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화 (3/25)

<3>

-한번이라도 좋으니 나를 봐줘요-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하얀 벚꽃이 휘날리는 몽환 같은 광경 속에 그가 있었다.

바람에 날리는 새빨간 머리카락과 붉은 눈동자가 너무나 강렬해 

도저히 그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루비젝트 황태자님은... 형을 좋아하나봐.]

[뭐?]

너무나 아름다워 누구의 시선이든 가져가버리는 형.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그런 말투도 사실은 자신에 대한 

겸손함 인 것을 알고 있다.

똑똑한 형은- 내내 형만 바라보면 황태자님의 시선을 알고 있으면서.

아픈 가슴을 붙잡고 그를 바라보지만 그의 시선은 여전히 형을 향한다.

작은 공국의 볼품없는 꼬마왕자인 나따윈...보지 않는다.

제국의 황태자인 그 사람이 보는 것은 

아름답게 빛나는 사리엘왕자 뿐이야.

하지만..

언젠가는-

언젠가 내가 소년으로- 청년으로-

성장하게 되면.

당신 앞에 당당하게 나설 만큼 멋진 남자로 자라게 되면

당신을 나를 봐주길 바래요.

부디.

부디.

한번만이라도 좋으니

나를

바라봐주세요...

<< 반려로 맞아주세요 >>

“아자자 힘내자! 힘!”

새들의 지저귐이 여느 때보다 선명히 들려온다. 

음- 음 그렇구나. 봄이 다가와서야.

너희들도 기운을 내는데 나라고 기운을 안낼 수가 있나.

슈엘은 기지개를 펴며 자리를 일어났다.

약한 모습은 어제까지야, 라며 몇 번이나 다짐을 하며.

포기할 수 없다. 아무리 힘들어도. 그가 나를 싫어해도

도저히 포기할 수는 없어.

고개를 끄덕이며 문을 열자 익숙한 금발이 보였다.

아- 오랜만에 보는...형의 머리카락.

“슈엘? 오늘은 일찍 일어났구나.”

“으응.”

생각해보니 지금껏 아프다는 핑계로 늦잠을 자버렸다.

어휴우...바보 슈엘. 

형에게 다가가 형의 머리를 만지자 익숙한 부드러움에 기분이 좋다.

“헤헤 역시 예쁘다니까, 형의 머리카락.”

어렸을 적엔 이 아름다운 금발이 얼마나 샘이 났는지 모른다.

형의 빛나는 금발 옆의 까만 머리카락이 너무 초라하다는 생각에

엉엉 울며 어머님과 아버지께 떼를 부린 적도 있었다.

나는 왜 금발이 아니야! 라며 우는 나를 달랜 것은 형이었다.

[왜? 형은 슈의 검은 머리카락이 더 예쁜걸. 까만 밤하늘 같잖아.]

싱긋이 웃는 형의 얼굴에 난 그제야 웃을 수 있었다.

그날부터 나는 나의 까만 머리카락과 눈동자를 좋아할 수 있었다.

“미안해 형...”

“응?”

형의 머리에 하얀 두건을 씌우며 슈엘은 고개를 숙였다.

“형의 예쁜 모습을... 보이지 못하잖아, 나 때문에...

왕자란 걸 들킬까봐 일부러 사람들과 떨어져지내고...“

“... ...”

“본래 형은 모두에게 사랑받아야 할 사람인데.”

그것이. 너무 미안해.

형에게 올 사랑을 내가 막는 것 같아서...

형의 행복을 내가 빼앗는 것 같아서...

“슈. 이건  내가 선택한 길이야. 내게 사과할 일이 아니야.”

하얀 두건으로 얼굴을 감싸며 형은 말했다.

“네가 행복하다면 나는 바랄게 없으니까.”

또다시 가슴이 뭉클- 눈물이 나올 것 같다.

이봐, 슈엘.

형이 안심하고 우리나라로 돌아가기 위해서라도 어서 

행복해져야하지, 뭘 그렇게 넋을 놓고 있었던 거야?!

내 등을 토닥이며 형은 주문처럼 되내인다.

언제나럼 내게.

“힘내자 슈. 그 사람도 널 사랑하게 될 거야.”

-용기가 나는 마법을 걸어준다.

한손엔 묵직할 정도로 많은 보석들이 들린 주머니가 있었다.

