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스타 스위치 스캔들-83화 (83/123)

#83

“안 그래도 아까 뉴스 봤어. 지금은 집이야?”

-아니, 들어가는 중.

“그렇구나. 피곤하겠다, 가서 푹 쉬어야겠네.”

뉴스에 따르면, 공항에 팬이 몰려들어 무척 혼잡했다고 한다. 사람에 치이느라 지쳤을 법한데도 노원의 목소리는 쾌활했다.

-아무리 피곤해도 너랑 놀 체력은 있는데. 한호성, 혹시 시간 있어? 오랜만에 얼굴 보자. 응?

“오늘?”

-응, 저녁에. 밥이나 한 끼 먹자.

“아, 저녁…….”

노원과 만나면, 우영찬과 축하 파티를 못 하게 된다. 우영찬네 집에 가겠노라고 약속한 건 아니지만 어째 선약을 깨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혹시 스케줄 안 돼? 내가 너무 급하게 연락하긴 했지. 그런데 갑자기 시간이 난 거라서…….

“아냐, 오늘 저녁 괜찮아. 6시에 스케줄 끝날 예정이거든.”

한호성은 그리 대답하며 우영찬의 눈치를 흘긋 살폈다. 아니나 다를까 우영찬이 자신을 무시무시하게 노려보는 중이다. 제논인 상태라서 그나마 이 정도지, 우영찬 본인의 몸이었더라면 눈이 마주친 순간 심장이 졸아붙었을 터다.

-정말? 그럼 스케줄 마치고 우리 집으로 올래? 차는 내가 보낼게!

“응, 네가 편한 대로 해. 난 6시 이후라면 괜찮으니까…….”

부득, 이 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치아 건강에 해로울 듯싶은데 남의 몸으로 저래도 되나. 당연히 안 되겠지만 그리 말했다간 우영찬이 더욱 성낼 게 분명했다.

-좋아. 그럼 이따가 보자.

“그래. 저녁에.”

큭큭 목을 울려 웃는 웃음을 끝으로 통화가 종료되었다.

한호성은 슬그머니 핸드폰을 내렸다. 그러자마자 우영찬이 불쑥 캐물었다.

“누구야.”

“……예전에 같이 활동한 멤버.”

“노원이지.”

“아, 아니…… 으응.”

“아니라는 거야, 맞는다는 거야.”

“…….”

한호성은 묵비권을 행사했다. 하지만 상대는 남의 권리 따위 얼마든지 무시하는 우영찬이었다.

“현 멤버는 버리고 옛 멤버에게 가시겠다?”

“버리다니, 그런 게 아니라……. 원이 만난 지 워낙 오래되었거든. 얘랑 스케줄 맞추기 어려워서 기회 있을 때 봐둬야 한단 말이야.”

“어디서 만날 건데. 설마 그놈 집은 아니지?”

“어, 어떻게 알았어?”

우영찬의 눈매가 더욱 사나워졌다.

“내 집은 안 오면서 그놈 집은 가겠다고?”

“그냥 친구 집 놀러 가는 것뿐인데…….”

따지고 보면 자신이 미안해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우영찬 입장에선 서운할 만하다 싶었다. 그에게 고마운 것도 많겠다, 인간적인 호감도 있기에 섭섭하게 굴고 싶진 않았다.

“그, 그럼 나중에 너희 집 가도 돼? 너만 괜찮다면 오늘 밤도 좋고…….”

“몇 시에.”

“아마 열 시나 열한 시쯤. 안 된다면 다음에 갈게.”

“그냥 와.”

여전히 불만스러운 기색이었지만, 우영찬이 승낙했다. 한호성은 기세를 몰아 화제를 바꿨다.

“슬슬 나갈 준비 하자. 곧 영수 오겠다.”

오늘은 ‘덩민이 넝쿨째’라는 웹예능에 게스트로 출연할 예정이었다. 웬만한 아이돌 그룹이라면 한 번씩 출연하는 프로그램인데, 이번엔 드디어 하이파이브의 차례였다.

