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2화 〉 전 여친과 현 여친2
* * *
산책을 끝내고 돌아간 레이시.
레이시는 주변 사용인들에게 샤워하고 오라는 말을 듣고서 미네르바와 함께 욕실에 다녀왔고, 그렇게 몸을 깨끗하게 하고 오자 루룬은 레이시에게 손을 흔들다 차와 다과를 건네줬다.
“뭘 좋아하는지 몰라서 일단 다양하게 준비해뒀어요.”
“에, 가, 감사합니다.”
루룬의 말에 쭈뼛거리다가 자리에 앉는 레이시.
루룬은 그런 레이시에게 편하게 있어도 된다고 했지만, 루룬과 엘라가 어떤 관계였는지 잘 알고 있는 레이시는 좀처럼 마음을 놓지 못하고 계속해서 루룬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그러자 루룬은 작게 웃으면서 레이시에게 괜찮다고 말했고, 레이시는 루룬의 말에 움찔 떨면서 루룬을 보고 어색하게 웃었다.
“엘라는 요즘에 어떻게 지내나요? 술은 좀 줄였나요?”
“네? 아, 수, 술은 거의 안 드세요.”
“한 달 동안에 몇 병 정도 마셨나요?”
“……? 이번 달에는 안 드셨어요. 아, 아니다. 어제 여관에 갔을 땐 드셨어요. 그래도 한 병도 안 드셨는걸요.”
“그런가요?”
루룬은 레이시의 말에 작게 웃었다.
집중하지 않으면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웃음.
레이시는 그런 웃음에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루룬을 쳐다봤고, 루룬은 레이시의 시선에 엘라가 행복한 거 같아서 정말 다행이라며 홍차를 홀짝였다.
아무리 봐도 화가 난 것 같지는 않은 느낌.
레이시는 그런 루룬의 얼굴에 눈을 깜빡거리다가 조심스럽게 루룬의 얼굴을 쳐다보기 시작했고, 루룬은 레이시가 자기와 눈을 마주치자 작게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다행이네요. 예전에는 술을 너무 드셔서 그걸로 싸우기도 했거든요.”
“그, 그래요?”
“네. 그거 외에도 자주 싸웠답니다.”
그립다는 듯 입을 여는 루룬.
레이시는 루룬의 얼굴에 점점 어떤 말을 하면 좋을지 모르게 되어 이상한 얼굴을 하기 시작했고, 루룬은 그런 레이시의 얼굴을 보고는 키득키득 웃었다.
마음 같아서는 좀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느긋하게 이야기를 이어가면 레이시를 괴롭히는 일이 되어버리겠지.
그렇게 생각한 루룬은 어떻게 말을 꺼내면 좋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다짜고짜 전 여친의 입장을 들이밀면 곤란해 할 거고…….
엘라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 뿐인 루룬은 어떻게 하면 레이시가 편하게 느낄 수 있을까 망설이면서 레이시를 쳐다봤고, 레이시는 그런 루룬의 시선에 쭈뼛거리면서 고개를 아래로 숙였다.
그러자 당황하면서 레이시에게 괜찮으니 고개를 들라고 말하는 루룬.
루룬은 잠시 말을 정리하더니 레이시에게 자기는 딱히 레이시에게 화를 내려고 그러는 게 아니라고 말해주었다.
“그냥 엘라의 이야기를 하고 싶을 뿐이에요.”
“으, 으응…….”
“조금 무례한가요? 전 여친이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건.”
“아, 아니요. 그런 건 아닌데…….”
“그런가요? 그럼 다행이네요. 엘라에 대한 이야기, 좀 더 해도 괜찮을까요? 오랜만에 뵙는 거라서 어린애처럼 자꾸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지네요.”
그렇게 말하더니 이내 작게 웃는 루룬.
레이시는 루룬의 미소에 조금은 안심하면서 루룬을 바라봤고, 루룬은 레이시의 긴장이 풀리자 좀 더 편안하게 엘라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가장 먼저 꺼낸 이야기는 술과 관련된 이야기.
루룬은 레이시가 모르는 엘라의 이야기를 해줬고, 레이시는 루룬의 이야기에 루룬이 모르는 엘라의 이야기를 해주며 대화를 이어갔다.
“후후, 그런가요? 요즘에는 와인을 즐기시는 군요?”
“네. 와인에 계피나 설탕을 조금 넣고 중탕으로 데운 걸 드세요.”
“예전에는 와인보다는 보드카나 럼 같은 걸 즐기셨답니다. 그것도 고급 주류 말고 싸구려의 술 말이죠. 그러네요. 럼 중에 빈자의 성수라는 술이 있는데 그걸 가져다 주면 아주 놀랄 거예요.”
“네?”
“후후, 그 술은 고급 럼을 만들고 남은 찌꺼기를 모아서 증류한 거라 쓰기만 하고 도수는 엄청 높답니다. 오죽하면 병사들에게 컨디션 관리가 불가능해지니 마시지 말라고 금지해놓았답니다.”
“그, 그런 걸 마셨어요? 지금은 도수도 낮은 걸 마시는데?”
