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맛있게 익어라~”
면발을 들었다 내렸다 하면서 라면이 아주 맛있게 익기를 간절히 바랐다.
“서비스입니다.”
한눈에 보기에도 맛있게 끓여진 라면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으며 섹시다이너마이트를 향해 윙크를 보냈다.
‘어때, 나 귀엽지?’
내 표정에 섹시다이너마이트도 뭔가 느꼈는지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반응을 보아하니 성공인 거 같은데? 뭐야, 쉽네.’
저절로 나오는 웃음에 입을 살짝 가리며 상냥한 목소리로 말했다.
“더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 불러주세요~”
마지막으로 봉긋한 엉덩이까지 남자에게 살짝 튕기듯이 보여주고 자리로 돌아왔다. 멀리서 이쪽을 바라보는 남자의 표정을 보니 이미 내 유혹에 반쯤 넘어온 거 같았다.
“좋았어. 이제 저 콧수염만 가면 돼.”
나는 섹시다이너마이트의 맞은편에 앉아 내가 손수 끓여준 라면을 국물까지 모두 삼키는 콧수염의 모습에 입꼬리를 들썩거렸다.
“갑자기 왜, 왜 이러지? 혀, 형님. 죄송하지만 저 잠깐 화, 화장실 좀 다녀오겠습니- 윽.”
약효가 들었는지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콧수염 아저씨가 다리를 배배 꼬고 화장실로 뛰쳐나갔다. 좋았어. 콧수염 아저씨는 일단 보냈고, 그다음은 할머니였다. 주먹을 꽉 쥔 나는 텔레비전 앞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는 할머니에게 다가갔다.
“할머니, 할머니!”
“아이구야! 야가 왜 소리는 지르고 그려!”
“할머니, 힘드세요?”
“먹은 나이가 있는데 그럼 안 힘들것어?”
할머니는 졸린 눈을 비비며 괜히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그럼 제가 마무리하고 들어갈게요. 먼저 들어가서 쉬세요.”
“허참. 됐다 마. 내가 니한테 우찌 맡기고 들어가누.”
“아이참. 그러지 말고 어서요.”
나는 할머니를 억지로 일으키고 도톰한 외투를 입혀주었다.
“내일도 일하시려면 힘들어서 안 돼요. 어차피 정리만 하고 가면 되니까 먼저 들어가서 쉬세요. 네?”
“아이고. 내 새끼…. 우리 유원이. 언제 이리 컸누.”
할머니는 주름진 손으로 눈물을 훔치곤 내 뺨을 살짝 문질렀다. 할머니의 눈을 바라보자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갑자기 나도 눈물이 팽, 도는 것 같았다.
“고마 그럼 먼저 들어갈 테니께, 이따 조심해서 들어와야 헌다, 알것제?”
할머니는 다시 한번 주의를 주며 식당을 빠져나갔다. 드디어 식당 안에 남은 건 저 섹시다이너마이트와 나, 오로지 둘 뿐이었다.
“저기, 아저씨?”
나는 뚜벅뚜벅 걸어가 남자의 앞에 섰다. 남자는 고개를 들어 나를 올려다보더니 들고 있던 술잔을 내려놓았다.
“와… 시발, 개존잘.”
“뭐?”
가까이서 듣는 목소리는 더, 더 좋았다. 목소리만으로도 몸이 어찌나 찌릿한지.
‘엥? 진짜 갑자기 몸이 왜 이렇게 찌릿찌릿하지?’
‘착각인가?’ 하고 고개를 저으며 다시 섹시다이너마이트한테 집중했다.
“아저씨. 시간 있어요?”
“꼬맹아, 쓸데없는 짓 그만하고 그냥 가라.”
남자는 내 말에 피식 웃으며 테이블에 내려놓은 술잔을 다시 들어 올렸다.
꼬맹이라는 말에 어이가 없었다. 내 나이가 몇인데, 스물- 하…. 아무튼 엄청 긴긴 세월 동안 동정이었다. 타고나기를 게이로 타고난 것도 억울한데 못생기고 키도 작아서 평생 인기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모처럼 귀엽고 잘생긴 남자가 된 꿈을 꾼 이상, 눈앞의 남자를 절대 놓칠 수 없었다.
