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 (4/30)

(4) 

어느 화창한 날의 오후였다. 

나른한 햇살이 쏟아지는 교실 사이로 보이는 것은 

여느 때와 다름없는 평범한 교실의 풍경이었다. 

그러나 다른점이 하나 있다면. . . . . 

“전학생이다. 

부산에서 왔고, 이름은 김현준이다. 

전학 오기 전 전국 모의고사에서 줄곧 1%안에 들던 놈이니 

신경 써서 공부하는 데 지장이 없도록 하기 바란다.“ 

그렇다. 

이 교실에 현준이 전학 왔다는 사실이었다. 

어쨌든 선생이 이렇게 말하자 현준은 예의상 꾸벅 인사를 했다. 

“반갑다. 김현준이다.” 

그리고는 아무 말도 없었다. 

선생은 괜히 친하게 지내라는 둥의 시답잖은 말 몇 마디를 하더니 이내 나가버렸다. 

그는 무뚝뚝하게 주위를 둘러보더니 빈자리를 하나 발견하고는 그 곳으로 걸어갔다. 

그 자리 옆에는 웬 놈이 엎어져서 잠을 자고 있었다. 

그러나 현준은 그런 자질구레한 일에는 별로 신경 쓰지도 않고는 그 자리에 앉으려 가방을 내려놓았다. 

그 때였다. 

갑자기 자고 있던 그 놈이 눈을 번쩍 뜨면서 말했다. 

“거기는 자리 있어. 

그러니까 다른 데 앉아라.“ 

그리고는 다시 엎어져서 잠을 청하는 그였다. 

그 말에 현준은 순간 인상을 썼으나, 

괜히 시빗거리만 만들고 싶지는 않아서 그냥 교실 뒤 바닥에 정좌를 하고 앉았다. 

물론 속으로는 투덜투덜 거리며 말이다. 

‘어이구. 말이가, 그게! 

딴 자리가 어디 있다고 지랄이고, 지랄이. 

그래, 니 잘났다. 니 똥 디게 굵다. 

하여튼 서울 놈들은 싸가지 밥 말아 드셨다니까, 정말!‘ 

. . . 여전히 서울 사람들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는 그였다. 

어쨌든 현준은 아무 말도 없이 그 자리에 앉아서 챙겨온 교과서를 펴들었다. 

그리고는 그 교과서를 바른 자세로 소리 없이 읽기 시작했다. 

그런 그의 모습에 어쩐지 묘한 이질감이 느껴져서 아무도 다가가지 못했다. 

얇은 무태 안경에 상당히 차갑게 생긴 얼굴. 

게다가 말수도 적은 듯해서 누구에게나 어쩐지 다가가기가 부담스러웠다. 

사실 마음속은 다가가서 인사를 하고 싶음에도 불구하고 왠지 그 분위기에 압도당하고 마는 것이다. 

그러나 현준은 역시 이 일로 단단히 오해를 하고 말았다. 

‘서울 사람들은 인심도 야박하다더니 그 말이 사실인갑다. 

우째 아~가(사람이) 전학왔는데 말 한마디 안 걸어주노. 

진짜~ 인생들 그리 살면 안 되는 기다. . . 

암. . .‘ 

현준은 그렇게 속으로 한참을 투덜거렸다. 

어쨌든 현준은 그 자세 그대로 6교시 수업을 끝냈다. 

분명 벌써 한 시간이 훨씬 지났는데도 저리 단정하게 정좌를 하고 있다니. . .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자세. 

절제된 듯한 저 움직임. 

그리고 조심스러운 말투에 적은 말수. 

틀림없이. 

이 녀석은 어디 명문가의 도련님이나 그쯤 될 것이다. 

. . . 라는 위험한 착각들을 서슴없이 하고 있었다. 

사실 그 이면을 보자면 이렇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는 다리가 저려서 움직이지 못하는 것이었다. 

‘내가 미칬지. . . 

내가 뭐나 된다고 이런 자세로 앉았냔 말이다. 

아으. . . 

움직이니까 더 저리다. 

내가 몬산다. 몬살아. . .‘ 

그렇다. 

너무 다리가 저린 나머지 자세를 바꾸려고 해도 조금만 움직이면 

다리 끝부터 스물스물 올라오는 이상한 기분에 도저히 바꾸려야 바꿀 수가 없었던 것이다. 