“덩민 씨 기억하지? 우리 ‘어른이 놀이터’ 촬영할 때 만난 분.”

“어, 그 야비하게 경기하던 남자.”

“그야 예능이니까 재미있게 하려고 그러신 거고. 아무튼 안면 있는 분이니까 덜 긴장될 거야.”

“난 긴장 따위 안 한다.”

“그야 그렇지만.”

예능감으로 따지자면 자신보다 나은 우영찬이니, 이번에도 잘 활약할 터였다. 한호성은 그에 대한 염려를 접으며 외출 준비를 마쳤다.

***

‘차라리 긴장하라고 할 걸 그랬나.’

‘덩민이 넝쿨째’를 촬영 후 노원의 집으로 향하는 차 안. 한호성은 뒤늦게 후회했다.

사실 우영찬이 실수한 건 없었다. 그는 촬영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을지언정, 입을 열 때마다 좌중을 폭소케 했다. 타고난 스타성을 십분 발휘한 것이다.

다만, 촬영 내내 한호성에게 치댄 게 문제였다.

‘이젠 친분을 과시할 필요도 없는데.’

제논과 자신의 불화설은 쏙 들어간 채였다. 그동안 생방송과 무대, 행사, 라이브 방송을 가리지 않고 보란 듯이 친분을 드러냈으니 당연한 결과다. 오히려 이젠 지나치게 친해 보이는 게 문제일 정도였다.

아니나 다를까, 프위터에 접속하자마자 심상찮은 프윗이 눈에 띄었다.

샴팡 @shampang_high

?? 핞젡 정말 비게퍼함? 좋긴 한데 갑자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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샴팡 @shampang_high

기대도 안햇는데 퍼먹여주니까 의심하면서도 일단 받아먹는 중(쪕쪕

‘비게퍼’란 ‘비즈니스 게이 퍼포먼스’의 줄임말이다. 실제로는 평범한 멤버 사이지만, RPS를 즐기는 특정 팬에게 인기를 얻기 위해 사귀는 듯이 구는 것이다.

한호성은 데뷔 이래 단 한 번도 비게퍼를 시도한 적 없었다. 어차피 비게퍼를 해 봤자 유의미하게 인기가 올라가진 않으니 말이다. 게다가 자신은 원체 연기를 못하는지라, 다른 멤버와 사귀는 척해 봤자 망신살이나 뻗칠 터였다.

그런데 난데없는 비게퍼 의심이라니.

“휴…….”

딱히 기분이 나쁜 건 아니었지만 심란했다. 우영찬의 행동이 ‘퍼포먼스’가 아니란 걸 아는 까닭이었다.

‘설마 눈치챈 사람이 있는 건 아니겠지.’

아닐 걸 알면서도 괜한 걱정이 들었다. 확인차 스크롤을 내리자, 다행히 타임라인은 화기애애하기만 했다.

캐솔린 @zothffls

사진 봐서 알고 있었지만 역시 캠핑 다녀왔구나ㅎㅎㅎ 27분짜리 영상 넘 좋은♡

푯 @phyottt_

제논이 하도 형형형형 부르고 다녀서 호성이 귀에 딱지 앉았을듯ㅋㅋㅋㅋㅋ

블랑슈크레 @blanc_sucre42

컨트롤웅앵 논란이 얼마나 개소린지 새삼 알겠다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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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랑슈크레 @blanc_sucre42

제논 컨트롤이 1도 안 되고 있는데 지금ㅋㅋㅋㅋㅋ

나의작고검은아기고영 @jaenon_the_kitty

에... 우리 애가 갑자기 멍뭉이가 되어버렸는데...? 나 닉네임 바꿔야 하는 건가...

왜 오늘따라 제논과 자신을 엮는 사람이 많이 보이는지 알 것 같았다. 얼마 전에 다녀온 캠프 브이로그 영상이 하이파이브의 위튜브 채널에 업로드된 것이다.