“으… 다, 달다.”
난 남자의 손에서 술잔을 빼앗아 내 입에 털어 넣었다. 입안에 가득 찬 알코올 향은 엄청 쓰디썼지만 어른답게 입맛을 다시며 보란 듯이 남자를 바라보았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나를 빤히 보던 남자의 눈에서 묘한 호기심이 깃들었다.
“아저씨. 나 귀엽지 않아요? 게다가 이렇게나 잘생겼는데.”
“글쎄. 아직 내 눈엔 꼬맹이로밖에 안 보이는데.”
남자는 내 손에서 술잔을 도로 가져가며 빈 잔에 술을 따라 마셨다. 미간 한번 찌푸리지 않고 술을 마시는 남자의 얼굴이 어딘가 씁쓸해 보였다.
“아이, 씨. 꼬맹이 아니라니까요.”
“어른이 말하는 거에 토 다는 거 아니야. 귀찮게 하지 말고 가.”
“개꼰대.”
내 말에 남자의 고운 미간이 와락 일그러졌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나는 그 무서운 시선에 지지 않고 남자를 바라보며 입을 맘대로 놀렸다.
“시발. 어려도 알 건 다 알거든요?”
아직 미개봉 상태지만 나는 자신만만하게 외쳤다. 아, 근데 왜 이렇게 더워… 겨우 술 한 잔에 취한 거야? 얘 몸은 무슨 알쓰도 아니고….
근데 이상하게 술에 취한 것치고는 정신은 말짱하고 몸만 뜨거웠다. 게다가 아까부터 조금씩 찌릿찌릿했던 감각이 점점 선명해지기 시작했다.
가쁜 숨을 내쉬며 테이블 끝을 잡고 숨을 헐떡이자 평온한 얼굴로 술만 연거푸 마시던 섹시다이너마이트의 얼굴에 주름이 잡혔다.
“어! 주름 생겼다. 아저씨 맞네, 아저씨.”
푸흐. 실없이 웃고 남자의 얼굴을 잡자, 그는 숨을 들이마시더니 미간을 찌푸렸다.
“야, 꼬맹이. 너 억제제 언제 먹었어.”
하씨…. 자꾸 꼬맹이라고 하네? 이렇게 큰 꼬맹이도 다 있냐? 액면가는 비슷해 보이는데 어이가 없네. 그리고 억제제…? 뭘 억제하라는 거야.
미간이 확 일그러지는 것도 잠시, 나를 올려다보는 남자의 외모에 입이 천천히 벌어졌다.
꿀꺽.
진짜 미치겠네. 여기서 포기할 수도 없고. 여기서 그냥 끝나버리면 이건 10년 치 두고두고 후회할 일 BEST3에 들 거 같은데···.
아, 근데… 왜 이렇게 몸이 뜨거워지냐······.
특히 아랫배가 녹아내릴 듯 간지러운 느낌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운 감각이 몸에서 피어났다. 가장 예민한 부분을 깃털로 간지럽히는 것처럼 손이 닿지 않는 깊은 안쪽이 간지러워 미칠 것 같았다.
“아씨, 안 되겠다···.”
결국 겉옷을 하나씩 벗어 던지며 마지막으로 후드티 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야, 꼬맹이.”
귀찮다는 듯 눈을 찡그리며 자리에서 일어난 남자가 반쯤 벗은 내 후드티를 다시 입혀주더니 짐짓 엄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아니, 지금 더워죽겠다니까 왜 이래! 게다가 자꾸 꼬맹이, 꼬맹이!
결국 내 인내심이 폭발했다.
“아씨, 왜 자꾸 꼬맹이래, 이 자식이!”
“이… 자식?”
잘생긴 남자의 미간에 또다시 주름이 잡히며 남자가 입꼬리를 올렸다.
뭐야. 왜 웃어. 엄마, 저 새끼 변태 같아.
