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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환생은 원치 않아-310화 (310/394)

310화

우서혁의 넓은 등에 올라탄 채로 동쪽으로 이동했다.

다만, 신데렐라 동화에서 김우진 대신 채찍을 맞는 바람에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 상황에서 인형의 가위로 어깨가 찢어지는 부상까지 더해진 몸은 우서혁에게 신세를 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상태가 영 좋지 않았다.

거즈를 쑤셔 넣었다고 해도 봉합한 게 아닌 이상 피가 조금씩 흘러나올 수밖에 없었다. 피에 젖은 붕대를 미리 챙겨 온 새 붕대로 갈았지만, 부상의 영향으로 열이 치솟고 오한이 밀려왔다.

이동하는 와중에 창백하게 질린 내 모습을 본 천사연이 단호하게 휴식을 제안했다. 결국 아침이 될 때까지 걸어 보자는 애초 계획과 달리 새벽에 짧은 휴식 시간을 가졌다.

커다란 늑대인 우서혁에게 안긴 채로 잠깐 자고 일어나니 다행히 상태가 조금은 나아졌다. 그동안 천사연은 혼자서 주변을 살피고 왔다. 걱정했던 대로 짐이 된 상황이라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다음에는 민아린 힐러를 만나면 좋겠는데.”

“그러게.”

내가 미안해하는 걸 느꼈는지 천사연이 신경 쓰지 말라는 듯 픽 웃었다.

“우서혁은 완전히 늑대가 되어 버렸으니 민아린 힐러도 멀쩡할 거란 기대는 안 하는 게 낫겠어.”

그 얘기에 내 시선이 저절로 등을 지탱해 주고 있는 우서혁에게 향했다. 양 앞발을 모은 채로 엎드려 있던 우서혁이 심드렁한 숨을 훅 내뱉었다. 완벽한 무시였다.

평소라면 천사연을 상대로 절대 이러지 않았을 텐데. 우서혁은 천사연을 잊은 지금이 오히려 더 편해 보였다.

“일단 아침이 됐으니까 위로 올라가서 근처에 뭐가 있는지 좀 보고 올게.”

“괜찮나?”

“자고 일어나서 그런지 아까보단 훨씬 나아.”

나만 할 수 있는 일이었으니 상태가 나빠도 해야 했다. 그래도 눈치 빠른 천사연 덕분에 무리하지 않고 쉴 수 있던 만큼 그 값을 해야지.

기운을 끌어 올려 바람으로 몸을 감싸고 그대로 공중을 날아올랐다. 하늘을 가린 나뭇잎을 치워 내며 위로 빠져나오자 발밑으로 펼쳐진 숲이 보였다.

다행히 동쪽 끝에 돌벽이 둘러진 도시 하나가 보였다. 또한 도시로부터 얼마 떨어지지 않은 위치에 작은 집 하나가 자리 잡고 있었다.

이대로 쭉 나아간다면 도시에 도착하기 전에 저 집부터 마주칠 가능성이 컸다. 도시가 있는 쪽으로 가야 한다면 저 집의 정체도 확인해 보는 편이 좋아 보였다.

다시 아래로 내려간 나는 내가 본 것을 천사연과 우서혁에게 설명했다.

“그 집부터 들리고 아무것도 발견된 게 없으면 도시로 가 보자.”

팔짱을 낀 채로 잠시 고민하던 천사연이 제안에 고개를 끄덕였다.

“가 봐서 나쁠 건 없어 보이는군. 만약 빈집이라면 쓸 만한 물건이나 음식을 구할 수 있을 거고.”

“어차피 지금 당장은 도시로 들어갈 수 없어.”

내 말에 천사연이 내 곁에 바짝 붙어 있는 우서혁을 바라봤다. 우서혁은 정신 지배로 인해 능력을 풀고 사람으로 돌아가는 방법을 아예 잊은 것처럼 보였다.

다친 나와 조용히 움직이기엔 많은 무리가 따르는 우서혁까지. 이래저래 천사연의 입장에서는 불편한 짐일 것이다.

하지만 그는 조금의 불쾌한 기색 없이 내 허리를 붙잡아 번쩍 들어 우서혁의 등에 앉혀 줬다.

“바로 출발하지.”

***

동쪽으로 1시간 정도 걸어가자 아까 발견했던 그 집이 나타났다. 거리상 따져 봤을 때 도시는 이 집으로부터 2시간 정도 더 걸어가야 나올 듯싶었다.

