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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차 히로인이 조교를 기억함-193화 (193/354)

〈 193화 〉 초청제에 가족이 오는 건 '상식' 이잖아? (2)

* * *

“하아...하아...빌어먹을 카르네아.”

이건 넓어도 너무 넓지 않은가.

나는 이마에 흐르는 땀을 셔츠로 닦았다.

아무리 아카데미 끝에서 끝이라 해도 숨이 벅차게 달려서야 겨우 정문 근처에 도착했다.

“...헛소리는 아니었네.”

학생들이 떠들던 대로 다른 마차에 비해 두 배 가까이 큰 검은색 마차가 정문에 서 있었다.

혹시 다른 가문의 것이 아닐까 싶었지만, 마차의 지붕 위에서는 칼리오페의 깃발이 멋들어지게 휘날리고 있었다.

초청제 같은 행사에 아버지나 큰형님이 올라가 없으니 결국 타고 있는 건 가르시아나 레이카일 것이다.

‘아니, 둘 다겠지...’

머릿속 깊은 곳에서 두통이 일었다.

인정하기는 싫지만 두 명 다 왔을 가능성이 컸다.

둘 중 한 사람만 온다고 하면 다른 쪽에서 필사적으로 방해할 테니까.

한숨을 내쉰 나는 구경꾼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마차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제발 아무일도 없었기를...’

아무 일 없이 도착했다면 편지 한 통 없이 몰래 카르네아에 온 것쯤은 용서해줄 수 있을 정도로.

지금의 나는 간절했다.

‘사고 흔적은 안 보이네... 내 예상이 틀린 건가?’

다행스럽게도 마차에는 사고의 흔적은 없어 보였다.

그래도 혹시 놓친 것이 있을까 마차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있자 걸걸한 목소리의 남자가 내 앞을 가로막으며 말했다.

“거기, 이 깃발이 안 보입니까? 누구길래 감히 칼리오페 가문의 마차를 그런 식으로 뒤지고... 어, 어? 도련님? 죄...죄송합니다. 제가 잠시 미쳤나 봅니다. 부디 너그럽게 용서를...”

대뜸 호통을 치던 마부는 내 얼굴을 확인하고는 머리가 땅에 닿을 듯 허리 숙여 사과했다.

나는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물었다.

“괜찮습니다. 그보다 사고는 없었습니까?”

“...네? 사고라니 무슨 뜻인지 잘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그러니까 오는 길에 사고가 없었냐고 물은 겁니다.”

뜬금없는 질문에 마부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대답했다.

“하하하, 걱정하지 마십시오.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럴 리야 없겠지만 설령 사고가 나더라도 마차만큼은 무사할 겁니다. 비싼 가격만큼이나 각종 보호 마법이 잔뜩 새겨져 있으니까요.”

나로서는 내전의 시발점이 될 마차사고가 벌어졌을까 봐 한 질문이었지만, 마부는 질문을 다른 의도로 파악했는지 껄껄 웃었다.

“...거짓말은 아니겠죠.”

살짝 위압감을 담아 물었음에도 마부는 거리낌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렴요. 제가 도련님께 어떻게 거짓을 고하겠습니까. 믿지 못하시겠다면 밖에 있는 호위들에게 물어도 됩니다.”

마부의 확답을 들은 나는 그때야 긴장을 풀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그럼 다행입니다. 추궁하듯 물어서 죄송했습니다.”

“아닙니다. 그만큼 도련님이 가족을 소중히 여기신다는 뜻 아니겠습니까. 허허. 제 딸도 이 정도로 저를 대해주면 소원이 없겠습니다.”

“따님도 마음속으로는 아끼고 있을 겁니다.”

“허허, 그러면 좋겠는데요. 아, 입장 절차는 마쳤으니 곧 안으로 모실 수 있을 겁니다.”

똑똑—

마부의 실없는 소리를 듣고 있자 마차 안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어이쿠, 마님께서 부르시는군요. 도련님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다녀오겠습니다.”

