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Covert Blue(코발트 블루)
눈을 떠 보니, 비행기 안에 있었다.
―오늘도 한국 항공을 이용해주신 탑승객 여러분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저희 승무원들은 승객 여러분 모두가 행복한 하루 되셨기를 바라며…….
나는 영국에 도착했다는 안내 방송을 들으면서 혼란스러웠다. 현재 상황이 다 무엇인지 전혀 이해가 가지 않아서 더 그랬을 것이다.
스스로 말하자면 아주 이상한 말이지만, 나는 왜 여기에 있는지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손님, 지금 막 런던 히드로 공항 도착…….”
“제가 하죠.”
뒤쪽에서 내리는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가 났지만, 얼떨떨하기만 한 나는 가만히 좌석에 앉아만 있었다. 그런 내게 다가오는 한 사람이 있었다. 넥타이는 없이, 살짝 흐트러진 양복 차림의 남자. 그는 천천히 내게로 다가와서 다리를 굽히고 눈높이를 맞추며 누군가의 이름을 불렀다.
“가하야.”
부드러운 인상을 가진 그 사람이 슬픈 얼굴로 불러 주는 그 이름이, 내 이름인지도 나는 모르고 있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그때에, 정말 아무 것도 모르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내 딴에는 자연스러운 반문을 던졌다.
“누구세요?”
“내 이름은…… 대호야. 황대호. 그리고 너는…… 가하. 유가하.”
하지만 그는 도리어 자신이 울 것처럼 눈을 느리게 깜빡거리다가 고개를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그는, 그 사람은 그게 내 이름이라고 했다. 나는 그게 정말인가 싶은데, 그가 보여 주는 여권에는 비행기 좌석 창문 유리에 흐릿하게 비치는 내 얼굴과, 그가 부르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유가하. 그게 내 이름이었다.
하지만 나는 나이도, 가족도, 나 스스로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몰랐다. 마치 어디 공중에서 덩그러니 튀어나온 사람처럼 아무런 기억이 없었다. 나는 그에게서 내 여권을 받고 나서도 그게 내 것이 아닌 것처럼 어딘가 어색하고도 찝찝한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런 내 어깨를 그가 툭툭 두드렸다.
“우선, 같이 내리자.”
“오빠, 괜찮아?”
“……저, 제가 오빠예요? 그쪽 오빠?”
“응. 어떡해, 황 변호사님……. 저도, 까먹은 거예요?”
‘까먹었다고?’
내 이름을 불러 준 그 사람과, 내 동생이라고 주장하는 여자를 따라서 비행기에서 내렸다. 입국심사대로 가는 인파에 밀려서 가는 동안 내게는 기억이 없다는 점 외에, 특이한 구석이 하나 있었다. 자기 몫의 짐을 가지고 목적지를 향해서 어디론가 가는 사람들과 다르게 나는 아무 것도 없었다.
“…….”
나는 어디로 가야하는지도 모른 채로 그저 이 낯선 섬에 표류해 있었다. 그 무엇도 나라는 사람에 대한 실마리가 없었다. 나라는 사람을 증명해 주는 것은 그가 건네준 여권. 그것 하나. 혈혈단신으로 이 섬에 뚝 떨어진 것과 마찬가지인 나는, 마치 표류하다 못해 공중에 붕 떠 있는 기분도 들었다.
『엄마!』
『어머.』
내가 주변을 둘러보는 동안, 어떤 아이가 손에 쥐고 있던 풍선을 놓쳤다. 점점 올라가는 풍선에 달린 끈을 잡아 보려 허우적대었지만 풍선은 높은 천장으로 둥실, 둥실 올라가고 말았다.
“…….”
그게 마치 나와 같이 보인다면, 착각일까.
그제야 나는 스스로의 상태에 대해서 심각성을 자각할 수 있었다. 그나마 나를 알고 있는 두 사람에게 왜 여기에 내가 있는지. 왜 나는 아무것도 모르냐고 물어봐도 그들은 입을 다물고 자세한 대답을 해 주지 않았다. 그저.
“……네가 원했어.”
“내가…… 원했다니요?”
“……자유롭게…… 살고 싶다고 했어.”
내가, 자유롭게 살기를 바랐다는 말 외에는.
기억이 없는 내게 그 대답은 당연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자유롭게 사는 것과, 내 기억이 없는 것이 무슨 상관일까. 기억이 나를 구속하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나는…… 모르겠어요. 정말로, 기억이…… 아무것도 나지 않아서. 왜요? 왜 자유롭게…….”
“……글쎄. 그 이상은 나도 모르겠어.”
쉽사리 설명해 주지 않는 그 의문스러운 점들이 못내 답답하긴 했다. 하지만 그 짧은 대답을 해 주는 그 사람의 웃는 얼굴 가운데 드리워진 그림자가 답답한 내 마음을 뛰쳐나오지 못하게 짓눌렀다. 그걸 보게 된 내 얄팍한 본능이 그 이유를 알아서는 안 된다고 속에서 외쳤다. 결국 나는 찝찝한 가운데 어정쩡하게 서 있었다.
“……그래……요?”
“우리, 박 씨 아줌마랑 같이 산골에서 살았던 거랑. 오빠가 봄에 진달래 따서 화전 부쳐 준 거, 기억 안나? 처음에 우리가 착각해서……. 철쭉 따서 부쳐 먹었다가 다 배탈 났잖아…….”
그런 내게 동생이라고 주장하는 여자가 이런 저런 과거의 이야기를 설명했다. 그녀와 내 얼굴은 정말로 닮아 있었고, 이름도 비슷했다. 그녀는 내가 알아차리기를 바라는 것처럼 어렸을 적 추억을 설명했지만, 그녀 홀로 그 추억 속에 존재했다.
“……미안합니다. 저는 정말 모르겠어요. 그냥, 이 상황이……. 모르겠어요. 우선 저는 한국으로 돌아…….”
내게는 그 모든 게 아득하게 들리다 못해 무감각하게 스치고 떨어져 나갔다.
솔직히 그 상태에서 내 앞에 있는 두 명. 내 친구와 내 동생이라는 사람들 전부, 믿음이 가지 않았다. 낯선 환경과 곳곳에서 들려오는 낯선 언어가 빚어내는 이질감에 내가 태어나고 자란 게 분명할 한국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한 순간, 예상하지 못한 격렬한 반응을 맞았다.
“그건 안 돼.”
“절대로 안 돼!”
“……왜요?”
“……그건…….”
