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그렇지만 직접적으로 언급할진 몰랐는데.’
밖에서나 제논의 블로그가 우스갯거리지, 하이파이브 팬덤 내부에서는 아니었다. 좋아하는 그룹에 우스운 이미지가 덧씌워지길 바라는 팬은 없을 터였다. 제논 본인이 그 사건 때문에 상처받았다면 더더욱.
이런저런 이유로, 하이파이브 팬덤에선 문제의 블로그에 관한 화제를 반기지 않았다. 골치 아픈 문제를 눈앞에서 치워 버리듯 아예 언급하지 않는 이도 많았다. 한데 저 사람은 제논의 기분이 어지간히도 궁금했나 보다.
우영찬은 마이크를 잡은 손에 힘을 더했다.
“예. 처음 해킹 소식을 접했을 땐 정말 놀랐습니다.”
장내가 조용하게 가라앉았다. 단순히 제논의 말을 경청하기 위함이 아닌 듯, 무언가 아슬아슬한 긴장이 느껴졌다.
관객뿐이 아니었다. 등 뒤에서도 무시무시한 압력이 느껴졌다.
‘너 또 무슨 소리 하려고 그러냐.’
‘제발 헛소리하지 말고 연습한 대로만 해라.’
마치 초능력이라도 생긴 양, 하이파이브 멤버들의 속마음이 들렸다. 연습할 때와 사뭇 다른 제 답변에 다들 가슴을 졸이는 모양이었다.
하긴, 이해 못 할 바는 아니었다. 우영찬이 생각하기에도 자신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공이었으니.
“솔직히 조금은 속상했습니다. 이런 일은 처음이라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알 수 없었으니까요. 막막하고, 나 혼자 외딴섬에 떨어진 것 같은. 그런 기분이었습니다.”
우영찬은 무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눈이 부실 만큼 밝은 무대 조명. 자신을 향하는 수많은 눈동자와 카메라.
꿈에서와 같은 상황이었다. 만약 ‘나는 제논이 아닌 우영찬이다.’라고 외친다면 꿈에서처럼, 아니 그보다 더한 소란이 일 것이다.
“하지만 잘 생각해 보니, 저는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소중한 우리 멤버들과 함께였죠.”
우영찬은 살짝 뒤를 돌아보았다. 언뜻 본 멤버들은 경악한 표정을 숨기고자 안간힘 쓰는 중이었다. 모르는 사람은 모르겠지만, 본의 아니게 하이파이브와 부대끼고 산 우영찬에겐 다 보였다.
“제가 힘들어할 때 아무 말 없이 곁을 지켜 준 우리 멤버들…… 그리고 언제나 지켜보고 응원해 주시는 여러분. 덕분에 저 이제 괜찮습니다.”
고맙습니다, 하고 덧붙여 말하며 우영찬은 관객석을 향해 꾸벅 인사했다.
관객석에서 어어어어, 하는 호응이 돌아왔다. 아마 감동과 위로의 표현인 듯싶었다.
‘이 정도면 나쁘지 않겠지.’
우영찬은 아련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생각했다.
한호성의 팬은 그를 홍보할 때 성실함을 내세우곤 했다. ‘우리 애가 이렇게 열심히 해요, 오랫동안 아이돌 외길만 밟아 온 애예요, 중간에 안 좋은 사건도 있었지만 꿋꿋하게 이겨 냈어요.’ 그런 면모가 일종의 영업 포인트였다.
한 사람의 팬으로서, 우영찬도 같은 부분에 마음이 동했다. 가뜩이나 험한 길을 걸어온 자신의 아이돌에게 좋은 일만 있길 바랐다. 꿈속에서처럼 절망한 표정은 도저히 볼 수 없었다.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는 속담처럼, 그 일을 계기로 저도 더 단단한 사람이 된 것 같습니다. 저 이제 정말 괜찮으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감사합니다.”
우영찬은 다시금 고개를 꾸벅 숙여 보였다. 그러자 조금 전보다 더 격한 호응이 돌아왔다. 고개 한 번 숙이고 이런 반응이라니, 제법 수지가 맞았다.
