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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차 히로인이 조교를 기억함-225화 (225/354)

〈 225화 〉 일단 하고 생각하죠 (5)

* * *

“저...저 릴리스는...! 선생님의 첫 번째가 되고 싶어요!”

릴리스의 당돌한 선언에 당황, 감탄, 놀람, 적의등 다양한 감정이 담긴 시선이 몰렸다.

쾅─!

“그래! 말 잘했어! 성녀님!! 그렇게 나와야지!”

탁자를 내려친 비앙카는 고개를 돌려 아이리스를 바라보았다.

“자! 성녀님은 저렇게 말하는데 양호 선생님은 할 말 없어?”

“그...그게....저는...”

한번 말할 타이밍을 놓쳐서 그런지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뱉지 못하는 아이리스.

비앙카는 그런 아이리스가 답답하다는 듯 평평한 가슴을 펑펑 두드렸다.

“아니! 도대체 뭘 망설이는데! 설마 아직도 신분이 마음에 걸려?”

“...아무래도...유진군은 칼리오페 가문의 사람이고 저는 평민이니까요...”

“하, 진짜! 답답해 죽겠네! 선생님!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베아트리스 가문은 뭐가 달라?”

“...네?”

“저기 계신 루시아가 지원해주기 전까지 베아트리스 가문은 말만 귀족이었지 평민과 다를 거 하나 없었는데 뭐!”

“....어...언니...그..그런..말을 지금 여기서 하면...”

비앙카의 직설적인 말에 루시아의 눈치를 보는 비비안.

“왜! 가장 공평한 저울인 루시아님께서 설마 이런 말 좀 했다고 치사하게 줬던 지원을 뺏겠어? 그보다 선생님 대답은!”

“그...그래도...저는....”

“그래도는 뭔 놈의 그래도야!! 선생님 마지막으로 물을 테니까 딱 말해! 당신 유진이의 첫 번째가 되고 싶은 거야 아니야!!”

비앙카의 강압적인 대답 강요에 아이리스의 눈이 핑그르르 돌아간다.

‘유진...군...’

아이리스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유진군과의 미래.

작은 오두막에서 같이 밥을 먹고, 같이 책도 읽고, 같이 잠을 자고...가끔은...아니, 매일 야한 짓을 하는 그런 미래.

그리고 언젠가 유진을 꼭 닮은 아들과 자기를 닮은 딸을 낳아서 다 같이 손을 잡고 놀러 가는...

그런 평범하고도 평온한 미래가 아이리스가 바라는 것이다.

‘...욕심이겠죠.’

아이리스가 주먹을 꽉 쥐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잘 알고 있다.

수많은 여자가 노리고 있는 유진을 독점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걸.

...그저 곁에 있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할 수 있다면...

욕심인 건 알지만.

그럼에도 아이리스도 역시 유진의 첫 번째가 되고 싶었다.

“저도...”

작지만 확실한 아이리스의 목소리가 양호실에 울려 퍼졌다.

“저도...되고싶어요...유진군의...첫번째.”

떨리는 마음을 간신히 억누르며 내디딘 한 걸음이었다.

“...흥! 거봐.”

비앙카는 콧김을 한 번 뿜어 내고는 뒤를 돌아서 고고히 다리를 꼰 채 앉아있는 루시아를 바라보았다.

“자, 루시아. 이게 우리의 결론이야. 반 리아나 루멘하르크 연합군은 결성 실패야. 그래도 하고 싶으면 혼자 하는 게 어때? 적어도 나는 절대로 첫 번째를 양보하지 않을 거니까”

“....”

비앙카의 말을 들은 루시아는 눈을 감고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비앙카. 먼저 착각하는 거 같으니 한 가지 말할 게 있어요.”

“...뭔데.”

“제가 ‘가장 공평한 저울’로 불리는 건 사실이죠. 그리고 비앙카의 말대로 고작 몇 마디 들었다고 해서 지원을 끊는 일은 없을 거고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비앙카.

“...주인님과 관계가 없었다면 말이죠.”

눈을 천천히 뜬 루시아에게는 베일듯한 날카로움이 서 있었다.