‘그 일’ 이 있은 후 며칠이나 침대에 누워있었으면서도

후안님께 드릴 보석만큼은 잊지 않고 만들었었다.

덕분에 밀린 보석들이 이렇게나 많잖아-.

그에게 당한 상처가 아파오고 가슴이 쑤셔와도

보석을 세공할 때만큼은 웃으며 웃으며... 그리고 울며

내 마음을 담았다.

하루에 한 개씩 그에게 선물을 주자-

라는 것은 제국에 오기 전에 결심한 나의 철칙이었다.

이렇게라도 나를 보게 만들자.

...나를 기억하게 만들자.

“효과는 그다지 없는 것 같지만 말야-”

그에게 향하는 발걸음 하나하나에 긴장이 된다.

하루도 긴장하지 않은 적은 없지만

그래도

이렇게 걸음이 힘든 적은 처음이다.

후안님을 보면 무슨 말을 해야 할까... 

그가 나를 보면 무슨 말을 할까...

여러 가지 감정이 뒤섞여 마음이 답답해진다.

진짜, 이러지 않기로 했으면서...

“?!”

갑자기 보인 낯익은 얼굴에 슈엘의 걸음이 멈춰졌다.

... ...

심장이 툭하니 멈춘 것처럼.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 그인것냥 오직 그에게 시선이 사로잡힌다.

햇살이 비취는 새빨간 머리카락에.

한 눈에 알아 볼 수 있는 커다란 뒷모습에.

“후............안..............”

“?!”

그리고 그가 슈엘을 향해 고개를 돌리는 순간

털썩- 주저앉아버렸다.

핑그르르- 주머니속의 보석들이 바닥을 뒹굴고

몇 번이고 다짐했던 얼굴이 결국은 엉망이 되고 만다.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웃어야 하는데

왜 눈물이 나오는 거야?

계획대로 입은 웃고 있지만 도저히 눈물만큼은

막을 길이 없다.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그를 보며 슈엘은 미소를 지었다.

“... 님이......아니네...? 하..하하..  ”

후안님과 너무도 닮은 얼굴을 했지만 그보다 진한 갈색눈동자.

그가 아니었다.

“그래서 네가 제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그 반려라고?”

“아...예. 그, 그렇습니다.”

후안이 아닌걸 알고 있음에도 슈엘의 심장은 세차게 떨리고 있다.

후안님과 너무도 닮은 이 남자가 누구인지

어째서 이 이른 시간에 성에 있는가 하는 것은

이미 뒷전이 되어 버렸다. 

“뭐야, 소문만큼 아름답지는 않은걸?”

화끈-.

얼굴이 빨게질정도로 불쾌한 질문이지만 

도저히 반박할 수 없잖아, 그건.

아직까지 두 눈에 맺혀있는 눈물을 닦으며 슈엘은 웃었다.

“하하, 당연하죠. 실은 알스의 아름다운 왕자는 내가 아니라...헙!!”

그와 닮은 얼굴이라고 넋이 나간 게 실수였다.

급하게 입을 막았지만 갈색눈동자가

이미 모든 것을 알아챘다는 듯 웃고 있었다.

“오호, 그렇게 된 거로군-.”

“ 아니요. 저어 아니요, 그게 저기”

횡설수설.으아아아.... 자신의 실수에 어찌할 바를 모르는

슈엘의 모습에 남자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뭐야, 이 녀석은?

아직까지 아무 반려도 없던 그 얼음 같던 황제가

작은 공국의 왕자를 반려로 맞아들였다는 이야기를 듣고 찾아왔더니

이 얼빠진 녀석이 그 반려란 말야?

거기다 도저히.

“너는 폐하의 취향이 아닌데?”

“!!!!”

또다시 화끈. 거리며 부끄러워 할 줄 알았던 얼굴이 이내 굳더니 

자신을 바라본다. 

흔들리는 까만 눈동자를 보며 남자는 자신이

실수했음을 느꼈다.

성격 좋고 덜렁되는 단순한 녀석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 녀석에겐 그것이 건드려선 안 될 상처였던가.

“그렇지 않아요.”

“?!”

또다시 맑은 눈물을 툭툭 떨어뜨릴 것 같던 표정이

이내 웃는다.

아까의 그 신기한... 표정처럼.

사람을 가슴 아프게 만드는 그 미소를 만든다.

