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심경의 변화라도 있었나?’
누구보다 우영찬의 사정을 잘 아는 자신이지만, 그 심리까지는 도무지 모르겠다.
그나마 짚이는 건 자신과의 약속이었다. ‘빙의 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진 제논 역할을 해 준다.’ 그리 약속했으니 지키는 것일 터다.
하지만 그걸 고려하더라도 기대 이상으로 열심이지 않은가?
한호성이 보아 온 우영찬은 고집 세고, 자존심 강하고, 아이돌 활동에 전혀 관심 없는 성격이었다. 실제로 초반엔 하기 싫은 기색을 그대로 드러내며 연습에 참여하지 않았던가.
‘어, 그러고 보니 어느 순간부터 열심히 한 것 같은데…….’
무엇이 계기였는지 도통 모르겠다. 호성은 고개를 갸웃했다.
때마침 똑똑, 문 두드리는 소리가 울렸다. 한호성은 반갑게 말했다.
“들어와.”
문이 열리고 우영찬이 들어왔다. 막 샤워를 마쳐 물기 어린 모습이었다. 그가 제 침대를 향해 저벅저벅 걸어갔다.
“영찬아.”
“왜.”
“아까 Q&A 때 말이야, 왜 그렇게 대답한 거야?”
저 혼자 추측하기보다 당사자에게 묻는 게 정확할 터다. 단도직입적으로 묻자 우영찬이 눈썹을 살포시 찌푸렸다.
“너까지 그거 물어보냐?”
“따지려는 게 아니라 그냥 궁금해서. 솔직히 너 원래…….”
‘그렇게 착한 편은 아니잖아.’ 하는 뒷말이 쏙 들어갔다. 방금 본 프윗이 생각난 까닭이었다.
누군가가 제논더러 ‘표현이 서투를 뿐 생각도 깊고 다정한 성격’이라고 했다. 우영찬은 제논이 아니지만, 어쩌면 우영찬의 본성이야말로 그런 게 아닐까?
생각해 보면 자신은 우영찬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었다. 만난 지 두 달도 안 됐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한데도 우영찬을 고집 센 성격이라고만 생각했다니. 자신의 편견을 깨달은 한호성은 부끄러워졌다.
“그냥.”
“어?”
“그냥 그렇게 대답했다.”
우영찬이 무뚝뚝이 말했다. 사실 그거면 충분할지도 모른다. 행동의 동기를 일일이 알아야 할 필요는 없을 터이니.
“그랬구나, 잘했어.”
“…….”
우영찬이 자신의 침대에 걸터앉으며 고개를 돌렸다. 자려나 보다, 싶었으나 그게 아니었다. 우영찬의 귀가 살짝 붉어진 채였다.
‘설마 부끄러워하는 건가?’
이거야말로 의외였다. 한호성은 무척 흥미로워하면서도, 그런 기색을 들키지 않도록 주의하며 우영찬을 관찰했다. 마치 경계심 많은 야생 동물을 상대하듯이.
우영찬의 표정이 잘 보이진 않았으나, 불쾌한 기색이 아님은 확실했다. 한호성은 시험 삼아 입을 열었다.
“오늘 무대도 너무 잘하더라. 너 무대 체질인가 봐. 보통은 연습할 때 잘했더라도 무대에 올라가면 실력의 80% 정도밖에 발휘하지 못하는데 넌 100%, 아니 120% 발휘했잖아.”
“……연습할 때도 그 정도는 했다.”
우영찬이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하지만 한호성은 분명 보았다. 슬며시 올라간 그의 입매를.
정말 부끄러워하는 게 맞는 모양이었다. 혹은 칭찬을 은근히 반기거나.
그런 우영찬이 귀여운 동생처럼 느껴져, 한호성은 웃음을 삼켰다. 하기야 우영찬이 동생이 맞기는 했다. ‘귀엽다’라는 형용사도 어느 정도 어울리는 성싶었다.
“너 의외로 이 일에 적성 맞는 거 아냐? 데뷔했어도 잘했을 것 같은데?”