“이야, 감동적인 답변이네요.”
MC가 자연스럽게 끼어들었다. 그가 유도하지 않았는데도 객석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무슨 감동적인 영화의 관객 같은 반응이었다.
그렇다면 자신은 감동 영화의 주연쯤 되는 걸까.
우영찬은 그에 걸맞게 잔잔한 미소를 띤 채 제자리로 돌아갔다.
***
“김제논, 진짜 사람이 바뀐 거야?”
쇼케이스가 끝나고 숙소로 돌아가는 밴 안. 이주진이 한껏 호들갑 떨며 앞 좌석으로 고개를 들이밀었다.
“바뀐 거 맞다고 몇 번 말하냐. 안 믿어도 상관없지만 그럴 거면 그만 물어봐라. 귀찮으니까.”
“와, 말하는 것 좀 봐. 이런 거 보면 진짜 제논 같기도 하고, 바뀐 제논 같기도 한데……. 그럼 아까는 대체 뭐야?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확확 바뀌어? 무슨 스위치 누르듯이!”
“그냥 했다.”
가뜩이나 피곤한데 질문 공세까지 받으니 정신없었다. 우영찬은 이주진의 질문을 대충 흘려 넘겼다.
“그러지 말고 말 좀 해 봐. 왜 갑자기 협조적으로 바뀌었어? 원래는 안 그랬잖아, 응?”
“…….”
사실 왜 그랬는지는 자신도 정확히 알 수 없었다.
한호성의 절망한 얼굴이 보고 싶지 않아 꺼낸 대답이었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구구절절하지 않아도 괜찮았을 것이다. 연습한 대로 깔끔하고 담백하게 대답했어도 아무런 문제 없었을 텐데, 자신은 왜 그렇게까지 열심히 말을 지어낸 걸까.
“말도 안 된다는 건 아는데 오늘은 제논이 다른 사람으로 보이더라. 이게 바로 팬들이 말하는 ‘스며들다’인가? 나 제논 컨셉질에 스며들었나 봐.”
“이주진, 들썩거리지 말고 얼른 안전벨트 매. 어쨌거나 잘 대답해서 다행이다. 논란 생길 만한 일도 전혀 없었고.”
설이태가 말했다. 그도 오늘 일이 의외였는지, 차분한 목소리에 놀라움이 묻어 있었다.
“무슨 심경의 변화야? 응?”
“그만 물어보라니까.”
“아, 왜. 김제논은 팬한텐 지극정성이면서 멤버한텐 차갑대요. 너무하다, 너무해. 멤버 나고 팬 났지 팬 나고 멤버 났나?”
이주진이 장난스럽게 우는 소릴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우영찬은 차창에 고개를 기댄 채 침묵했다. 진실만 이야기해도 믿질 않으니, 더 말을 섞을 필요 따윈 없었다.
***
샤워를 마친 후 머리카락까지 뽀송하게 말린 한호성은 침대에 털썩 쓰러졌다. 즐겁지만 피곤한 하루였다. 내일도 스케줄이 많아 얼른 자야 했으나, 그 전에 체크할 게 있었다.
‘반응이 어떠려나…….’
한호성은 핸드폰으로 음악 스트리밍 사이트에 접속했다. 설령 결과가 좋지 않아도 실망하지 않고자 각오하며. 그런 마음의 준비가 무색하게도 반가운 곡명이 눈에 띄었다.
100 / 여름, 찰칵!
“아, 해냈다.”
한호성은 멍하니 중얼거렸다.
곡을 발표한 지 채 24시간도 지나지 않아 일간 차트 순위 100위라니. 예전엔 아예 순위에조차 들지 못했는데, 참 비약적인 발전이었다.
한호성은 주먹을 불끈 쥐고 기뻐했다. 그러고는 순위가 내려가기 전에 얼른 화면을 캡처했다. 그동안은 성적이 지지부진해서 드러낼 기회가 없었을 뿐이지, 사실 성적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는 그였다.
‘쇼케이스 반응은 어떨까.’