현준은 그렇게 아이들의 오해만 잔뜩 사게 되었고, 다가서지 어려운 존재로 인식되어 졌다. 

물론 본인은 전혀 못 느꼈지만 말이다. 

청소시간이 되었다. 

그 때 갑자기 문이 벌컥 열리면서 누군가가 들어왔다. 

머리는 화려한 오렌지 빛에 귀에는 옷핀을 한 쪽 당 네 개씩 뚫은. . . 

이리 보고, 저리 보고, 둘러 봐도 영락없는. . . 

양. 아. 리. (양아치) 

그런 그의 모습에 현준은 눈살을 잠시 찌푸렸다. 

그래도 그는 다행히도 바지는 안 줄여 입었었다. 

사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부산에서는 양아리들은 거의 다 바지를 줄여 입었다. 

그것도 다리는 코끼리 다리만 한 것들이 디스코 바지처럼 발목에 딱 달라붙게 줄이는데. . . 

그것은 가히 인간의 형상이 아니라 할 만한 정도였다. 

거기다 머리에 뽕은 산봉우리처럼 띄우고, 꼭 베둘래햄 같은 게 치마는 뭐같이 딱 줄여 입은 년이랑 같이 걷는데. . . 

현준은 차마 그 꼴을 보지 못하고 그 때 그것들에게 펀치를 날린 적이 있었다. 

물론 그 담에 담임에게 불려가서 죽도록 맞았지만. . . 

어쨌든 그래도, 양아치치고 바지를 안 줄여 입었다는 사실에 현준은 이내 그에게 점수를 후하게 줬다. 

‘뭐, 그래도 낫네. 

그래도 바지는 안 쭐잇다 아이가.(바지는 안 줄였잖아.) 

그래도 저 놈은 좀 제대로 된 양아린 갑다. 

봐라. 안 줄이니까 얼마나 멋있노. 좋아. 좋아. . .‘ 

그리고는 이내 그는 갸우뚱해버린다. 

그런데 저런 양아치가 인문계에는 어떻게 왔지? 

그런 그의 의문이 끝나기도 전에 그 양아치가 현준은 발견하고서는 낮게 말했다. 

“. . . 뭐야. 이 범생은. . .” 

그 말에 아까까지만 해도 분명히 엎어져 자던 놈이 부스스 일어나서는 말했다. 

“씨발. . . 새끼, 차라리 학교 오지 말지 왜 왔냐. 

참 빨리도 온다.“ 

그 말에 그는 낮게 으르렁거리며 말했다. 

“. . . 묻는 말에나 대답해. 새끼야. . .” 

그러자 그는 어쩔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현준을 향해 돌아보았다. 

그러더니 놀랍다는 듯한 눈초리를 보냈다. 

“어? 너 아직도 정좌하고 있었냐? 

벌써 한 시간이 다 돼 가는데? 

이거 병신 아냐? 

나라면 차라리 이 새끼 올 때까지 여기 앉아서 수업 듣겠다.“ 

그 말에 현준은 속으로 발끈해버렸다. 

‘이게 미친나. . . 뭐 이런게 다 있노! 

네 놈이 자리 있다고 앉지 말라고 오만 인상 다 썼다 아이가! ! ! 

하여튼 서울 놈들은. . .‘ 

속이야 어쨌든 겉으로의 현준은 그런 말에도 전혀 미동치 않고, 

묵묵히 교과서만 챙길 뿐이었다. 

그 얼음 같은 무표정을 고수한 체. 

그런 그의 모습에 괜히 그만 무안해 져서는 뒤통수만 벅벅 긁으며 말했다. 

“아씨. . . 저 새끼 뭐야. 

사람 무안하게. . . 

저 새끼 오늘 5교실 마칠 즈음에 부산이라는 곳에서 전학 왔다던데. . . 

이름이 김현진이었던가. . . 김현주였던가. . .“ 

그런 그의 말에 그 양아치는 피식 웃는다. 

“뭐야. 계집애 이름이잖아. 

하긴. . . 

생긴 것도 꼭 기생오라비처럼 생겼네.“ 

현준은 그런 그의 말에 자신도 모르게 한 마디 했다. 