“물론 후안님께서 금발과 파란눈동자를 가진 미인을

좋아하신다는 건 유명하죠.“

이내 까만 눈동자가 반짝인다.

“하지만 저도 거기에 지진 않아요. 

알스에서 이 먼 곳까지 왔는걸요. 

“- 후안님을 사랑하는 마음만큼은...지지 않아요!”

“... ...”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그렇게 외친다.

바보같이. 목소리가 그렇게 떨려선 뭘지지 않는 다는 거냐-.

“푸하하- 그래 잘 들었어, 네 연설.”

“네...네에. 고, 고맙습니다.”

“푸후훗...”

별안간 고맙습니다라니. 

도저히 자기가 한나라의 왕자고 

위대한 제국황제의 유일한 반려라는 자각이 있긴 한거야?

생전 처음 보는 사람에게 떠벌떠벌 고백을 하지 않나, 말이지.

“뭐가 그렇게 재미있으세요?”

“하하, 아냐, 아냐.”

진지한 녀석의 얼굴을 보니 터져 나오는 웃음을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

자신보다 겨우 한 뼘 작을 정도의 큰 키에 남자다운 몸.

남자보단 여자를 반하게 만들법한 얼굴에 

묘하게 어울리는 동글동글한 까만 눈동자.

누가 봐도 멋진 남자일 녀석이 어째서 

귀여워 보이는 걸까.

-하여튼 알스의 왕자치고 제대로 된 녀석이 없다니까.

“좋아 좋아. 슈엘·알스·슈 당신의 연설은 잘 들었어.

그럼 난 이만 사라져 볼게.”

“어?! 어디로 가시는데요?”

이 추운 나라에서 이렇게 편하게 말한 상대는 처음이었다.

거기다 후안님과 닮은 얼굴이 자신을 보며 웃어주는것이 기뻐 

슈엘은 저도 모르게 그의 팔을 잡았다.

남자는 잠시 놀란 듯 슈엘을 바라보더니 생긋이 미소를 지었다.

“비밀-.”

“예에?”

“당신도 어서 가보도록해, 반려님.”

“저, 그럼 이름이라도...”

제대로 물어볼 새도 없이 그의 모습이 멀어져갔다.

그는 이제 보이지 않았지만 그의 그 시원한 웃음이 

슈엘의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후안님과 닮은 얼굴이 웃어준다는게 

이렇게나 힘이 날 줄이야-.

슈엘은 조금 전과는 달리 가벼운 발걸음으로

후안의 방을 향해 달렸다.

제국에 처음 왔을 때 가졌던 용기가 가슴에 가득 채워져 있었다.

-후안님이 그 분처럼 웃어주실거야, 언젠가는.

바보 같은 생각이지만 근거 없는 기대감이 커져갔다.

이곳에 온지 가장 새소리가 예쁜 오늘이고-

이곳에 온지 가장 춥지 않은 아침이야.

그리고 그런...일이 있었어도

후안님은 이미 잊으셨을 지도 몰라.

그러니, 평소처럼 나를 대해주실거야.

후안님은 무뚝뚝한 얼굴로 날 바라보시고

그럼 또 내가 뻔뻔하게 웃으며 이 선물을 드리고...

그런 사소한 것인데도 웃음이 난다.

‘그날 일’의 이전과 돌아가는 것만으로도 성공이다.

그렇게 다시 아무것도 없었던 것처럼 돌아가서

다시.

후안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게 노력하는 거야.

그러니까.....

“후안님!”

달칵- 문을 연다.

아아..

며칠 새 너무 그리워진 그가. 보인다.

달칵-

들어오란 말을 하자마자 서둘러 문을 여는 소리에 

후안은 고개를 들었다.

어느 누구도 이런 이른 시간에 그렇게 급한 노크를 하지 않는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이방에 찾아오는 사람은

단 한명뿐이었다.

지금껏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던 모습이 현실에 나타났다.

까만색 머리카락과 하얀 얼굴.

.... 눈물이 가득 고였던 그때와는 달리 

방긋이 웃고 있었다.

“좋은... 아침입니다, 후안님!”

“... ...”

-놀랐다.

다시는. 내 앞에 나타날 줄 알았는데.

이제 내 앞에서 저런 미소 따위.. 보이지 않을 줄 알았는데.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웃으며 문을 열고

아침인사를 하는 그 꼴이라니.

하...하하.

저런 녀석이.

