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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환생은 원치 않아-311화 (311/394)

311화

“자, 다 됐습니다.”

민아린이 내 어깨에서 손을 뗐다.

아벨의 인형이 휘두른 무기에 깊게 베였던 어깨의 상처와 채찍이 남긴 상처가 흔적도 없이 말끔하게 사라졌다.

“감사합니다.”

역시 민아린 또한 우서혁, 박건호와 마찬가지로 정신 지배를 당한 상태에서도 능력을 자유자재로 사용했다.

이전에 있던 동화와 지금이 다른 이유는… 이 공간을 만들어 낸 아벨이 무언가 건드려서 그런가? 아니면 이것도 내 개입 능력의 영향?

“혈색이 훨씬 좋아지셨네요.”

“덕분입니다.”

민아린은 상처를 치유해 준 것뿐만 아니라 남는 옷도 빌려줬다. 옷이 없어서 천사연이 던져 준 외투를 대충 여며서 입고 있던 나는 덕분에 셔츠로 갈아입을 수 있었다.

내 대답을 들은 민아린이 부드러운 표정을 하고서 맞은편에 앉았다.

“이쪽 숲을 돌아다니는 사람은 잘 없어서요. 그래서 저희가 다소 거칠게 대응했네요.”

“아닙니다. 공격을 한 건 우리도 마찬가지니까요. 게다가 이 상처는 이번 싸움에서 생긴 게 아닙니다.”

“이곳을 어쩐 일로 찾아왔는지 물어도 될까요?”

그 질문에 천사연을 돌아봤다. 팔짱을 낀 채로 벽에 기대고 서 있던 천사연의 눈을 보니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걸 바로 알 수 있었다.

잠깐 동안 머릿속으로 상황을 정리해서 최대한 담담하게 대답했다.

“우리는 동료를 찾고 있습니다. 여기서 동쪽으로 가면 나오는 도시로 가다가 이 집을 발견한 겁니다.”

“사람이요?”

“예. 아주 중요한 사람들입니다. 가족 같은… 사람들이죠. 여기는 만약 빈집이면 잠깐이나마 쉴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들러 본 겁니다. 물론 주인이 있는 집이면 조용히 지나가려고 했고요.”

그중 두 명이 여기 있지만.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민아린과 박건호를 번갈아 봤다. 설명을 들은 민아린이 복잡한 기색으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여긴 괜찮아요. 제 할머니께서 살아생전에 사셨던 곳이라 안전해요. 그렇지만 도시에는 가지 않는 걸 추천해요.”

“아까 우리보고 마녀의 수하가 아니라고 하셨었죠. 그거와 관련이 있습니까?”

“네, 맞아요.”

“마녀가 누군지 알려 줄 수 있습니까?”

조용히 눈을 깜빡이며 나를 응시하던 민아린이 곧 고개를 끄덕이고 설명을 시작했다.

“저도 마녀의 정체를 제대로 아는 건 아니에요.”

민아린이 얘기하길, 자신은 사람을 치유할 수 있는 특별한 힘을 가졌고 그런 힘을 가진 사람들은 ‘선택받은 자’라고 불린다고 한다. 도시에는 ‘선택받은 자’라고 불리는 이들 여러 명이 살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얼마 전에 마녀라고 불리는 이가 도시를 습격했어요.”

선택받은 자들을 끌고 가 감옥에 가둬 두고 도시 사람들을 감시하는 마녀와 수십 명의 수하. 민아린은 제게 들이닥친 마녀의 수하들을 피해 도망가다가 박건호를 만났다고 한다.

“이상하게 다른 사람들은 감옥에 가둬 놨으면서 저는 미련 없이 죽이려고 하더군요. 제가 가진 치유의 힘 때문인지… 숲 밖에서 우연히 만난 사냥꾼 씨가 도와주지 않았으면 그대로 죽었을 거예요.”

“저도 마리아 님이 아니었다면 팔의 부상을 치료할 수 없었을 테니 고마워하실 필요 없습니다.”

박건호가 가벼운 목소리로 한마디 덧붙였다. 사냥꾼 씨라면 박건호를 부르는 건가. 민아린은 박건호의 이름을 모르나 본데.

“아까 사냥꾼… 저분이 당신을 마리아라고 부르던데. 이름이 마리아입니까?”

“네.”

능력 사용을 자유롭게 할 뿐만 아니라 이름까지 다르다니. 그럼 우리를 따라온 우서혁도 실제 이름은 다를지도 모르겠다. 정확한 확인을 위해 박건호에게 물었다.