“. . . 김현준이다.” 

상당히 듣기 좋은 미음에 그 양아치는 잠시 움찔했다. 

그리고는 이내 피식거리며 그에게 다가갔다. 

“김현준이라. . . 

뭐, 좋아. 

처음 왔으니 모르는 건 당연한 거겠지. 

나는 유재석이다.“ 

그런 그의 말에 그는 놀라기는커녕 아무 미동도 없었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를 무시했다고 표현하는 게 옳으리라. 

그가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고, 자신을 무시하자 그의 보기 좋은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런 그의 모습에 옆에 있던 그 놈이 괜히 야단이다. 

“뭐야. 너. 

지금 혹시 모르는 건 아니겠지? 

이 녀석은 유재석이라고. 

그러니까 그 유명한 ‘밤의 천사’의 2인자란 말이다!“ 

밤의 천사. 

정말 누구처럼 작명 센스가 유치찬란한 이름이었다. 

어쨌든 ‘밤의 천사’라 하면 이 서울과 수도권 지역을 한 손에 잡고 뒤흔드는 조직이었다. 

수도권 지역에서 ‘밤의 천사’에 속해 있다 하면 웬만한 사람들은 공포에 벌벌 떨 그 조직. 

재석은 바로 그런 조직의 2인자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런 말에도 현준은 미동도 않는다. 

그런 그의 모습에 괜히 그 놈이 무안해져서는 현준을 앞에 두고 욕을 해댔다. 

재석은 그런 현준의 모습에 약간 흥미를 느끼게 되었다. 

자신이 위명을 듣고서도 꿈쩍도 하지 않다니. 

“됐다. 인석. 

그쯤 해둬라. 

뭐, 하긴 부산 같은 촌 동네에서 왔으니 모를 수도 있지.“ 

그런 그의 말에 인석은 놀란 듯한 표정을 지었다. 

저 난폭한 재석이 이쯤에서 그만두다니. . . 

이것은 너무나 파격적인 일이었다. 

인석은 그런 그의 말을 듣고는 주춤주춤 물러났다. 

재석은 별 관심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자신의 자리에 가방을 올려놓았다. 

그리고 앉으려는 순간이었다. 

“. . . 취소해.” 

가만히 있던 현준이 말했다. 

그런 그의 말에 재석과 인석이 돌아보았다. 

재석은 그를 쳐다보며 낮게 말했다. 

“. . . 내가 뭘 취소해야 한다는 거지?” 

현준은 예의 그 얼음같이 싸늘한 무표정으로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 

“. . . 부산이 촌구석이라는 말 말이다.” 

그 말에 인석이 되레 코웃음 치며 말했다. 

“지랄하네. 

사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부산 촌구석 맞잖아? 

개발도 제대로 되지 않은 촌. 구. 석. 

쳇, 겨우 부산 따위. . .“ 

현준은 그런 그를 싸늘히 쳐다보았다. 

왠지 모르게 느껴지는 위압감에 인석은 그만 입을 다물고 말았다. 

재석은 그런 현준의 모습에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 . . 흐음. 

취소 못한다면 어떻게 할 건데?“ 

그런 그의 말에도 현준은 약간의 표정 변화도 보이지 않은 채 말했다. 

“취소해.” 

그러자 그가 다시 말한다. 

“싫다면.” 

“취소해.” 

“싫어.” 

“취소해.” 

“. . . . . .! ! !" 

재석은 화가 나고 말았다. 

지금 이 새끼가 장난치나. . . 

그래서 싸늘한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 

“. . . 장난은 여기까지다. 

그 이상 더 말하면 이젠 전학생이고, 뭐고 죽. 여. 버. 린. 다.“ 

그리고는 뒤로 돌아섰다. 

그러나 그런 그의 뒤에서 다시 그 미성이 들렸다. 

“나는 장난이 아니야. 

취. 소. 해.“ 

그런 그의 말에 이젠 화가 머리끝까지 난 그가 현준의 멱살을 잡고 주먹을 내질렀다. 

쾅--------- 

덕분에 현준은 바닥에 쓰러졌고, 입가가 찢어졌는지 피가 흘렀다. 

그래도 현준은 아무 표정 변화 없이 그 싸늘한 표정으로 말했다. 

“. . . 취소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