이토록 반가운 마음이라니.

“며칠 동안 못와서 죄송해요-. 몸이 좀 안 좋았거든요... 헤헤.

하지만 후안님께 드릴 선물만큼은 꾸준히 만들었는걸요.”

주머니에서 하나하나...자신이 세공한 보석을 꺼내는

녀석의 손이 

조금씩 떨려보이는것은. 내 착각이겠지...

“하루도 빼먹지 않고 열심히 만들었...답니다.”

자신을 바라보는 후안의 시선에 

슈엘의 가슴은 터질 듯 두근거리고 있었다.

.... 이제. 

나를. 쳐다봐주시지도 않을 줄 알았어.

[ 경박한 놈- ]

그렇게 생각하셨다면 이제 나를 보면

경멸하는. 그런 눈을 할 거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아니네요.

평소처럼 무표정하지만... 

그런 표정만은 아니라 너무 다행이에요.

“저, 저 그럼 이만....”

너무나 가슴이 두근거려 이곳에 계속 있을 수 없을 지경이었다.

서둘러 방을 나가려는 찰나 -커다란 손이 슈엘의 팔을 잡았다.

놀란 검정색눈동자가 손의 주인을 바라보았다.

그의 손에 잡힌 부분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뜨겁다고

느끼는 순간... 후안이 슈엘을 끌어안았다.

후안의 품속에 안겨 슈엘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귀가 막힐 정도로 

두근거리는 심장소리에 

말 못할 정도로

가슴이 떨려왔다.

예전에 느꼈던 그의 향기.

... 포도의. 향.

한 번도 느껴본적없는 강한 팔의 힘이 슈엘을 더욱 

강하게 안아오는 순간

이것은... 꿈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일이... 일어날 리가...

“후...안...님?”

“!!!!”

파악-

현실인지 확인하려는 그 작은 행동이 잘못이었을까.

떨리는 목소리로... 그의 이름을 부르는 순간

이내 꿈처럼 그의 팔이 자신을 밀친다.

마치 무언가 커다란 실수를 한 듯이 황급히 밀치는 손에.

슈엘은 힘없이 밀려났다.

헤에- 너무 빨리 지나가는 꿈이잖아, 

이런 건...

“... ...”

까만 눈동자를 바라보며 후안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스스로가 한 행동이 이해되지 않아 마음은 온통 혼란스러웠다.

내가 왜?!

저놈을 잡았지?

왜....

안은...거냐.

비아냥거리며 녀석을 보내도 시원찮을 마당에 

저런녀석따위를 내가 왜. 안았냐고!!

서둘러 현실로 돌아온 이성이 슈엘을 밀쳤지만

자신의 품에 있던 그 따뜻한 온기가 사라지자 밀려드는 건 아쉬움었다.

조금 더 그 온기를 오래 품고 싶은

욕망이 그 안에 있었다.

“저, 저어...”

당황해서 어쩔줄 모르는 슈엘의 모습에 후안은 

더욱더 강한 충동을 느껴야했다.

‘그 때’처럼.

저 남자의 몸을 느끼고 싶은 충동을.

그 순간 후안의 시야에 무언가가 반짝였다.

금발의 머리카락 한 올-.

슈엘의 까만 머리카락사이로 반짝이는 금발이 한 올

빛나고 있었다.

[그 시종과 반려님의 관계를 의심한 일이 없으십니까?]

“!!!!!”

치솟는 짜증이 억제되지 않았다. 

“-역시, 어쩔 수 없는 놈인가?”

“네엣?”

아무것도 모르는 그 얼굴조차. 

이제는 지겨워.

“경박한 놈이라는 것을, 내가 잠시 잊고 있었어!!”

“!!!”

무언가 자신을 향해 날아왔지만 슈엘은 도저히 

피할 수가 없었다.

그의 독설이 가슴깊이 파고들어 숨쉬는 것 조차 힘이 들었다.

챙-

보석들이 벽에 튕겨 바닥으로 떨어져나갔다.

날카로운 루비하나가 슈엘의 얼굴을 스쳐 상처를 내었지만

그 고통조차 느끼지 못할 만큼 머릿 속은 뒤죽박죽이었다.

저렇게 화를 내는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아니면, 또다시 내게 그 더러운 몸을 안아 달라 조를 심산이었나?“

“... 아, 아뇨... 저어...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것인지...”

