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
***
어느 순간 차창 밖 풍경이 익숙하게 느껴졌다.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던 호성은, 한 박자 늦게 그 이유를 깨달았다.
이곳은 우영찬의 집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설마 싶었는데, 차는 정말 우영찬이 사는 아파트 단지로 들어갔다. 노원이 작년에 이사한 건 알고 있었지만 어느 아파트인지까지는 깜빡 잊어버렸던 터다. 그런데 노원과 우영찬이 이웃 주민이라니. 이제야 알게 된 놀라운 우연이었다.
얼마지 않아 기사가 지하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한호성은 그에게 꾸벅 인사하고는 차에서 내렸다.
‘103동이니까…… 저기구나.’
우영찬네와 동은 다르지만, 같은 아파트인지라 엘리베이터 사용법이 익숙했다. 한호성은 보안 확인을 거친 후 엘리베이터를 탔다.
소리 없이 움직인 엘리베이터가 17층에 도착했다. 호성은 노원의 집을 찾아 벨을 눌렀다.
“어서 와!”
문이 벌컥 열리더니, 반가운 얼굴이 드러났다.
“잘 지냈어?”
“응. 일단 들어와서 얘기해. 아직 저녁 안 먹었지?”
노원이 앞장서며 말했다. 이제 막 만났는데 뭐가 그리 급한지, 다이닝 룸으로 향하는 걸음이 빠르기도 했다. 그만큼 흥분한 듯싶어 한호성도 덩달아 들떴다.
“와, 뭘 이렇게 많이 준비했어? 레스토랑을 통째로 옮겨 온 것 같다.”
“맞아. 레스토랑에서 주문한 거니까.”
과연, 플레이팅부터가 일반적인 가정집 수준이 아니었다. 한호성은 상차림에 감탄하며 자리에 앉았다. 노원이 마주 앉으며 말했다.
“이 레스토랑, 전망이 예뻐. 가서 식사했어도 좋았을 텐데.”
“너희 집도 분위기 좋은걸. 참, 이건 집들이 선물.”
“아, 뭐 이런 걸 다. 고마워.”
남의 집에 맨손으로 오기 뭣해 급하게 준비한 와인이었다. 와인에 대해 잘은 몰라 노원의 입맛에 맞을지 자신할 순 없었지만, 멤버 중 가장 미각이 예민한 문해일의 추천이니 괜찮을 듯싶었다.
“먹자.”
노원이 식기를 들었다.
화사한 조명 불빛이 식기에 부딪히며 편린을 흩뿌렸다. 그 덕분일까, 반사판을 댄 것도 아닌데 노원의 낯이 환해 보였다. 한호성은 내심 감탄했다.
‘레스토랑 전망 부럽지 않은데.’
리버 뷰, 오션 뷰, 마운틴 뷰 못지않은 노원 뷰이다. 정석적인 미남인 그와 마주 앉아 있으려니, 남신과 함께 식사하는 듯한 황송한 기분마저 들었다.
그때 노원이 말했다.
“너, 얼굴 좋아 보인다.”
“내가?”
“응. 뭐랄까, 표정이 편해 보여.”
한호성은 제 뺨을 살짝 만져보았다. 그래 봤자 손가락에 눈이 달린 건 아닌지라, 제 표정이 정말 편해 보이는지는 알 수 없었다.
“오랜만에 만나서 그렇게 느껴지는 거 아닐까?”
“아냐. 한 번 봐 봐.”
노원이 핸드폰을 꺼내더니 카메라를 켰다. 전면 카메라로 전환하자, 액정 가득 한호성의 얼굴이 비쳤다. 호성은 새삼스럽게 제 얼굴을 살펴보았다.
확실히, 표정이 나빠 보이지 않는다. 얼굴이 평소보다 환한 것도 같다. 하지만 조명이 워낙 화려한 덕분 아닐까.
“너희 집 조명 정말 예쁘다.”
“그렇지? 인테리어 할 때 가구보다 조명에 더 신경 썼거든. 아, 우리 사진 찍자. 이 조명 아래서 찍으면 사진 진짜 잘 나와.”
