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마음 같아선 얄미운 주둥이를 한 대 찰싹 때려 주고 싶었다. 한호성은 치미는 화를 삭이며 말했다.
“내 소개는 다 했어. 이제 ‘우영찬’이 누구인지 얘기해 봐.”
“대학생. 2학년. 전공은 경영, 제대한 지 2주 됐고.”
제논이 툭툭 내뱉었다. 말하는 요소요소 제논과 딴판이었다. 그는 평범한 인문계 출신인 고졸자인 데다, 입대한 적조차 없으니 말이다. 애초에 그는 고아 사유로 병역 감면을 받은 바였다.
“생일은 8월 26일. 취미는 운동. 그중에서도 서핑과 수영을 가장 좋아한다.”
그 또한 잘못된 정보다. 제논은 2월 19일생이며, 운동에 전혀 취미가 없었으니까. 서핑과 수영은커녕 걷는 것조차 싫어하는 그였다.
꼬치꼬치 따지자면 끝도 없을 것 같았다. 그래도 말하다 보면 스스로 이상한 점을 깨달을 수 있을 듯싶어, 한호성은 잠자코 제논의 자기소개를 들었다.
“본가에서 레트리버와 진돗개 기르고 있고, 한국에 돌아가는 대로 고양이 입양하려고 생각 중이다. ……그런데 이거 어디까지 말해야 하냐?”
“‘한국에 돌아가는 대로’라고?”
“어.”
“넌 한국에 있잖아?”
제논이 답답해 미치겠다는 듯 숨을 거칠게 내쉬었다.
“하와이에 있었다.”
“……하와이라고.”
“그래. 정확히는 오아후섬에.”
제논의 주장에 따르면 이러했다.
자신, 그러니까 ‘우영찬’은 올해 5월에 제대했다고 한다. 2학기에 복학 예정이라 그 전까지 실컷 놀기 위해 하와이에 갔단다.
별장에서 지내며 수영하고, 바비큐 먹고, 서핑하고, 낮잠 자고, 또 수영하는 생활을 반복하길 일주일째.
자다가 왠지 느낌이 이상해서 깨어났는데 낯선 천장이 보였더랬다.
“거울을 확인해 보니 내가 내가 아니었어.”
“…….”
한호성은 아찔한 정신을 가까스로 붙잡았다.
각오는 했으나 그 이상으로 터무니없는 소리였다. 차라리 기억 상실증이 낫지, 이건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을 대야 할지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그러니까 네 말은…… 네가 사실 ‘우영찬’이란 사람이고, 자고 일어나 보니 제논의 몸에 들어와 있었다는 거지. 마치 빙의한 것처럼.”
“어.”
“그게 말이 돼?”
황당함을 참지 못하고 지적하자, 제논이 인상을 찌푸렸다.
“나도 존나 어이없거든? 근데 실제로 벌어진 일인데 뭘 어쩌라고. 진짜 너희가 뭔 수 쓴 거 아냐?”
“수를 쓰긴 무슨 수를 써. 그럴 재주도 없거든? 설령 그런 재주가 있더라도, 왜 널 제논에게 빙의시키겠어?”
“그건 너희들이 더 잘 알지 않을까?”
누굴 완전히 범죄 조직 취급하고 있다. 그것도 평범한 범죄 조직이 아닌, 강령술사 범죄 조직으로.
슬슬 인내심이 닳았다. 한호성은 팔짱을 끼며 물었다.
“전혀 모르겠는데. 왜 우리가 널 제논에게 빙의시켰다고 생각하는 건데?”
“돈 때문에.”
확신에 찬 대꾸였다. 그에 한호성은 헛웃음 짓고 말았다.
“돈이라니……. 널 제논에게 빙의시키면 뭐, 하늘에서 돈벼락이라도 떨어져?”
“말이 되냐? 뭔 비현실적인 소릴 하고 있네.”
