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5화 〉 일은 대충 임기응변으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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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분이 지났을까?
병사들은 주술사를 데리고 오더니 대지의 기억을 읽어서 신관에게 진실 간파의 마법에 걸린 채 기록을 남기기 시작했고, 아샤는 기록이 진실이라는 도장이 찍히자 종이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선 영주에게 보고해야겠지. 부하가 마약 중독자이니 그 책임을 물라고.”
“흡……!? 자, 잠시……! 이, 이것! 이것을 드리겠습니다! 제발 그것만은!”
“이, 이것도 있습니다! 저희 아버지가 물려주신 시계입니다!”
아샤가 발걸음을 옮기자 따라오는 경비병들.
그들은 영주에게 고발하는 것만큼은 하지 말아 달라며 자기가 가지고 있는 귀중품을 들이밀기 시작했고, 그중에는 가문에서 내려주는 시계나 이런 것 외에도 결혼반지나 아기의 첫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준비한 돈도 있었다.
단순히 돈의 가치를 뛰어넘은 무언가가 있는 소중한 물건들.
하지만 그들은 그런 건 전혀 상관 없다는 듯 물건을 내밀었고, 병사들의 행동을 본 아샤는 약물에 취하더니 사람으로서의 수치심마저 잃어버린 거냐며 경비병들을 한심하다는 듯 내려봤다.
차라리 자기가 비싸게 주고 산 칼이나 방패를 내미는 사람은 나았다.
자기가 산 걸 전당포에 맡기는 심정으로 자신의 물건을 내미는 거겠지.
하지만 가족과의 물건을 내미는 사람은 대체 뭐란 말인가?
짧게는 몇 개월, 길게는 수십 년의 추억이 쌓인 물건인데 그게 아무렇지 않다는 건가?
자기 자신만을 해치는 녀석들은 아무래도 좋았지만, 가족과의 추억이 담긴 물건까지 내미는 녀석들을 바라보자 아샤는 에일렌과 레이시가 떠올라 눈을 찌푸리다가 이내 눈을 가볍게 감았다가 다시 떴다.
자기가 해야 할 건 영주를 털어보는 것.
레이시의 예상치 못한 변화 때문에 이미 계획이 틀어졌으니까 이제 할 건 최대한 세크트를 혼란의 상태로 만드는 것이다.
혼란의 상태로 만들어서 어느 조직이든 쉽게 이 세크트의 암흑가를 지배하지 못하게 막고, 질서를 담당하는 국왕의 힘으로 회색 영역에 있는 데이 드렁커를 지원해서 데이 드렁커가 암흑가를 지배할 수 있게 만든다.
다른 조직은 술과 마약, 폭력만 쓰는데 이쪽은 법의 힘까지 빌릴 수 있으니 아무리 상인에 더 가까운 조직이라고 해도 어떻게든 할 수 있겠지.
못 한다면 미스트가 일하는 거고…….
그렇게 생각한 아샤는 병사들을 떨쳐놓고 영주에게 걸어갔고, 저택까지 걸어가자 뭔가 심상치않은 기색을 느꼈는지 영주는 아샤가 다가오는 걸 보고는 헐레벌떡 달려가서 고개를 꾸벅 숙였다.
“무, 무슨 일이십니까!?”
“영주, 네 영지의 경비에서 마약 복용자가 나왔다. 왕국법에 따라 조사하겠다. 수색하도록 하지.”
“자, 잠시만요! 갑자기 그렇게 하시면 안 됩니다!”
“시끄러워. 자기 영지의 치안을 담당하는 경비가 마약 중독자임에도 불구하고 눈치 채지 못한 시점에서 넌 망한 거야. 비켜, 쓰레기.”
아샤의 몸을 잡아서라도 아샤의 전진을 막으려고 하는 영주.
하지만 아샤는 영주의 몸을 잡아 가볍게 던지면서 저택 안으로 들어갔고, 영주는 그런 아샤의 행동에 기겁을 하다가 사용인들을 불러서 아샤를 말리기 시작했다.
“하아아아……. 공주의 명령이다. 비켜. 왕족의 권한까지 무시할 생각은 아니지?”
“윽!”
“무시하고 싶다면 나는 상관없어. 다만 너희들은 최대 반역죄까지 뒤집어쓰고 가문 자체가 사라질 수도 있으니 그렇게 알아.”
영주는 아샤의 말에 신음을 흘렸지만, 이내 아샤의 몸을 살피고는 희망을 얻기 시작했다.
손에 자잘하게 남은 수많은 흉터와 손바닥에 배긴 굳은살, 그리고 자잘한 근육이 세밀하게 새겨져 있는 팔뚝.
전형적인 무인의 팔.
엘라는 국무를 돌보지 않고 백성들을 도와주는 일을 많이 하는 사람일 뿐이니까 정치적인 일이나 경제적인 일은 잘 돌보지 않을 거다.
특히 아샤 같은 기사의 경우에는 몬스터나 산적을 처리하는 방법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을 고르지, 쓸데없는 경제적인 지식이 있는 사람을 고르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영주는 어쩔 수 없이 아샤의 수사를 돕듯이 움직였다.
