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내가 키우게 된 S급들 (5)
음식이 나오고 나서 우진이는 더욱 신기해했다. 진짜 육회가 나올 줄은 몰랐다며 먹지는 않고 한참을 뒤적거리고 살펴보더니 이게 무슨 고기인지 물었다. 왜 물어보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난 친절하게 대답해 줬다.
“설명하자면 좀 복잡하긴 한데 진짜 쇠고기랑 비슷한 거예요. 먹어도 괜찮으니까 좀 드세요.”
“소랑 비슷한 괴물의 고기인가요?”
“……저희도 괴수를 잡아먹지는 않아요. 아직 괴수를 가축화하는 데 성공하지도 않았고요. 협회에서 제공하는 고기는 인공 고기예요. 쇠고기랑 돼지고기를 최대한 비슷하게 흉내 냈으니까 안심하고 드세요.”
뭐야, 질문이 왜 저래?
우진이는 협회 사람들이 괴수 고기를 먹는 줄 알았던 걸까?
이젠 농장도 없고 소랑 돼지도 멸종 위기종이긴 하지만 우리도 괴수를 잡아먹지 않아! 눈앞에서 사람 잡아먹고 죽이는 애들을 굳이 잡아먹지는 않는다고.
나는 이 고기가 괴수의 살점이 아니라고 열심히 설명했지만 우진이는 시선을 피했다. 아마도 이게 괴수 고기가 아니라는 말을 안 믿는 것 같다.
결국, 우진이는 몇 번이고 뒤적거리다가 먹는 시늉을 하더니 소화를 못 할 것 같아서 못 먹겠다고 했다.
‘못 먹겠으면 왜 시킨 거람?’
나는 속으로만 투덜거리고 내가 시킨 메뉴에 있는 연두부랑 육회를 바꿔 줬다.
의료 센터에서 주는 고기도 다 인공 고기였는데 조리된 거라 그동안은 신경이 안 쓰였던 걸까?
아무튼 우진이가 굶는 건 아니니까 됐다.
돈가스를 시켰던 장하나가 육회도 먹어 보고 싶다며 바꿔 먹길 요구하는 바람에 음식도 나눠 먹었다.
어른용 젓가락으로 돈가스를 꼬챙이처럼 찍어서 열심히 먹는 우린이의 모습을 보고 있었더니 갑자기 그동안 잊고 있었던 게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얘 신원 미등록자 아닌가?’
보호자가 있는 14세 미만 어린이는 직접 신원 등록을 할 수 없고 오로지 보호자를 통해서 등록할 수 있다.
우린이가 협회에서 한 달 넘게 난민으로서 지냈지만 얘는 공식 기록상에선 없는 사람이나 마찬가지란 거다.
이 이야기를 듣게 된 우진이는 깜짝 놀라더니 지금 바로 우린이 신원 등록을 하러 가겠다고 했다.
‘사실 등록해도 바뀌는 건 별로 없는데, 이 얘기도 해 줄까?’
그리고 우린이는 아직 음식을 반도 안 먹었는데…….
일단 밥부터 마저 먹자고 하니 우진이도 그러겠다고 한다.
우진이는 깨작거리면서 식사를 마치고 나에게 신원 등록은 어디서 하는지 물었다. 나는 기본적인 행정 업무는 전부 중앙 센터에서 한다고 대답하고 같이 가 주겠다고 했다.
그렇게 우리는 S급 청소년들과 헤어지고 중앙 센터로 향했다.
***
바깥에서 오랫동안 지낸 사람들은 날짜와 시간을 잊고 지내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달력은 6년 전부터 새로 갱신된 적이 없고 시계는 건전지가 닳으면, 더 이상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진이는 바깥에서 지내는 동안 날짜와 시간을 잊고 지내지 않았는지 우린이의 생일과 태어난 시간까지 알고 있었다.
‘우린이는 게이트 브레이크가 일어나고 거의 1년이 지나서 태어났을 텐데 신기하네.’
