 눈에 들어왔지만, 모성애의 현현이라고 봐도 좋을 정도로 커다란 가슴에 주점 안에 있던 사람들은 휘파람을 불면서 그 늑대 수인을 쳐다봤고, 갈색 머리의 늑대 수인은 카운터에 앉더니 술을 주문했다.
주문한 술은 저급 맥주와 가성비가 좋은 안주류.
자세히 보니 옷이 상인들처럼 퍽 닳은 게 아무래도 보부상이거나 마차를 끌고 다니는 상인 같았고, 거기까지 생각한 사람들은 미스트를 쉽게 넘어트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평범한 소상인.
그렇다면 약물을 넣어도 뭐에 취했는지 모르고 하룻밤을 즐길 수 있겠지.
그렇게 생각한 깡패들은 그 수인의 옆에 앉아 자기도 맥주를 달라면서 수인의 허리에 손을 올렸고, 수인은 자기 허리에 올려놓은 손을 놀란 눈으로 바라보더니 이내 싱긋 웃으면서 손을 치웠다.
“초면이잖아요.”
“뭐, 어때? 같이 술이나 마시자고. 혼자 마시기 적적할 거 아냐? 참, 며칠 있으면 축제를 여는데 거기에 나오는 물건이라도 알려줄까? 특산품이라서 비싸게 팔 수 있어.”
“흐으응. 그런 정보는 비싼데.”
“같이 술 마셔주면 그냥 가르쳐줄게.”
상인들이라면 눈을 까뒤집을 정도로 좋은 정보.
그렇게 생각하면서 수인을 바라보자 수인도 내심 혹하는 건지 안주를 덜을 작은 접시를 부탁했고, 깡패는 그런 수인의 행동에 반쯤 넘어왔다면서 주인장과 눈빛을 교환했다.
그러자 주인장은 알겠다면서 다음 잔에 넣어주겠다고 신호를 보냈고, 그 신호에 다른 사람들은 깡패들에게 부럽다는 눈빛을 보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여자에 대해서 나눠먹을 생각이 없었던 깡패들은 뒤늦은 후발주자를 무시한 채 여자를 바라봤고, 아무리 봐도 상인을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에 아무 귀족에게나 가서 첩으로 삼아달라고 하면 아주 사랑받는 첩이 될 수 있을 것 같은데…….
백작가든 공작가든 상관 없다.
이 정도면 무리만 안 하면 마음껏 살 수 있다.
그런데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던 찰나 수인은 처음 시켰었던 맥주를 비운 채 다시 새 맥주를 주문했고, 깡패는 그 순간 생각을 멈추면서 흥분에 몸을 맡기기 시작했다.
“여기요.”
“감사해요.”
동전을 건네면서 술을 마시는 수인.
깡패는 그런 수인의 모습에 침을 꿀꺽 삼키다가 특산물에 대해서 말해주기 시작했고, 수인은 처음에는 깡패의 이야기를 듣는 듯 하더니 이내 약효가 돌기 시작했는지 상기된 얼굴로 손부채질을 하다가 여기까지 마셔야겠다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그 순간 현기증이 도는지 수인은 잠시 비틀거리면서 의자에 손을 올리고 중심을 잡았고, 주인은 여관에서 자는 게 어떻겠냐며 위로 올라가라고 말했다.
그러자 수인은 잠시 망설이다가 영 안 되겠는지 돈을 낸 다음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고, 깡패들은 여자를 부축해주겠다면서 수인의 허리에 손을 올리고 3층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3층의 방에 들어간 수인은 머리끈과 넥타이도 풀었고, 깡패는 한껏 흐트러지면서 요염해진 수인의 모습에 침을 꿀꺽 삼키며 크게 흥분하기 시작했다.
그게 깡패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흐에?”
툭하고 떨어지는 머리.
수인을 한 번 얻어먹을 수 있을까 따라왔었던 깡패의 부하는 깡패의 머리가 툭하고 떨어지자 잠시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고개를 갸우뚱거렸고, 수인은 팔찌에 내장된 와이어를 회수하면서 커다란 바늘을 꺼냈다.
은빛으로 빛나는 커다란 바늘.
가죽을 꿰메거나 그럴 때 쓰는 크고 뭉뚝한 바늘이 아니라 사람을 죽이기 위해서 만들어진 아이스픽 같은 살상용 병기.