하지만 영주는 아샤가 막상 장부를 들여다보자 긴장감이 올라와서 침을 삼키면서 아샤를 바라봤다.
긴장할 필요는 없다.
아샤는 단순히 무력을 보고 고른 사람일 것이다.
그러니 긴장할 필요는 없다.
영주는 몇 번이고 그렇게 되뇌면서 아샤를 쳐다봤고, 아샤는 그런 영주의 시선에 한숨을 푹 내쉬었다.
자기를 무시하는 건지 아니면 그냥 최대한 바보인 척, 불쌍한 척을 해서 그냥 넘어가기를 기도하고 있는 걸까?
자기는 한 기사단의 단장이었던 몸.
그것도 오라토리엄 왕국의 귀족이라면 전부 알 수 있을 정도로 꽤 오랫동안 단장으로 일한 몸인데 이런 회계사기를 못 알아차릴 거라고 생각한 걸까?
애초에 범죄조직에서 돈 세탁을 하는 보편적인 방법들 중 하나가 이런 회계사기인데?
그렇게 생각하던 아샤는 어떻게 말해야 하나 고민하면서 회계를 툭툭 건들다가 이내 그냥 솔직하게 말하자고 생각한 다음 입을 열었다.
“세크트의 주민 수는 얼마지?”
“……네?”
“세크트의 주민 수를 묻고 있다.”
“2만 8000명을 조금 넘습니다.”
“그런데 왕가에 대한 세금이 이렇게나 많나?”
“그건 왕가에 대한 충성심으로 추가적인 세금을 냈습니다.”
“흐응, 그건 이상한데…….”
“네?”
“작년에는 모두가 딱 적당한 돈을 냈거든.”
눈을 가늘게 뜨면서 영주를 바라보는 아샤.
영주는 아샤의 시선에 흠칫 떨면서 그것은 징수관이 어떻게 한 것이라며 자기는 잘못하지 않았다고 말했고, 아샤는 그런 영주의 말에 헛웃음을 들이켰다.
징수관은 백성들이 피땀 흘려가며 번 돈을 가져오는 중대한 임무를 맡은 만큼 세금을 가져올 때마다 매번 고해성사실에서 진실간파의 마법을 받은 채로 자기 업무에 대한 보고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작년부터 올해 동안에 거짓을 고한 징수관은 단 한 명도 없다.
그러니 영주는 자신에게 거짓말을 했다.
아무리 엘라가 정치적인 일에는 관여하지 않고 세금에 대해서는 국왕에게 맡기고 있다지만 이건 얕봐도 너무 얕보는 게 아닌가?
자기가 기사라서 더 그런 건가?
아샤는 그렇게 생각하다가 수첩에다가 고지된 세금과 기록된 세금의 차이를 적었고, 이내 다른 것들도 이상한 게 있지는 않은지 확인했다.
그러자 아샤는 절반 이상의 돈이 줄줄 새고 있다는 걸 발견했고, 아샤는 그런 회계정보에 헛웃음을 들이키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나중에 다시 한번 조사하도록 하지.”
“넵!”
아샤의 반응에 역시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고 생각하고 웃는 영주.
아샤는 갑자기 기뻐하는 영주의 모습에 숨길 생각도 없는 거냐며 속으로 생각하다가 이내 고개를 좌우로 저은 다음 엘라와 레이시가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어지간한 벽보다 단단한 벽을 가지고 있기 때문인지 여관을 빌리고서도 마차 안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엘라와 레이시.
공간 확장 마법 덕분에 겉보기보다 훨씬 쾌적하다고는 하지만 불편할 것 같다고 생각한 아샤는 최대한 빨리 일을 해결할 수 있게 하자고 생각한 다음 마차에 들어갔고, 엘라는 아샤가 들어오자 조사 결과는 어땠냐고 물어봤다.
그러자 아샤는 말없이 수첩을 건네주었고, 엘라는 아샤의 수첩을 읽다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수첩을 바라봤다.
이 정도로 탈세를 저지르다니…….
탈세를 적당히 저질렀다면 그냥저냥 주의만 주고 끝냈겠지만, 이 미친 영주가 저지른 탈세와 회계 조작은 아갈레타 가문이 없어도 상당한 벌을 받을 수준이다.
아마 겨울에 올 정기검사 이후에 알아서 망하지 않았을까?
귀족파의 귀족들이 또 헛짓거리하면서 안 들킬지도 모르겠지만……, 들킨다면 영주직에서 파면당해도 벌을 좋게 받은 수준이다.
그렇게 생각한 엘라는 미스트가 돌아오면 이 일에 대해서 의논하자고 말한 다음 레이시를 끌어안았고, 레이시는 아까부터 떨어지지 않으려고 애쓰는 엘라와 미네르바의 행동에 어색하게 웃으면서 자기는 괜찮다고 말했다.
“오히려 이렇게 붙어있으면 더 신경 쓰여요…….”
“안 돼. 너 저번에 그 일 있고 며칠은 힘들어 했잖아.”
“으응, 괜찮다니까요.”