후안은 차가운 눈으로 슈엘을 쏘아보았다.

그에게 다가가 까만 머리카락에 엉켜 있는 금색머리카락을 집으며

후안은 말했다.

“네가 데려온 그 시종과 너의 관계에 대한 소문을 들었다. ”

“소문이라뇨?! 저와 그는 아무 관계도 아닙니다. 정말입니다, 후안님!”

“그럼, 내가 그와 자도 괜찮겠소, 반려여?”

“... ,,,예...?”

“어차피 어느 남창과의 잠자리도 용인했던 

자비로운 반려가 아니오? 

이딴 보석 같은 선물보다도 당신의 하인을 내게 주는 것은 어떻겠소?!“

“... ...”

후안의 냉소적인 웃음에 슈엘의 손이 눈에 보이도록 떨려왔다.

하지만 그 모습에 후안은 더더욱 분노를 느낄 뿐이었다.

어서, 웃어.

또. 그 가슴을 아프게 하는 이상한 미소를 보이고

알겠다고 허락해!

그 는 단순히 시종일 뿐이라고 말해라.

“.....................안됩니다...”

“?!”

“제발...................후안님..............그 사람만은 안 돼요, 제발.......”

처음으로 후안은 미소를 지운 슈엘의 얼굴을 보았다.

지금껏 어떤 말을 해도 웃고 있던 그 얼굴이

필사적으로 눈물을 참고 있었다.

그런 녀석을 감싸는 이 녀석의 모습에 후안은 화가났다.

가슴에 벅차오르는 분노를 이제는 참을 수 없었다.

“그럼, 네가 나에게 안길 텐가?!”

“!!!!”

까만 눈동자 가득 후안의 얼굴이 비취었다.

....처음으로.

그가 무서웠다.

슈엘은 소리를 질렀지만, 

이미 강한 손이 슈엘의 두 팔을 잡은 후였다.

“후안님, 저와 그 사람은 아무관계도 아닙니다! 정말.....”

슈엘의 입이 다물어졌다.

자신을 내리깔아 보는 그 눈동자가 너무나 무서웠다.

차가운 눈빛으로 후안은 말했다.

“너와 그의 관계 따윈 이제 관심 없다.” 

“..................”

“너는 그 녀석 대신 안기면 그만 인거야.”

“... ...”

촤악- 옷이 찢어지는 소리에 슈엘은 눈을. 감았다.

“읏...”

슈엘은 몸을 움츠렸다. 

목과 가슴에 느껴지는 차가운 입술이 자극적으로 다가왔다. 

후안의 혀가 옮겨질 때면 쾌감과 부끄러움에 눈을 뜰 수가 없었다. 

꼭 감은 두 눈 위로 후안의 입술이 닿았을 땐 너무나 두근거려, 

이 애정 없는 행위에도 작으나마 온기를 느꼈다. 

그 온기에 용기를 내어 눈을 뜨자 자신을 향하는 

붉은 눈동자에 슈엘은 웃었다. 

마음깊이. 마음속깊이.

‘나를 안아주세요.’하고 되내인다. 

입으로 이런 말을 했다가는 이런 행위조차 멈추겠지. 

또다시 다를 경멸하겠지. 

그래서 그런 말을 할 수가 없다. 

당신의 키스가 너무나 기쁘다는 말 따위 할 수가 없다.

그저 두 손으로 후안의 등을 꼬옥 안는 게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전부였다.

“흐으...”

잠시의 애무가 끝나자 깊은 고통이 시작되었다. 

후안의 성기가 슈엘의 속으로 파고들자 슈엘은 정신이 아찔해왔다. 

이전에 겪어본 고통이었지만 도저히 익숙해질 수 없는. 이질적 느낌이었다. 

파고드는 고통에 두 눈을 감고 후안의 등을 

더더욱 세게 껴안았다.

“후... 안님... 우..으..ㄱ  후안님..”

더더욱 깊숙이 들어오는 후안을 느끼며 결국은 

투명한 눈물이 쏟아져 내린다. 

이 느낌이 사랑이었으면... 이 행위가 당신의 애정이었으면... 

좋을 텐데.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말을 당당히 할 수 있다면... 

죽어도 좋을 만큼 기쁠 텐데. 

나는 그런 말을 할 수가 없어요.

“하아... 으윽!!!”

절정의 순간,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게 

작은 목소리로 속삭여 본다.