자신이 남의 몸에 빙의했다고 주장 중인 사람의 말이었다. 이어지는 말도 비현실적이기 짝이 없었다.
“내 영혼을 인질 삼아 우리 집에 돈 요구하려는 속셈 아니냐?”
“뭐?”
“얼마나 필요한데. 세 장? 한 다섯 장쯤 줘?”
특별히 인심 써 주겠다는 듯한 태도였다. 한호성은 헛웃음을 흘렸다. 하도 어이가 없으니 이젠 화도 나지 않는다.
“세 장은 뭐고 다섯 장은 또 뭐야. 미안한데, 너희 집이 무슨 왕가라도 돼? 누구 하나 인질로 잡고 돈 요구하게?”
“돈이라면 왕가보다 많으니까.”
제논이 오만하게 말했다.
“나 강문 4세야.”
“차라리 루이 14세라고 그래라.”
“강문을 몰라?”
사실 ‘강문’이란 단어를 듣자마자 떠오른 게 있기는 하다. 한호성은 긴가민가하며 물었다.
“혹시 강문 그룹?”
“아네.”
“당연하지.”
대한민국 재계 서열 1위인 강문 그룹을 어떻게 모르겠는가.
전자, 생명 공학, 자동차 산업 등등 손을 뻗친 분야가 어찌나 많은지 한국에서 살면서 그 이름을 모르기란 불가능했다.
“그럼 4세라는 게 설마 재벌 4세란 뜻이었어? 네 증조할아버지께서 강문 그룹 설립자시라고?”
“어.”
“아, 그런 컨셉이구나.”
“컨셉 아니라고!”
제논이 버럭 외쳤다. 그가 쇠사슬에 묶인 몸을 꿈틀거렸다. 철컹철컹, 쇳소리가 고막을 찔렀다.
“못 믿겠으면 검색해 보든가!”
“진짜 검색한다?”
한호성은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제논의 주장이야 당연히 믿지 않는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호기심이 들었다.
‘강문 그룹 4세 우영찬’
검색창에 키워드를 입력하자 페이지가 떠올랐다. 대부분이 뉴스이고 블로그 포스팅도 있었다. 개중 하나를 클릭하자, 그리스 로마 신화 속 미소년처럼 생긴 이의 사진이 떴다.
데뷔했더라면 아이돌 중에서도 비주얼로 손꼽혔을 만한 얼굴이다. 돈도 많으면서 외모도 타고났다니. 세상은 참 불공평하다고 생각하며, 한호성이 핸드폰 화면을 들이밀어 보였다.
“이게 너야? 하나도 안 닮았는데.”
“몸이 바뀌었다니까! 이 얼굴하곤 안 닮은 게 정상이지. 그리고 저건 고등학생 때 찍은 사진이거든?”
“그래?”
한호성은 핸드폰을 거두었다. 사진을 자세히 관찰했지만, 역시 ‘잘생겼네.’ 외의 감상은 떠오르지 않는다.
스크롤을 내리니 짤막한 정보 글이 보였다. 우영찬이 강문 그룹 관련 주식을 몇 퍼센트 보유하고 있는지, 시가 표준액 얼마짜리 건물을 상속받았는지 따위였다.
“신기하긴 한데, 네가 우영찬이란 증거론 부족해.”
“뭘 어떡해야 믿을 건데?”
“부모님께 전화 걸어서 인증해 주든가.”
“좋아.”
바라던 바라는 듯 제논이 흔쾌히 대답했다.
“손 풀어. 전화하게.”
“그냥 번호만 불러. 내가 누를게.”
“풀라고!”
잠시 ‘풀어 줘도 괜찮지 않을까?’ 싶었으나, 바락거리는 꼴을 보건대 역시 묶어 둬야 할 것 같았다. 한호성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가 마음을 바꿀 기미가 없음을 깨달은 제논이 이를 갈며 번호를 불렀다.
