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14 - 권력은 이렇게 사용하는 것 (1)
베를리오즈의 방 앞.
그 앞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던 비앙카가 결심한 듯 한숨을 길게 한 번 내쉬고 문을 두드렸다.
똑─똑─
"스승님!"
"...."
사람이 기껏 '님'짜 까지 써서 불러줬는데, 대답이 없다.
혹시 없나 싶었지만 희미하게 흘러나오는 마력은 베를리오즈가 안에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쾅!쾅!쾅!
"뭐야! 안에 있는데 왜 대답이 없어요!! 나 들어가요!"
"...!!... 어... 언제... 온게냐!... 자.... 잠깐만 기다리거라!!"
비앙카가 손잡이를 붙잡자, 안에서 우당당탕 소리가 나더니 땀을 잔뜩 흘리고 있는 베를리오즈가 나왔다.
"... 뭐야. 뭔 땀을 그렇게 흘려? 안에서 혼자 훈련이라도 했어?"
"그... 그래... 후... 훈련했다.... 아무리 보... 본녀라해도.. 가끔씩은... 몸을 풀어줘야.. 하는 법이니까.. 그... 그래서.... 새벽부터 무... 무슨 일인고?"
"새벽?... 뭔 소리래 지금 한낮인데?"
"... 나... 낮이라고?!... 크... 크흠... 훈련에 몰입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구나. 너도 이렇게 집중해서 훈련해야한다. 그.. 그래서 무슨 일인고?
베를리오즈의 물음에 비앙카가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쿠웅─
"... 스승님. 제자 비앙카가 할 말이 있습니다."
"... 갑자기 왜 그러느냐? 뭘 잘못 처먹은 게냐?"
진심으로 걱정하는 것 같은 베를리오즈의 모습에 짜증이 확 밀려왔지만, 꾹 눌러 참았다.
"그럴리가요... 저는 언제나 스승님의 위대함은 알고 있었지만... 지금에서야 표현하는 것뿐이에요."
"안 되겠다. 아무래도 상당히 심각한 모양이로다. 본녀가 양호실까지 데려다줄 테니 어서 일어나거라."
"아이 씨! 그런 거 아니라...!!... 아니... 에요.. 스승님... 제자가.. 부탁있어요."
어울리지 않는 말투를 사용하느라 온몸이 오그라들 것 같았지만, 거유환을 생각하며 견뎌냈다.
"... 그래, 말해 보거라."
"그..... 스승님이 만나줬으면 하는 사람이 있는데요."
"본녀를? 누가 말이냐?"
"... 아스란에서 온 백소소라고 하는데... 요.."
"백소소라면...? 아스란의 '첫 번째 제자'였던 아이를 말하는 거냐?"
아무래도 백소소에 대해서 알고 있는 모양이다.
하긴 베를리오즈도 아스란에서 왔다고 했으니 모르는 게 이상할 거다.
"네, 맞아요. 걔가 내가 강신을 쓰는 걸 보더니 배우고 싶다고 해서..."
"쯧, 본녀가 됐다고 할 때까지는 밖에서 함부로 쓰지 말라고 하지 않았느냐?"
"아니... 나도 안 쓰려고 했는데 안 썼으면 걔 죽었다니까... 요. 그리고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좀 가르쳐주면 안 돼요?"
비앙카의 말에 베를리오즈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 그래도 물어는 보러 오는구나. 몰래 가르쳐주면 어쩌나 싶었거늘..."
"내가 뭔 양아치야!!... 는... 아니고... 어찌됐건 가르쳐주면 안 될까요?"
비앙카의 부탁에 베를리오즈가 바짝 마른 입술을 매만졌다.
이제 아스란 제국의 인간에게는 두 번 다시 '강신'을 가르칠 일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백소소의 부탁이라고 하니 쉽게 거절할 수 없었다.
'... 이것도 운명인 게냐?'
백소소는 가문의 역병신이라 불리던 아이였다.
물론, 타고난 재능으로 고난을 극복하고 '첫 번째 제자'의 자리까지 올랐지만....
그래도 백소소에 대한 죄책감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죄책감과 같은 무게로 두려움이 솟아난다.