‘왜…… 안 되지?’
당연한 나의 질문에 동생이라는 여자는 무언가를 말하려 입을 열었다가 말고 어색하게 웃었다.
“……오빠 지금, 돈 하나도 없거든. 한국 갈 돈.”
“……어.”
나는 그 말을 듣고 입고 있는 바지의 주머니 곳곳을 뒤져 보았지만, 그녀의 말마따나 정말 지갑은 물론이고 동전 한 푼도 없었다.
‘진짜 한 푼도 없잖아. 뭐지.’
외국에 오는 사람이 돈을 가지고 오지 않다니. 도대체 나는 무슨 생각으로 비행기를 탔던 것인가. 스스로가 참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와중에, 처음에 내 이름을 불러 준 남자가 대답했다.
“나한테 다 맡겨 뒀거든.”
“…….”
“네가 사고가 나기 전에, 나한테 미리 다 맡겼어.”
“사고……가 났다고요?”
“맞, 맞아. 오빠가 이러는 거…… 다 사고 때문에 그래.”
‘……진짜로?’
멀쩡하게 생긴, 아니 내가 봐도 제법 잘나게 생긴 남자가 말한 대답에 석연찮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그 와중에, 내 동생이라는 여자는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고가 났다니. 나는 왜 병원이 아니라 여기에 있는 걸까. ……사고가 난 것치고는 몸이 멀쩡한 것 같은데.’
이 상황의 원인이라는 말을 들어도 하나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내가 가지지 못한 기억처럼, 모든 상황에 대한 이해의 고리가 뚝뚝 사라져 있었다. 하지만 둘 다 약속이라도 한듯 자세한 설명에 대해서는 입을 꼭 다물었다. 모른다는 말만 하면서. 그저, 자유롭게 살면 된다고 하면서.
그 와중에 동생은 눈물을 글썽였다.
“오빠, 나야. 정말 기억……. 안 나? 정말로?”
“가연 씨. 가하도 혼란스러울 테니까…….”
“그래도…….”
하지만, 그렇게 말해 본들 내가 기적처럼 기억을 깨닫게 되거나, 무언가가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그렇다고 신경이 쓰이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입고 있던 남방의 소매를 끌어당겨, 그녀의 커다란 눈에서 구슬처럼 뚝뚝 떨어지는 눈물을 살살 훔쳐 주었다. 비어 있는 기억을 가진 마음이라고 해도 불편했다.
그냥, 이 여자가.
“그, 울지 마요.”
“…….”
“얼굴 예쁜데.”
내 동생이라고 하는 사람이 나 때문에 우는 건, 싫었다.
“미안해요……. 내가 기억 못해서, 속상……한 거죠?”
나도, 차라리 기억나는 무언가라도 있다면. 가족으로서 그녀의 떨리는 저 손을 잡아 줄 수 있을 텐데. 야속하게도 기억은 집 나간 강아지처럼 돌아오지가 않았다. 우리의 관계도 마찬가지로 서로에게 애매한 거리를 두고서 돌아오지 않았다.
내 가족이라는 그녀와, 친구라고 하면서도 나를 볼 때 늘 깊은 생각의 그림자를 드리운 그 사람.
“가하야.”
“……아, 네.”
그가 내 이름을 불러 줘도 내 이름이라는 것을 인지하는데 좀 시간이 걸렸다. 없는 기억 때문에 익숙하지 않아서 뒤늦게 대답하는 나를 기억해 주는 사람은, 이 두 명이 전부였다.
“……우선 같이 갈래?”
“…….”
그 말은, 그들이 없다면 나는 정말로 이 섬에 표류해 버리고 만다. 낯선 곳의 파도에 이끌려서. 어디로 가는지, 어디를 가고 싶은지도 모르고.
“……네가 원하면, 나중에 따로 떠난다고 해도…… 잡지 않을게. 지금은 우리랑 가자.”
“왜……요?”
같이 가자는 사람의 말치고는 뭔가 조금 이상했다.
마치 내게 선택권을 주겠다는 듯. 자기에게는 어떠한 선택권도 없는 사람처럼 말하는 게 이상했다.
‘같이 가고 싶으면, 아무것도 모르는 나를 그냥…… 데려가도 되는 거 아닌가.’
“네가…… 자유롭게 살고 싶다고 했으니까.”
“내가, 아니 제가…… 그랬, 나요.”
자유롭게 살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어디로 간다고 해도 잡을 수 없다는 말. 그 말에 나는 기분이 오묘해졌다.
“응.”
내가 떠나고자 하면 잡을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의 얼굴은 말과 다르게 쓸쓸했다. 오히려 가지 말라고 하고 있는 사람의 얼굴에 적혀 있는 그 무언의 언어가 내 마음을 불편하게 잡아당겼다. 거기다가 자칭 동생이란 사람이 내 앞에서 시위하듯이 연신 훌쩍거리는 게 더욱 신경 쓰이게 했다. 이게 나를 잡기 위한 작전이라면 아주 고도의 작전이었다.
“……그래, 오빠. 기억, 안 해도 돼.”
“…….”
왜냐하면 그들이 미련을 가지고서 나를 놓아주려는 말과 행동에 내 마음이 아주 약해졌으니까. 아니면 나 또한 이렇게 갈 곳 없이 표류하는 가운데, 나를 잡아 줄 수 있는 확실한 무언가를 붙잡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 몰라도 되니까, 우리 같이 있어.”
‘같이 있어.’
그리고 기억은 없지만, 그 말이 머리 한쪽에 깊숙하게 파고들었다.
‘왜……일까.’
스스로 자문 해 본들, 그것 또한 알 수가 없다. 기억이 없는 내게는 확고한 판단보다, 불안정한 짐작만이 내가 사고하는 것의 전부였다.
그 말이 내게, 이전의 내게 특별한 의미였겠거니, 하는 그런 지레짐작.
“……그러……죠.”
그래서 나는 그들을 따라갔다.
기억은 없지만 눈은 멀쩡한 내가 보아도 제법 화려한 호텔의 방에 들어갈 때, 내가 무척 부잣집 사람인가 순간 착각도 했다. 하지만 아무런 짐도 없는 우리의 생필품과 식사, 옷 따위를 결제하는 사람은. 이름 모를 그 사람이었다.
내 친구라고 자신을 소개하고, 동생이, 이따금씩 황 변호사님, 하고 부르는 그 남자.