덕분에 우린이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신분증이 생겼다.
간이 증명 사진을 찍고 곧바로 사진이 그려진 신분증이 출력되었다. 우린이는 자신의 신분증을 들고 매우 기뻐하며 중앙 센터 로비를 뛰어다니면서 사람들에게 자랑을 했다.
하지만 우린이는 아직 미성년자라 3년마다 새로 갱신해야 했다. 그리고 저 신분증으로 출입 가능한 구역이 생긴 것도 아니라서 실생활은 지금이랑 전혀 달라질 것이 없을 거다.
그래도 우진이는 우린이에게 사회의 구성원이라는 증표가 생겨서 그런 건지 아주 기뻐했다.
저렇게 좋아하는 남매의 모습을 보니 문득 다운타운에 가면 더 좋아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충동적으로 우진이에게 제안했다.
“우진 씨. 저녁에 시간 되시면 다운타운 갈래요?”
“다운타운이라뇨? 근처에 번화가라도 있어요?”
“협회 근처에 민간인들이 협회의 보호를 받으며 모여 사는 지구가 있어요. 꽤 넓고 사람도 많은 데다가 협회원들도 자주 오가다 보니까 상점들이 생겨났거든요. 옛날의 번화가만큼은 못해도 있을 건 다 있으니까 가 보면 재밌을 거예요.”
“그럼 지금 가 보죠.”
우진이는 내 손목을 잡아끌면서 안내를 부탁했다. 나야 당장 가도 상관없긴 한데, 교육생은 점심시간 끝나고 저녁때까지 교육이 있지 않나요?
저돌적인 우진이의 모습에 조금 놀라서 나는 우진이의 스케줄을 물어봤다.
그렇지만 우진이는 내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오히려 나에게 바쁜 거냐고 물어보며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나는 저 슬픈 표정을 풀어 주고 싶어서 재빨리 대답했다.
“하나도 안 바빠!”
나는 당연히 우진이랑 나갈 준비가 되어 있다.
***
나는 조수석에는 우진이를 태우고 뒷좌석에는 우린이를 태운 뒤 다운타운으로 차를 몰았다.
어쩌다 보니 우진이가 수업 땡땡이치는 걸 돕게 돼서 얼떨떨한데 우진이는 다른 의미에서 이 상황을 나보다 더 신기해하는 듯했다.
내가 차를 갖고 있다는 것에 놀라고 운전하는 것에 놀라던 우진이는 10여 분간 달리는 차 밖 풍경을 열심히 구경했다.
한창 창밖을 내다보던 우진이가 내게 질문했다.
“이곳 사람들은 다들 자차가 있나요?”
“교육 끝난 사람들은 협회에서 사거나 아니면 임무 수행을 하다가 주워 온 걸 개조해서 써요. 이젠 주유는 힘드니까 전기차를 쓰거든요. 우진 씨도 임무 수행하다가 맘에 드는 차 주워 오시면 개조해서 쓰세요. 전 그냥 협회에서 파는 차량 샀는데 다들 개조한 차가 더 편하고 좋다더라고요.”
말없이 창밖만 보던 우진이가 말을 걸어 줘서 나는 성심성의껏 대답했다. 우진이랑 얘기를 많이 오래 하고 싶기도 했고 말이다.
우진이는 자동차를 마지막으로 보았던 게 5년 전이라고 하고 타 본 건 더 오랜만이라고 한다. 그래서 내 차를 보고 신기해했나 보다.
하긴 아는 것들이라도 오랫동안 못 보다가 보게 되니 생경할 것이다.
우진이와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두런두런 나누다 보니, 무작정이긴 하지만 함께 다운타운에 나오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우리는 거리로 나왔다.
점심시간이 지난 한낮이라 그런지 거리는 한산했다. 나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우진이를 붙잡고 가 보고 싶은 곳이 있는지 물어봤다.
우진이는 나랑 다르게 게이트 브레이크 전에는 자유롭게 번화가를 다녔을 테니 하고 싶은 게 있을 것 같았다.