“더 독한 것도 드셨답니다. 그것도 안주도 없이 드셔서 제가 그렇게 술이 좋으면 술독에 빠져서 살라며 엘라의 얼굴에 술을 부어준 적도 있어요.”
“……어.”
즐거운 듯 웃는 루룬과 루룬의 말에 기겁하는 레이시.
레이시는 루룬을 보고 의외로 과격하다면서 웃었고, 루룬은 레이시의 말에 꺄르륵 웃음을 터트리더니 변경백 가문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건 대범하지 않으면 무리라고 대답했다.
그러면서도 레이시를 소중하게 쳐다보는 루룬.
루룬은 잠시 말을 이어가다가 레이시가 자기 눈을 바라보자 잠시 말을 멈춘 다음, 엘라를 부탁한다는 말을 꺼냈다.
“저는 그러지 못했지만, 레이시는 왠지 할 수 있을 거 같네요.”
“네?”
“레이시는 저와 엘라가 헤어진 이유를 아시나요?”
“어…….”
루룬의 말에 잠시 굳는 레이시.
루룬은 그런 레이시의 반응에 괜찮다면서 이야기해보라며 레이시를 바라봤고, 레이시는 루룬의 말에 쭈뼛거리다가 군사를 어떻게 볼지 그 관점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싸운 거라고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자 루룬은 작게 웃으면서 엘라가 그렇게 말했냐고 물어봤고, 레이시는 루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루룬을 바라봤다.
“후후, 그러네요. 엘라가 그렇게 말했었군요.”
“혹시 다른 이유로 싸웠나요?”
“아뇨. 맞아요. 그런 이야기를 하다가 싸웠죠.”
“으응…….”
“저는 병사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건 규칙을 지키는 마음가짐이라고 말했고, 엘라는 일반 시민과 다투지 않는 성품이 제일 중요하다고 말했죠. 그거 때문에 싸웠어요.”
루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다가 문득 궁금한 게 생겨서 루룬을 쳐다보는 레이시.
정말로 그런 이야기로 싸운 걸까?
엘라가 그런 말을 했을 땐, 엘라가 어린애처럼 굴었구나 싶어서 그러려니 했지만, 루룬을 보자 왠지 그런 거로 싸웠을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만약 그런 거로 다투려고 한다면, 루룬이 엘라의 말이 옳다고 말하면서 적당히 대화를 끊었겠지.
오래 만난 게 아니라 뭐라고 확신할 수는 없지만……, 왜인지 몰라도 그런 느낌이 든다.
그렇게 생각하며 루룬을 쳐다보자, 루룬은 레이시에게 묻고 싶은 게 있는지 물어보면서 편하게 말하라고 말했다.
그러자 레이시는 잠시 루룬의 눈치를 보다가 정말 병사에게 필요한 덕목을 이야기하다가 싸운 거냐고 물어봤고, 루룬은 레이시의 질문에 입을 가리고 웃다가 그럴 리가 없지 않냐며 손사래를 쳤다.
“병사에게 필요한 덕목을 이야기한 건 맞지만, 정확하게는 그 속내에 대한 걸 이야기한 거죠.”
“네?”
“저는 엘라가 여자친구였던 제게 희생을 강요해줬으면 했거든요. 그래서 굳이 규율이 중요하다고 말하면서 엘라에게 화를 냈어요. 하지만 그렇게 노력했는데 엘라는 병사들은 규율보다는 자기가 한 일을 뒤처리만 해주면 된다는 식으로 말했죠. 자기를 위해서 희생하지 말고, 그냥 내가 올 때 사랑해주기나 하라는 거였죠.”
“…….”
“그거 때문에 한바탕 싸웠는데,엘라는 결국 끝까지 제게 기대지 않더라고요.……지금 생각해보면, 저도 제 마음이 편해지고 싶어서 엘라에게 짐을 넘기라고 강요했던 거겠죠.”
씁쓸하게 웃으면서 레이시를 바라보는 루룬.
레이시는 그런 루룬의 얼굴에서 후회와 다른 감정이 뒤섞인 걸 보고는 조금은 씁쓸하다는 듯 시선을 아래로 떨어트렸고, 루룬은 레이시의 반응에 쾌활하게 웃으면서 괜찮다고 말했다.
“지금은 괜찮아요. 저와 엘라는 연인이 될 수는 없고, 친구가 될 사이였다는 거겠죠. ……질투심이 아예 안 생긴다고 말한다면 거짓말이겠지만, 투기를 부리진 않을 거예요. 지금은 저도 애인이 있고요. 서로 행복하길 바랄 거예요.”
싱긋 웃으면서 레이시를 바라보는 루룬.
레이시는 루룬의 말에 쭈뼛거리다가 고개를 끄덕였고, 루룬은 레이시의 대답에 환하게 웃으면서 엘라를 행복하게 만들어달라며 다시 한번 더 부탁했다.
자기가 레이시를 부른 건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면서.