아직도 이름을 모르는 그 남자와 나는 쇼핑거리를 돌아다니며 쌓인 쇼핑백을 나누어 들고서 건널목에 나란히 섰다. 그런 우리 옆에서 신이 난 동생이 휘어진 도로의 쇼핑가를 핸드폰으로 사진 찍는 것을 바라보다가 나는 그동안 쌓인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남자에게 말을 걸었다.
‘대호, 라고 했던가.’
“……저기요, 대……호 씨.”
“응. 가하야. 편하게 말하라고 했잖아.”
“아……아직. 어색해서.”
저녁이 깊어져 가며 저무는 노을의 빛을 받은 남자의 눈은 엷은 갈색을 넘어 금빛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예쁜 눈이라기보다는…….’
좀, 분위기가 달랐다. 부드럽다고 하나. 아니, 그날 공항에서 보았던, 우수가 어린 눈이라고 하나. 내 쪽으로 비추어드는 노을의 빛이 눈이 부셔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건널목 근처에 있던 파란 눈의 외국인과 눈이 마주쳤다. 그래, 예쁜 눈은, 저렇게 파란…….
‘파란?’
그 생각에 나는 갑자기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쿵쿵 뛰는 심장 근처를 손으로 누르고 급속하게 도는 박동에 숨을 몰아쉬었다. 그런 내 옆에 있던 대호가 짐짓 심각한 투로 내 어깨를 잡았다.
“……왜 그래?”
“아니. 아니. 그냥. 추워서.”
내가 조금만 이상하다 싶으면 과민 반응을 보이는 두 사람이기에 얼버무렸다. 그래도 그는 걱정스럽게 덧붙였다.
“들어가는 길에 따뜻하게 마실 거 사 갈까?”
“아니, 정말 괜찮아요.”
점점 진정되는 심장의 울림과 함께 나는 저 멀리 서서 셀카를 찍어대는 동생을 보면서 피식 웃었다. 저 애가 내 동생이라면, 정말 귀엽다. 그러다 다시 시선을 돌려서 빨간 전화박스 옆에 서 있는 그에게 말을 걸었다. 아, 이럴 때가 아니지.
“……동생, 이 황 변호사님, 하고 부르던데. 근데 정말 변호사예요?”
“……응.”
“그렇구나. 젊은 나이에 열심히 살았네요.”
해가 완전히 지면서 주변이 깜깜해지고, 동시에 쇼핑가 주변을 밝히는 가로등이 하나둘 씩 줄줄이 켜졌다. 그 까만 가로등 하나에 비스듬히 기대어 있던 그가 내 말을 듣자마자 풋, 하고 웃었다.
“왜요?”
“……아니. 그 말을 또 들을 줄은 몰랐어.”
“……누가 그랬어요? 열심히 살았다고?”
“……응.”
그때, 항상 얼굴에 슬픔만 드리우던 그 사람이. 평소와 다르게 조금 행복해 보였다.
“좋은 사람이었나 봐요. 그렇게 웃으니까 잘생긴 얼굴이 환하네.”
“…….”
“아니, 평소에 잘생기지 않다는 건 아니고. 그냥, 그렇게 웃는 건 처음 봐서요.”
내 말에 그가 말없이 빤히 나를 향해서 바라보았다. 그래도 기분 별로인가? 그런 우리에게 동생이 깜빡이는 신호등을 가리키며 손짓했다.
“오빠, 얼른 와! 여기서 건너야 해.”
“아, 응.”
긴, 초승달 모양처럼 구부러진 길의 쇼핑가에는 영국 사람들로 보이는 사람들 말고도 우리와 같은 관광객들이 무척 많아서 건널목을 우르르 걸어가는 인파가 제법 되었다. 거기에 나도 얼른 발을 옮겨서 합류했다. 무심코 옆을 보니 항상 있던 그 사람이 없었다.
‘어디 갔지.’
그를 놓친 내가 주변을 살피며 뒤를 돌아보자 뒤늦게 쫓아오는 그의 인영이 보였다. 키가 커서 그런지는 몰라도 금방 내 옆으로 걸어온 그와 혼잡한 건널목을 걷고 있는 가운데, 그가 문득 혼잣말처럼 말했다.
“좋은 사람이었어.”
“……네?”
“웃는 얼굴이 예쁜 사람.”
그제야 나는 그의 대답을 이해했다. 예전에 그가 참 열심히 살았다, 말해 주었던 사람의 이야기라는 것을. 하지만 그는 쓸쓸하게 덧붙였다.
“얼른 와, 신호 바뀐다.”
재촉하는 동생의 부름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몇 번 쇼핑을 하면서 나름 이야기를 하게 된 동생과 나는, 정말 가족이 맞았던 것인지 은근히 친해져 있었다. 나는 그가 흘러가듯이 말한 사람에 대해, 금방 까먹어 버리고 그를 불렀다.
“아, 응. 이리 오세요.”
그는 내 보폭에 맞추어 걸으면서 가까이 다가왔다.
“응.”
하지만 좋은 날도 하루 이틀이었다.
영국이란 나라는 손가락과 발가락이 부족하도록 매일같이 비가 왔다. 그때도 그렇게 예고 없이 갑자기 비가 한 두 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했던 걸로 기억한다.
아니면, 잊을 수 없는 날이어서 그랬을까.
그 빗방울에 놀란 우리가 소낙비에 젖기 전에 택시를 얼른 잡아서 호텔로 돌아갔다. 비가 막 쏟아지기 직전, 호텔 로비에 간신히 들어올 수 있었는데, 동생과 대호가 로비 안쪽으로 들어가는 것을 따라가다가 문득, 멈춰 섰다. 비가 오는 모습이, 어딘가 눈에 익었다. 쏴아, 하고 쏟아지는 그 소리도. 이상한 기시감에 나는 뒤를 돌아 호텔 로비 입구에 서서 길가 위로 막 거세게 들이치는 비바람을 쳐다보았다.
“…….”
비가 온다.
까만 아스팔트 바닥에 빗방울이 통, 통 튄다. 그 위로 예고 없는 소나기를 피하는 사람들의 바쁜 걸음들이 덮인다. 그걸 바라보는 내 눈앞에 생생한 감각이 되살아났다.
비에 젖어 무겁게 쳐지는 구둣발 소리, 급하게 달리는 숨소리, 옷이 바람에 스치는 소리.
그리고 지금 어깨에 메고 있던 쇼핑백보다 무거운 짐.
나를 땅 위에 머무르게 하던 그 짐.
“……아.”
