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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인조 남자 아이돌 그룹 HIGH-5, 일명 하이파이브는 망한 아이돌이었다. 다만 현재는 기적처럼 떠오른 상태이다. 올 초, 아동 방송 프로그램에서 부른 동요 3종이 아무도 예상치 못하게 대박 난 덕분이었다.
제목은 각각 ‘치카치카송’, ‘냠냠쩝쩝송’, ‘안녕안녕송’.
이 곡들은 유행을 넘어 신드롬처럼 번졌다. 뮤비 영상이 각종 커뮤니티와 SNS를 휩쓸고, 유명 연예인이 패러디하고, 일반인도 앞다퉈 따라 한 것이다. 멜로디가 워낙 중독적이라 해외 커뮤니티까지 진출해 재미있는 밈(Meme)으로 자리매김했다.
처음으로 느껴 보는 성공은 아주 짜릿했고, 또 다른 성공으로 연계되었다. CF 제안이 줄줄이 들어오고, 예능 방송에서 출연을 제의받으며, 하이파이브의 기존 곡이 재발견되어 음원 차트를 역주행 중이기도 했다.
그러나 유행이란 흘러가기 마련이다. 누군가가 알려 주지 않아도, 하이파이브의 멤버 모두가 알고 있었다.
언뜻 인기 아이돌이 된 것 같지만 실은 아니란 사실을.
엄밀히 말해 인기를 끈 건 ‘하이파이브’ 자체가 아닌 동요였다. 동요의 인기가 사그라들면 자연히 하이파이브에 대한 관심도 사그라들 터였다.
반짝 화제 되고 묻히느냐, 이 기회를 디딤돌 삼아 레벨을 올리느냐. 이는 전적으로 앞으로의 활동에 달려 있다.
그렇게나 중요한 이 판국에, 제논이 기어이 사고를 친 것이다. 기억 상실증일지 자아의식 장애일지 숨겨진 의식이 깨어난 것일지는 몰라도, 얼른 원래대로 돌아오지 못하면 활동에 크나큰 차질이 생길 게 분명했다.
“다 됐어. 그냥 저 새끼 빼자.”
어수선한 침묵을 깨뜨린 건 문해일이었다. 그는 제논을 손가락질하며 비난했다.
“의욕도 없고 실력도 없고 하다못해 팀워크마저 없는 놈이야. 그래도 한 팀이라고 어찌어찌 다독여서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우리는 할 만큼 했어.”
“해일아.”
“형은 힘들지도 않아? 솔직히 난 힘들어. 사춘기 청소년보다 예민한 성격에 맞춰 주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벌써 사 년째잖아. 툭하면 울고, 기분 나쁜 티 팍팍 내고……. 그러더니 이젠 숙소에서 자살 시도까지 해? 저놈은 자신을 위해서라도 탈퇴하는 게 나아.”
부엌 한구석에 처박힌 제논이 무어라 소리쳤다. 그래 봤자 넥타이로 재갈이 물린 채라,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팀을 탈퇴하고 싶다는 말일까, 탈퇴하기 싫다는 말일까. 한호성이 생각하기에 지금으로선 어느 쪽이든 문제였다.
“애초에 저 새끼는 데뷔하면 안 됐어. 세상에 주목받는 걸 싫어하는 아이돌이 어딨어? 계속 적성에 안 맞는 일 하면서 여러 사람 괴롭힐 바엔 이제라도 다른 길로 나가는 게 낫잖아. 계약이라거나, 뭐 그런 복잡한 문제는 회사와 협의해야겠지만…….”
“이태는 어떻게 생각해?”
“탈퇴시킬 필요까지는 없지 않나.”
문해일이 설이태를 째려보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설이태는 묵묵히 말을 이었다.
“어쨌든 오늘 일이 외부에 알려진 건 아니잖아. 제논이 음주 운전이나 도박 같은 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니고.”
“그러니까 안고 가자고? 저런 폭탄을?”