“주인님과 관계가 있다면 저는 수단을 가리지 않아요. 설령 이 세상 어떠한 것과 비교해도 주인님이 우선이니까요. 그런 저에게 지원을 끊는 것쯤이야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에요.”

루시아의 선언에 잠깐 멈칫한 비앙카가 말을 이었다.

“...그래서 베아트리스 가문의 지원을 끊겠다고?...내가 첫 번째가 되겠다고 한 바람에?”

“아니요. 어디까지나 주인님을 위해서라면 그런 수를 쓸 수도 있다고 말해준 거예요. 애초에 지금은 딱히 그럴 필요가 없어 보이는 걸요?”

비앙카가 인상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그럴 필요가 없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그야. 그 빌어먹을 암코양이를 제외한다면... 당연히 주인님께서는 저를 택하실 테니까요.”

“....”

“....”

자신감 넘치는 루시아의 말.

비앙카가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하...좋네. 그 근거 없는 자신감. 유진이가 널 처음 만났다고 해서 꼭 널 제일 좋아하라는 법은 없잖아?”

“마음대로 생각하세요. 대신 마지막으로 모두에게 한 번만 더 물을게요.”

찬찬히 한 명 한 명을 바라보는 루시아의 몸에서 살벌한 마력이 넘실거렸다.

“비앙카... 아니, 여기 계신 여러분들은 저에게서 주인님을 뺏어가겠다는 거죠?”

일반인이라면 숨조차 내쉬기 어려울 정도로 짙은 농도의 마력.

허나, 달리기 시작한 비앙카는 멈추지 않는다.

“...그래. 맞아. 내가 유진의 첫 번째가 될 거야.”

“좋아요. ...할 수 있으면 해보세요.”

비앙카의 말에 루시아는 마력을 거두지 않고 점점 더 키운다.

“일단 여기서 무사히 나갈 수 있다면 말이죠.”

이윽고 마력이 심상치 않은 수준까지 올라가자 비앙카도 같이 마력을 풀기 시작했다.

이윽고 둘을 돕기 위해 비비안와 마르잔이 각각 비앙카와 루시아의 곁에 서서 자세를 잡았다.

치직─, 치지직─

마력이 계속해서 부풀어 오르고, 마력끼리 뒤섞이며 일촉즉발의 상황이 다가왔을 때.

“모두 멈춰요..!”

비앙카와 루시아 사이에 끼어든 아이리스가 소리쳤다.

“선생님! 다치기 싫으면 빠져!”

“맞아요. 물러나세요.”

아이리스에게는 시선조차 주지 않고 서로를 노려보며 말하는 루시아와 비앙카.

하지만 아이리스는 물러나지 않고 큰 소리로 소리쳤다.

“못 빠져요! 지금 이렇게 우리끼리 싸우다 다치면 유진군이 참 좋아하겠네요!”

학생들끼리 싸우는 건 참을 수 없던 탓일까.

조금 전에 벌벌 떨던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아이리스.

루시아와 비앙카도 아이리스를 앞에 놓고서는 더 싸울 수는 없는지 마력을 회수했다.

“정말이지... 비앙카양은 그렇다 쳐도 루시아양까지 그러면 어떻게 해요!”

“...죄송합니다.”

“나는 그렇다 쳐도…?”

비앙카가 인상을 찌푸리자 헛기침을 하며 목소리를 가다듬은 아이리스가 제안했다.

“이렇게 싸울 바에는 유진군에게 다가갈 순서를 정하는 게 어때요. 마침 분위기상 3팀으로 나눠진 거 같으니까. 공평하게 제비뽑기 같은 거로 순서를 정해서 하루씩 대쉬를 해보는 거예요.”

아이리스의 제안에 잠시 고민하던 루시아가 말했다.

“좋아요. 다 같이 달려들면 주인님이 곤란해하실 테니까요.”

“나도 상관없어.”

“그...그럼 제비뽑기를 만들어 올 테니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제비에 쓸만한 물건을 찾기 위해 잠시 침대 아래를 뒤적거리던 아이리스가 어딘가 익숙한 살색 막대를 꺼냈다.

“아니... 꼭...이런걸로 해야 했어?”

눈앞에 놓인 3개의 딜도를 본 비앙카가 질색한 표정을 짓는다.