방금까지만 해도 평온했던 심장이 다시 급하게 뛰고, 비에 젖어서 차갑게 식은 몸이 벌벌 떨리기 시작했다. 원인 모를 오싹함이 척추를 스쳐 지나가고 그런 내 눈앞으로 안개가 낀 것처럼 시야가 흐릿해졌다.
“……가하?”
이상한 반응을 보이는 나를 대호가 불렀지만,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움직이고 싶어도, 알 수 없는 공포와 두려움에 질려서 손 하나 까딱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떨었다. 그러자 대호가 내게 뛰어왔다.
“가하!”
“오빠? 왜 그래?”
“가연아, 의사 불러.”
“어, 어. 네!”
대호는 나를 부축하며 로비의 소파에 우선 뉘였다. 동생도 나를 붙잡았다가 바로 리셉션으로 달려가서 도움을 청하는 소리가 들렸다. 내 감각은 멀쩡한데, 마치 얼어붙은 사람처럼 꼼짝을 할 수가 없었다. 소파에 눕혀지자 천장의 커다란 샹들리에의 현란한 불빛이 내 눈을 눈부시게 잠식했다. 금빛으로 물들어 있는 한 사람의 인영.
「가하.」
알 수 없는 사람의 인영.
누구, 지.
나는 뻑뻑한 눈을 간신히 한 번 깜빡였다. 그러자 내가 봤던 것이 환각이기라도 한 듯이 대호의 걱정하는 말이 파고들었다.
“가하야. 정신, 차려.”
그 인영의 환한 모습에 역광을 받은 대호의 까만 인영이 겹쳐들어 갔다. 대호가 굳어 있는 내 몸을 연신 주물렀다. 차갑게 식어 가는 살결 위로 연신 그의 따뜻한 손이 지나가도 이상하게 추웠다.
“추, 워.”
허전했다.
“추워? 담요, 덮어 줄게. 의사 곧 올 거야. 조금만…….”
있어야 할 자리에 누군가가 없는 것처럼.
“추워…….”
“…….”
대호는 나를 물끄러미 보다가 입고 있던 겉옷을 풀어헤치고 나를 안았다. 그의 품에 감겨 있는 내 몸은 점점 따뜻하게 데워졌지만 더불어 정신도 점점 꺼져 갔다. 마치 맞지 않은 열쇠를 넣어 잠겨 버리는 방처럼.
그리고 나는 꿈을 꿨다.
눈앞이 오래된 필름영화를 보는 것처럼 뚝, 뚝 끊기고 중간 중간 시야가 까맣게 암전되었다. 그 시야에 보이는 것은 온통 하얀 세상.
시작도 끝도 보이지 않는 그런 세상.
유일하게 보이는 것은 내 몸. 그것도 마치 모스 부호 신호처럼 뚝, 뚝 까맣게 불이 들어왔다 꺼지는 것처럼 간헐적으로 보인다.
“…….”
이게 다 무슨 일일까.
아까 전, ‘파란 눈’을 보고 심장이 이상해졌던 것과 관련이 있는 것일까.
나는 고요하기 짝이 없는 하얀 세상에서 고개를 쳐들었다. 검은 얼룩 하나 없는 세상은 하얗다 못해 깨끗했다. 하지만 온통 그러니, 나는 그 하얀 것이 나를 삼켜 버릴 것만 같아서 조금 겁이 났다.
어딘가 답답했고, 나가고 싶었다.
나는 주변을 두리번두리번 살피며 이 알 수 없는 세상의 출구를 찾았다. 하지만 어디에서도 문으로 보이는 곳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하얀 세계를 걷고, 뛰고, 기어 다니다가 끝없이 펼쳐진 백색의 공포에 질려서 가슴을 부여잡았다. 미지의 공포감이 심장을 쥐어짜듯이 조여 들었다.
“헉, 헉…….”
“가하.”
숨이 막혀 오는 나를 부르는 목소리. 나는 목소리가 들린 곳으로 바로 고개를 돌렸다.
“가하.”
아무것도 없는 세상에, 사람의 인영이 서 있었다.
내 이름을 부르는 사람의 실루엣은 얼굴도 보이지 않는다.
이 사람의 이름은 더욱 모르겠다.
“…….”
까맣지도, 하얗지도 않다.
그 인영의 색깔은 파란색으로 채워져 있다.
그 파란색 가운데, 간간히 구름과 같이 하얗고 부드러운 것이 흘러지나간다 마치 하늘처럼.
그래, 이 사람은 하늘로 이루어져 있다.
“누구…… 세요.”
누구일까.
그 사람은, 그 하늘은 어디서 온 것일까.
내 질문에 가만히 내 이름을 부르는 인영이 손을 뻗는다. 마치 자신의 손을 잡으라는 듯이.
“가하.”
내 이름을 부르는 하늘. 그 손의 색깔은 맑은 하늘처럼 새파랗다. 그 손을 잡으면 차가울 것 같고, 그 하늘에 빠져 버릴 것만 같다. 추위에 떨던 내가 그 손을 잡을 이유는 없지만, 왠지 이 하얀 세계에서 나를 그 하늘로 꺼내 줄 것 같아서. 알 수 없는 세상에 갇힌 나는 그 손을, 덥석 잡았다. 이래도 되는 것인가 고민하는 가운데 그 하늘을 닮은, 아니 하늘을 담은 사람의 손이 나를 끌어당기며 자신의 품에 안았다.
‘따뜻……하다.’
그 맑은 색깔이 주는 청량감에 분명 차가울 것이라고 예상 했던 것과 달리, 따뜻했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사람의 품은 불안했던 나를 따뜻함으로 전이시켰다.
‘이건 무슨 느낌일까.’
잘 모르겠지만, 계속. 계속, 안겨 있으면 좋겠다.
내가 그 안온한 품에 스르륵 빠져 들어가는데 그 사람은 계속해서 내 이름을 불렀다.
“가하.”
아까보다 그 목소리가 어딘가 슬프게 들린다면 착각일까. 꿈에서도 착각을 할 수 있나 고민하는 가운데 고요한 세상에 어디선가 똑, 똑 하고 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나는 쪽으로 시선을 돌리니 하얀 세상의 천장에 금이 가 있다. 그 틈을 타고 내 머리 위로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지다가 이내 후두둑 떨어지기 시작했다.
“…….”
비가, 그때처럼 예고도 없이 급하게 온다. 더불어 반응하는 내 심장이 다시 급하게 달리기 시작했다. 나는 심장 부근을 죄여오는 고통에 신음했다.
