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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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교실 안의 공기가 급속히 차가워졌다. 

아무도 그 속에서 말을 꺼내는 사람이 없었고, 

또 아무도 꺼내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들의 시선은 지금 바로 이 두 사람에게 가 있었다. 

“. . . 끝까지 개길껀가.” 

그 말에 현준 역시 차갑게 노려보며 말했다. 

“. . . 난 개긴 적 따윈 없다. 

난 당연한 요구를 하는 것뿐이다. 

취소해.“ 

퍼억-------------- 

이번에는 재석의 발이 나갔다. 

그는 벽에 기대어 있는 현준의 복부를 강하게 걷어찼다. 

그러나 현준은 조금의 미동도 없이 그것을 그대로 다 맞았다. 

그 덕에 현준의 입술에서는 한 줄기의 피가 흘렀다. 

그러나 현준은 굽히지 않았다. 

“취소해.” 

퍽------------ 

“취소해.” 

퍽------------- 

정말이지 둘 다 서로지지 않겠다는 듯이 현준은 취소하라는 말을, 

재석은 발길질을 해댔다. 

그 덕에 현준은 이리저리 짓밟히고, 긁혀서 교복도 몸도 엉망이 되었다. 

패다, 패다 못해 재석이 씩씩거리며 말했다. 

“씨발. . . 

뭐, 이따위 새끼가 다 있어! ! !“ 

그리고는 현준을 노려보았다. 

아무리 패도 절대 이 녀석은 자신의 말을 굽히지 않았다. 

게다가 바닥에 쓰러지는 것조차 수치인 양 그 몸으로 겨우겨우 벽에 기대어 자신을 똑바로 쳐다보고 있다. 

그의 날카로운 그 눈빛에 재석은 이상하게도 마음이 약간 움직였다. 

현준은 힘겹게 입술을 달싹거리며 말했다. 

“. . . 내가 특별히 부산을 사랑하고 그런 것은 아니지만. . . 

그래도 내가 태어났고, 18년 간이나 살아왔던 곳이다. 

너희 같은 서울 놈들이 보기에는 어떨지 모르지만, 

거기는 나의 추억이 있고,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곳이 어째서 ‘촌 동네 따위’라고 비하되어야 하는 거지? 

씨발. . . 

너네끼리 잘 먹고 잘 살아라. 

뭐야. 

해운대 신시가지가 얼마나 좋은데. 

아파트도 많이 들어서고, 씨발. . . 

부산도 해양 도시로써 개발되고 있단 말이다. 

너는 뭔데. 

너는 뭔데 그 따위 말이나 하냔 말야. . . 

재수 없는 새끼. . .“ 

그리고는 눈을 감았다. 

씨발. . . 

그래도 오늘 서울 말 쪼~매 잘 되네. 

그 따우(이 따위) 꺼 잘 해봤자 말짱 헛건데. 

젠장. . . 

그런 그의 눈가에 물기가 약간 어려 있었다. 

돌아가고 싶다. 

이런 곳 따윈 있고 싶지도 않아. 

친구들도 보고 싶고, 

선생님도 보고 싶고, 

진수도 많이 보고 싶다. 

“씨발. . . 뭐야. . .” 

현준도 모르게 눈가에 눈물이 흘렀다. 

현준은 눈물이 흐르는 것을 느끼고는 황급히 눈물을 닦았다. 

그리고는 재석을 노려보았다. 

재석은 그런 현준의 눈을 보았다. 

자신의 생각에 옳지 않다면 절대 굽히지 않을 듯한 지조 있는 눈. 

눈이 사람을 반영한다고 했던가? 

재석은 현준에게 흥미가 생겼다. 

이게 어떤 쪽인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김현준이라는 인간 자체에 흥미를 가진 것만은 사실이었다. 

재석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자신도 모르게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 . . 미안하다. 

그 말 취소한다. 

내가 너무 심했다.“ 

너무 쉽게 나와서였을까? 

현준이 그런 그를 놀래서 쳐다보았다. 

그러나 자신이 원하는 답을 들었다는 만족감에 그는 그제서야 표정을 풀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조이고 있던 긴장의 끈을 놓고는 서서히 바닥으로 쓰러졌다. 

자신을 부르는 재석과 인석의 목소리를 뒤로 한 체. 

“으, 으음. . .” 

눈앞에 낯선 천장이 보였다. 

현준은 안 떠지는 눈을 억지로 떠서는 겨우 천장을 바라보았다. 

천장인 줄 알았는데 하늘이었다. 

하늘이 꼭 하늘색 천장마냥 너무나 맑았다. 

현준은 잠시 자신이 왜 여기에 누워 있는가에 대해 심히 고찰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 . . 일어났냐.” 

재석의 낮은 목소리에 자신도 놀라 벌떡 일어나 버렸다. 

재석은 누워 있던 현준이 갑자기 벌떡 일어나자 자신도 놀랐는지 피고 있던 담배를 툭 떨어뜨렸다. 

“아, 앗 뜨거!” 

그 덕에 그의 담배는 그의 교복 바지로 직격했다. 

현준은 멍하니 그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교복 바지에 떨어진 담배를 어쩐다는 생각도 하지 못한 체, 당황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현준이 그의 교복에 떨어진 담배를 주워서 발로 밟아 꺼버렸다. 

그제서야 재석은 아까의 그 당황한 표정을 풀고는 다시 태연 작약 하게 그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그런 그의 바지에는 아까의 그 담배로 인한 타 들어간 구멍이 지름 2cm정도로 큼직하게 나 있었다. 

그런 그의 모습에 현준은 어쩐지 웃음이 나왔다. 

분명 웃음이 나와서는 안 되는 상황인데도 웃음이 나왔다. 

“뭐야. 너. . . 

이제 보니 순 덜렁이잖아. 

흐읍!“ 

그리고는 거리낌 없이 껄껄 웃어 제켰다. 

재석은 처음엔 쪽팔려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러나 그도 자신의 바지를 보고는 자신의 바지임에도 불구하고 그만 큰 소리로 웃고야 말았다. 

한참을 그렇게 웃고 난 재석은 현준은 향해 씨익 웃으며 한 쪽 손을 내밀었다. 

“아까는 미안했다. 

절대 그런 의도는 아니었는데. . . 

몸은 좀 괜찮냐?“ 

그런 그의 말에 현준은 자신의 한쪽 손을 내밀어 그를 일으켜 주며 말했다. 

“. . . 괜찮아.” 

그는 다시 현준에게 한 쪽 손을 내밀며 말했다. 

“. . . 다시 한 번 말한다. 

내 이름은 유재석이다. 

앞으로 잘 부탁한다.“ 

그 말에 현준도 자신의 손을 내밀며 말했다. 

“. . . 김현준이다. 

역시 잘 부탁한다.“ 

그리고는 그를 향해 살짝 웃어주었다. 

이상히도 재석은 그가 웃자 가슴 한 구석이 지끈 해 옴을 느꼈다. 

그러나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치부해버리고는 그에게 어깨에 손을 올리며 교실로 들어갔다 

여전히 그 지끈거림의 이유는 알지 못한 체. 

4월 9일. 

김현준. 

서울에서 양아리를 사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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