“그쪽은 이름이 어떻게 됩니까?”

“궁금한가?”

“궁금하니까 물어보죠.”

“알려 주면 뭐 해 줄 건데?”

“…….”

하여간 저 재수 없는 성격은 정신 지배를 당해도 여전하구나. 씩 웃는 박건호를 무시하며 입가를 만졌다.

‘아무래도 그 도시에 가 봐야 할 것 같은데.’

민아린이 말한 ‘선택받은 자’가 우리가 찾고 있는 팀원들이 분명했다. 도시 사람들은 미술관을 찾아온 관람객들이겠지.

그나마 민아린과 박건호가 무사하고, 다른 팀원들도 갇혀 있긴 해도 살아 있어서 다행이었다.

“우리가 마녀의 수하가 아닌 건 어떻게 아셨습니까?”

“복장이요. 마녀의 수하들은 모두 검은 옷과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언가… 움직임이 부자연스러워요. 당신들과는 여러모로 다르죠.”

검은 옷과 마스크라면, 라푼젤의 탑에서 마주친 인형들이 도시에도 있는 건가?

“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만 우리가 찾고 있는 사람이 저 도시에 있는 것 같아서 가 봐야겠네요.”

“찾고 계신다는 분들이 ‘선택받은 자’인가 보군요.”

“예.”

동화라는 큰 틀은 이제 의미가 없어졌다. 라푼젤인 천사연을 가둔 마녀가 인형이었다고 했으니 도시를 장악한 마녀도 인형일 가능성이 컸다.

도시에 팀원들이 없다 해도 아벨의 흔적이 있는 것은 확실하니 무조건 가 봐야 했다.

‘근데 도시에 들어가려면…….’

나와 천사연의 고개가 동시에 우서혁에게 향했다.

내 발아래에 엎드려 누워 있던 우서혁은 영 지겨운지 커다란 입을 벌리며 하품을 길게 했다. 이렇게 커다란 늑대 상태로는 도시에 들어갈 수 없었다.

이 집에 남는 옷도 있으니 이왕이면 지금 변신을 풀었으면 좋겠는데. 나는 민아린에게 부탁했다.

“도시에 가기 전에 여기서 잠깐 쉬어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에요.”

일단 우서혁의 문제부터 해결하자. 도시에 어떻게 들어가야 할지, 감금되어 있다는 팀원들은 어떻게 찾아서 구해 낼지는 그 이후에 고민해 봐야겠다.

***

천사연과 함께 우서혁을 데리고 집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우서혁을 앉혀 놓고 입을 열었다.

“우서혁 씨.”

“…….”

“사람으로 돌아오세요. 우서혁 씨는 할 수 있습니다.”

눈을 느릿하게 두어 번 깜빡인 우서혁이 내 손을 장난스럽게 물어 왔다.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놀기나 하자, 그런 의미 같았다.

강아지도 아니고… 우서혁의 양 앞발을 잡은 채로 진지하게 요구했다.

“안 됩니다, 우서혁 씨. 사람으로 돌아오셔야 해요.”

그 와중에 손에 잡힌 우서혁의 발바닥은 말랑말랑해서 감촉이 대단히 좋았다. 우서혁이 워낙 변신을 잘 안 해서 발바닥을 만지는 건 이번이 처음인데. 이 정도로 말랑거릴 줄이야.

나도 모르게 홀린 듯이 우서혁의 앞발을 꾹꾹 누르자 뒤에서 구경하던 천사연이 타박을 해 왔다.

“이러다간 날 저물겠군.”

“그럼 넌 뭐 좋은 방법이라도 있어?”

“사람이 되어야 할 필요성을 느껴야 변신을 풀겠지.”

사람이 되어야 할 필요성이라. 생각해 보면 다친 내겐 우서혁의 늑대 모습이 참 여러모로 도움이 됐었다. 그래도 이제 치료도 다 했으니 사람으로 돌아와 줬으면 좋겠다.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우서혁의 앞발을 만지작거리며 고민하자 다른 누군가가 불쑥 끼어들었다.

“사람이 낫다는 걸 어필하면 되지 않나?”

“깜짝이야.”

뒤를 돌아보니 박건호가 신난 기색으로 기웃거리고 있었다. 내게 앞발을 쥐여 준 채로 얌전히 있던 우서혁은 박건호가 등장하자 즉시 으르렁거렸다.