“허억.”
다른 것도 아니고, 비가 와서.
꿈에서도 알 수 없는 고통이 느껴진다니 참 이상한 일이다. 빗물에 젖어드는 눈꺼풀을 힘들게 뜨면서 나를 안고 있는 사람을 바라보았다. 점점 거세지는 빗줄기에 나와 그 하늘을 담은 사람이 빗물에 젖어 가고 있었다.
“가하.”
여전히 슬프게 내 이름을 부르는 그 사람은 물이 닿는 자리마다 마치 피를 흘리는 것처럼, 붉은 색을 진득하게 흘려갔다. 파란 하늘에 붉은 색이 뚝, 뚝 떨어지는 모습에 가슴의 고동이 커졌다. 그리고 나를 안고 있던 사람의 인영이 실타래처럼, 한 올, 한 올 스르륵 흩어졌다.
“어…….”
“가…….”
점점 사라지는 가운데, 그는 여전히 내 이름을 부른다. 참 슬프고, 아픈 사람처럼.
“……하.”
마치 나를 그리워하는 사람처럼.
마지막까지 그렇게 나를 부르고 사라졌다.
나는 다시 하얀 세상에, 지금은 깨져서 비가 들어오는 그 세상에 혼자 갇혀 있다. 그리고 갈라진 틈은 벌어지다 못해 하나씩 떨어져 내린다. 커다랗게, 작게 산산조각 나는 모습은 비인지, 눈인지 모르게 내 위로 떨어져 내리며 덮쳐들었다. 그렇게 하얀 세상이 무너져 갔다.
감았던 눈을 뜨자 하얀색은 없고 호텔방의 화려한 금박 벽지가 보였다. 조용한 첼로 음악이 흐르는 호텔방 안 침대에 누워 있는 스스로를 확인하고, 방금 전 기묘한 꿈이 남긴 여운을 정리하려 애썼다.
‘꿈……이었구나.’
꿈인 것은 알았지만. 이상하게 꿈같지 않게 느껴지는 그런, 꿈이었다.
비로소 현실에 돌아왔다는 안도도 잠시, 나는 내 이름을 부르던 그 사람. 알 수 없던 사람에 대한 의구심이 들었다.
‘누구 길래, 내 이름을 그토록…… 부르는 걸까.’
침대에 누워 있는 내가 고개를 돌리자 대호가 침대 옆의 의자에 팔짱을 끼고 앉아서 꾸벅 꾸벅 조는 것이 눈에 띄었다. 간호를 해 줬던 것인가. 나는 그의 마음 씀씀이에 조금 미안해졌다. 이 섬에 발을 디딘 이후로 그는 어느 곳을 가든지 늘 곁에 있었으니까.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는 것은 어렴풋이 알았다.
침대에서 일어난 나는, 그의 어깨 너머로 커튼이 미처 가리지 못한 창문에 시선을 빼앗기지만 않았더라면 그를 깨워서 침대에 눕는 게 좋겠다고 말하려 했다. 격자무늬 창문 유리에 흐르는 빗방울로 보아하니 아까보다 세차게 내리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비는 그치지 않고 간헐적으로 뚝, 뚝 계속해서 떨어졌다.
창문 유리에 맺힌 물방울이 무거워져서 이내 강줄기처럼 이어지는 그 모습. 그걸 알아차리자마자 내 가슴에 체한 것처럼 뻐근한 것이 얹혔다.
‘비…….’
비에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걸까. 나는 이 원인 모를 불편함에 가만히 있다가 잠을 깬 대호의 목소리에 겨우 정신을 차렸다.
“음……. 가, 하야. 일어났어? 몸은 좀 괜찮아?”
“아…… 응. 미안.”
“미안은 무슨. 내가 의사 다시 불러…….”
급하게 몸을 일으키는 대호의 팔을 내가 잡았다. 아무리 봐도, 의사가 와서 해결될 통증 같은 게 아닌 것 같았다. 나는 대호를 만류했다.
“아니, 아니. 나 정말 괜찮아.”
“그래도.”
“정말 괜찮아. 나 그냥…….”
붙잡은 대호의 셔츠 소매 너머로 느껴지는 체온이 제법 홧홧했다. 추위에 떨던 나를 데워 주던 그 체온. 로비에서 쓰러진 나를 안아서 데워 주던 그 온도와도 같이, 뜨거웠다.
“그냥, 비 오는 게…… 싫은가 봐.”
“…….”
“방금 ……꿈도 그렇고.”
“무슨…… 꿈을, 꿨어?”
“……비가 오는데 가슴이 좀.”
미미하게 느껴지는 통증이 서린 가슴팍에 손바닥을 대고 눈을 감았다. 선연하게 두근두근 뛰는 박동이 손바닥의 맥동과 함께 했다. 눈을 감아 까맣게 내린 시야 앞으로 하나의 색깔이 아른거렸다.
“……아프더라고.”
파란색.
맑고 맑은 그 푸른 색. 하늘과도 같고 바다와도 같이 높고 깊은 그 색깔. 내가 갇혀 있던 하얀 세계에서 벗어나게 해 줄 유일한 열쇠처럼 안심시켜 주던 그 색깔.
차가워 보이는 것과 다르게 따뜻하기 그지없던 그 빛.
“나는…… 비 오는 것을, 싫어했나 봐.”
“…….”
“혹시, 예전에 내가 그런 편이었어?”
대호는 묵묵히 내 말을 들었다. 그의 팔에서 손을 떼고 나는 시선을 올려다보았다. 그의 눈이, 첫날 보았던 슬픔을 간직한 그때의 그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내 친구였다던 그는 알까. 내가 왜 비가 싫은지.
왜 비가 오면 가슴이 아픈지.
대호는 투박한 손으로 눈가를 슬슬 쓸어내리면서 대답했다.
“그건…… 몰랐어. 지금 알았네.”
“……그렇구나.”
‘그럼 왜 이럴까…….’
내가 알 수 없는 의문에 파고드는 가운데 대호가 내게 자세히 듣지 않으면 들리지 않을 정도의 작은 목소리로 제안했다.
“……우리 비가 오지 않는 곳으로 갈까.”
“…….”
“비가 내리지 않는 곳으로 가자.”
스산한 첼로의 선율이 울리는 방에서 그는 그 말을 읊조리다가 끝에는 조용히 흐느꼈다.
“그러면 괜찮을 거야.”
“…….”