한호성은 ‘여름, 찰칵!’을 재생하고서 프위터에 들어갔다. 물론 하이파이브 공식 계정이 아닌, 한호성의 비공개 계정 중 하나였다.
프위터에 가입한 지 한 달도 안 된 우영찬과 달리, 한호성은 프위터 사용 연차가 데뷔 연차에 맞먹었다. 웬만한 팬보다도 프위터 생리에 익숙한 그였다. 자신의 개인 팬은 물론 멤버별 개인 팬에, 네임드 계정까지 모조리 팔로우한 지 오래였다. 심지어는 안티 팬만 모아 팔로우한 계정도 따로 있을 정도였다.
한호성은 능숙하게 타임라인을 훑어 내렸다.
소행성 @sohangsung1234
우리집 동태가 생태로 변한 건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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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행성 @sohangsung1234
동태탕 끓이려고 냉동고 문 열었는데 동태가 윙크해도 이보다 당황스럽진 않을 듯
네모초콜렛 @nemo_chococo
논제 초심 잃음? 데뷔 때부터 한결같던 그 압도적 동태눈깔 어디간거임?
아늑 @cozyday123
엠파이어킴 진짜 벼락맞은 거 아니야??? 그게 아니고선 훼까닥 바뀐 게 말이 안되잖아
˪치툐스 @chetoswhsakt
(jpg.)
소속사가 빡세게 잡았다기엔 멤버들도 띠용한 표정이던데.. 특히 문쓰나미는 진짜로 놀란 것 같았음
한호성은 프윗에 첨부된 사진을 보며 쓴웃음 지었다. 자신을 포함한 네 명의 경악이 적나라하게 포착된 사진이었다. 나름대로 표정을 잘 숨겼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보다.
치툐스 @chetoswhsakt
근데 그 질문 너무 예의 없지 않음? 진짜 걱정해서 물어보는 건지 음습하게 돌려까는 건지 모르겠넴
˪아늑 @cozyday123
그니까... 상식적으로 자기 비밀 블로그 다 털렸는데 기분 좋겠냐고;
˪치툐스 @chetoswhsakt
내가 볼땐 일부러 멕인 거 맞음ㅋㅋㅋㅋ 선의였다면 눈치가 뒤진거고
문제의 질문을 던진 팬에 대한 욕도 간간이 보였다. 한호성은 그런 프윗은 그냥 넘겨 버렸다. 다행히 ‘제논’에 대한 반응은 대체로 좋았다.
큐로밍 @QQQ_roming_
이제라도 정신 차린 것 같아서 다행이다ㅎㅎ 솔직히 그동안 입덕장벽멤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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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로밍 @QQQ_roming_
부디 초심 되찾지 마시고 이 자세 끝까지 유지하길! 아니 많이는 안 바라고 당분간만 유지해줘도 너무 좋겠당!^^
김졔논한테왜제국없어¿ @t0theempire
느그돌만 귀한 거 아니고 우리애한테도 팬 있어요~~~ 이때싶 입덕장벽멤 ㅇㅈㄹ 진짜 입덕장벽이 뭔지알아?? 수시로 한처먹고 유난 오지는 ‘그 멤’ 갠팬들임ㅋㅋㅋㅋㅋ
나의작고검은아기고영 @jaenon_the_kitty
제논ㅠㅠ 그동안 마음고생 많이 했을 텐데 더 성숙해져서 돌아왔구나ㅠㅠㅠ 기특해
쌀빵 @rice___ppang
아는 사람은 다 알겠지만 제논은 표현이 서투를 뿐 생각도 깊고 다정한 성격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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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빵 @rice___ppang
오늘이 특이한 경우였던 게 아니라 원래 그런 아이였으니까 이걸로 헛소리하는 사람 보이면 블락할게요
오늘봄 @5today_spring
멤버들끼리 끈끈한 모습 보니까 좋다ㅎㅎㅎ 제논은 한동안 라방에도 잘 안 나와서 무슨 일 있나 싶었는데 이게 웬일?
“……그러게.”
한호성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정말 웬일일까.
자신이야말로 궁금했다. 대체 무슨 바람이 불어 우영찬이 그런 100점짜리 모범 답을 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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