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내가 키우게 된 S급들 (7)
우진이는 불청객을 대처하는 내 표정을 보고 놀랐는지 당황한 얼굴이었다. 나는 얼른 표정을 갈무리했다.
“……와, 우진 씨! 여긴 어쩐 일이에요?”
평소처럼 우진이를 반겼지만, 우진이의 굳은 얼굴은 풀리지 않았다.
이제는 내가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어떡하지.’
우진이가 날 두려워하는 상황은 꼭 피하고 싶었는데 다 틀린 것 같다.
괜한 말이 오히려 상황을 망칠까 봐,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침만 삼켰다.
서로에 대한 불안으로 우리의 사이엔 정적이 흘렀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침묵 속에 돌연 바람 빠지는 듯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예상 못 한 소리에 화들짝 놀라 우진이를 봤지만, 우진이는 곧바로 웃음기를 지우고, 본인 특유의 도도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낮은 음색의 미성으로 바로 본론을 꺼냈다.
“제가 여기를 견학해도 될까요?”
정말 한 치도 예상하지 못한 말이 들려왔다.
공격수 에스퍼라도 안 받아 주는 내 수업 견학 요청을 왜 가이드가 하는 건지 모르겠다.
“물론이죠~ 어서 들어오세요.”
하지만 방문자가 우진이면 언제나 환영이지.
나는 살짝 뒷걸음을 해서 우진이가 들어올 수 있도록 길을 내줬다. 우진이는 안으로 들어오더니 곧장 우린이 옆으로 다가갔다.
내 스마트워치를 가지고 놀던 우린이는 우진이가 보이자, 손에 있던 시계를 내팽개치고 자기 오빠에게 뛰어갔다. 내 시계 새로 바꾼 지 얼마 안 됐는데…….
내 시계의 안녕과는 상관없이 저 남매는 진한 감동의 재회를 했다.
바로 어제도 오랫동안 같이 놀았는데 볼 때마다 참 애틋하다.
꼬맹이 우린이는 우진이를 바닥에 앉히고 무릎 위로 올라갔다. 그러고는 그동안은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던 애교를 부리며 자기 오빠를 꼭 끌어안았다.
무뚝뚝한 어린애인 줄만 알았는데 반가우면 그런 것도 하는 모양이다.
어쩐지 그 모습을 쳐다보는 게 민망해져서 난 자리에서 물러나 내 일을 하러 갔다.
애들이 훈련실만 빙글빙글 돌도록 내버려 둘 수도 없으니까.
하지만 애들은 이미 달리기를 멈추고 옹기종기 모여서 수다를 떨고 있었다.
“그러니까 꼬시려고 온 거라니까. 그게 아니면 여기 왜 와.”
“지금도 그렇고, 어제도 봤지만, 관심 없어 보이던데.”
“맞아. 그냥 짝사랑이야.”
‘이놈들이 뭔 소릴 하는 거야? 훈련실 돌라고 시켰더니 모여서 노가리를 까?!’
나는 우진이가 견학 왔다고 얘들을 놀게 해 줄 생각이 전혀 없었으므로 바로 제지를 했다.
“야, 너희 왜 여기 모여 있어. 분명 내가 20바퀴 돌라고 했는데 아직 5분도 안 됐거든? 내가 모르는 새에 가속 이능이라도 발현했어?”
“선배! 저 사람 왜 왔대요? 선배 보러 온 거죠?”
오늘도 장하나는 내 말은 듣지 않고 당돌하게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했다.
그렇지만 난 친절한 어른이니까 저 싸가지 청소년의 질문에 성실하게 대답해 주었다.
“그런 거 아니야. 그냥 우리 훈련 견학하러 온 거래. 너네는 평소 하던 대로 하면 돼.”
“저 사람 가이드라면서요. 가이드가 우리 훈련을 왜 구경하지? 그것도 S급을? 이유가 말이 안 되는데요.”
그 생각을 나도 안 해 본 건 아닌데 우진이가 하겠다잖아. 어디서 토를 달아.
계속 받아 주면 아까운 훈련 시간만 끝도 없이 잡아먹을 것 같다.
나는 장하나를 무시하고 애들한테 처음부터 다시 20바퀴를 돌라고 시켰다.