“아프지 않을 거야. 괜찮아.”
정작 비를 맞은 건 나인데, 그가 더 섧게 울었다.
“내가 너를 지켜 줄게. 내가, 너를 아프지 않게 할게.”
나는 뭐라고 해야 할지 몰랐다. 그 말을 하는 대호가, 너무 아파 보여서. 내 꿈에 나오던 사람과 같이 너무 슬프고 아파 보여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울지…… 마. 나 괜찮아.”
울지 말라는 말밖에는.
바깥에 내리던 비는 그쳤지만, 방 안에서 뚝뚝 흐르는 작은 물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우리는 그렇게 비가 그치자마자, 표류했던 섬을 떠났다. 영원히 비가 오지 않을 메마른 사막과도 같은 도착지를 바라며 남쪽으로 향했다.
그렇게 다다른 이탈리아는 아주 드물게 비가 왔다. 봄, 여름에는 너무 더운 것이 하나 흠이기는 했지만. 가물다 못해 불이 날 정도로 메말라서 우리가 바라던 조건에 맞았다.
비가 내리지 않는 곳.
내 심장이 아프지 않은 날이 많은 곳.
가을 겨울에도 비가 내리기지 않고 파란 하늘이 우중충하게 흐려지는 게 전부였다.
덕분에 나는 가슴의 통증과 불편함, 기묘한 기시감을 느끼는 날이 거의 없었다. 그래도, 겨울 무렵에는 아주 가끔, 비가 왔다. 그런 날에는 어김없이 가슴의 통증과 함께 그 하얀 세상에 갇혀서 하늘을 닮은 사람을 만났다.
2년 동안, 그것을 반복했다.
오늘도 그런 날이었다. 싫은 사람도 자주 보면 정이 든다고 하던데, 잠이 들기 전에 간간히 젖어드는 빗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오랜만에 보게 될 그 사람을 기대했다.
“가하.”
그는 참 한결같이 푸르다. 시드는 것도 없고, 다른 색으로 변하는 것도 없고 그 빛 그대로.
언제나, 영원히 그렇게 있을 것만 같다.
내가 어디에 있든지 어느 하루 비가 내린다면, 이 심장의 고통과 함께 찾아올 것 같다.
“……이름이 뭐예요?”
“가하.”
나는 그가 손을 뻗기도 전에 안겼다. 불규칙하게 하게 맥동하던 박동이 천천히 가라앉으며 진정되어 갔다. 내 옆에 있는 대호가 채워 주지 못하는 이 기묘한 안정감.
“그건 내 이름이에요.”
그게 그 이름 모를 사람에게 있었다.
하지만 나는 오늘도 그 사람의 정체를 알지 못하고 결국 꿈에서 깼다.
“……일어났어?”
낮 시간이 한창인지, 눈을 뜨자마자 황금빛 햇살이 나를 등진 인영 뒤로 쏟아지듯이 부어지고 있었다. 매일매일 한 침대 안에서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며 아침을 맞는 것은, 때에 맞추어 밥을 먹는 것만큼이나 익숙한 광경이었다.
“……응. 계속 옆에 있었어? 몇 시야.”
“점심도 아직 안 됐어. 더 자도 돼.”
그는 내 옆에서 얼굴을 받치고 누워 있는 채로, 오랜만에 ‘파란 꿈’을 꿔서 눈앞이 번쩍거리는 것을 떨쳐내느라 눈을 비비는 나에게 슬쩍 물어보았다.
“또, 그 꿈 꿨어?”
“응? 응.”
그가 비비는 손에 말려들어 간 머리를 손으로 치워 주며 말했다.
“……오랜만에 꿨네.”
어딘가 무던한 나와 달리, 그는 이런 점이 좀 달랐다. 타고난 성격이 제법 세심했다. 아니면 내가 눈치가 엄청 없거나.
“그 꿈.”
“어제 저녁에 비 왔잖아.”
“새벽에 들어와서 몰랐어.”
비가 오면 반복적으로 꾸는 꿈이지만, 심장이 조금 아프고 마는 것 외에 큰 이상은 없으니 개의치 않았다. 아픈 심장마저도, 꿈에서 그 사람을 만나고 나면 금방 괜찮아졌다. 그밖에 평소와 다른 게 있다면…….
그저, 잠을 조금 더 많이 잘 뿐이었다. 물론 걱정이 많은 대호 말로는 내가 마치 죽은 사람처럼 가만히 잠만 잔다고 했다. 그 탓에 영국에서 처음 그 꿈을 꾼 날부터 해서, 이탈리아에 도달할 때까지 대호는 지역의 사설 의원을 데리고 와서 내게 진찰을 받게 했다. 하루는 내가 깨어나기 전까지 잠도 한 숨 자지 않고 종일 지켜본 적도 있었다.
“응. 참, 오늘 몇 시에 나간다고 그랬지? 대호 너 이러고 여유 부려도 돼?”
물론 지금은 익숙해진 터라 그저, 비가 온다 싶으면 옆에서 내가 일어날 때까지 같이 누워 있지만. 그런 대호의 걱정스러운 반응과 달리, 정작 꿈을 꾸는 나는 큰 걱정이 없었다. 정이 들어 버린 그 ‘하늘의 사람’은 내가 찾지 못한 기억 속의 아는 사람 중 하나이지 않을까, 그렇게 넘겼다. 대호도, 여동생도 걱정을 한 번 시작하면 끝이 없었기에 큰 소란을 피우고 싶지 않았다. 그나저나 내 옆에 누워 있는 대호는 한국으로 향하는 긴 비행을 앞 둔 사람치고 너무 느긋했다. 그는 내 눈을 피하면서 툴툴거렸다.
“……아직 시간 많이 남았어. 어제 야근하고 와서 피곤해, 나.”
“밥도 먹고, 씻고 가야지. 비행시간 엄청 길잖아. 12시간인가.”
나는 침대에서 일어서서 여전히 누워서 나를 바라보는 그의 팔을 당겼다. 그래도 그는 마치 가기 싫은 사람처럼 누워 있는 자세에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런 그는 당기던 내 팔을 잡아서 슥, 끌었다. 나도 제법 힘은 있는데 그는 어찌 된 일인지 나보다 더 힘이 셌다.
‘에스퍼라더니, 그래서 그런가?’
무슨 능력을 가진 사람인 줄은 모르지만 분명, 육체 관련된 초능력을 가지고 있는 게 분명하다.
“가기 싫어.”