“...해요. ... 사랑해요....”

“!!!”

눈을뜬 슈엘은 또다시 자신에 대한 혐오감과 실망감이 밀려들었다. 

이번만은 그의 모습을 놓치지 말자 맹세했것만 

또다시 정신을 잃고 말았다. 

아무런 준비 없이 남자를 받아드린 그 곳에선

새빨간 피가 터져 나오고 있었지만 슈엘은 신경 쓰지 않았다. 

다급히 슈엘의 눈은 후안을 찾고 있었다. 

자신을 사랑스럽게 보는 시선 따위 없을 테지만, 

보나마나 경멸하는 그런 시선을 보내겠지만 

그래도. 

이 눈동자에 그를 담고 싶은 욕심이 앞선다.

“후안...님?”

소리 내어 불러보지만 대답이 없다.

엉망이된 몸을 침대위의 천으로 대충 가린 후에 슈엘은 침대에서 내려왔다.

“후안님...?”

그 혼자 잠을 자고 눈을 뜨기에는 외로워 보이는 커다란 방. 

슈엘은 조금 더 큰소리로 그를 불러보았다. 

그러나 그가 보이지 않는다. 

순간 슈엘의 머릿속에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너는 그 녀석 대신 안기면 그만 인거야. ]

“!!!!”

따뜻할 것이 분명한 방안 가득 서늘한 냉기가 느껴졌다. 

슈엘의 다리가 덜덜 떨려왔다.

금발의 아름다운 형이 후안에게 안겨있는 모습이 떠올려지자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 ...격렬한 질투심!!!

형에 대한 걱정과 질투심이 슈엘의 마음속에서 차올랐다. 

옷을 입을 겨를도 없었다. 

슈엘은 문을 열고 자신의 방을 향해 달려갔다. 

아침에 그의 방에 들어와 어두워진 밤에 나오는 것은 

이번으로 두 번째... 

이전과 마찬가지의 행위를 강요당했지만 

그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불안감이 슈엘안에 자리 잡았다.

다리사이에서 피와 정액이 섞여 흘러내렸지만 닦을 틈도 없었다. 

자신을 이상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시녀들의 시선에도 신경 쓰지 않았다. 

얇은 천하나만 걸친 몸은 점점 차가워졌지만 

심장은 더더욱 뜨거워지고 있었다.

“하아...하아...”

거친 숨소리를 내며 달리던 슈엘이 멈춰 섰다. 

...황제의 후궁. 

아직은 주인이 슈엘뿐인 웅장한 후궁 안,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방의 문고리를 잡았다. 

후안의 방에 들어가는 것보다도 더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제발...

제발... 

절박한 심정으로 슈엘은 문을 열었다. 

처음 눈에 보인 것은 아름다운 금발머리였다.

하얀 두건에 가려져 있어야 할 형의 

금빛 머리카락이 빛나고 있었다.

“슈...?”

놀란 얼굴을 짓는 형의 옆에 또 한명 다른 사람이 있었다.

커다란 키에... 

붉은...

머리카락...

익숙한.. 남자의 뒷모습.

멀리서 형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도저히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다.

머릿속이 울리고 모든 것이 현실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자신을 지키려는 듯 까만 눈동자가 닫혀졌고

슈엘의 몸이 힘없이 바닥에 쓰러졌다.

******

“후...안님...흐..읏...”

새어나오는 저 소리가 흥분되어 견딜 수가 없다. 

자신의 이감정이 무엇인지조차도 후안은 알수가 없다. 

이 건장한 사내의 몸이 어디가 매혹적인지 

자신조차도 혼란스럽다. 

그저 이 하얀 목과 탄탄한 가슴, 배, 

그리고 선량한 인상의 준수한 그 얼굴이 가지고 싶다. 

처음에는 울며 싫다 말하다가 애무가 계속되자 

순순히 자신을 따르는 것에 기분이 좋아진다.

제국의 황제가 안기를 원하면 몸을 내놓는 것은 

지금껏 아주 당연하다 여긴 것인데... 

얌전히 안기는 것이 기뻐하는 자신의 감정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다른 자와의 밤이었다면 오랜 시간 애무를 하며 즐겼을 것을, 

두 눈을 꼭 감고 이를 악무는 모습을 보면 참을 수 없어졌다.