애들을 뺑뺑이 돌라 시키고 잠시 커리큘럼을 정리하는 틈을 타 우진이를 보았다. 견학하러 왔으니 혹시라도 이쪽을 보고 있을까 싶기도 했고.
하지만 역시 우진이는 이쪽을 보지 않고 우린이와 귓속말을 주고받느라 바빴다. 나는 다시 애들을 주시하며 커리큘럼을 정리했다.
***
이틀 정도 내가 가르치게 된 이 S급 애들을 지켜보며 알게 된 것이 있다.
얘들은 전투에 대한 기초가 전혀 없는 것이다. 이건 펀치 치는 것만 봐도 견적이 다 나온다.
전투에 나서려면 타고난 운동 신경에만 의지해서 무작정 때리고 피하는 게 아니라, 급소를 파악하고 타격하는 기술, 피하는 기술이 자연스럽게 나오도록 몸에 익혀야 한다.
그렇지만 얘들은 몸에 익기는커녕 기본적인 기술도 모른다.
지금 내가 주먹을 받아 주는 장하나도 엄지손가락을 손안에 말아서 주먹을 쥐고 있다. 주먹도 제대로 못 쥐는 애들을 가르쳐야 하다니 가야 할 길이 아득하게 느껴진다.
그래도 나에게 주먹질을 하는 장하나가 신나 보여서 다행이다. 재미라도 느껴야 열심히 할 테니까.
주먹을 내 손바닥에 제대로 맞추지도 못해서 짝짝 맞는 소리도 제대로 안 나지만 이제 시작이니까 그러려니 하자. 내 이능이 아니었으면 손가락이 하도 꺾여 열 손가락 다 염좌가 생겼을 것이다.
물론 장하나만 기본기가 없는 게 아니다. 장하나는 정신 계열이기라도 하지.
강화계인 두 친구도 사정은 비슷했다.
이능 때문에 그냥 힘만 센 거지, 자세가 별로라서 내 손에 낀 미트를 치면서도 둔탁한 소리밖에 나지 않는다. 함소영이 대련 대회에 나온 게 신기할 따름이다.
게다가 조용은 맨날 자기 의자를 우그러뜨리는 걸 보니 아마 자기 이능을 제대로 활용하는 법도 모를 것이다.
센터의 훈련실은 스마트워치로 인증해야 문이 열리는 시스템이라 참 다행이다. 손잡이가 달린 문이었으면 진작에 망가졌을 테니까.
“됐어, 용아. 그냥 넌 키도 큰데 바닥에 앉아. 의자 접합부랑 다리마다 네 손자국대로 구겨졌는데 그걸 어떻게 써.”
“다들 의자에 앉는데 저만 바닥에 앉는 건 불공평해요.”
“그럼 네가 의자를 망가뜨리지 말든가.”
소영이와 장하나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던 모양인지 둘이 같이 조용을 타박했다. 내 수업 시간이 아닌 다른 때도 뭔가를 많이 부수며 지낸 모양이다.
나는 애들이 떠드는 소리를 들으며 프로필을 간단하게 훑어봤다.
애들의 이능은 알고 있지만 세세한 특이사항은 빼먹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름: 장하나
계열: 정신계(다중)
등급: S
이능: 정신 읽기 환영 투사 기억 공유
특이사항: 외
-
이름: 조 용
계열: 강화계(다중)
등급: S
이능: 신체 강화 외부 물리 충격 무시
특이사항: 미숙, 외
-
이름: 함소영
계열: 강화계
등급: S
이능: 신체 강화
특이사항: -
역시 이럴 줄 알았다. 조용 얘는 협회 들어온 지 3년이 다 돼 가는데도 이능 미숙한 것 좀 봐.
거기에 특이사항에 쓰인 ‘외’는 ‘외부의 제압이 필요함’이라는 뜻이다. 스스로가 이능을 잘 다루지 못해 폭주하기 쉽거나 반사회적인 에스퍼란 의미지.
애들이 협회에 가입한 지 한참 됐는데도 이 모양인 건 S급 에스퍼라고 협회가 데이터 측정에만 매달리고 훈련을 제대로 안 한 탓일 거다.
그리고 이제 데이터가 어느 정도 쌓였으니 바깥 임무에 써먹으려고 날 부른 것이겠지.
그래도 이왕 맡은 일이니까 열심히 할 생각이다. 이놈들이 임무에 나갈 수 있는 수준으로 잘 다듬어 봐야지.