그걸 깨달은 부하들은 동시에 몸을 돌렸지만, 그 순간 경추에 바늘이 꽂히면서 사이좋게 절명하고 말았고, 늑대 수인 미스트는 그런 그들의 모습에 한숨을 내쉬면서 머릿속에 있는 리스트를 암송하기 시작했다.
캘러미티 가문에서 방해가 된다면 지워야 할 가문 리스트에 있었던 사람들.
본가와 분가, 그리고 하청을 연결해주는 연락책까지 죽였으니 앞으로 몇 명만 더 죽이면 되는 거지?
이미 이 정도로도 꽤 혼란에 빠졌겠지만……, 아무래도 데이 드렁커를 믿지 못하겠다.
아니, 애초에 자기 이외의 암살자들을 믿지 못하겠다.
그렇게 생각한 미스트는 눈을 가늘게 뜨면서 단검을 돌리기 시작했고, 이내 문이 열리자 그대로 돌리던 단검을 문을 여는 사람에게 잡아 던졌다.
“피냄새 난다.”
“어머~ 아샤였군요. 몰랐어요.”
“알고 있었던 거 아냐?”
“글쎄요?”
아샤의 말에 휘파람을 불면서 모르는 척 시치미를 떼는 미스트.
아샤는 그런 미스트의 모습에 딱 봐도 시치미를 떼고 있지 않냐며 한숨을 푹 내쉬다가 몇 명을 처리했냐고 물어봤고, 미스트는 아샤의 질문에 우선 연결고리는 전부 끊어놓았다고 말했다.
“참 이상하죠? 점 조직으로 하면 이런 게 문제이니 연락부처를 따로 설립하는 게 좋은데 아갈레타의 벌레들은 뭐가 그렇게 무서워서 연락부처를 만들지 않았을까요? 자기만 모든 걸 알고 싶었던 걸까요?”
정말 중요한 정보는 뇌 안에 집어넣고 필요할 때마다 암기해서 꺼내서 쓰면 되는데.
그렇게 말한 미스트는 키득키득 웃다가 아샤에게 레이시는 어떠냐고 물어봤고, 레이시는 에일렌을 위해서라면서 조금 충격을 받긴 했지만 지금은 괜찮다고 말해주었다.
그러자 미스트는 레이시의 성장에 복잡미묘한 얼굴을 하면서 아샤의 이야기를 듣다가 자리에서 일어났고, 아샤는 미스트가 일어나자 이제 어떻게 할 거냐고 물어봤다.
“계속 사람 처리할래? 아니면 다른 걸 하러 갈래?”
“그러네요. 더 이상 사람을 죽이는 건 솔직히 실효성이 없네요.”
이미 연결고리는 다 끊어놓았으니 지금 사람을 죽이는 건 효과가 없지는 않겠지만, 비효율적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러니 다른 일을 찾아서 하는 게 좋았고, 거기까지 생각한 미스트는 아샤에게 영주에게서 뭔가 찾아냈냐고 물어봤다.
“횡령을 많이 하던데? 아갈레타 가문하고 안 엮였어도 영주 자격 박탈에 유배형일 정도로.”
“이상하네요. 이 근방의 세금을 징수하던 사람은 테오노르 자작으로 자작은 신관 셋의 진실 간파를 받고도 정상적인 세금밖에 받지 않았는데 말이죠. 심지어 촌지 같은 것도 받지 않았다면서 일정 자체를 기록해서 말할 정도로 깐깐하게 검사를 받았는데.”
“이중 장부를 썼어. 난 너처럼 자세하게 기억하고 있지는 않지만.”
“흐응, 다른 거는요?”
“내일 따로 조사하러 가겠다고 말했으니 알아서 준비하고 있겠지.”
“흐응, 흐응~ 장부를 지울까요?”
“그럴 가능성도 있겠지?”
죽지 않고 살아가기 위해서 기록들을 전부 지울 수도 있다.
아샤는 그렇게 말하면서 미스트를 바라봤고, 미스트는 아샤의 말에 눈을 깜빡이다가 영주가 증거를 모두 지웠을 때와 증거를 지우지 않았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증거를 전부 지웠다면 영주와 협상을 할 수밖에 없는데, 솔직히 말해서 이렇게 무능한 영주를 그대로 살려두는 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딱히 사람을 생각해서가 아니라, 암살자로 길러질 때 배웠던 것 때문에.
