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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차 히로인이 조교를 기억함-192화 (192/354)

〈 192화 〉 초청제에 가족이 오는 건 '상식' 이잖아? (1)

* * *

“게,게겍,그에에에에!!끄에에에에엑!!!”

검붉은 방안에서 온몸에 붕대를 둘둘 감은 소녀가 비명을 내질렀다.

“끄으아아아악..!!!..끄마안!!..그만해..!!..주겨...죽여줘!!!..끄아아아아!!..!제바아아알!!....죽여져어어..!!!”

사지가 뒤틀려도, 내장이 밖으로 꺼내져도 죽을 수 없다.

살고 싶다는 감정은 이미 오래전에 버렸다.

죽고 싶다.

소녀는 그저 조금이라도 빨리 죽고 싶었다.

추한 발버둥을 지켜보던 ‘일그러진 욕망’이 손가락을 튕겼다.

그 순간 소녀를 감싸고 있던 붕대가 ‘일그러진 욕망’에게 회수되었고.

퍼엉—!

소녀의 몸이 폭탄처럼 터져나가며 살점과 피가 방안 이곳저곳에 들러붙었다.

“짜증이 풀리지 않아...”

손바닥을 바라 본 ‘일그러진 욕망이’ 쇠를 긁는 목소리로 말했다.

흰색이었던 방이 온통 붉게 물들 정도로 이 짓을 반복했지만 만족할 수 없었다.

이건 단순한 화풀이였다.

소녀가 화풀이 대상으로 선택된 이유도 ‘리아나 루멘하르크’와 닮았다는 것뿐.

사실대로 말하자면 리아나와 소녀는 그리 닮지도 않았다.

공통점이라곤 금발을 가졌다는 것 정도.

그마저도 소녀의 금발은 태양처럼 밝은 리아나의 금발에 비하면 칙칙하게 짝이 없다.

“리아나... 루멘하르크.”

거울 너머로 자신을 조롱하던 리아나의 얼굴을 떠올리며 ‘일그러진 욕망’은 이를 까득 갈았다.

어떻게 인간 따위가 그렇게까지 강대한 힘을 손에 넣을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아무리 낮게 잡아도 사도의 힘을 받은 자신보다는 강한 것이 확실했다.

“...그만한 힘을 가졌으면서... 도대체 뭘 바라기에?”

힘으로 보나 핏줄로 보나 리아나는 인간으로서 정점에 위치했다.

이쪽으로 넘어온다고 해서 더 얻을 수 있는 게 없단 말이다.

물론 사도의 자리를 계승한다면 지금보다 더욱 강해질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일그러진 욕망’이 보기엔 리아나라는 인간은 그렇게 힘에 집착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혹시 내부에서 우리를 치겠다는 건가..?”

잠시 그 가능성을 떠올린 ‘일그러진 욕망’이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는 없다.

저렇게 위험한 존재를 아무런 안전장치도 없이 받아들일리 없다.

리아나의 목에는 절대 배신 할 수 없도록 목줄이 걸려있었다.

한참동안이나 리아나에 대해서 고민하던 ‘일그러진 욕망’이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혀를 찼다.

“....새로운 장난감이 필요하겠어.”

***

초청제 둘째 날.

비앙카와 함께 스테이크를 썰고 있을 때, 멜피사가 나를 찾아왔다.

“갑작스럽게 죄송합니다. 공자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

뜬금없는 멜피사의 등장에 설명하라는 듯 눈을 좁힌 채 바라보는 비앙카.

하지만 지금 내겐 비앙카를 달래줄 여유가 없었다.

나를 깍듯하게 모시는 멜피사가 이렇게 예고도 없이 나타났다는 건 정말 중요한 일이라는 뜻이었다.

짧게 한숨을 내쉰 나는 고기를 썰던 나이프를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비앙카, 잠깐 다녀올게요. 너무 오래 걸릴 것 같으면 먼저 돌아가도 돼요.”

“에휴.... 어쩐지 분위기 좋다했어. 하아, 네,네. 알겠습니다. 다녀오세요.”

비앙카가 뚱한 얼굴을 했지만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읽은 듯 붙잡지 않고 보내주었다.

내가 멜피사를 데리고 인기척이 드문 곳으로 간 순간 멜피사가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고, 공자님. 죄송합니다. 제가 큰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사과는 나중에 듣겠습니다. 말해보세요. 무슨 일인데요?”

“....전에 공자님께서 황녀 전하가 저를 갑자기 먼 곳으로 보낸다면 즉시 연락하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랬죠...설마.”

“네...제..제가...빼먹은 게 있습니다.”

멜피사의 말에 내가 눈을 감은 채 콧대를 꾹 눌렀다.

신경쓰지 말아요 하고 넘어갈만한 일은 아니다.

“...상황 설명을 해봐요.”

“...얼마 전에 황녀 전하가 공자님에 관해서 물은 적이 있습니다.”

“저에 대해서요?”

“네, 저와 공자님의 관계에 대해서 추궁하시려 하더군요.”

“멜피사의 대답은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황녀 전하께서 추궁하시던 중 갑자기 케이크가 먹고 싶어졌다며 저를 산키샌 마을까지 심부름을 보내서...아, 서..설령 끝까지 추궁했어도 절대로 공자님에 관한 건 발설하지 않았을 겁니다.”

멜피사가 필사적으로 변명하자 내가 손을 내밀며 진정시켰다.

“변명하지 않아도 돼요. 믿고 있으니까요.”

“가... 감사합니다. 그...그런데 공자님. 이게 공자님께서 말씀하신 그 상황이 맞을까요? 그냥 황녀 전하께서 케이크가 먹고 싶었던건...”