“늑대 인간은 소문으로 들어봤지만 실제로 존재할 줄이야.”

“관심 꺼 주시죠.”

“너무 매정하네. 도와주려고 그러는 건데.”

이름도 안 알려 주면서 뭘 도와준다고. 그대로 무시하려는 나와 달리 천사연은 곧장 동의를 해 왔다.

“나쁘지 않은 방법일지도 모르겠군. 한이결, 이리 와 봐.”

“뭐 계획이라도 있어?”

제정신 아닌 박건호보다는 천사연이 믿을 만하긴 했다.

우서혁의 발을 놓고 냉큼 다가가자 천사연이 짙은 미소를 지었다. 왜 이러지?

“눈은 저기를 보고.”

“……?”

나를 빙글 돌려서 우서혁과 마주 보도록 세운 천사연이 뒤에서 허리를 감싸며 안아 왔다. 이게 진짜 뭔데?

도통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 미간을 찌푸리자 천사연이 귓가에 속삭였다.

“기쁜 척해야지. 늑대로는 못할 행동을 보여야 변할 마음이 들 테니까.”

“이 미친…….”

천사연을 향해 미친놈이라고 욕하려던 난 충격받은 표정으로 우리를 노려보는 우서혁을 발견하고 멈칫했다.

이게… 통한다고? 어째서 효과가 있는 건데? 알 수 없었지만 일단 변신을 푸는 게 급했으니 어색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와. 아. 사람은 참. 편하구나.”

“크흡…….”

우리가 하는 꼴을 흥미진진하게 지켜보던 박건호가 내 말에 웃음을 터뜨리며 입가를 손으로 가렸다. 대놓고 비웃음을 당하자 어쩔 수 없이 목덜미에 살짝 열이 올랐다.

“자, 이렇게 손도 잡을 수 있고.”

천사연은 박건호가 비웃거나 말거나 신경 쓰지 않고 내 손을 붙잡아 보란 듯이 들어 올렸다. 그의 차가운 손가락과 내 손가락이 엉켜 들었다.

하태헌이 없어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정신 지배 때문에 정말 별의별 상황이 다 나오네.

천사연이 나를 안을 때부터 안절부절못하던 우서혁이 급기야 꼬리 밟힌 강아지처럼 낑낑거리기 시작했다. 벌떡 일어나서 나와 천사연을 떼어 놓기 위해 얼굴을 막 들이밀기까지 했다.

‘나쁘지 않은데?’

그 어느 때보다 확실한 효과에 좋아하는데, 갑자기 천사연이 고개를 숙였다. 셔츠 깃 위로 드러난 목덜미에 천사연의 머리카락이 닿으며 간지러운 느낌이 느껴졌다.

“읏, 잠깐…….”

이렇게까지? 미처 말리기 전에 쪽 하는 소리와 함께 귀 바로 아래에 입술이 닿아 왔다. 오싹한 감각에 소스라치게 놀란 그때였다.

크르릉, 거친 울음소리를 흘린 우서혁이 빠른 속도로 작아지며 털이 사라지고 새하얀 피부로 변했다. 순식간에 변신을 풀고 사람으로 돌아온 우서혁이 평소의 무뚝뚝한 얼굴을 하고서 나를 바라봤다.

“됐다!”

천사연을 다급히 뿌리치고 미리 챙겨 온 옷을 우서혁에게 던져 줬다. 방금 막 변신을 푼 우서혁은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알몸이라 마주하기엔 너무나도 부담스러웠다.

“너무하군. 내 사랑이 담긴 스킨십을 이렇게 냉정하게…….”

“바로 출발하자. 다른 사람들과 조금이라도 더 빨리 만나야 해.”

내게 밀쳐진 천사연이 가련한 척 투덜거리는 걸 끊어 내며 다음 계획부터 정했다. 팀원들을 붙잡고 있는 존재가 아벨의 인형인 게 확실해졌으니 이 이상 미적거리고 싶지 않았다.

나와 같은 의견인지 천사연도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려면 여기 두 명부터 설득해야겠군.”

그 두 명은 당연히 박건호와 민아린이었다. 민아린은 제대로 얘기해 보면 따라와 줄 희망이 있지만 박건호는…….

나는 마른침을 삼키며 시종일관 미소를 짓고 있는 박건호에게 시선을 돌렸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박건호를 설득해야 한다니. 벌써부터 한숨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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