작정하고 칭찬을 퍼붓자, 우영찬이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대꾸했다.
“그럴 리가. 대충 분위기에 맞춰 준 걸 갖고 무슨…….”
“그래도. 대충 분위기에 맞추는 것 하날 못해서 굴러 들어온 인기를 걷어찬 아이돌이 얼마나 많은데! 너 정도면 훌륭하지.”
“아니라니까.”
표정만큼이나 딱딱한 목소리였지만, 기분이 상해서가 아닐 것이다. 뿌듯한 기분을 숨기려다 보니 행동거지가 어색해졌을 뿐이다. 그래도 우영찬과 알고 지낸 게 하루 이틀은 아니라서인지, 이 정도는 훤히 들여다보였다.
‘의외로 알기 쉬운 성격이기도 하고.’
저렇게나 칭찬을 반기니 앞으로도 잘한 일이 있으면 꼬박꼬박 칭찬해 주어야겠다. 그리 다짐하며, 한호성은 침대에 편하게 누웠다.
“잘 준비 다 됐으면 어서 자자. 내일도 새벽에 일어나야 하니까.”
“또 새벽이냐?”
불만스레 중얼거리면서도 우영찬은 제 자리에 누웠다. 한호성은 스탠드 조도를 확 낮췄다. 침실이 어둑해지며, 아늑한 분위기로 바뀌었다.
눈을 감고 잠을 청할 때였다. 옆 침대에서 말을 걸어왔다.
“샤워하다 문득 든 생각인데.”
“응.”
“김제국은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
한호성은 대답할 수 없었다. 제논에게 우영찬이 빙의한 사실도 어렵사리 받아들인 그로선, 이보다 더한 오컬트 현상에 대해 상상하기 어려웠다.
“의식이 있을까, 아니면 없을까.”
“잘…… 모르겠어.”
“너희에게 연락하지 않는 걸 보면 의식이 없는 것 같지만, 의식이 있는데도 연락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지.”
“…….”
“어쨌거나 의식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고.”
이 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한 듯, 우영찬은 머뭇거리지 않고 말을 이었다.
“김제국이 언제까지 나인 척하면서 버틸 수 있을까?”
“응? 버티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생각해 봐. 김제국과 내 상황은 달라. 김제국에겐 가족도, 친구도 없지만 나는 있잖아.”
얄미운 말이지만 사실이기도 했다. 한호성은 무언의 수긍을 표했다.
“그런 상황에 놓인 나조차도 김제국인 척하는 게 쉽지 않다고. 단순히 아이돌 노릇이 힘들단 뜻이 아니다. 나름대로 김제국인 척해도 주위 사람은 위화감을 느끼니까.”
문득, 숙소로 돌아오는 밴 안에서 이주진이 한 말이 떠올랐다.
‘말도 안 된다는 건 아는데 오늘은 제논이 다른 사람으로 보이더라.’
농담이겠지만 정곡 그 자체였다.
문해일과 설이태도 말만 안 했다 뿐이지, 의아함을 느꼈을 터다. 그들의 머릿속에 강하게 뿌리내린 상식이 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도록 방해할 뿐이다.
하지만 만약 상대와 ‘같은 그룹 멤버’ 이상으로 친밀한 사이라면 어떨까.
“그러게. 가족이라면 눈치챌지도 모르겠다.”
“금방 들통날걸. 유년기에 있었던 에피소드나, 친척들을 기억하지 못한다면.”
“…….”
“기억 상실이라고 우기는 것도 한계가 있을 텐데. 우리 부모님이라면 당장 병원으로 끌고 가서 정밀 검사부터 시키실걸?”
“환자 본인의 동의 없는 강제 검사는 불가능하지 않아?”
“정말 그게 불가능할 거라고 생각해?”
어째 세상 물정 모르는 아이를 귀여워하는 투라, 한호성은 울컥했다. 하지만 대한민국 재계를 쥐락펴락하는 기업의 총수면 무슨 수가 있겠거니 생각하고 말았다.
“그래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뭐야. 제논이 너인 척하더라도 네 가족에게 금방 들통나리란 거?”