그만큼 '인간 박제'는 베를리오즈가 살아온 긴 세월 중에서도 한 손으로 꼽히는 최악의 사건이었다.
잠시 고민하던 베를리오즈는 비앙카를 바라보았다.
"....?"
비앙카의 '견신'과 '살의'는 잘 맞는 감정의 조합이기에 무리 없이 다루고 있지만 백소소는 백사 가문의 아이이니 '사신'일 것이 분명했다.
'만약에 그 아이처럼...'
비록 '사랑'이 가장 드물게 나오는 감정이라지만..
백소소가 그 아이와 같이 '사신'과 '사랑'의 조합이라면 과연 이번에는 감당할 수 있을까?
그때 비앙카가 코맹맹이 소리를 내며 달라붙었다.
"... 스승님. 제발요... 이 불민한 제자가 감히... 하아...! 아! 못 해 먹겠네!! 까놓고 말할게! 어떻게 안 돼? 정 안될 거 같으면 그냥 돌려보내도 좋으니까 한 번 만나만 줘라.. 응?"
"...."
"응? 하나뿐인 제자가 이렇게 말하는데 안돼? 응? 응? 제발요오... 스승님!!"
외모가 어려서 그런지 생각보다 잘 어울리는 애교에 베를리오즈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래... 일단 날을 잡아 보자꾸나."
"정말?! 정말 만나주는 거다! 한번 말했으면 무르기 없기야!"
"본녀가 언제 두말하는 걸 보았느냐? 그보다 언제 불러올지..."
말을 하던 도중 갑자기 베를리오즈의 시선이 오른쪽을 향했다.
또각─
그러자 그쪽에서 롱코트를 걸친 갈색 보브컷의 시원시원한 인상의 여인이 나타났다.
"아, 밖에 나와 계셨군요. 정말 루시아님의 말씀대로 내요. 처음 뵙겠습니다. 베를리오즈님."
"너는 누구냐?"
베를리오즈의 질문에 답한 건 비앙카였다.
"그렇게 경계하지 마. 마르잔이야. 루시아랑 유진이 부하. 우리 편."
"어? 비앙카님도 계셨네요? 안녕하세요."
"응, 안녕. 근데 뭐야 그 코트? 벌써 입기에는 덥지 않아?"
"아...! 이... 이건... 그... 그... 모... 몸이 좀 안좋아서요..."
"흐음... 그래! 감기는 조심해야지."
"네... 하하하하... 걱정.. 감사합니다..."
인사가 끝나자 베를리오즈가 팔짱을 낀 채 물었다.
"그래서, 그 아이들의 부하가 본녀에게 무슨 일인고?"
"아, 다름이 아니라 유진님이 트리스티아님의 초대를 받았는데 베를리오즈님도 같이 와달라고 적혀있었나 봅니다. 저는 그 말을 전해 드리려고 왔고요."
"... 왜 본녀를 초대하는 데 본녀가 아니라, 유진 그 아이에게 보냈는고?"
"저도 그것까지는 잘.... 아마, 길을 모르실까 그런 게 아닐까요?"
"...."
맞는 말이다.
루멘하르크에 온 지는 제법 되었지만, 카르네아 밖으로는 나돌아다니지 않아 길을 모른다.
아니, 그보다 애초에 마차를 탈 돈도 없었다.
베를리오즈의 생활은 로레오스가 건네준 카르네아 전용 어음이나, 가끔 유진이 주는 용돈으로 살아갔으니까.
물론, 유진이가 용돈은 부족 하지 않을 정도로 주지만... 아스란에서 맛볼 수 없던 미식은 용돈을 순식간에 탕진하게 했다.
"흐윽.. ♥.. 지... 지금은... 읏!.. 그... 그럼, 자세한 건 이 편지에 적혀있으니... 저...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래. 들어가거라."
어딘가 불안해 보이는 발걸음으로 마르잔이 돌아가자 편지를 읽은 베를리오즈가 말했다.
"최대한 빠른 시기에 만나자고 했으니, 내일 만나러 가야겠다. 그러니 백소소는 좀 뒤에 만나야겠구나."
"에에... 왜? 잠깐 쓱 만나고 오면 안 되나?"
