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내가 키우게 된 S급들 (6)
그렇다. 이건 좀비 사냥 게임이었던 것이다.
우리 옆에 있는 도우미가 총을 쏘라고 소리를 지르면서 기본 조작법을 가르쳐 주었다. 도우미의 설명대로 총을 쏘니 총에 맞은 좀비가 썩어 가는 살점과 피를 현란하게 흩뿌리며 터져 나갔다.
“……!!”
어찌나 진짜 같이 잘 만들었는지 좀비의 핏자국이 바닥과 철조망에 잔뜩 튀었고 철조망 밑에 널브러진 터진 좀비에서 흘러나온 피가 바닥에 흐르고 있었다.
너무 진짜 같아서 날 리가 없는 피 냄새가 코를 찔러 댈 것 같았다.
쉬는 시간만큼은 절대 보고 싶지 않은 역겨운 광경에 빈정이 상한 나는 헤드셋을 벗어 버렸다.
그리고 이 잔인한 세상을 마구 부정했다.
“이런 징그러운 게 인기 1위일 리 없어! 게다가 일행 중에 여섯 살이 있다고! 이런 게임 시켜도 되는 거야?”
생각해 보니 내가 골랐다기보단 직원이 추천해 준 게임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직원에게 원망이 들었다.
나는 단숨에 이 역겨운 게임을 추천한 직원에게 가서 마구 따졌다.
그러자 직원은 날 보더니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을 지으며 맞받아쳤다.
“가장 인기 있는 게임을 추천해 달라 하셨잖아요. 저게 인기 제일 많은 게 맞는걸요?”
“그렇다고 어린애가 있는데 저런 잔인한 걸 하게 하면 어떡해요! 저거 19금 게임 아니에요? 일행에 어린애가 있으면 당연히 전체 이용가 게임을 골라 주셔야죠! 무조건 인기 있는 게임이 아니라.”
“참나, 다들 맨날 보는 게 사람 죽는 거고 괴물인데 뭐 어떻습니까? 이 동네 애들도 다 사람이 괴물한테 먹혀 죽거나 다른 사람 총에 맞아 죽는 거 보고 살았다고요.”
“뭐요?!”
“특히 당신이 제일 익숙하지 않나요, 강하나 에스퍼님? 우리 같은 사람들은 당신처럼 괴물을 맨손으로 때려죽이지 못해서 이런 게임으로라도 대리만족을 한다고요.”
“거짓말하지 마요! 다들 이런 징그러운 게임을 좋아할 리 없어!”
나는 이 인간성을 말아먹은 역겨운 게임을 모두가 즐기지 않는다는 걸 보여 주기 위해 직원과 함께 돌아왔다.
이런 해로운 게임을 보고 다들 경악하는 모습을 봐야 함부로 추천하지 않을 테니까.
“…….”
하지만 직원과 함께 돌아온 플레이룸은 내 예상과 전혀 다른 그림이 펼쳐져 있었다.
잔인하고 폭력적인 게임 때문에 놀란 여섯 살과 달래 주는 보호자가 있어야 할 텐데, 이게 뭐지?
플레이룸 안에는 게임 헤드셋을 벗은 사람들이 플레이 상황을 함께 관람할 수 있도록 한쪽 벽면에 대형 스크린이 있다.
스크린에는 끊임없이 좀비들이 튀어나오고 총에 맞아 쓰러지는 장면이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스크린 앞에는 헤드셋을 쓴 우진이가 열심히 총을 쏘고 있는데, 쏘는 것마다 백발백중이다.
‘우진이 총 잘 쏘네? 의외의 매력이야.’
게다가 우린이도 우진이 옆에 붙어서 헤드셋도 안 벗고 같이 총을 쏘면서 좋아하고 있다.
“말도 안 돼! 이런 걸 왜 좋아하는 거야!”
같이 온 직원은 그것 보라면서 의기양양하게 나를 쳐다봤다.
그리고선 저 가이드도 저럴 줄 알았다느니, B급 에스퍼인 나는 모를 테지만 F급 에스퍼인 자신은 현장의 무력감을 게임으로 푸는 쾌감을 안다느니 F급이라 임무가 없어 여기서 알바를 하고 있다느니 궁금하지도 않은 얘기를 마구 해 댔다.
‘아니, 피비린내 나는 세상에서 왜 가상현실까지 피 튀기는 걸 좋아하는 거야. 너희 이상해.’
이런 내 마음도 모르고 우진이는 열심히 게임 속의 총을 쐈다.
그나저나 우진이 진짜 잘 쏜다. 다 헤드샷이야!