문해일이 따지듯이 물었다. 설이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냉정히 생각해 봐. 제논이 탈퇴할 때의 이득보다, 활동할 때의 이득이 커.”
“그건 저 새끼가 제대로 활동할 경우지. 자기가 누구인지도 모르겠다는데 활동은커녕 일상생활이나 할 수 있겠냐고.”
“일단은 두고 봐야지. 제논이 예고도 없이 탈퇴하면 온갖 얘기가 나올걸, 안 좋은 방향으로. 그런 리스크를 굳이 감수할 필요는 없잖아.”
“……형은 어떻게 생각해?”
한호성에게로 시선이 쏠렸다. 멤버 탈퇴가 과반수 투표로 결정될 문제는 아닐 텐데, 마치 자신의 표에 결과가 달린 듯한 부담감이 들었다. 한호성은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며 말했다.
“그것부터 생각해야 할 것 같아.”
“뭘?”
“우리 이미 녹음 마쳤잖아.”
“…….”
“안무도 진작 완성됐고. 여기까지는 수정하면 된다 쳐도, 뮤비는 어떡해?”
야심 차게 준비한 7집 미니 앨범을 발매하기까지 한 달밖에 남지 않았다. 동요로 화제가 된 후 처음 발표하는 앨범이라, 그 어느 때보다 열심히 준비했다.
각 분야에서 최고인-즉 몸값도 최고인- 전문가들만 섭외했고 뮤비 촬영에도 상당한 돈을 썼다. 늘 예산이 부족한 소소리 엔터테인먼트답지 않은 과감한 투자였다.
‘이번에 망하면 두 번 다시 기회가 없을 텐데 어떡하지.’
모름지기 투자란 이익을 얻기 위함인데, 이대로라면 본전이나 건지면 다행일 것이다. 한호성은 스멀스멀 떠오르는 염려를 애써 내리누르며 말했다.
“그걸 전부 수정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해. 아예 다시 촬영하면 모를까.”
그제야 앨범 문제에 생각이 미치는지 문해일이 아랫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사실, 제논을 탈퇴시키기 어렵다는 것쯤은 그도 처음부터 알고 있었을 터다.
한호성은 문해일을 달래듯 말했다.
“우선 내가 제논과 대화해 볼게.”
“됐어. 말이 통하는 놈이 아니야.”
“그래도 시도는 해 봐야지.”
“또 난리 치면 어떡해?”
때마침 제논이 으르렁거렸다. 넥타이를 재갈처럼 물고, 쇠사슬에 칭칭 동여 매여 부엌 한구석에 처박힌 주제에 전혀 기죽지 않은 모습이다.
한호성은 심란한 눈빛으로 그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일단 입만 풀어 주자. 대화하는 데엔 입만 있으면 충분하니까.”
“……알았어.”
“그리고 너희는 자리 좀 비켜 줄래?”
“뭐?”
“괜찮겠어, 형?”
다들 못 들을 소리를 들은 것처럼 흠칫 놀랐다. 그에 한호성은 부러 의연하게 굴었다.
“괜찮아. 제논이 그래도 내 말은 잘 들어주는 편이잖아.”
“그나마 잘 들어준 게 저 모양이니까 문제지…….”
“잘 얘기해 볼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한호성이 생각하기에, 지금의 제논에겐 여러 사람과 소통할 여유가 없었다. 리더인 제가 총대를 메고 차근차근 이야기하는 편이 나을 듯싶었다.
무엇보다 한호성 자신이 알고 싶었다. 제논이 왜 자살을 시도했는지부터 현 상태가 어떠한지까지.
“……무슨 일 생기면 소리부터 질러. 바로 튀어나올 테니까.”
끝끝내 제논을 위험한 짐승 취급하며 문해일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설이태는 그를 데리고 부엌을 나섰다.
***
고요해진 부엌.
한호성은 제논의 앞에 낮은 의자를 두고 앉았다. 핏발 선 눈이 한호성을 올려다보았다. 재갈을 문 잇새로 씨근덕거리는 숨소리가 흘러나오는 중이다.