핸드폰을 도로 가져간 노원이 긴 팔을 뻗었다. 한호성은 반사적으로 자세를 취했다. 찰칵찰칵찰칵, 셔터음이 잇달아 터졌다. 순식간에 열 장 남짓을 촬영한 노원이 핸드폰을 거뒀다.
“이따 SNS에 올려도 돼?”
“응, 마음대로 해.”
“사진 확인하지 않아도 괜찮겠어?”
“음, 뭐……. 네가 어련히 알아서 잘 나온 사진으로 골라 올릴 테니까.”
“알았어. 그럼 나만 믿어.”
노원이 짓궂게 웃었다. 얼굴은 여전히 잘생긴 왕자님 그 자체인데, 표정은 중학생 때 그대로였다. 그에 한호성은 비로소 연예인 노원이 아닌 친구 노원을 만난 듯한 기분이 들었다.
“호성아.”
“응?”
“나 다다음 달에 컴백해.”
한호성은 꿀꺽, 파스타를 삼켰다. 너는 컴백한다는 말을 무슨 결혼 소식 전하듯 하냐. 그런 말이 목구멍을 간질였지만, 농담할 분위기는 아니었다.
“그렇구나.”
“그냥 왠지, 너한테 제일 먼저 말하고 싶어서.”
그래서 밥 먹자고 한 거야, 라며 노원이 덧붙였다.
이런 이야기를 들었을 때 가장 좋은 대답은 바로 축복이다. 한호성은 진지하게 말했다.
“다음 앨범도 잘될 거야. 네가 참여한 앨범인데 어련하겠어.”
“다들 그렇게 말하긴 하더라고.”
공식적으로 발표된 건 없지만 오버 더 리밋의 컴백에 관련한 소문은 무성했다.
10월에 컴백한다, 12월에 컴백할 가능성이 높다, 올해는 건너뛰고 내년 초에 신곡을 발표할 것이다. 오버 더 리밋이 잘하는 파워풀한 곡이리란 추측부터 해외 팬의 취향에 맞춘 컨셉추얼한 앨범이리란 이야기까지.
소문의 내용은 제각각이었으나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오버 더 리밋의 새 앨범도 대단히 성공하리란 예측이었다.
“근데 난 자신 없어.”
대수롭지 않은 투였다. 그러나 한호성은, 노원이 자신을 초대한 진짜 이유는 이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임을 깨달았다.
“모두 그러더라. 잘될 거라고. 그런데 난 솔직히 무서워. 잘 안될 것 같아서.”
“…….”
“여기서 추락하면 엄청 아프겠지.”
노원이 씁쓸히 중얼거렸다.
더 나은 결과를 내야 한다는 부담감이라면 한호성도 익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노원의 고민은 한호성의 그것과 층위가 달랐다. 3층에서 추락하는 것보다 30층에서 추락하는 게 훨씬 치명적이라는 건 당연한 상식이니까. 그리고 설령 추락할지언정 30층까지 올라가 보기라도 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기에, 한호성은 노원에게 전적으로 공감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노원을 이해할 수는 있었다.
“원아, 너 추락할 일 없어.”
“…….”
“기대하는 사람이 많은 만큼 부담스럽겠다. 그래도 그 많은 사람이 네게 기대하는 건, 네가 더 잘하리라 믿기 때문이잖아. 실제로 넌 점점 더 발전할 사람이고.”
한편으로는 오죽 답답했으면 같은 멤버도 아닌 자신을 불러 고민을 토로할까 싶어, 노원에게 마음이 쓰였다. 그도 자신 못지않게 친구가 얼마 없음을 알고 있어서 더 그랬다.
“그리고 만에 하나라도 결과가 조금 부진하면 어때. 너만은 네 노력을 알잖아. 그렇지?”
“……응.”
“솔직히 나도 이런 말에 위로받는 성격은 아니긴 한데……. 그래도 가끔은 이거면 되는 게 아닌가 싶어. 내가 열심히 했음을 인정해 주는 거.”
때때로 자신조차 위안하지 못한 말이 노원의 가슴에 닿을지는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호성은 요즘 들어 부쩍, 결과와 관계없이 과정을 인정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노원도 머리로는 알고 있을 것을, 한호성은 진심을 담아 말했다.