나는 옆에서 직원이 괴물이랑 싸움 못 하는 사람들의 울분을 열심히 토로하는 걸 흘려듣고 좀비를 잡는 우진이를 관람했다.
한 방에 다 빵빵 쏴 죽이면서 콤보 점수를 차곡차곡 쌓는 걸 보니 넋 놓고 구경하게 되네. 원샷 원킬 콤보가 세 자릿수가 된 지도 한참 됐다.
그렇게 290 콤보를 넘기고 곧 300 콤보를 향해 가던 중에 콤보가 뚝 끊겼다.
갑자기 우진이가 헤드셋을 벗고 쭈그려 앉았기 때문이다.
“뭐야?! 우진아 왜 그래?”
나는 다가가서 우진이를 살펴봤다. 옆에 있던 우린이도 헤드셋을 벗고 우진이에게 다가왔다.
“우진 씨, 괜찮으ㅅ…….”
“오빠! 아파? 응? 그래서 그래? 오빠, 아프지 마…… 흑, 흑…….”
내가 먼저 물어보려 했는데 우린이한테 뺏겨 버렸다.
게다가 우린이가 갑자기 울어 버리니까 우진이도 당황했는지 곧바로 우린이를 달랬다.
“아냐, 우린아. 오빠 안 아파. 그냥 멀미 나서 그래.”
우진이는 우는 우린이를 어르며 달랬다.
우진이가 말하길, 원래 3D게임을 하면 멀미를 했다고 한다. 말하는 우진이의 안색이 창백했다.
애까지 울고 나니 게임을 즐길 상황이 아니어서 우린 결국 VR 게임방을 나왔다.
분위기를 띄워 보려고 게임방을 갔는데 오히려 우진이랑 우린이 상태만 나빠졌다.
‘내가 괜한 곳을 데려온 걸까?’
나는 기분이 착잡해져서 발끝을 내려봤다.
그러다 시선을 옮겨 우진이를 발부터 머리까지 훑어보니 신발부터 옷까지 가이드 교육생용 운동복인 게 눈에 띄었다.
‘그러고 보니 우진이는 옷이 저거밖에 없겠구나. 처음에 입었던 건 괴수 체액에 넝마가 됐고 그동안은 환자복만 입었을 테니까.’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나는 우진이에게 새 옷을 사 주기로 했다.
우린이도 나랑 상혁이한테 새 옷도 선물 받고 쉼터에서 애들 옷을 선물 받아서 옷이 많은데, 우진이가 단벌 신사라니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나는 곧장 날도 추운데 트레이닝복 같은 유니폼만 덜렁 입고 다니는 우진이에게 외투가 필요하지 않냐고 묻고 옷가게로 이끌었다.
***
‘역시 옷걸이가 좋으니까 뭐든 입히는 재미가 있네.’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옷을 고르는 재미에 빠졌다.
그냥 옷은 협회에서 주는 대로 걸치는 나였지만, 우진이한테만큼은 다양한 걸 입혀 보고 싶었다.
‘저 얼굴에 에가협 유니폼만 입게 두는 건 미의식이 존재하는 인간으로서 말이 안 되는 일이니까.’
게다가 우진이는 키가 크고 마른 데다 어깨가 넓어서 입는 옷마다 맵시가 있었다.
나는 옷가게의 옷을 전부 뒤져 우진이에게 어울리는 옷들을 찾아냈다.
직원이 우진이를 보자마자 잘 어울릴 거라며 가져온 코트는 우진이의 넓은 어깨에 맞아 멋들어지게 각이 잡혔다. 그리고 어깨부터 끝단까지, 허리가 살짝 들어가는 깔끔하고 멋스러운 옷 선은 우진이의 큰 키와 작은 얼굴에 비례해 완벽하게 잘 어울렸다.
우진이의 기다란 목을 도톰하게 덮어 주는 목폴라 스웨터부터 스웨터와 색이 맞는 각진 정장 바지에 깔끔한 단색 양말, 윤기 있는 구두까지 모두 입히고 나니 옷가게 직원이 탄성을 내질렀다.
사실, 나는 오순도순하게 우진이랑 둘이서만 옷을 고를 계획이었기 때문에 직원이 끼어서 이것저것 추천하는 것에 살짝 기분이 상했다.
그러나 옷가게를 운영하는 사람답게 안목이 있는 건지, 직원이 우진이에게 갖다 댄 옷들은 모두 다 찰떡같이 잘 어울렸다.