“무슨 결론을 정해 둔 이야기는 아니었고.”
우영찬은 잠시 침묵했다. 말하다 잠들었나, 싶을 정도의 시간이 흐른 후에야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내 몸은 지금 어떻게 되어 있을까?”
“…….”
“김제국이 내게 빙의했다면 차라리 다행인데 그냥 방치된 상태라면…….”
“괜찮아.”
한호성은 우영찬이 끔찍한 상황을 입에 담기 전에 얼른 끼어들었다.
“있잖아, 우리 좀 한가해지면 하와이 가자.”
“갑자기 웬 하와이?”
“네 몸 잘 있나 확인하러. 안 그래도 살면서 꼭 한 번은 가 보고 싶은 곳이었거든. 와이키키 비치에서 피냐콜라다 마시고 싶어.”
“……그게 목적이냐?”
우영찬이 어이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래도 무겁게 침잠하던 분위기가 조금이나마 가벼워졌다.
“난 김제국의 여권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데. 여권이야 찾거나 재발급받는다 쳐도, 내 별장에 들어가는 건 불가능할걸.”
“정말 그게 불가능할 거라고 생각해?”
우영찬의 말을 그대로 돌려주었다. 유치한 승리감에, 호성은 큭큭 웃었다.
“걱정하지 마. 어떻게든 방법이 있겠지.”
“……그래.”
“네 몸은 괜찮을 거야. 넌 꼭 네 몸을 되찾을 거고. 경험상 하는 소린데…… 간절히 바라는 일은 반드시 이루어지더라고.”
“…….”
진심 담은 위로가 우영찬의 마음에 닿았을는지 모를 일이다. 아무쪼록 우영찬의 영혼과 몸이 모두 평안하길, 한호성은 소원했다.
***
삐삐삐, 삐삐삐-.
단조로운 기계음이 울렸다. 알람이 세 번째로 울리기 직전, 한호성은 핸드폰을 잡았다.
반쯤 감은 눈으로 알람을 꺼 버리자마자 한호성은 음악 스트리밍 사이트에 들어갔다.
82 / 여름, 찰칵!
“어.”
순위를 보자마자 눈이 확 뜨였다. 한호성은 얼른 몸을 일으켰다. 이런 건 바른 자세로 경건하게 봐야만 한다.
“82위라고……?”
믿기지 않아 두 번, 세 번 확인해도 정말이었다. 한호성은 얼른 순위 화면을 캡처한 후 침대 밖으로 뛰쳐나갔다.
“영찬아! 우영찬!”
한호성은 기쁨에 겨운 나머지 자는 중인 우영찬을 붙잡고 마구 흔들었다. 그에 우영찬은 인상을 찌푸리며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왜. 벌써 5시냐?”
“어, 일어날 시간이기도 한데 그게 중요한 게 아냐. 봐, 우리 82위야, 지금!”
호성은 우영찬에게 핸드폰을 들이밀어 보였다. 우영찬은 가느스름히 뜬 눈으로 순위를 확인하더니, 멀뚱히 대답했다.
“……그래서 뭐?”
“‘그래서 뭐’라니? 너도 함께 이뤄 낸 성과잖아. 기쁘지 않아? 100위권 안에 들었는데?”
“아니, 이런 말 하기 좀 그렇지만 두 자릿수잖아. 세 손가락 안에 든 것도 아닌데 기뻐해야 하나?”
날아갈 듯 행복한 한호성에겐 우영찬의 지적 따위 아무렇지도 않았다. 애초에 음악 차트에 대해 잘 모른다면 그렇게 생각할 법도 했다.
“두 자릿수도 엄청 대단한 거야. 세상에 인기 많은 곡이 얼마나 많은데 그 틈바구니에서 82위란 거잖아.”
“그러냐.”
“응! 발매 다음 날 이런 순위인 것부터가 기적 같은 일인걸. 아, 다른 애들한테도 말해 줘야겠다.”
이럴 게 아니라 어서 모두에게 이 기쁜 소식을 전해야만 했다. 한호성은 자리를 박차고 방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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