그가 볼멘소리로 투덜거리며 그의 몸 위로 볼썽사납게 무너진 나를 안아서 다시 침대로 눕혔다.
“……가야지 가족이잖아. 그런 일에 아들이 안 가면…… 안 돼.”
어른스럽기 짝이 없는 대호는 가끔 애같이 굴 때가 있다. 오늘은 유난히 더 그러했다. 나는 나를 침대에 눕힌 굵고 단단한 팔을 토닥였다. 가기 싫다고는 하지만, 그가 안 가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아버지 장례식이잖아.”
“……서로 안 보고 산 지 오래야.”
아무리 그래도, 아버지 장례식에 친아들이 참석하지 하지 않아서야 되겠나 싶었다. 대호와 그의 아버지는 딱히 좋은 부자 관계는 아닌 듯, 특급으로 배송된 국제 우편으로 아버지의 부고 소식을 알게 되었을 때에도 대호가 무시하려는 것을 내가 힘들게 설득했다. 그래도 대호는 영 내키지 않는지 귀국 행 비행기 표를 사는 것도 차일피일 미루는 모습에 내가 멋대로 사고 나서야, 그는 고집을 꺾었다.
「가하 네 돈을 왜 그런데 써?」
「대호 너도 내 일에 돈 쓰잖아.」
「그래도!」
그때 대호는 드물게, 화를 냈다. 내가 힘들게 일해서 번 돈을 이상한데다 썼다고.
딱히 이상하지는 않은데. 대호는 내가 비행기에서 눈을 뜬 그날부터 나는 물론, 같이 사는 나와 프랑스에서 음대 유학을 하는 내 동생에게까지 돈을 아낌없이 쓰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내가 그에게 억지로 선물한 비행기 표 정도는 정말 사소하다 못해 약소한 수준이었다.
‘유학 보내는 비용에 비하면 정말 적은 돈인데.’
눕혀져 있던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서, 베개에다가 얼굴을 파묻고 볼멘소리를 내는 대호의 티셔츠 등판을 흔들었다.
“이미 귀국 준비 다 했잖아. 참, 선물 다 포장해서 캐리어에 넣어 놨으니까 형이랑 친구들 하나씩 주는 거 잊지 말고.”
“……준비는 네가 했잖아. 선물도 넣었어? 안 해도 된다니까…….”
“아무튼. 다 주고 와야 돼? 돌아왔을 때 다 주고 왔는지 캐리어 검사할거야. 다들 좋아하면 좋겠다.”
“당연히, 좋아……할 거야. 아마도.”
결국 대호는 내 말에 한숨을 푹, 쉬고 몸을 일으켰다. 그제야 씻으러 가는지, 욕실 쪽으로 향하는 무거운 발소리에 조금 안심한 나는 부엌으로 향했다. 사실 내가 과한 오지랖을 부리는 것을 잘 안다.
‘그래도 가족이니까.’
동생의 말에 의하면 나는 그녀 말고는 가족이 없다고 했다. 부모님은 사고로 돌아가신지 오래라고. 그래서, 기억도 무엇도 없는 나에겐 ‘가족’이라는 의미가 무척…… 소중하게 느껴지곤 했다.
그래서 그가, 내 옆에서 항상 나를 소중히 여겨 주고 지켜 주는 대호가, 이참에 한국에 돌아가서 그의 가족들과 얼굴이라도 보고 소중한 시간을 누리고 왔으면 했다.
“……형들이 구박했나. 왜 이렇게 싫어하지.”
내 앞에서는 늘 수다쟁이인 그가 희한하게도 자기 가족들에 대한 말은 일언반구도 꺼내지를 않았다. 물어봐도 단순하게 끝내고 말았다.
「대호 너도 형제 있어?」
「……형이 두 명 있어. 큰 형은 결혼했고 둘째 형은…… 글쎄 잘 모르겠다. 별로 신경 쓰고 싶지 않아.」
그래서 도대체 그들이 어떠한 사이인지는 도통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나쁜 사이라고 해도, 아버지 장례식에는 온 가족이 모일 텐데, 그 중에 대호만 없다면.
‘그것도 내 옆에만 있기 위해서 아버지 장례식에 가지 못하면 좀, 그렇지.’
스스로도 생각하자니, 영 신경이 쓰였다. 그가 영국에서 나와 함께한 이후로 어디에도 가지 않고 늘 내 곁에만 있던 게 늘 미안했던 것도 있었다. 그것도 멀쩡한 가족을 한국에 다 두고서 말이다. 부엌에서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 있던 나는 간단한 아침용 빵과 커피를 찾아서 따뜻하게 굽고, 끓여내었다. 그 사이에 대호가 다 씻고 나와서 식탁에 컵이랑 그릇을 두다 말고 뾰족하게 말했다.
“……구박했다고 하면 안 가도 돼?”
“……안 돼.”
내가 혼잣말한 것을 다 들은 모양이었다.
“차가워졌어, 가하.”
내 매몰찬 거절에 그는 냉장고에서 버터랑 잼, 우유와 과일 주스 따위를 꺼내면서 투덜거렸다. 정말로 가기 싫은 모양이었다. 나는 그의 투덜거림을 애써 모르는 척 했다.
“나 원래 이래.”
“아닌데.”
“그럼 어땠는데.”
얄밉게 말대답을 툭툭 하는 그의 접시에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는 마음으로 갓 구운 빵을 얹었다.
“예전엔…….”
그가 대답하면서 막 끓어오르는 커피포트를 들고서 내 머그잔에 따라 주었다.
“내가 말하면 다 진짜인 줄 알고 졸졸 따라다녔지.”
“거짓말.”
장난기 어린 말에 나는 딱 잘라 말하며 식탁에 앉았다. 그도 내 맞은편에 앉으며 어깨를 으쓱이고는 토스트를 베어 물었다.
“진짜인데.”
두 번 속을 줄 아나. 예전에도, 예전에도 하면서 나를 놀려먹는 게 벌써 2년째였다. 그는 푸흐흐, 웃었다.
“나랑 맨날 짝꿍해서 얼마나 좋아 했는데.”
“……몰라. 난 기억 안 나.”
내 모르는 척에 그가 저조한 기분을 지우고 환히 웃다가, 문득,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내가 기억하니까 됐어.”
아차. 그는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유난히 반응이 셌다.
“아무튼, 얼른 먹어. 점심시간 걸리면 길 막히니까.”