다들 살 옷이 없다고 투덜거리는 이곳에서 어쩜 그렇게 잘 어울리는 옷을 그렇게 많이 가져오는 것인지, 내가 한 벌 골라 올 동안에 이 직원은 세 벌, 네 벌씩 옷을 골라 갖다주었다.
이렇게 나랑 옷가게 직원이 추려 온 옷들은 우진이 앞에 잔뜩 진열되어 우진이의 선택을 받는 과정을 거치게 되었다.
입는 당사자의 선택까지 거쳐 최종적으로 완성된 코디를 보니 뿌듯했다.
우진이도 마음에 드는지 거울 앞에서 자신의 모습을 이리저리 비춰 보았다. 원래도 잘생긴 우진이지만 멋들어진 옷을 입고 있으니 패션모델이 따로 없었다.
나는 만족스러운 기분으로 계산대 앞에 섰다. 계산대 위에는 우진이가 입은 모든 옷과 우진이가 나를 위해 골라 준 내 옷들이 놓여 있었다.
우진이는 내가 우진이 옷을 고르는 사이에 나를 위해 내 옷을 골라 놓았던 것이다.
‘세상에! 우진이가 나를 위해 옷을 고르다니!’
나는 우진이가 골라 준 옷들을 죄다 계산대 위에 올렸다.
물론 우진이는 돈이 없어서 자기 옷도 못 사는 상황이라 우진이가 골라 준 내 옷은 내가 사야 했다.
나는 딱히 옷 살 생각이 없었지만, 우진이가 나를 위해 골라 줬으니 꼭 사기로 했다.
계산대 위에 놓인 우진이 옷들과 우진이가 골라 준 내 옷들을 보니 비죽비죽 웃음이 새어 나왔다.
‘무려 우진이가 나를 위해 골라 준 거야.’
왠지는 모르겠지만 계산하는 동안 직원이 나를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보았다.
‘뭐냐, 꼭 저당 잡힌 호구를 보는 눈빛인데 저건. 잠자코 계산이나 해 줄 것이지 왜 나를 그런 눈으로 쳐다보는 거람.’
아무튼, 계산을 마친 나는 우진이와 새 옷을 걸치고 가게를 나왔다.
밖으로 나오니 날이 저물고 저녁 시간이 되었다.
겨울이라 해가 빨리 지는 탓에 사위가 어둑어둑했다. 가게 건물들과 몇 없는 가로등의 불빛이 어두워지는 주변을 비추기 시작했다.
날도 어두워지고 하니 기온이 떨어져 우진이가 추울까 봐 걱정이 됐다.
나는 고개를 돌려 우진이를 보았다. 은은한 불빛을 받아 어둠 속에서 빛나는 우진이는 꼭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금방 사라질 신기루처럼 아름다웠다.
이런 비현실적인 아름다움이 눈을 돌리면 사라질까 봐, 나는 그대로 못 박힌 듯 서서 우진이를 보았다.
우진이도 내 시선을 느꼈는지 고개를 돌려 눈을 마주쳤다.
옷매무새를 정돈하던 우진이는 눈물점 위로 고아한 눈웃음을 지으며 내게 고맙다고 말했다.
숨이 멎을 듯한 아름다움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나는 우진이를 바라보며 내가 숨을 참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와 동시에 강한 예감이 들었다.
나는 언제나 이 사람의 곁에 서 있을 것이다.
***
협회 스케줄의 하루 시작은 오전 9시다.
내가 진행하는 S급 아이들의 수업도 9시에 시작된다.
그리고 지금의 시각은 9시 15분이다. 내가 한창 애들에게 뜀박질을 시킬 시간이지.
그래서 훈련 중인 172호실의 문을 두드릴 사람은 없다고 보면 된다. 다들 자기 할 일 하느라 바쁘니까.
분명 그럴 텐데, 누군가 훈련 중인 172호실의 문을 열심히 두드리고 있다.
쾅, 쾅, 쾅!
급한 연락이면 스마트워치로 연락 넣을 텐데 대체 누구지? 훈련 중일 땐 방문객 안 받는다는 기본적인 것도 모르나.
치밀어 오르는 짜증을 억누르고 문 앞으로 다가갔다.
무시하고 싶었지만 내가 모른 척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두드리는 소리는 더 빠르고 커졌기 때문이다.
‘참나, 여기가 화장실도 아니고 뭐 하는 짓이야.’
열림 버튼을 누르고 양옆으로 밀려 열리는 문틈을 노려보았다.
‘어떤 경우 없는 자식인지 얼굴이나 한번 보자. 별거 아니면 가만두지 않겠어.’
그리고 열리는 문틈 사이로 보이는 건 우진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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