레이시는 루룬의 말에 얼굴을 붉히다가 고개를 끄덕였고, 루룬은 레이시의 대답에 전 여친으로서 엘라의 약점을 가르쳐주겠다면서 싱글벙글 웃었다.
“야, 약점이요?”
“네, 약점이요. 엘라는 아직도 키스할 때 허리를 잡나요?”
“에, 에에…….”
“그럼 그렇게 허리를 잡을 때 엘라의 허벅지를 쓰다듬어보세요. 후후, 재밌는 반응이 나올 걸요?”
분위기를 전환하기 위해서인지 침대 위에서의 이야기를 꺼내는 루룬.
레이시는 처음에는 그런 루룬의 말에 당황하면서 손을 휘젓다가, 루룬이 도움이 될 거라면서 어떤 종류의 장난감이 효과적인지 손놀림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이야기해주자 천천히 루룬의 이야기에 몰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루룬의 이야기를 전부 들은 레이시는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인 채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후후, 여기 왕궁에 가셔서 이 주소와 이 인장을 보여주면서 편지를 건네주면 제게 편지를 보내실 수 있을 거예요. 궁금하거나 힘든 이야기가 있다면 제게 이야기해주세요.”
“아, 네!”
“후후, 그럼 엘라가 슬슬 돌아가려고 할 테니까 조심해서 돌아가주세요.”
“네에.”
“……그리고 마지막.”
“네?”
“마지막으로 블루드라는 왕자를 조심하세요. 엘라를 노리는 사람 중 한 명이랍니다. 배그의 아래에서는 제가 여러분들을 도와줄 수 있지만, 밖으로 나가신다면 그러기 힘드니까요.”
“……? 네에…….”
루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자리에서 일어나는 레이시.
미네르바는 이제는 확실히 아군이라고 판단된 루룬의 말에 레이시는 자기가 지킬 거라며 레이시를 끌어안았고, 루룬은 미네르바의 말에 작게 웃다가 잘 부탁한다며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러자 엘라가 돌아왔다고 말하는 사용인.
루룬은 사용인의 말에 얼른 돌아가 보라며 손을 흔들었고, 레이시는 루룬의 인사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엘라에게 달려갔다.
다소 피곤한 얼굴을 하고 있는 엘라.
레이시는 엘라에게 힘든 일이 있었냐고 물어봤고, 엘라는 그렇게 힘든 일이 있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단지 노인네들이 내 눈치를 보면서 어떻게든 아부하려는 걸 가만히 바라보면 속이 조금 안 좋아진단 말이지. 레이시가 애교부리면서 아부하면 기분이 좋을 텐데.”
“아, 아하하…….”
“레이시는 좀 괜찮아?”
“네, 괜찮아졌어요.”
“흐응……, 루룬이 잘 돌봐줬나보네.”
“아.”
“쿡쿡, 좋은 사람이지? 나랑은 잘 안 맞지만.”
“…….”
엘라의 말에 어떻게 대답하면 좋을지 모르겠다는 얼굴을 하는 레이시.
루룬은 그런 레이시의 얼굴에 옆에서 방금 가르쳐 준 걸 엘라에게 해보라며 키득키득 웃었고, 레이시는 루룬의 말에 잠시 쭈뼛거리다가 고개를 휙 돌리면서 미네르바에게 안겼다.
그리고는 샐쭉한 얼굴을 하고서 자기는 다른 여자 이야기를 하는 사람을 싫어한다며 투정 부려보기 시작했고, 엘라는 레이시의 투정에 움찔 떨다가 루룬을 쳐다봤다.
그러자 루룬은 레이시를 보며 작게 웃었고, 엘라는 루룬의 시선에 앓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아무리 레이시가 진심이 아니라는 건 알지만, 이런 종류의 장난이나 투정은 영 서툴렀다.
왜냐면 이제까지 루룬과 레이시를 제외하면 엘라에게 이런 식으로 대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으니까.
거기에다가 경험이 없는 것뿐만이 아니라, 엘라의 성격도 이런 일에는 서툴렀다.
그러다 보니 보기 드물게 크게 당황하면서 레이시를 안지도 못하는 엘라.
레이시는 그런 엘라를 보자 미안하다는 마음이 생기면서 쭈뼛거리다가 조심스럽게 엘라의 손을 잡았다.
그러자 엘라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루룬을 째려봤고, 루룬은 엘라의 시선에 키득키득 웃으면서 레이시를 아껴주라면서 손을 흔들며 동시에 블루드에 대한 이야기도 해주는 게 좋을 거라고 말했다.
“……움직였어?”
“네, 지금 움직이기 시작했네요. 엘라가 움직여서 그런 거 아닐까요?”
“…….”
“제 손이 닿는 곳까지는 제가 도와드릴게요. 그래도 레이시도 알아야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 고마워.”
루룬의 말에 진지한 얼굴이 되더니 고개를 끄덕이는 엘라.
레이시는 그런 엘라의 얼굴에 움찔 떨면서 무슨 일이냐고 물어봤고, 엘라는 레이시의 질문에 레이시의 이마에 입을 맞추며 별거 아니라며 마차에 올라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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