여기는 영화관도 있고 게임방도 있고 카페도 있고 노래방도 있고 나름대로 유흥거리는 다 있다.
비록 조경을 못 꾸며서 공원 같은 건 없지만 그래도 문명의 유흥은 즐길 수 있다고. 이런 유흥거리에 익숙했던 사람은 분명 하고 싶은 게 있을 것이다.
‘우진이는 뭘 하고 놀고 싶어 할까?’
우진이는 나랑 나이도 얼마 차이 나지 않으니까 게이트 브레이크 이전에는 청소년이었겠지? 어린 우진이는 뭘 하고 놀았을까? 혼자서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대답을 기다리는데 우진이는 뜬금없는 질문을 던졌다.
“저랑 우린이가 있던 곳은 분명 아현이었을 텐데 여긴 어디인가요?”
어…… 너무 의외의 질문이라서 할 말을 잃었다.
갑자기 그런 건 왜 물어보는 거지? 대꾸는 못 했지만 내 표정에서 당황한 게 드러났는지 우진이는 말을 이었다.
“이곳 건물들이 다 처음 보는 것들이라서요. 저랑 우린이를 금방 옮겨온 걸 보면 분명 근처일 텐데 짐작이 안 되네요. 그래도 주변에 멀리 보이는 큰 건물이라도 보면 알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하긴 다 무너졌겠죠. 괴물들이 그렇게 많이 휩쓸고 지나갔는데.”
우진이는 말을 하다가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하긴 이 근처는 괴수들이 집중적으로 공격했던 장소라서 대부분이 파괴되었지.’
나는 과거를 회상하며 슬퍼하는 우진이에게 이 지구의 옛 이름을 알려 주며 위로해 주고 싶었지만 할 수가 없었다.
나는 이 동네의 옛 이름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도 협회가 있는 터가 원래 궁이 있던 곳이라는 얘긴 들었는데 동네 이름은 모른다.
슬픈 과거가 있어도 현재는 웃을 수도 있는 거 아니겠는가.
나는 별다른 의견이 없는 우진이랑 우린이를 데리고 VR 게임을 하러 갔다.
아무 생각도 안 나게 하는 데는 시청각적 자극이 최고니까. 암울한 현실을 잊을 수 있는 환상의 나라를 갔다 오면 가라앉은 분위기도 살아날 것이다.
***
내가 한 가지 간과한 게 있었다. 미디어 매체로 즐거우려면 그것으로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을.
VR을 처음 접해 보는 우린이가 기계를 낯설어 해서 난항을 겪을 줄 알았으나, 우진이가 먼저 시범을 보여 주니 우린이는 거부감 없이 같이 했다.
나는 가장 인기 있다는 이유만으로 별다른 설명을 듣지 않고 게임을 골랐다.
가장 인기가 많다는 건 대중적인 취향을 관통한다는 뜻이니까 재밌게 즐길 수 있을 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그 내용물을 까 보기 전까지는.
다같이 VR 헤드셋을 쓰고 오프닝 타이틀을 볼 때까지는 이게 그런 게임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제목이 ‘생존의 오디세이’였고 군용 비행기를 타며 하늘로 솟구치며 시작하긴 했지만 그저 군용 게임이라고 생각했다.
가상현실의 우리는 군용 비행기를 타고 가다 웬 폐허에 착륙했다.
그리고 폐허 앞에서 우리를 기다리던 도우미에게 총을 받고 피투성이인 부상자들 틈을 지나 이동했다.
도우미를 따라 안에 불을 피운 드럼통들 사이를 지나니 철조망이 나타났다.
도우미는 우리에게 이곳에서 망을 봐 달라고 부탁했다.
철조망 앞에서 보초를 서자, 돌연 큰 소리가 나더니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덜컹. 덜컹. 덜컹!
철조망에 들러붙어 우리를 노리는 건, 살이 썩어 가고 있는 좀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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