앞서 걷던 천사연이 무언가를 느끼고 걸음을 멈췄다.

“누군가가 있군.”

감각을 집중하자 집에서부터 흘러나오는 능력자의 기운과 인기척이 내게도 느껴졌다. 확실히 빈집은 아니었다.

상대가 누구인지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에 무작정 다가갈 수는 없었다. 상대가 집 밖으로 나올 수도 있으니 진입보다는 지켜보는 편이 어떻겠냐고 물어보려던 그때였다.

“……!”

맞은편에서 무언가가 빠른 속도로 날아오는 것을 알아챈 나는 급히 바람 장막을 펼쳤다.

파직, 휘몰아치는 바람에 막힌 것은 다름 아닌 날카로운 화살이었다. 중앙이 부러진 채로 후드득 떨어지는 화살을 본 나는 눈가를 좁혔다.

‘누가 쏜 거지?’

화살을 쏜 상대를 찾기 위해 고개를 들자마자 귀를 쫑긋 세운 우서혁이 으르렁거리며 폴짝 뛰어올라 뒤로 물러섰다.

방금까지 우서혁이 서 있던 자리에 정확히 파고든 것은 놀랍게도 쇠구슬이었다.

“설마 박건… 읏!”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땅에 박힌 쇠구슬이 동시다발적으로 폭발하기 시작했다. 쿠우웅, 귀가 멍해질 정도의 강한 폭발음과 뜨거운 기운이 확 퍼졌다.

피부가 따가울 정도로 뜨거운 열기를 아무렇지 않게 뚫고 나아간 천사연이 집 바로 옆에 있는 나무로 곧장 뛰었다. 그제야 나는 나무 뒤에 몸을 숨기고 있던 박건호를 발견했다.

활시위를 당기고 있던 박건호가 거리를 좁혀 오는 천사연을 조준해서 화살을 놓았다. 달리는 와중에도 고개를 비틀어 정확하게 피해 낸 천사연이 화살대를 손으로 잡아 냈다.

“잠깐만, 천사연!”

우서혁일 때와 마찬가지로 사정 봐주지 않고 팰 기세인 천사연을 막아 보려는데, 그보다 나를 태우고 있는 우서혁이 먼저 행동했다.

그르렁거리며 박건호를 향해 강한 적대심을 보이던 우서혁이 다리에 힘을 주고 휙 날아올라 단숨에 천사연을 지나쳐 박건호에게 달려들었다.

반동을 버티지 못하고 흔들리는 몸에 어쩔 수 없이 우서혁의 털을 붙잡았다. 나를 등에 태운 채로 박건호의 어깨를 노리고 뛰어든 우서혁의 공격을 정확하게 피해 낸 박건호가 씩 웃었다.

‘왜 이놈이나 저놈이나 눈만 마주치면 싸우질 못해서 안달이야?’

아무리 정신 지배를 당한 상태라 해도 최소한 대화를 해 볼 생각 정도는 들 만하지 않나? 그런 것 없이 치고받고 싸움부터 시작하는 팀원들이 정말 이해가 안 갔다.

“으윽!”

공격을 피하는 와중에도 능숙하게 던져진 쇠구슬이 아슬아슬한 위치에서 쉴 틈 없이 폭발했다.

자신과 비슷한 실력자인 박건호가 잡힐 듯 잡히지 않으면서 공격해 오니 우서혁 또한 호승심이 치솟는지 행동이 아까보다 훨씬 거칠어졌다.

‘어떻게든 싸움을 멈추고 얘기를 나눠 봐야 해.’

신나게 날뛰는 우서혁의 등에서 겨우겨우 매달린 채로 어떻게 해야 할지 다급히 머리를 굴렸다. 잠시 뒤로 물러서 있는 천사연 또한 박건호를 때릴 기회만 호시탐탐 노리고 있어서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흠.”

날렵한 몸놀림으로 땅바닥을 구른 박건호와 눈이 마주친 건 그 순간이었다. 묘한 시선으로 나를 본 박건호가 손가락을 튕겨 쇠구슬을 내 쪽으로 날렸다.

우서혁이 나를 지키기 위해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걸 노렸는지 쇠구슬이 한 박자 늦게 터졌다. 부상으로 손힘이 없는 나는 코앞에서 터지는 폭발 반동을 버티지 못하고 우서혁의 등에서 미끄러졌다.

“헉……!”

“으쌰.”