재빨리 뛰어 내려간 마부가 문 앞에 서더니 무언가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네, 곧 들어갈 수 있을 겁니다. 예? 도련님을요? 아뇨, 아닙니다. 네. 알겠습니다. 바로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대화를 마친 마부가 조심스럽게 내 앞에 서더니 뒤통수를 긁적거리며 말했다.

“저... 도련님. 마님께서 잠시 마차 안으로 들어오시라는데요...”

***

“진짜 너무 하지 않냐고! 결국, 끝까지 안 돌아왔다고!”

“비앙카.”

루시아의 방안에서 이불을 뒤집어쓴 비앙카가 침대를 발로 찼다.

“그래! 대충 예상은 하고 있었어! 그 자식이랑 분위가 좀 좋으면 꼭 방해가 들어오니까! 그래도 오늘은 아닐 줄 알았다고!”

“비앙카.”

“왜! 항상 나만 이러는데!! 나도 좀 꽁냥거리면 안 되냐고!!”

“비앙카!”

“역시 너도 너무하다고 생각하지?!!”

몇 번이나 이름을 불러도 들은 체도 하지 않는 비앙카.

결국 소리까지 친 루시아는 콧등을 꾸욱 누르며 고개를 저었다.

“비앙카. 그걸 왜 방까지 찾아와서 제게 말씀하시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네요. 친구에게 이야기하면 되잖아요. 혹시 친구가 없으신가요?”

“...윽...!”

비앙카가 정곡을 찔린 표정을 지었다.

루시아의 말대로 비앙카에게 친구란 전혀 없었다.

따돌림 당하는 비비안과는 반대로 비앙카는 자신이 다른 사람을 전부 따돌린다고 생각하는 종류의 인간이었다.

“...허...누,누,누가그래?!! 있거든 나도 친구 있거든!!”

“그래요? 그럼, 친구 세 명만 이름을 대보세요.”

“...읏....그...그러니까...릴리스도 있고, 비비안도 있고...뭐..너도 어떻게 보면 친...구? 비슷한 거 아닐까?”

말하면서도 창피한지 비앙카의 얼굴은 붉어지고 목소리도 작아졌다.

루시아가 어이가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백번 양보해서 저와 릴리스야 그렇다 쳐도 동생까지 친구로 포함하는 건가요...? 가슴만큼이나 참으로 얄팍한 인간관계네요.”

“아이 씨! 말해줘도 지랄이야!! 너도 내일 똑같이 당해봐야 그런 소리가 안 나오지!!”

비앙카의 말에 루시아는 콧방귀를 끼며 웃었다.

“흥, 주인님께서 데이트 도중 자리를 비우신다면 그만한 사정이 있으신 거겠죠. 아니면 설마 자기가 재미없어서 도망쳤다고 생각하시나요?”

“누...누가 그렇데! 으으으!!! 됐어! 앞으로 너한테는 말 안 걸어!!”

“그거 참으로 감사한 말이네요. 기왕이면 지금부터 안 걸어주시면 더욱 감사하겠어요. 저는 내일 주인님과의 데이트 코스를 짜느라 매우 바쁘거든요.”

그걸로 대화는 끝이라는 듯 다시 펜을 든 루시아가 노트에 글자를 적으려던 순간.

“루시아님!!!”

“...나..나..아니야! 내가 안 불렀어!”

“알아요. 비앙카. 누가 뭐라고 했나요?”

“크...큰일입니다. 루시아님!!”

소리친 것은 마르잔이었다.

마르잔은 그녀답지 않게 뛰어왔는지 숨을 가쁘게 내쉬고 있었다.

“크...큰...하아..큰일...”

“마르잔, 진정하고 말해보세요. 무슨 큰일인데요?”

“하아...네...후우...카...칼리오페에서 마차가 왔습니다!!”

마르자의 말에 루시아가 눈을 가늘게 뜨고는 혀를 찼다.

마차에 누가 타고 있을지는 말을 하지 않아도 뻔했다.

“...쯧, 가르시아와 레이카도 어지간히도 급했나 보네요. 이렇게 직접 찾아오고.”