통화 버튼을 누르자 신호 연결음이 울렸다. 실제로 존재하는 번호이긴 한 모양이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안 받는데.”
“그럼 이 번호로 걸어.”
제논이 다른 번호를 불렀다. 그러나 결과는 같았다. 상대측에서 전화를 받지 않은 것이다.
“……형한테 걸게.”
한호성은 잠자코, 새로운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강문 그룹 오너 일가와 전화가 연결될 리 없으니 이 현실을 들이밀어 제논의 망상을 깨뜨릴 셈이었다.
신호 연결음이 길어질수록 제논의 낯에 초조한 기색이 스쳤다. 이윽고 ‘연결이 되지 않아 삐 소리 후 소리샘으로 연결되오며…….’ 하는 안내 메시지가 흘러나오자, 제논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하긴, 모르는 번호로 걸린 전화를 받을 리가…….”
망상이 어지간히도 견고한지 좀처럼 흔들리지 않는다. 한호성은 단호하게 말했다.
“그만 인정하자.”
“인정하긴 뭘 인정해? 나 우영찬 맞다니까?”
“증거가 없잖아.”
“뭐, 우리 집안 사람만 아는 비밀이라도 줄줄 불어야 해? 설마 그게 목적이냐?”
“그런 건 증거로 인정 못 해. 나로선 네가 말하는 비밀의 진위를 가릴 수 없잖아.”
“어차피 말해 줄 생각도 없었거든?”
“그럼 주민 등록 등본이라도 떼어 오시든가.”
제논이 한호성을 무시무시하게 노려보았다. 한호성은 그게 무섭다기보다 신기했다. 평소 타인과 시선을 마주치는 걸 어려워하던 제논인데, 어쩜 저렇게 잘도 노려볼까. 꼭 사람이 바뀐 것만 같았다. 물론 정말 그럴 리는 없지만.
“손 풀고 핸드폰 내놔.”
“안 된다니까.”
“좋은 생각이 있으니까 풀기나 해.”
“또 무슨 짓을 하려고?”
“내 SNS에 로그인할 거다.”
듣고 보니, 현재로선 그게 가장 좋은 수일 듯했다. 자신 있게 제시한 인증 방법마저 실패한다면 제논의 망상에도 금이 가지 않을까.
“그럼 아이디랑 비밀번호 불러 줘.”
“이 좆같은 거 풀기 전엔 아무것도 안 해.”
쇠사슬에 묶인 게 그리도 싫은지 치를 떠는 모습을 보니, 한호성으로서도 짠한 마음이 들기는 했다. 하기야 언제까지고 묶어 둘 수만은 없었다.
“난동 부리지 않을 거지?”
“……어.”
“좋아. 약속한 거다.”
한호성은 식탁 위에 놓인 열쇠를 집었다. 문해일이 두고 간 것이었다.
제논은 자물쇠를 여는 동안 불평해 댔다. ‘변태도 아니고 왜 쇠사슬 따위를 갖고 있어.’ 등의 불평을 흘려들으며, 한호성은 쇠사슬을 풀어 주었다.
“핸드폰.”
제논이 손을 내밀며 당당하게 요구했다. 조금 어이가 없었지만, 한호성은 제 핸드폰을 넘겨주었다.
“똑똑히 봐. 로그인할 테니까.”
SNS에 접속한 제논이 로그인 창에 아이디를 입력했다. 비밀번호까지 단숨에 입력한 후 확인 버튼을 누르자, 메시지가 떠올랐다.
‘잘못된 비밀번호입니다.’
“어?”
그가 멍청한 소리를 내뱉었다.
“뭔가 오류가 있나 본데…….”
제논은 재차 비밀번호를 입력했다. 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잘못된 비밀번호입니다.’라는 메시지만 연거푸 떠올랐다.
한호성은 핸드폰을 쥔 제논의 손이 미세하게 떨리는 걸 눈치챘다. 비로소 망상이 조금씩 깨지는 모양이다. 좋은 징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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