“쓸만한 막대가 딜도 밖에 없는걸요. 그..그러니까. 빨강 귀두가 처음, 파랑 귀두가 두 번째, 평범한 귀두 색이 마지막이에요.”

아이리스도 수치심을 느끼는 듯 얼굴을 잔뜩 붉힌 채 대답했다.

“하아...그래. 뭐 좋아. 그럼 뽑는다?”

자연스럽게 제비를 뽑으려던 비앙카를 루시아가 막아섰다.

“잠시만요. 왜 당신이 먼저 뽑으려고 하는 거죠?”

“아니, 그냥 아무나 먼저 뽑으면 되지 이것 가지고 잔소리야.”

“그럼 제가 먼저 뽑을 테니 비앙카는 남은 거나 가지세요.”

또다시 비앙카와 루시아의 싸움에 불이 붙으려 하자 아이리스가 딜도를 높이 들었다.

“아! 정말 싸우는 거 금지라니까요! 벌칙으로 둘은 뽑기 금지에요! 대신 비비안이랑 마르잔이 뽑아주세요.”

“제...제가요?”

“제가 말입니까?”

갑자기 호명되어 당황한 듯한 마르잔과 그 옆에 있는 비비안.

그리고 자기도 뽑고 싶다는 듯 은근한 시선을 보내는 릴리스가 있었다.

“릴리스도 와서 같이 뽑아요.”

“네 선생님! 저 릴리스 뽑겠습니다!”

순서로 싸우지 않도록 마르잔, 릴리스, 비비안이 동시에 딜도의 기둥 부분을 잡았고.

“셋 하면 뽑는 거예요! 하나...둘...셋...!”

촤아악─!

결과가 정해졌다.

***

순서가 정해지고 모두가 각자의 방식대로 유진을 유혹하기 위해 양호실을 떠났다.

그러니까 루시아와 마르잔을 제외하고 말이다.

“마지막이라니... 귀찮게 됐네요. 첫 번째를 뽑았으면 아예 기회도 안 줄 수 있었는데...”

“죄...죄송합니다. 루시아님. 제가 못뽑아서...”

“괜찮아요. 어차피 승기는 제 손에 있는 것요. 오히려 기회로 삼아 좀 더 주인님을 잘 유혹해보죠.”

“...네, 마...맞..맞습니다...루시아님.”

이마에서 흐르는 식은땀을 닦으며 마르잔이 대답했다.

그 모습에 루시아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마르잔, 땀을 그렇게 흘리고... 괜찮아요?”

“고...괜찮습니다. 그...그냥 좀 더운 거 같아서요.”

“어머? 저는 서늘하다고 생각했는데.”

루시아의 말대로 양호실은 살짝 서늘할 정도의 온도다.

말실수를 눈치챈 마르잔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그런가요? 그...그럼 몸 상태가 조금 안 좋은 거 같네요.”

“아... 그거 큰일이네요. 아프면 안 되죠. 어서 들어가 쉬어요.”

“네..네...그러겠습니다. 끝까지 모시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루시아님.”

루시아의 허가가 떨어지자마자 쏜살같이 도망치는 마르잔.

마침내 가시방석 같았던 양호실을 탈출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마르잔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문손잡이를 잡는 순간.

등 뒤에서 루시아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래도 다행이네요.”

뒤돌아봐서는 안 된다는 본능의 경고.

하지만 주인이 말을 걸었는데 이대로 나가는 건 기사로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심호흡하며 애써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뒤를 돌아본 마르잔이 말했다.

“네? 뭐, 뭐가 말입니까 루시아님?”

“그냥 아파서 그런다는 게요. 저는 또 마르잔이 제가 모르는 사이 넘치는 성욕을 참지 못해서 주인님을 덮쳐서 그 죄책감 때문에 땀을 흘리는 줄 알았죠.”

“.......”

큰일났다. 큰일났다. 큰일났다.

큰일났다. 큰일났다. 큰일났다.

큰일났다. 큰일났다. 큰일났다.

정곡을 찌르는 루시아의 말에 마르잔은 제자리에서 석상처럼 굳어버렸다.

그리고 어느새 다가온 루시아는 마르잔을 문에 밀어붙이며 말했다.

“설마... 마르잔. 제가 모를 줄 알았어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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