“얘들아, 중요한 얘기할 거니까 잘 들어 봐.”
혼자 바닥에 앉은 조용과 의자에 앉은 애들이 시끄럽게 떠들다가 날 쳐다봤다. 나는 본격적으로 화두를 뗐다.
“내가 오늘까지 너희의 수준을 살펴봤잖아. 지금은 그 결과를 얘기하려고 해. 너희도 잘 알 것 같긴 한데, 너넨 말이야……. 기본기가 하나도 없어. 그래서 훈련 일정을 좀 조이려고 하는데…….”
“지금도 똥개 훈련 빡센데 뭘 더 빡세게 해요?!”
지금까지 기초 체력 운동밖에 안 했는데 장하나가 펄쩍 뛰며 반발했다.
다른 두 명도 기본기가 없다는 말에 기분이 나빴는지 이틀 만난 내가 뭘 아냐며 구시렁대고 있었다.
하긴 이 건물에만 갇혀 살기만 하면 현실 감각이 없을 수도 있겠다.
나는 경험이 부족한 아이들에게 설명을 해 주기 위해 입을 열었다.
“나도 너희가 연구 센터에서 끊임없이 훈련받아 왔다는 건 알아. 지금 하는 거랑 비슷한 이런 체력장도 몇 번 해 봤을 거야. 거기서도 지금처럼 훈련실 돌라고 시키고 아령도 들라고 하고 그랬겠지. 그런데 연구팀의 훈련이랑 내 수업은 목적이 달라. 연구팀에선 너희의 역치를 파악하는 게 목적이야. 너희가 언제부터 힘들어하는지, 너희의 한계만 시험해 보고 말았겠지. 기록을 하려고 시킨 거니까.”
“…….”
시끄럽게 떠들던 애들이 말을 멈추고 나를 보았다.
연구 센터에서 생활하는 사람도 아닌 내가 이런 걸 아는 게 의외인 모양이었다.
조용해진 게 마음에 든다. 나는 그대로 말을 이었다.
“그렇지만 내 수업은 너희를 특정한 기준치로 올리는 게 목적이야. 그리고 너흰 아직 그 수준의 시작점에도 못 섰어. 기초 체력이 너무 별로라고. 무술의 기본기는커녕 체력 다지기만 해야 할 판이야. 그런데 우리 훈련이 일반 전투 훈련으로 잡혀 있더라? 수업 이름이 ‘고위험군 이능력자 특별 교육’이라는 거창한 이름이라 특별 취급받나 싶었더니 말이야. 아무튼, 이렇게 됐으니 적어도 올해 안에는 성과를 하나 내야 해.”
“우리가 무슨 성과를 내요?”
“너희 데리고 임무 하나는 성공해야 한다는 얘기야. 지금 수업이 전투 훈련으로 분류되어 있어서 거기 기준을 따라야 하거든. 훈련 기준에 못 맞추면 수업 폐기하는 건 알지? 이거 훈련반 폐기되는 거 다 기록에 남아. 한번 이런 거 기록에 남으면 두고두고 인사 평가에 영향을 준다고. 나중에 만회하려면 얼마나 힘들어지는데.”
실전을 목표로 하는 전투 훈련은 최소 1년에 1회 이상 성과를 내야 유지할 수 있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그 기준은 훈련이 시작된 이후가 아니고 한 해가 시작되는 순간부터다. 그러니까 해가 넘어가면 끝이라는 거다.
‘그래서 이런 훈련 일정은 웬만해선 다들 연초에 만드는데 난 아니니까……’
게다가 올해가 이제 두 달도 안 남았는데 고민이 크다.
얘들은 전투 감각이 훈련을 안 받은 일반인 수준인데 협회에서는 이능을 쓰지 않아도 전투가 가능한 병기를 원하고…….
괴수는 동면기라서 그쪽 임무는 비수기다. 만만한 임무를 골라서 하고 싶어도 임무 자체가 없으니 출동 자체가 어려웠다.
하지만 곧 훌리건 시즌이니, 내키지 않지만, 그쪽 임무를 하는 수밖에 없겠다.
‘괴수보다 훌리건이 더 꺼림칙하지만…… 어쩔 수 없지. 괴수보다 상대하긴 만만하니까.’
애들이 현장 감각을 익히는 걸 우선으로 돌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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