"그렇게 쉬운 문제가 아니다. 그럼 본녀는 들어가서 좀 준비를 하겠다."
"... 알겠어. 대신 다녀오면 꼭 만나줘야 해?"
"그래."
그 말을 끝으로 베를리오즈가 방문을 닫고 안으로 들어가더니...
끼익─
이내 문이 다시 열리고 얼굴만 빼꼼 내민 채 말했다.
"그리고... 두 번 다시는 본녀의 방에 허락 없이 들어오려고 하지 말거라."
"뭐야... 언제는 그냥 아무 때나 들어오라면서..."
"됐고! 스승이 말하면 그냥 알겠습니다! 하거라!!"
버럭 소리치는 베를리오즈의 모습에 비앙카가 짧게 혀를 차며 답했다.
"쯧, ... 알겠습니다."
***
다음 날.
초췌해진 얼굴을 한 베를리오즈와 유진이 마차를 탔다.
"... 피곤해 보이시네요."
"네놈도 그렇지 않느냐?"
"아... 일이 좀 많아서..."
많기는 했다.
4P가 아니라 5P를 했으니까.
만약 묘사하면 19금이 아니라 29금이 되는 수준이라 절대 묘사는 못하지만...
"... 본녀도 네 녀석이랑 똑같다. 일이 많았다."
"...."
베를리오즈가 뭘 했는지는 몰라도 내가 한 일이랑은 다른 일일 것이다.
"그런데... 본녀는 왜 오라더냐?"
"... 저도 잘..."
"편지에 안 적혀있더냐???"
"네, 그냥 모시고 오라고 하더라고요. 곧 도착하니까 직접 물어보죠."
그 말이 하기가 무섭게 마차가 멈춰섰다.
마차에서 내려, 가게 안으로 들어가니 트리스티아가 밝게 웃으며 맞이해주었다.
"어머... 도련님."
"트리스티아."
한걸음에 달려와 껴안기는 트리스티아가 내 품에 얼굴을 묻은 채 말했다.
"칭찬해줘... 나 정말 힘냈다?"
"정말 대단해요. 고마워요. 수고했어요."
"아니, 그걸로는 부족해 더, 더 칭찬해."
그렇게 원하는 대로 한참 동안 칭찬을 하고 나서야 품에서 떨어지는 트리스티아.
"으응~ 이제 도련님력 충전 완료야."
"도련님력은 뭐에요... 그런데 잠깐 인챈트 좀 볼 수 있을까요?"
"응, 안 그래도 물어볼 것 같아서 저기 준비해놨어."
트리스티아가 가리키는 방향을 바라보자, 책상 위에 잘 벼려진 건 한 자루가 놓여있었다.
스윽─
검을 들자 손에 착 감기는 게 고급품이 분명했다.
"휘둘러봐."
"네."
우웅-!
검을 휘두르는 순간 몸 안에 마력이 살짝 빠져나가며 검 주위로 마력 코팅이 씌여진다.
"이건... 대단하네요."
"그치...? 내가 만들고도 정말 대단하니까!"
트리스티아가 커다란 가슴을 앞으로 내밀며 으쓱댄다.
하지만 충분히 으쓱댈 만 했다.
물론, 진짜 오러에 비하면 부족하지만, 마력 코팅이 있고 없고의 차이는 크다.
스스로 마력 코팅을 둘러주는 것도 아닌 그저 마력 전달의 효율을 높여주는 금속조차 부르는 게 값이다.
그런데 심지어 이 인챈트는 금속의 종류도 가리지 않지 않은가!
'... 이게 상용화되면 전략이 바뀐다.'
전투, 전술의 개념을 뛰어넘어 전략에 관여할 정도의 힘을 지닌 게 트리스티아가 개발한 인챈트였다.
"그럼 이번에는 사람한테는 적용 안 되는지 시험 해볼까요... 베를리오즈님 도와주세요."
"응? 본녀가 네놈을 베라고?"
"아뇨. ... 닿기 직전에 멈춰주세요. 저보다 잘 멈추실 거 아니에요."
"... 뭐, 그 정도야.. 알겠다."
"그럼 제가 시작이라고 말하면....!!"
후웅!!
말이 끝나기도 전에 베를리오즈가 나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