‘정말 악령이라도 씐 것 같네.’
어째 구마 사제가 된 듯한 기분이었다. 공포 영화를 보면 꼭, 이런 역할이 악령의 힘을 보여 주는 연출로서 가장 먼저 죽임당하는데 말이다.
다행히 한호성은 겁이 없는 편이었다. 그는 제논의 흘러내린 앞머리를 쓸어 올려 주며 말했다.
“제논아.”
“…….”
“답답하지?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할 수 없어서.”
누굴 놀리냐는 듯, 제논이 눈을 부릅떴다. 한호성은 그에 시선을 맞추며 차분히 말했다.
“아까처럼 소리 지르지 않는다고 약속하면 입은 풀어 줄게. 동의하면 고개 두 번 끄덕해.”
제논은 고집스럽게 굴었다. 고개를 끄덕이긴커녕 미동조차 하지 않은 것이다.
이대로 협상이 불발되나, 싶을 무렵에 이르러서야 그가 아주 작게 고갯짓했다. 유심히 보지 않았더라면 눈치채지 못했을 만한 움직임이었다.
“소리 안 지를 거지?”
“…….”
“조용히 할 거라고 믿을게. 그럼 푼다.”
한호성은 재갈의 매듭으로 손을 뻗었다. 밧줄도 아닌 넥타이로 어찌나 단단히 묶어 놨는지, 매듭이 쉬이 풀리지 않았다. 문해일은 대체 어디서 이런 기술을 익힌 걸까. 상황에 맞지 않은 궁금증이 잠깐 들었다.
“됐다.”
이윽고 재갈이 풀렸다. 염려와 달리, 제논은 입을 굳게 다물었다. 한호성을 탐색하려는 속셈인 듯싶었다.
“이것부터 물어보자. 왜 네가 ‘김제국’이 아니라고 생각한 거야?”
대화의 주도권을 넘겨준다면 오히려 좋았다. 한호성이 냉큼 묻자, 제논이 입을 열었다.
“……난 김제국이 아니니까.”
“그럼 뭔데?”
“우영찬.”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한호성이 아는 한, 아이돌 중엔 그런 이름이 없었다. 배우와 코미디언까지 연예계 전반으로 범위를 확대해도 마찬가지다.
‘제논이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의 이름인가? 아니면 아예 픽션인 캐릭터?’
나름대로 추측하며 한호성이 물었다.
“우영찬이 누군데?”
“존나 철학적이네. ‘나는 누구인가.’ 씨발.”
“왜 욕을 하고 그래?”
“넌 네가 누군지 설명하라면 할 수 있냐?”
죽을 뻔하다 살아나서 그런가, 사람이 완전히 바뀌었다. 늘 소심한 태도로 ‘형.’ 하고 불러 오던 제논이 아니었던가. 반면 지금은 말을 아주 자유분방하게 놓는다.
“날 모르겠어? 기억이 전혀 안 나?”
“기억이 나겠냐? 초면인데.”
“정말 모르나 보네. 알았어, 그럼 내 소개부터 할게. 난 한호성이야. 네가 속한 아이돌 그룹, 하이파이브의 리더고. 포지션은 메인보컬, 나이는 스물여섯…….”
“잠깐. 아이돌?”
제논이 툭 끼어들었다. 한호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응. 아이돌.”
“네가 아이돌이라고? 아까 그 새끼들도?”
“그렇다니까. 왜 그렇게 남 일처럼 얘기해? 너도 아이돌이면서.”
“정말 아이돌 맞냐? 방송에서 한 번도 본 적 없는데.”
제논이 아무렇지도 않게 비수를 던졌다. 따지고 보면 자폭이지만, 기억을 잃은 그로선 전혀 상처받지 않았을 터다. 하기야 기억을 잃기 전에도 제논은 인지도가 낮다는 이유로 속상해하는 성격은 아니었다.
“인기가 없으니까.”
제 입으로 인정하자니 새삼 속이 쓰렸다.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제논은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었다.
“그래 보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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