윙크를 하고 엉덩이를 튕겨도 웃지는 않더니 욕을 하자마자 남자의 얼굴에 웃음기가 번졌다. 아씨, 저 얼굴만 아니었으면 변태는 피했을 텐데. 잘생기긴 겁나 잘생겼단 말이지. 눈을 뜨면 한순간에 사라질 사람이라고 생각하니까 더 포기가 안 됐다.
“하아···.”
“꼬맹아, 너 아무래도 히트 사이클 온 거 같다. 평소에 먹던 억제제 어디 있어.”
“···히트 사이클이 뭔데- 아··· 윽···.”
아랫배를 움켜쥐며 남자의 어깨를 붙잡았다. 그러고 보니 이 섹시한 남자의 목에 난 상처가 어디선가 본 것처럼 익숙하게 느껴졌다.
왜 꼭 이걸··· 어디서 본 거 같지···?
“아저씨, 흐으··· 우리 어디서 본 적 있어요?”
“이게 숨넘어가기 직전에도 작업이네.”
남자가 내 말에 고개를 저으며 이마 위로 작은 꿀밤을 먹였다.
“아···! 왜 때려요 씨이···. 아저씨, 근데 좋은 냄새 난다···. 몸도 시원하고···.”
뾰로통하게 입을 내밀고 툴툴대던 것도 잠시, 이 섹시다이너마이트의 손이 몸에 닿자 어딘지 모르게 몸이 시원해지며 숨도 조금씩 쉬어졌다. 간질간질하고 뜨거운 몸의 열도 좀 가시는 거 같았고.
“아저씨, 나 좀만 더 만져주면 안 돼요?”
“안 돼.”
“그러지 말고··· 나 몸이 좀 이상한데··· 흣.”
남자의 손이 멀어지는 순간, 지금껏 안 느껴졌던 열이 몰아치는 것처럼 아랫배가 뜨거웠다.
“흐으··· 나 진짜 이상해··· 윽.”
그리고 배배 꼬였던 다리가 한순간에 힘이 풀리며 몸이 바닥으로 쓰러지듯 기울어졌다.
“야, 꼬맹···.”
쓰러지기 직전, 남자가 나를 잡아 끌어안았고 나는 가까워진 남자의 목에 얼굴을 묻었다.
“으응··· 여기서 나는 거였네··· 흣···.”
어디서 좋은 냄새가 나나 했더니 이 목에서 나는 향이었다. 나는 남자의 목을 꽉 끌어안으며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시원한 향이 마치 숲에 온 거 같은 느낌이었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주제에. 하아···.”
내가 남자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 코를 킁킁거리자 그가 자신의 머리를 쓸어 넘기며 한숨을 내뱉었다.
“야, 꼬맹아. 작작 엉겨 붙지? 진짜 큰일 나기 싫으면?”
“…흐, 진짜요? 진짜, 나랑 해줄 거예요?”
남자의 말에 화들짝 정신이 들어 그에게서 얼굴을 떼어냈다. 물론 몸은 여전히 남자에게 찰싹 달라붙은 상태였다.
“…너 진짜 후회 안 할 수 있겠어?”
“네, 네! 나 진짜 좋아요! 짱 좋아요! 헤헤.”
당연하지! 드디어 처음으로… 크흠.
아무튼 남자가 말을 바꿀세라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꿈이어서 그런가, 도통 빈틈을 보여주지 않던 남자가 쉽게 내 손에 들어왔다.
이 남자를 벗겨놓으면 얼마나 더 섹시할까. 입 밖으로 웃음이 절로 흘러나왔다.
“옷 입어.”
“왜요? 어차피 벗을 텐데.”
“까분다.”
“치이···.”
남자의 말에 나는 벗어놓았던 옷을 다시 주섬주섬 입으며 물었다.
“근데 아저씨는 이름이 뭐예요?”
“…….”
“네?”
“…권태범.”
“태범··· 권태범···.”
아···. 이 남자의 이름도 어딘가 익숙했다. 하지만 누가 내 머릿속에 까만 물감을 풀어놓은 듯 생각이 날까 말까 답답했다.
“왜. 이제 와서 생각이 바뀌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