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궁세가 무사님은 로판에서 환생했다 (136)화 (136/176)

136.

사내 둘이 입 좀 맞추는 모습을 보았다고 검술 수업을 빼먹는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고급 검술 시간에 맞추어 대연무장에 들어섰다.

그러나 발터의 얼굴을 볼 적마다 달아나고 싶은 것은 어쩐 일일까. 온전히 따져 답을 구할 수 없는 일이었다.

발터 오르겐의 얼굴을 마주하니 괜찮다, 상관없다 말했던 것들이 전부 헛일인 듯싶었다.

저도 모르게 시선이 그를 쫓았던 것인지, 언제나처럼 서글서글한 웃음을 머금은 발터와 눈이 마주쳤다. 그가 곧장 물었다.

“왜 그렇게 봐?”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뭔데?”

“머리를 매일 땋아 올리는 것이⋯그, 정인이 긴 머리를 좋아하는 것과 무슨 상관입니까?”

“어?”

발터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뺨이 크게 부풀었다가, 광대가 들썩거렸다가, 결국에는 참지 못하고 입을 크게 벌리고 으하학 괴로울 정도로 큰 목소리로 웃었다. 그를 보면서, 내가 우스운 이야기를 했던가 고민했다.

발터가 배를 잡고 웃는 모습에 궁금한 시선이 모였다. 몇몇이 가까이 다가와서 기웃거리는데도 발터는 조금도 아랑곳 않고 눈가에 맺힌 눈물을 손등으로 훔치며 해설해주었다.

“그냥 머리를 한데 모아 묶으면 말야, 막 흔들리잖아.”

“⋯그렇죠.”

“그럼 모래먼지 같은 것이 끼어 부스스해지거든.”

“어⋯.”

그런가? 그러고 보니 루실라가 그런 머리를 하고 다녔다. 늘 말꼬리처럼 높이 묶어 살랑이는 루실라의 머리칼을 한 번 보고, 다시 발터에게 시선을 두었다.

발터는 여전히 끅끅 웃음을 참아 누르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매일 아침마다 정갈한 마음으로 감고, 충분히 말리고, 계절에 관계 없이 장미 기름을 발라 잘 빗질해야만 이 정도 윤기가 난다고. 이게 어디 쉬운 일인 줄 알아?”

“⋯허어어.”

그런 공작새 같은 짓을 하고 있었단 말인가?

나는 잠시 고민하다 다시 물었다.

“그럼 수업이 끝나자마자 머리를 푸르는 것은 어째서입니까?”

“머리가 곱슬곱슬하면, 쓰다듬을 때 손가락 사이에 엉키잖아. 곧은 게 좋지.”

“⋯.”

칼립스 교수가 발터의 머리를 자주 쓰다듬는 모양이었다.

쉬이 상상이 가지 않는 꼴이었다. 나는 괜한 것을 물었다 싶어 입을 닫았다. 그러나, 가장 궁금한 것이 남아 있었다.

나는 목소리를 낮추었다. 그래도 들을 이는 다 들을 것을 알고 있었으나, 주어가 없고 발터가 당당하니 괜찮을 것만 같았다.

“그렇게 좋습니까?”

발터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해가 지고 별이 가득한 밤이 몰려오는 순간을 표정으로 그리면 이런 얼굴이겠구나 싶었다. 찬찬히 웃음이 사그라드는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아이는 나를 보다가, 잠시 하늘을 보고, 제 뺨을 넓은 손바닥을 짝 펼쳐 슥슥 문질렀다.

나는 쉐이든의 말을 이해했다. 이 아이를 응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발터의 눈에 달처럼 떠오른 연정을 본 사람은 모조리 나와 같은 감상을 받았으리라.

발터는 입을 열어 대답하는 대신에, 다시 씨익 웃더니 내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오늘은 맷 니코가 어느 선배 하나와 대련을 하여 승리를 거두었다. 뿌듯한 기색을 한 소년의 동그란 코끝이 흥분으로 발갛게 물든 모습이 토끼 같고 귀여웠다.

루베르에게 그 이야기를 했더니, 아이가 내게 물었다.

“그래서 맷도 어여쁘고 귀여워?”

“예?”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것인지 바로 알아듣지 못하여 의아한 소리를 냈더니, 아이가 아니다 손사래를 치며 얼굴을 붉혔다.