“혹시 컴백 준비하면서 힘든 거 있으면 나한테 얼마든지 얘기해. 내가 해결은 못 해 줄지언정 얼마든지 들어 줄 테니까.”
“……고마워.”
“빈말 아닌 거 알지?”
“당연하지.”
약한 모습을 보인 게 머쓱한지, 노원이 공연히 너스레를 부렸다.
“하긴. 너나 나나 고꾸라져 봤자 그때만큼 힘들겠어.”
“맞아……. 그건 그래.”
한호성은 하하, 해탈한 사람처럼 웃었다. 플레임스타가 스캔들에 휩쓸렸던 당시엔 무진 괴로워 그저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는데, 이젠 그 일을 농담처럼 말할 수도 있었다. 시간이 약이란 말이 맞는 듯싶었다.
“아쉽다. 그때 그 일만 아니었어도 계속 같이 활동할 수 있었을 텐데.”
“왜, 혹시 지금 멤버들이 속 썩이기라도 하는 거야?”
“그건 아니긴 한데……. 중학교 내내 같은 반이었던 친구랑 다른 고등학교로 배정받은 기분이란 말이야.”
“학교가 달라진다고 해서 친구가 아니게 되는 건 아니잖아.”
“그래도. 예전만큼 자주 볼 순 없잖아.”
노원이 투덜거렸다. 엄밀히 따지자면, 주로 노원이 바쁜 탓에 자주 만나지 못한 건데 말이다. 한호성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너만 괜찮다면 자주 올게.”
“정말?”
“응. 안 그래도 이 근처 자주 지나다닐 것 같거든…….”
한호성은 우영찬을 떠올리며 말끝을 흐렸다. 딱히 그의 집을 자주 방문할 예정은 없지만, 결국엔 그렇게 될 것 같다는 강렬한 예감이 들어서였다.
“잘 됐다. 그럼 시간 있으면 다음에 또 놀러 와.”
“그럴게.”
머릿속 우영찬이 대단한 배신이라도 당한 것처럼 씩씩거리는 중이다. 한호성은 애써 상상을 접었다. 아무리 우영찬이더라도 그렇게 친구 빼앗긴 어린아이처럼 굴진 않을 것이다…… 아마도.
***
막 노원의 집을 나선 참이었다.
주머니 속 핸드폰이 진동했다. 액정에 선명하게 찍힌 ‘우영찬’ 세 글자를 본 한호성은 혀를 내둘렀다.
“어떻게 딱 이 타이밍에 전화하지?”
CCTV로 자신을 지켜보고 있었다고 해도 믿을 만큼 절묘했다. 말도 안 되는 생각이지만 순간 오싹해, 한호성은 어깨를 살짝 떨었다. 그러는 중에도 핸드폰이 지이잉, 지이잉 끈질기게 울어 댔다.
“여보세요.”
-어디야.
전화를 받자마자 우영찬이 대뜸 물었다. 한호성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며 대답했다.
“가는 중이야.”
-차 보낼 테니 위치 알려 줘.
“괜찮아, 걸어갈 수 있는 거리니까.”
-한호성.
“진짜 괜찮다니까. 거의 다 왔어. 차에 시동 거는 시간이 더 오래 걸릴걸?”
-……너, 노원이란 놈이랑 뭐 했어.
우영찬의 본래 목소리는 상당한 저음이다. 거기에 언짢은 기색까지 서리자 위협이 따로 없었다.
한호성은 핸드폰을 쥔 손에 힘을 더했다. 한두 번도 아니고, 잘못한 것도 없이 추궁당하는 기분이 과히 유쾌하지 않았다.
“네가 알아서 뭐 하게?”
-질투하게.
한호성은 지끈거리는 이마를 짚었다.
“저녁 먹으면서 수다 떨었어. 집 구경도 하고.”
-그것만 한 거 아니잖아.
“아니, 대체 내가 뭘 했다고…….”
-사진 찍은 거 다 봤다.
“……어?”
띵,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한호성은 일단 걸음을 옮기며 물었다.
“무슨 사진. 너 설마 정말 아파트 CCTV라도 해킹한 거야?”
-뭐 하러 해킹씩이나 하냐. 온스타만 들어가도 볼 수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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