이번에 사람을 죽인 건 에일렌을 위해서다.
확실히 목적을 가지고 했고, 먼저 공격받았으며 또 자기가 하지 않으면 에일렌이 위험하다는 명분이 있었다.
그렇기에 죄책감이 없다고는 말 못하지만 저번처럼 일어나자마자 토할 정도로 심각한 죄책감은 느끼고 있지 않았다.
……물론 잘 때 어리광을 피운다거나 저번처럼 몸으로 위로받고 싶다거나 그런 생각은 하겠지만, 적어도 곧바로 토하거나 덜덜 떨면서 사람을 만나지 않으려고 하지 않는다.
레이시는 그렇게 말하며 아샤를 바라봤고, 아샤는 레이시의 시선에 움찔 떨다가 뭔가 레이시에게 몹쓸 짓을 한 것 같아 레이시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미안, 이번에는 네가 참아.”
“에에에~.”
“어차피 다른 거 할 거 아니잖아. 할 것도 없고 놀 것도 없으니까 그냥 이러고 있어.”
“아샤는요?”
“……나까지 거기에 끼이라고?”
각자 레이시의 한쪽 팔을 차지한 채 서로 껴안고 있는 저 사이에?
아샤는 레이시의 말에 눈을 깜빡이다가 헛웃음을 치면서 거기에 어떻게 끼이라는 거냐며 고개를 좌우로 저었고, 레이시는 눈을 깜빡이다가 다리를 편 다음 아샤에게 누우라고 말했다.
“진심?”
“네? 왜요?”
“……아냐. 하아…….”
한숨을 내쉬다가 레이시가 시키는 대로 조심스럽게 누워보는 아샤.
레이시는 아사가 앉자 배시시 웃으면서 아샤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고, 아샤는 레이시의 손길에 눈을 깜빡이다가 에일렌이 칭얼거리는 소리에 자리에서 일어나서 에일렌에게 갔다.
칭얼거리는 이유는 큰일을 봐서.
문제를 확인한 아샤는 에일렌을 데리고 욕실에 데려가서 미스트가 알려준 대로 기저귀를 갈아준 다음 다시금 레이시의 허벅지를 배고 누웠고, 에일렌은 아샤의 가슴에 엎드려 있다가 레이시가 보이자 자리에서 일어나서 아샤의 몸을 타고 엉금엉금 기기 시작했다.
“후와~ 에일렌, 마망에게 오고 싶어요? 그치만 아샤 엄마가 아플 테니까 마망이 안아줄게요.”
“딱히 아프지는 않은데.”
어린애가 짓눌러봐야 거기서 거기지.
그렇게 생각한 아샤는 괜찮다고 말했지만, 레이시는 쓰게 웃으면서 자기가 미안해서 그런다면서 에일렌을 안아주었고, 에일렌은 옹기종기 모인 레이시와 다른 엄마들의 모습에 눈을 깜빡이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다가 이내 이게 한 종류의 애정표현이라고 생각하고는 레이시에게 안겨서 최대한 레이시의 몸을 차지하기 시작했고, 레이시는 그런 에일렌의 애교에 웃음을 터트리면서 에일렌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으뷰우.”
그러자 레이시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숨이 막힌다면서 팔다리를 움직이는 에일렌.
레이시는 에일렌의 발악에 웃음을 터트리다가 에일렌을 가슴에서 꺼내준 다음에 엘라의 눈치를 보다가 에일렌을 가슴 사이에 끼우고 괜히 괴롭혀봤다.
“으뷰우우우!”
“풋, 푸흐흐흣!”
“킥킥, 뭐하는 거야, 레이시.”
“왜요, 귀엽잖아요.”
밖에 나갈 때 입던 옷은 피가 묻어 벗어둔 레이시.
레이시는 부드러운 잠옷의 감촉이 어떠냐며 엘라를 살짝 끌어안아 에일렌을 더 괴롭혀봤고 에일렌이 이제는 싫다는 듯 가슴을 꽉 잡자 엘라를 놓아줘서 에일렌을 구해주었다.
그러자 화났다는 듯 볼을 부풀이면서 레이시의 가슴을 고사리 같은 손으로 때려대는 에일렌.
레이시는 에일렌의 펀치에 미안하다면서 에일렌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다가 에일렌을 껴안고 작게 하품했고, 아샤는 레이시의 하품에 머리를 들어올렸다.
“먼저 자.”
“아샤는요?”
“미스트 마중 나가게. 너는 미네르바랑 엘라랑 같이 자.”
“으으응~. 고마워요.”
“뭘.”
사람을 죽인 걸 봤을 때 또 토하나 싶어서 걱정했지만,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은 모습에 레이시의 이마에 입을 맞추는 아샤.
레이시는 아샤의 입맞춤에 눈을 살며시 감다가 조심해서 다녀오라며 에일렌의 손을 조심스럽게 잡고 흔들었고, 아샤는 에일렌의 말을 대신하는 듯 애교 섞인 목소리로 다녀오라고 말하는 레이시의 배웅에 웃음을 터트리면서 미스트가 있을법한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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