그 모습을 보고서야 지난날 내 응접실에서 아이와 이야기를 나눌 때에, 아카데미에서 만난 아해들이 다 귀엽고 어여쁘더라 했던 말을 꺼내 온 것을 알았다.

루베르의 보들보들한 머리를 쓸어주며 그 귓가에 알려주었다.

“선배가 더 귀엽습니다.”

“⋯.”

문득 루베르도 매일 아침 장미유를 발라 이렇게 매끈매끈 어여쁜 머리통을 하고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까닭인지 묻는 것이 내키지 않아, 그저 마음속에 가만 묻어두었다.

오후에 바로 있는 세계 지리 시간에는 유일 산맥에 대한 것을 마저 배웠다.

나는 광산이나 광물에 대한 것은 잘 몰랐다. 내게 산은 높이 올라 구경을 하는 것이지, 나무나 돌을 얻기 위해 파헤치는 곳이 아니었다.

그나마 산을 뒤적일 때에는 혹여 땅에 굴러다니는 영약이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뿐이었다. 한 번도 괜찮은 것을 얻어낸 일이 없어 그저 농담으로 하는 말이었다.

그러나 카사블랑카 교수는 유일 산맥이야말로 시어런 제국을 강한 국가로 행세할 수 있게 하는 원천이라 피력했다.

꾸준히 시어런 제국의 기사들이 몬스터를 처치하고 있는 덕분에 위드로 공작가와 그림스베인 공작가는 마법사와 인부들을 유일 산맥의 가장자리로 데려갈 수 있었다.

“시어런 제국의 모든 보석은 그림스베인이 캐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루비, 사파이어, 금광석 같은 높은 압력과 오랜 시간이 필요한 보석들은 더욱 더 그렇죠.”

중원에서도 금은보화를 쥐어 본 적이 없는 나는, 내가 생일선물로 받은 것들과 비슷한 보석의 색과 모양을 짜맞추기 위해 노력하며 해설을 들었다.

“보석의 원형이 몬스터의 마석이나 사체라고 주장하는 의견은 꾸준히 있어 왔어요. 실제로 마석에 강제로 압력을 가해 인조 보석을 만드는 연구도 진행되고 있고요.”

이즈음 해서 나는 브리아나 카사블랑카 교수의 세계지리에서 배우는 유일 산맥에 대한 것이 내가 원하던 항목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도 광맥의 대략적인 분포와 제국기사단이 계절마다 움직이는 방향에 대해 약간이나마 더 듣게 된 것이 성과라면 성과일 터였다.

세계지리 수업이 끝나고 바로 있는 응급처치 기초 수업은 더했다. 나는 통나무에 단단히 붕대를 묶으며 한숨을 삼켰다. 마리앤이 빠르고 깔끔하게 묶인 매듭을 자랑하며 히 웃었다.

“이게 또 하다 보니 재밌네요.”

“재미라도 있다니 됐습니다.”

“미카엘은 재미없어요?”

재미있을 리가 없었다.

레이 깁슨의 응급처치법은 중원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리가 부러지면 부목을 대고 붕대를 감았고, 체온이 떨어지면 나뭇가지를 비벼 불을 피웠다. 독물에 물리면 입을 대고 독을 빨아내어 뱉고, 맑은 물로 입을 헹구라 했다.

시어런도 사람이 사는 곳임을 내 잊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모두 신기하고 대단한 것만 보다가 마법도, 연금약도 없이 닥친 일을 해결하는 일이 어색하게 여겨졌다.

이런 것은 응급처치 기초가 아니라, 탐험과 생존 과목에서 배워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내가 그런 말을 했더니, 마리앤이 깔깔 웃으며 레이 깁슨이 원래가 시어런 생존 전문가로 유명한 사내라고 알려주었다.

흙을 뒤집어쓰고 곰을 피한 일도 있어 무척 유명하다는 말에 기가 찼다. 거짓말 같았다. 곰이 저 사내를 피해가야지, 어찌 저 치가 곰을 피해간단 말인가.

속으로 투덜거리며 매듭을 마무리 지었다.