나는 얼버무리며 바삭한 토스트를 입 안에 구겨 넣었다. 출발 2시간 전에 그를 차로 태워서 공항까지 배웅해야 했다. 그는 그런 나를 슥, 보다가, 다시 토스트를 먹었다.
“……가하야.”
“응.”
“너도 한국 가고…… 싶어?”
“……나?”
빠삭하게 구운 토스트로 입천장이 까지는 바람에 유난히 따끔거리는 맛을 가진 오렌지 주스를 마시고 있는 가운데, 그의 말에 급하게 대답했다.
‘한국? 사실, 가 보고 싶긴 한데…….’
내가 한 번 비슷한 말을 꺼냈다가 심각한 분위기를 잡는 동생과 대호 때문에 평소에 말하는 것을 피했다. 그 둘은 마치 내가 한국으로 돌아가면 어떻게 될 것처럼 굴었다.
마치, 죽으러 가는 사람을 보는 것처럼 반응이 격렬했다.
그 탓에 멋모르고 한국 가 보고 싶다, 한두 번 말했다가 데인 이후로 말해 본 적도,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심지어 지금 나누는 대화의 주제가 될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나는 입안에 가득 찬 토스트를 씹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아니. 괜찮은데. 왜? 지금 가면 태풍 와서 맨날 비 오잖아. 나 비 오는 날 힘들어 하는 거 알면서.”
“……그냥 물어봤어. 입술에 묻었다.”
그가 티슈를 꺼내서 내 입을 훔쳐 주며 피식 웃었다. 내 말에 조금 안심한 눈치였다. 나는 그가 닦아 주는 휴지를 뺏어서 입가를 슥슥 닦고 커피를 끝냈다. 벌써 11시였다.
“얼른 먹어.”
“한국 사람 아니랄까 봐.”
“그런 너도 한국 사람이잖아.”
웃으면서 농담을 던지는 그에게 나도 지지 않고 픽 웃으며 대답했다.
간단한 아침 식사를 마치고 나서 우리는 공항으로 향했다. 그의 커다란 캐리어를 차 트렁크에 두고, 운전하는 내 옆의 조수석에 대호가 앉았다. 그는 생각이 많은지, 공항으로 가는 고속도로를 타는 내내 말이 없었다. 영 한국에 돌아가기 싫은 티를 내는 대호가 신경 쓰여 힐끔힐끔 쳐다보던 내 모습을 다 보고 있었는지 대호는 창문을 죽 보면서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그렇게 사랑스럽게 보면 나 체하겠어.”
“……우웩 아저씨 같아. 그런 말 할 거면 그냥 말 하지 마.”
물론 그 투정은 가볍게 무시했다. 어디 도살장에 가는 소 마냥 푸념하는 것이 참, 그의 아버지가 나쁜 사람이었나 보다 지레짐작하게 했다.
‘그렇다 해도, 대호 너도 참, 아버지 장례식은 딱 한 번뿐인데 가야지.’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체크인 카운터로 가서 캐리어도 보내고 티켓도 받았다. 이제 검색대를 들어가기만 하면 되는데도 그는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면서 검색대에 들어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에 오히려 내가 더 조급해지고 안달이 났다.
‘이러다 비행기 놓치면 어쩌려고.’
“지금 들어가야 하는 거 아니야? 게이트 시간 생각해야지.”
“괜찮아. 알잖아, 이탈리아 공항은 게이트 늦게 오픈하는 거.”
안절부절 하는 나와 달리 유난히 느긋한 그의 반응에 내가 일어서서 아침에 집에서 했던 행동을 반복했다. 그의 팔을 끌어서 당기자 이번에는 대호가 앉아 있던 벤치에서 어정쩡하게 일어섰다. 나는 그의 등을 밀면서 검색대 줄로 향했다. 그런 대호는 질질 밀리듯이 내 앞으로 걸어갔다.
“……그래도 얼른 가. 혹시 모르잖아.”
“내가 싫어? 자꾸 가라고 가라고 그러네.”
평소에 어른스러운 그는 오늘따라 장난기가 넘쳤다. 환히 웃으면서 너스레를 떠는 그의 모습이, 내 눈에는 뭔가 불안한 게 있어 도리어 능청을 떠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래서 나 또한 마음에도 없는 소리가 나왔다.
“어. 자꾸 말 안 들으니까 밉다. 이참에 아주 가라. 난 내 말 들어주는 사람한테 갈게.”
“……그래? 누구한테 가려고?”
그 말에 그가 웃다 말고 가만히 나를 쳐다보았다. 농담인데, 또 진지하게 대답하는 그에게, 내가 농담이라고 말하려는 순간 그가 먼저 말했다.
“……왜 이렇게 불안하지.”
“……뭐가 불안해. 고작 일주일 다녀오는 거 가지고. 걱정도 참 많다.”
“그냥…… 도둑 들면 어떡하나 싶어서.”
‘도둑?’
나는 허탈하게 웃었다. 무슨 큰 이유라도 있나 했더니, 걱정의 원인이 고작 그런 이유? 나는 얼굴을 찡그렸다.
“문 잘 닫고 자면 되는데. 뭐가 문제야.”
“……다른 건 다 가져가도 되는데…….”
그는 나를 익숙하게 안았다. 나보다 한 뼘은 큰 녀석이 운동 하나는 잘했는지 제법 품이 넉넉해서 나는 그 품에 폭 감싸진 것처럼 안겼다가 바로 뛰쳐나왔다. 집에서는 상관없지만 밖에선 좀 그랬다. 이 작은 도시에 동양인은 한국인은 우리 둘밖에 없기도 했고.
“누가 나 없는 사이에 너 가져가면 어쩌나 불안해.”
“……누가 나 같은 걸 가져가. 약에라도 쓸데가 없다.”
‘이 녀석은, 사람 간지럽게. 내가 무슨 금괴도 아니고 가져가긴 뭘 가져가.’
“……내가 가져왔는데.”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고 가. 자꾸 그러면 진짜 화낸다.”
사람이 얼마 없는 검색대의 줄이 빠르게 줄어드는 것을 보면서 얼른 들어가라고 손을 저었다. 검색대 줄에 서 있던 그가 들어가기 전, 연신 미련이 남는 듯 여권과 티켓만 손에 쥐고서 계속 나를 향해서 뒤돌아보았다. 나는 그에게 손을 흔들었다.
“가. 도착하면 연락하고.”
“……응. 전화할게.”
“응. 들어가서도 연락해.”
그렇게 대호가 처음으로 내 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