쓰알기원 @SSS__please

엥? 저걸 도전한다고? 20%면 확정이나 다름없는 거 아님?

˪핫트 @hotandheart

님 가챠겜하죠

529 @fti529

아ㅋㅋㅋㅋㅠ 우리 사슴 땡초 걸렸다 어쩜좋앜ㅋㅋㅋㅋㅋ 입술까지 통통하게 부었네 호성한텐 미안한데 명란젓 같아서 귀엽다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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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9 @fti529

헐 아니 근데 하노성 챙겨주는 54번 대체 무엇.......? 무슨...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지요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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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9 @fti529

ㅁㅊ 얼음 먹여주는 거 개야해

“…….”

한호성은 차마 더 읽지 못하고 프위터를 꺼버렸다. 당시 우영찬의 행동이 카메라에 어떻게 비쳤는지 안 봐도 알 것 같았다.

피신하듯 위튜브에 들어가자, 비교적 차분한 댓글 창이 한호성을 맞아 주었다.

-하이파이브 사이좋아 보인다ㅎㅎㅎ

-근데 제논이랑 한호성은 수상할 정도로 사이좋은 것 같음

-오늘 브이로그는 힐링이다...♡ 활동도 좋지만 가끔은 이렇게 쉬는 모습도 보여주면 좋겠음ㅋㅋㅋ

-에궁 상금이라고 해도 삼백만원밖에 안 되는데 캠핑에 다 썼겠네 내가 다 아깝ㅋㅋㅋ 뭐 돈이야 알아서 잘 벌겠지만서두

-해일이 구워준 고기 한 번만 먹으면 소원이 없겠다......

-영상 너무 예쁘다 나이트스위밍 뮤비의 연장선 같은 느낌ㅋㅋㅋㅋ

-제논이 말 안 듣는 강아지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 이 댓글에 좋아요

“음…….”

한호성은 침음했다.

그나마 위튜브에는 노골적인 RPS 언급은 없었다. 하지만 중간중간, 자신과 제논의 사이가 유난한 것 같다는 댓글이 보였다. 그야 우영찬이 그렇게나 자신에게 치댔으니, 눈에 띄는 게 당연할 터다.

‘얘를 정말 어쩌면 좋지.’

한호성은 핸드폰을 아예 꺼버리며 한숨을 폭 내쉬었다.

누군가에게 고백받은 경험이라면 많았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구애하는 상대는 처음이다. 그뿐이면 차라리 다행이지, 우영찬은 장소와 상황마저 가리지 않았다. 어린 편이라서 그런가, 아니면 천성인가. 그의 구애는 불꽃처럼 열렬했다.

한호성은 그 불꽃을 다루는 법을 알지 못했다.

우영찬이 싫냐고 자문하면 그건 아니다. 오히려 호성은 우영찬을 상당히 좋아했다. 그와 함께하면 재밌고, 의지가 되고, 마음이 편했다. 다만 연애 감정이 없을 뿐이었다.

‘앞으로도 사이좋게 지내고 싶은데.’

그게 욕심임을 모르지 않았다. 우영찬은 고백을 무를 기색이 없고, 자신은 그 고백을 받아 줄 생각이 없으니 어떻게 적당한 관계가 유지되겠는가.

이 또한 욕심이지만, 우영찬이 자신에 대한 마음을 접으면 좋겠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강아지처럼 치대는 우영찬이 사라지면 허할 것도 같았다.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인지…….’

한호성은 차창에 머리를 기댔다. 짙게 선팅된 창 너머로 가로등 불빛이 흐리게 보였다. 마치 초점을 어렴풋하게 만드는 보케 효과를 적용한 듯 몽환적인 풍경이었다.

‘……만약 내가 아이돌이 아니었더라면.’

우영찬의 고백을 받아들였을까? 수락까진 아니더라도 한 번쯤 고려는 해 봤을까.

문득 떠올린 의문에 대한 답은, 한호성 자신조차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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