이렇게 위장을 못 하는 사람이 영주로 있는 거라면 나중에 데이 드렁커가 이 도시의 암흑가를 손에 쥐어도 금방 들켜서 귀찮은 일에 휘말릴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미스트는 눈을 가늘게 뜨다가 이내 환하게 웃으면서 아샤에게 청소하자고 말했고, 아샤는 미스트의 대답에 그럴 줄 알았다면서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럼 내일부터 다른 사람들과 협력해서 할 거야? 아니면 너 혼자?”
“영주를 처리하는 건 저와 공주님이 할게요. 대신에 데이 드렁커들과의 협상은 아샤가 해주실 수 있어요?”
“흠, 알았어. 대신 나는 협상은 제대로 못 하는 거 알지?”
“협상할 필요가 있을까요?”
“그렇게 말하면 나도 할 말이 없긴 하지.”
하긴 생각해본다면 딱히 협상을 할 필요는 없다.
데이 드렁커는 이미 전의를 상실하고 있었으니까 무리한 명령만 내리지 않으면 뭘 어떻게 할 생각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아샤는 미스트에게 시체를 처리하는 걸 도와줄지 물어봤고, 미스트는 시체를 힐끗 쳐다보다가 시체에 바느질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시체를 멀쩡하게 되돌린 미스트는 마치 서로 싸우다가 공멸한 것처럼 꾸미기 시작했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샤는 레이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하긴 일어섰으면 기어다닐 수도 있겠네요. 좀 더 신경 써야겠어요.”
“그래도 얌전한 거 같아. 레이시에게 갈 때 빼고는 기어가려고 하지 않더라고.”
“어머, 그래요?”
“레이시하고 오래 있어서인지 아니면 레이시가 엄마니까 그런 건지……. 뭐, 이렇게 말해도 나는 아기였던 적이 없어서 전혀 모르지만 말이야.”
“아샤.”
“응?”
“엄마가 아니라 마망이잖아요?”
“…….”
“마망~ 이라고 말해봐요.”
“닥쳐.”
“너무해요, 아샤. 레이시는 마망~이라고 정했는데 가족끼리의 약속을 잊기로 하신 건가요?”
“제발 그 좆 같은 소리 좀 안 하면 안 돼?”
딱히 마망이라는 호칭이 싫은 건 아니지만, 레이시가 부탁하는 게 아니라면 그런 낯부끄러운 호칭을 말하고 싶지 않다.
그렇게 생각한 아샤는 눈을 확 찌푸리면서 이상한 소리를 하는 미스트를 노려봤고, 미스트는 아샤의 반응에 더욱 재미있다는 듯 그런 말을 하면 에일렌의 교육에 좋지 않다면서 아샤를 계속 놀렸다.
“마망~이 어때서 그래요? 다들 마망~이라고 부르는데 아샤 혼자 레이시를 엄마라고 부른다면 에일렌이 헷갈릴 거예요?”
“네가 시체를 쪼물거리고 있는 게 교육에 더 안 좋거든, 이 등신아.”
“이건 엄마의 일이라구요?”
“시끄러워, 등신 새끼가.”
“저와 레이시의 아이에게도 그렇게 말할 건 아니죠? 같은 엄마로서 슬퍼요.”
“제발 부탁하겠는데 좀 닥쳐.”
“푸훗, 제가 왜요?”
“……씨발.”
미스트의 말에 작게 욕설을 내뱉더니 다 됐고 레이시에게 돌아가자고 말하는 아샤.
미스트는 아샤의 반응에 웃음을 터트리면서 그렇게 화내지 말라고 말하면서 옷을 평소의 메이드복으로 갈아입었고, 아샤는 미스트의 말에 자기가 미스트하고 말해서 뭘 하겠냐면서 한숨을 푹 내쉬면서 머리를 긁었다.
“돌아가자.”
“네에~. 참 레이시에게 선물할 거로 음료가 좋을까요? 아니면 차가 좋을까요?”
“차가운 음료.”
“역시 그렇죠?”
싱긋 웃으면서 아샤를 바라보는 미스트.
아샤는 그런 미스트의 얼굴을 한 대 정도는 딱콩으로 때려도 좋지 않을까 고민하다가 이내 때리는 걸 포기한 다음 미스트에게 모빌이나 딸랑이 중 뭐가 좋겠냐고 물어보면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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