추락하는 감각에 놀란 내가 바람 능력을 쓰기도 전에 내 몸을 누군가가 받아 냈다. 천사연이 했듯이 내 등과 무릎 뒤를 정확히 받치고 안아 든 박건호가 가볍게 휘파람을 불었다.

“안녕, 늑대 주인.”

나를 내려다보며 환하게 웃는 박건호의 뒤로 아침 햇살이 환하게 비쳤다. 당황한 내가 미처 답하기도 전에 천둥 같은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여태 봐 온 것 중에서 가장 험악한 기세로 얼굴을 일그러뜨린 우서혁이 털을 바싹 세운 채로 성인 팔뚝만 한 송곳니를 드러냈다. 엄청나게 예민해 보이는 그 모습에 박건호가 짐짓 놀란 척을 했다.

“주인이 아니라 애인이었나?”

“무슨 헛소리를… 진정해요, 우서혁 씨!”

위협적으로 으르렁거리며 느릿하게 거리를 좁혀 오는 우서혁은 정말 다큐멘터리에서나 보던 늑대 그 자체였다.

박건호에게 안긴 채로 황급히 고개를 젓자 다행히 알아들었는지 제자리에 멈춰 서서 꼬리를 살랑였다. 좋아. 불안한 상태긴 해도 짧은 대화 정도는 할 수 있겠다.

“왜 우리를 공격하는 겁니까?”

미간을 찌푸리며 묻자 박건호가 여전히 웃는 낯을 하고서 입을 열었다.

“그야 내가 사냥꾼이니까?”

“…사냥꾼이라고요?”

“그래. 그리고 여긴 중요한 곳이라 함부로 접근하는 자들에겐 무조건 경고를 보내고 있지.”

순순히 나를 놓아준 박건호가 들고 있던 커다란 활을 등에 멨다. 저 활도 사냥꾼이라서 갖고 있는 건가? 이제 보니 허리춤에는 검도 차고 있었다.

본래 박건호는 별다른 무기 없이 쇠구슬만을 사용했는데. 그저 무기를 쓰지 않았을 뿐이고 다루지 못하는 건 아니었나 보다.

박건호가 눈짓으로 천사연을 가리켰다.

“평범한 늑대였으면 나도 이 정도로 강경한 대처를 하진 않았을 거다. 하지만 뭐… 굳이 더 설명할 필요가 있나? 저 정도 크기의 늑대가 나타나면 당연히 공격해서라도 접근을 막을 수밖에 없지. 너와 저쪽 남자도 수상한 건 마찬가지고.”

“저 집 안에 다른 사람이 한 명 더 있군.”

심드렁한 표정으로 상황을 지켜보던 천사연이 한 말에 박건호가 어깨를 으쓱였다.

“글쎄. 나로선 관심 두지 말고 갈 길 가라는 제안밖에 해 줄 수가 없어.”

그건 안 된다. 겨우 만난 박건호를 여기에 두고 갈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어떻게든 박건호를 설득해야 했다.

“기다려요. 저희는 정말로 위험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 변명을 내가 믿을 수 있게 이만 물러나 주면 좋겠는데.”

박건호가 보이는 태도는 굉장히 냉정했다. 그 모습에 예전에 박건호와 처음 만났을 때가 떠올랐다.

그간 친해져서 잊고 있었는데, 박건호는 마냥 쉬운 사람이 아니었다.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해결할 수 있을지 도통 감이 잡히지 않았다.

‘심지어 마주치자마자 우서혁과 싸우는 바람에 경계심만 더 키워 버렸으니…….’

이유는 모르지만 내게 온순하게 굴었던 우서혁이 박건호를 상대로는 태도가 달라도 너무 달랐다. 정말 천사연의 방식대로 때려눕혀서라도 강제로 끌고 가야 할지 고민하는데, 집의 문이 열리며 누군가가 걸어 나왔다.

“거기까지면 됐어요.”

익숙한 목소리였다. 고개를 돌리자 붉은 망토를 걸쳐 입은 민아린이 양손을 가지런히 모아 잡은 채로 나와 시선을 맞췄다.

“하지만 마리아 님.”

마리아? 박건호가 민아린을 부르는 호칭에 눈가를 좁혔다.

“괜찮아요. 그분들은 마녀의 수하가 아닙니다.”

박건호에 이어 민아린까지 한자리에 모였다는 반가움도 잠시, 이어지는 둘의 대화에 분위기가 빠르게 무거워졌다.

마녀라니. 혼란스러워하는 날 향해 빙긋 미소 지은 민아린이 문 앞에서 비켜섰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들어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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