멜피사가 아니길 바라는 눈빛으로 바라보았지만 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아뇨, 추궁하지 않은 것도 그렇고 굳이 멜피사에게 시킨 걸 보면 맞을 거예요.”

“아...죄...죄송합니다. 명령하신 일도 제대로 해내지 못해서...”

“이미 지난 일을 파고들 시간은 없습니다. 이 일이 정확히는 며칠이나 되었죠?”

“...황금연휴가 끝날 때쯤이었습니다.”

멜피사가 준 정보에 나는 짧은 한숨을 흘리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슬슬 움직이는 건가.’

5장의 보스.

최고이자, 최악이자, 최강의 배신자.

‘리아나 루멘하르크’가 마침내 몸을 일으켰다.

이 괴물 같은 황녀는 정공법으로 공략할 수 없다.

함정을 파고, 최대한 사람을 모아서, 기습적으로 들이박으면 공략 가능성이 0%까지는 아니겠지만...

분명 공략 과정에서 많은 사람이 죽을 것이다.

‘...그럼 최종보스 전은 시작하기도 전에 끝이지.’

내가 생각하는 파티원들에서 한 명이라도 빠진다면 절대로 최종보스는 쓰러트릴 수 없다.

그렇다면 5장은 패배가 확정된 이벤트냐?

이건 또 아니었다.

리아나를 5장의 보스라고 말했지만, 5장은 보스전보다는 리아나의 중심으로 일어난 아카데미 내부의 반란을 막아내는 게 목적이다.

그리고 일단 반란이 일어나게 되면 리아나와 싸울 필요는 없다.

반란을 진압하는 사이 리아나는 아카데미 내부로 잠입 한 ‘일그러진 욕망’과 접촉하여 진짜 반란군이 있는 제국 동부로 이동하게 되니까.

그리고 제국의 내전이 시작진다.

거기서부터는 카르네아도 문을 닫기에 더 이상 아카데미에서 스토리가 진행되지 않는다.

반란이 진압되기 전까지 수많은 사람이 죽고, 다치는 전쟁이 이어질 뿐이다.

‘...그리고 그 끝에서는.’

5장의 결말을 떠올린 내가 주먹을 꽉 쥐었다.

“멜피사.”

“...네...공자님...버...벌을...내려 주세요.”

멜피사가 말하는 벌은 비비안이 말한 것처럼 야한 체벌이 아닌 진심으로 고통받기를 원하는 것이었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벌은 나중에 내리도록 하겠습니다.”

“...네.”

“지금은 황녀 전하에게 돌아가세요. 그리고 이번에는 황녀의 행동을 하나도 빠짐없이 제게 보고하시고요. 알겠나요?”

"네...공자님...알겠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아직 황녀가 본격적으로 움직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카르네아 내부의 반란군은 하위귀족과 평민들로 이루어져 있다.

리아나가 평소에도 신분에 거리낌 없이 사람들을 대한다고 한들 리아나는 귀족 중에서 가장 꼭대기인 황실의 혈육이다.

그런 리아나가 저들의 수장으로 올라서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만한 계기가 필요하다.

‘아카조교사에서는 어린 평민 여자아이가 귀족의 마차에 치여 죽은 게 시작이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제국에도 법이 존재한다.

귀족이라 할지라도 아무런 이유 없이 평민을 죽이면 처벌받는다.

하지만 고위 귀족의 마차에 평민 하나 치인 사고 정도야 문제 될 정도는 아니다.

그러나아이를 친 사고를일으킨 귀족, 후베티즈는 성품이 뛰어난 편이었다.

어물쩍 넘어갈 수 있는 일이었지만, 죄책감을 느껴 아이의 부모에게 평생 먹고 살 만큼의 위로금을 주었으니까.

하지만 이 사건은 이상하게 점점 살을 붙여 제국 전역에 퍼져나간다.

당연히 자연스러운 현상은 아니었고, 리아나 측에서 소문을 이용한 것이다.

그렇게 살이 붙은 소문이 카르네아에까지 닿을 때쯤, 후베티즈는 취미로 평민들을 수십 명이나 죽인 미친 살인마가 되어 있었다.

평상시부터 그의 인품을 알고 있던 고위 귀족은 그럴 리가 없다고 옹호하고.

후베티즈를 직접 만난 적 없는 하위귀족이나 평민들은 그를 옹호하는 귀족들도 다 똑같은 족속으로 판단한다.

그 결과, 겉으로나마 평등을 보여주던 카르네아 아카데미조차 내부에서도 귀족과 평민이 대립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가장 고귀한 신분으로 평민들의 권리를 대변하던 리아나의 모습에 감화된 사람들이 리아나를 수장으로 내세우는 것으로 폭동이 시작된다.

‘...하지만 마차 사건은 아직 한참 뒤에서나 발생할 일이야.’

리아나의 배신과 반란군의 움직임이 빨라졌다면 분명 그에 걸맞은 사건이 발생할 것이다.

내가 알아내야 할 것은 그 사건이 무엇인지다.

그때, 어수선한 분위기와 함께 많은 학생이 어디론가 이동하는 게 느껴졌다.

“...멜피사.”

“네.”

말하기가 무섭게 의도를 읽은 멜피사가 그림자 속으로 숨어들었다.

명령대로 황녀의 곁으로 돌아간 것이다.

동시에 나는 학생들 쪽으로 달려가 이 웅성거림의 원인을 찾기 시작했다.

여러 가지 말이 동시에 귓가를 스치던 와중. 도저히 흘려들을 수 없는 이야기가 들렸다.

“지금 정문에 칼리오페 가문의 마차가 도착했다는데?”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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