그래도 작년에 연금 수업에서 덫을 만들 적에 비슷한 것을 할 때에는 한참 헤맨 것을, 이제는 몇 번 해 보았다고 능숙해져 겉보기에 말끔하니 보기는 좋았다.

“좋아, 좋아! 다들 제대로 묶었어. 이 정도로 붕대가 팽팽하게 당겨져야만 제대로 지혈 효과를 볼 수 있어. 다만 상처의 정도와 강도에 따라 피부가 괴사하지 않도록 간간이 피부색을 보아 확인해야겠지.”

“네에.”

“만일의 사태가 왔을 때, 가장 먼저 주의해야 할 점이 무엇이라고 했지?”

“체온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맞아! 딱 세 가지. 호흡 확인, 소독과 지혈, 체온 유지. 이 세 가지만 유의하면 어떤 상황에서도 살아날 수 있다!”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따각따각 판서를 한 레이 깁슨이 난데없이 쾅 하고 칠판을 내려쳤다. 칠판은 그저 판서를 위해 몸을 내어 준 것인데, 한 대 얻어맞아 우그러든 모습을 보니 안쓰러웠다.

그런 이야기를 슬쩍 귀뜸했더니, 마리앤이 웃음을 꾹 눌러 참다가 눈물을 보였다.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서 모닥불을 피우거나, 타인의 맨살을 맞대거나, 건조한 옷을 여러 겹 겹쳐 입어야 한다는 당연한 이야기를 몇 번씩 들었다.

그래도 시험에 나온다 하니 필기는 꼼꼼하게 해 두었다. 조난 당할 일을 염려하여 체온을 유지할만한 아티팩트나 여럿 구해두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오후 수업을 하는 내내 루베르의 뜨끈한 귀가 생각이 났다.

루베르 그놈은 말 몇 마디에 금방 뜨끈해지는 놈이니 불을 피울 필요도 없을 테지. 그런 생각으로 혼자 웃었더니, 마리앤이 같이 웃자 하여 모르는 척 했다.

* * *

수요일. 나는 빌 브라운이 부대껴오는 것에 익숙해졌다.

중급 검술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아이가 한 번씩 나를 꽉 안았다 놓거나, 내 어깨나 등에 팔을 걸어 졸졸 쫓아다니는 것이 묵직하긴 했지만 귀찮을 정도는 아니었다.

사실은, 그 모습을 보고 저도 한 번씩 안아달라며 팔을 내미는 루베르가 있어 그냥 두는 것이기도 했다.

아침이 오면 빌을 한 번 안아 토닥이고, 큰 몸을 꼬깃꼬깃 접어 내 품에 쏙 들어와 칭얼거리는 루베르의 등을 쓸어내리는 일이 즐거웠다.

이런저런 대화를 나눈 이후로도, 나는 사내끼리의 접촉을 터부시하는 법을 잘 몰랐다. 여아의 어깨는 쥘 수 없어도 남아의 어깨는 잡아 끌어 인도하는 것을 당연히 여겼다.

만족스러울 만큼 아이들을 어르고 쓰다듬으며 인사를 마치면, 마엘로 샌슨이 인도해주는 제국검법을 배웠다.

중급 검술 수업이 나날이 마음에 들어차기 시작하여 이전처럼 오전이 즐거워졌다. 매일 눈을 뜨는 일이 기대가 되었다.

그러나 수요일 오후가 되니 마음이 불편하였다.

제국의 계보 수업이 있는 날이었다. 오늘은 칼립스 아그리젠트의 목덜미에 멍자국이 없었다. 지난주의 것은 흐려지고, 새로운 화인이 찍히지 않은 것을 확인했다.

그러나 수업을 듣는 것 외에 개인적인 말을 꺼내기 위해 교수를 붙잡는 일이 생각보다 어려웠다.

칼립스 교수는 매번 꼬박꼬박 주마다 수업에 들어왔으니 독대를 청하려면 청할 수 있었을 터였다. 그러나 내가 문제였다.

조금이라도 더 많이 배우겠다고 남들은 한 학기에 일곱 과목을 듣는 중에 나 홀로 여덟 과목, 더글라스와 함께 하는 시간까지 더해 아홉 과목을 듣고 있으니 남는 시간이 조금도 없었다.

그렇다고 수업 중에 그대 연인과 혹시 문제가 있느냐 물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나는 속으로 애만 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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