그 얼굴이 신음소리를 내뱉고, 자신을 갈구하는 모습이 보고 싶어 

자신의 성기를 슈엘의 그곳에 비비고, 탐닉했다. 

자신만 아는 것이 확실한 빡빡한 구멍에

묘한 기쁨을 느끼며 좁고 따뜻한 그곳을 파고들었다.

“아악..!!..흐으...아..”

싫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이런 행위 따위는 익숙지 않을 어린 녀석 주제에. 

싫다는 말 한마디 없이 그저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 

두 눈에 눈물이 가득해서는. 

자신의 등을 강하게 안아오는 슈엘의 손이 사랑스럽다... 

자신을 향하는 눈이 사랑스럽다...

절정의 순간...

“사...랑...해요..”

후안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신음소리외엔 들리지 않던 공간에 들려온 이 목소리는... 

그 후로 몇 번이고 슈엘을 안는 내내 

후안의 머릿속엔 그 네글자가 떠나지 않았다.

설마...

그런 말 따위 할 리가 없잖아... 

나의- 착각이야...

후안은 잠이 든 슈엘을 바라보았다.

부드러워보이는 까만색 머리카락을 만져본다. 

사르르르...  좋은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후안은 알 수 없는 기분이 계속됨을 느꼈다. 

이것은 또 아까와는 다른 기분이다. 

갖고 싶은 기분이 아닌... 

알. 고. 싶은 기분. 

천하나 걸치지 않은 슈엘의 알몸을 관찰하듯 자세히 바라보았다.

작지 않은 몸. 

다시 생각해봐도 이런 몸을 내가 어떻게 안았지 라는 생각이 

들 만한 남자의 몸이다. 

하지만 방금 전 만든 키스마크가 

선명히 남아있는 하얀 피부가 매혹적이다. 

아까 자신의 등을 필사적으로 안았던 손.

골격이 분명한 남자의 손인데도 따뜻한 온기에 기분이 좋아진다.

얼굴을 보자, 까만 눈동자가 생각난다. 

... 깨우고 싶은 작은 충동이 인다.

깨워서 그 새까만 눈동자에 비췬 나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자 

나오는 헛웃음.

영락없이 어린아이잖아, 이건...

오똑한 콧날과 단정한 입술. 

누가보아도 미남이라고 할만한 준수한 얼굴인데도 

아이처럼 귀여움이 느껴진다. 

그러다 시선이 한곳에 향한다. 

하얀 볼에 그어진 새빨간 선. 

... 몇 시간 전 자신이 던진 보석이 스치면서 남은 상처다. 

갑자기 가슴이 지끈 아파온다. 

이, 제국의 황제가... 

겨우 사내 녀석 얼굴에 작은 상처를 낸 정도로...

“정말... 알 수가 없어, 너는.”

슈엘의 상처를 매만지며 후안은 속삭였다. 

마음속이 복잡하다. 

자신도 알지 못하는 감정들이 미안함과 당혹감에 뒤섞여 있다. 

이런 적은... 처음이야, 정말로.

똑똑-. 

“폐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시종의 목소리에 후안은 짜증이 났다. 

자신과 슈엘의 공간에 침범한 것 같아 기분이 나빠졌다. 

언제나  침대의 일보다도 국정이 우선이었던 그였음에도...

“무슨 일이냐. 중요한 일이 아니면 듣지 않겠다.”

후안의 짜증 섞인 목소리에 잠시 멈칫하더니 말이 이어졌다.

“이안·루비젝트·란. 님께서 돌아오셨습니다.”

“!!”

잠들어있는 슈엘을 다시 한번 쳐다보며 후안은 아쉬움을 느꼈다. 

흥. 이런 때에 그녀석이 돌아오다니. 

간편한 옷을 입고 나가는 후안의 발에 무언가 밟혔다.

“... ...”

이전에 잔인하게 던져버린 보석이다. 

이내 울먹거리던 그 얼굴이 생각난다.

“시종이라...”

슈엘, 자신이 안기면서까지 지켜주려고 했던 

시종의 존재가 생각나자 또 한번 후안의 가슴에 분노가 생겼다.

겨우 시종 따위를 지켜주려고... 

대체, 그가 어떤 존재길래-!!

보석을 주워 주머니 속에 담으며 후안은 되내였다.

“네가 그 녀석과 어떤 관계이든... 

너는 내 반려 일뿐이야 슈엘·알스·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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