“뭐! 유진이 엄마랑 누나가 여기 왔다고? 어...어쩌지? 아직 만나 볼 마음의 준비가 안 됐는데...”

“준비할 필요 없어요.”

루시아의 말에 인상을 찌푸린 비앙카가 팔짱을 끼고 쏘아 붙였다.

“하, 자기는 걱정 없다는 거야 뭐야. 그래서 넌 좋은 가문에서 태어나서 좋겠다!”

“아뇨, 그런 이야기가 아니라 어차피 무슨 짓을 써도 그쪽에선 우리를 인정하려 하지 않을 테니 쓸데없이 시간 낭비할 필요 없다는 말이에요.”

“뭐? 우르엘라의 차기 가주가 안되면 누가 된다는 건데?”

항상 투덜대고 싸움을 걸어도 비앙카는 루시아의 능력을 인정하고 있었다.

루시아라면 시집을 오던 유진을 데릴사위로 데려가든 어느 쪽이든 칼리오페에서 쌍수를 들고 환영하고 있을 것이다.

“아무도 안될 거에요. 질투심에 눈이 돌아갈텐데 이성적 판단이 가능 할리가요.”

“질투...?”

루시아의 대답에 비앙카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네, 질투요. 사실 특별한 건 아니죠. 비앙카라도 저랑 주인님과 결혼하면 질투 할 거 아닌가요?”

그런 미래를 잠깐 떠올린 비앙카가 입술을 삐죽 내밀고 말했다.

“....하겠지.”

“그거랑 똑같아요.”

“하지만 저쪽은 가족이잖아. 가족이 뭔 질투야.”

“...평범한 가족이라면 말이죠.”

루시아가 비릿한 미소를 짓자 비앙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평범한 가족이 아니면 뭔데? 설마 친엄마가 아니라고 그런 소리를 하는 거야? 그거야 뭐 특별한 일도 아니...”

거기까지 말한 비앙카의 머릿속에서 한가지 생각이 스쳤다.

“야, 설마... 아니지?”

“...글쎄요.”

“아니라고 말해! 아무리 그 새끼가 정조가 없어도 가족에게 손을 대지는 않았을 거 아니야!”

“...그...그런 건가요? 가족마저 ‘금단의 사랑’에 손을 뻗게 하시다니... 알고는 있었지만 유진님의 매력은 끝이 없군요.”

금단의 사랑이라는 단어에 꽂힌 마르잔이 몸을 부르르 떨었지만 아무도 그녀에게 시선을 줄 여유가 없었다.

“정신 나간 거 아니야!! 여,여자관계가 난잡한 건 알고 있었지만, 어떻게 가족을 건드려..!”

“그럴만한 사정이 있어요. 알고 있겠지만, 어디 가서 떠벌리지 마세요.”

“말 안 해!! 아!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건 너무한 거 아니야!”

비앙카가 방방 날뛰자 루시아가 정색하며 물었다.

“그래서 어쩌라고요. 비앙카는 주인님을 포기할 수 있나요? 마음대로 하세요. 저는 주인님이 무슨 짓을 하더라도 절대로 포기 못 해요.”

루시아의 냉정한 말에 비비안도 조금 이성을 되찾고 한층 차분해진 어조로 말했다.

“...나도 못해. 그래도 설명은 들어야겠어.”

비앙카도 놀랐을 뿐 유진에 대한 마음이 달라진 건 아니었다.

“그건 알아서 하세요. 지금 중요한 건 그 두 암고양이들에게 주인님을 돌려받는 거예요.”

“...그렇게까지 해야해? 어차피 초정제가 끝나면 돌아갈 거 아니야. 그냥 며칠 참으면...”

“초청제 기간에는 계속 붙어있을 거 아니에요. ...저는 마지막 휴식시간을 방해받고 싶지 않아요.”

거기까지 말한 루시아가 눈을 잠깐 감았다 뜨고는 선언했다.

“그럼 우선 누가 여자로서 우위에 있는지 확실히 보여주도록 하죠."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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