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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차 히로인이 조교를 기억함-167화 (167/354)

〈 167화 〉 낙화(花) (5)

* * *

“...그러니 선생님은 선생님이 해야 할 일을 해주세요.”

내가 주먹을 굳게 쥐었다.

‘...내가 해야 하는 일.’

두말할 필요도 없이 1회차의 나를 쓰러트리는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 쓰러트리란 말인가.

상대가 아무리 약화 되었다 한들 이미 엔딩을 봤을 정도의 스펙이다.

본래라면 어떤 짓을 해도 이길 수 없는 상대.

...그럼에도 나는 해내야만 했다.

짧게 숨을 내뱉은 내가 상황을 정리했다.

‘내게 주어진 이점은 세 가지...’

첫 번째 이점은 유틸성.

1회차의 나는 검사였다.

유틸성은 전부 루시아에게 맡긴 공격 특화형 검사.

그러니 루시아가 없는 지금 녀석은 가지고 있는 힘에 비해 유틸성이 한참 부족 할 수밖에 없다.

두 번째는 녀석의 본체가 ‘성검’이라는 점.

그림자로 녀석을 집어삼키는 순간, 마기의 근원이 ‘육체’가 아니라 ‘성검’이라는 걸 알아챘다.

즉, ‘되살아난 타락’을 쓰러트릴 필요도 없이 ‘성검’만 빼앗을 수 있다면 녀석은 알아서 자멸할 것이다.

마지막 이점은 나라는 존재 그 자체다.

나는 녀석의 패턴을 전부 알고 있다.

공격패턴, 사용하는 기술, 사고방식까지.

나는 ‘되살아난 타락’ 스스로보다 더욱 나를 잘 알고 있었다.

─쿠웅!

그때 다시 한번 그림자가 흔들렸다.

‘시간이 없다.’

이 모든 이점을 최대한 활용해서 나는 녀석을 쓰러트려야만 했다.

[이름 : 유진 칼리오페]

[직업 : 고유능력자]

[칭호 : 영웅의 자질을 가진 자]

[능력치]

근력 22 민첩 22 체력 25

지력 22 마력 24 행운 35

[고유능력]

[염동력 (Rank C)]

[특성]

[침대 위의 왕자 (Rank B+)]

[세계수의 축복 (Rank B)]

[조교사 (Rank EX)]

▶조교사로 생성된 스킬

[바람─칼날 (하급 바람 원소 마법)] ­ [‘루시아’에게서 조교사로 생성됨, 위력 77.2%]

[베어라─바람—칼날 (중급 바람 원소 마법)] ­ [‘비비안’에게서 조교사로 생성됨, 위력 77.2%]

[그림자 (파볼리에 혈족 마법)] ­ [‘멜피사’에게서 조교사로 생성됨, 위력 77.2%]

[신체 강화 (Rank A)] ­ [‘비앙카’에게서 조교사로 생성됨, 위력 77.2%] [상승치 11]

상대와 비교하자면 처참하기 짝이 없는 능력치지만 그걸 한탄하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최적의 세팅을 해야 한다.’

조교사의 능력을 최대한 활용해 ‘되살아난 타락’을 상대한다.

‘그림자와 신체 강화는 반드시 가져가야 한다.’

지금 내가 어떤 능력을 박아 넣는다고 해도 그림자의 유틸성은 따라올 수 없고, 신체 강화는 녀석의 움직임이라도 포착할 수 있는 최소한의 수단이다.

‘결국, 남은 슬롯은 두 개.’

─ 비었음.

─ 비었음.

지금 내가 사용할 수 있는 패 중에 가장 강력한 루시아와 비비안이다.

나는 둘의 가진 마법의 리스트를 전부 펼치고 조합 하나하나를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 돌려본다.

지끈, 혹사당한 두뇌에서 경고하듯 코피가 쏟아지고 식은땀이 마구 흘러내린다.

‘...조금만 더.’

그렇게 시야가 흐릿해지고 정신이 한계에 도달했을 때쯤.

‘후우...’

나는 비어있던 슬롯을 채울 수 있었다.

결코, 완벽이라 할 순 없겠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준비했다.

상태창을 닫은 나는 길게 숨을 내쉬고 앞으로 나아갔다.

콰아앙─

동시에 저 앞에서 ‘되살아난 타락’이 역시 그림자를 부수고 튀어나왔다.

“....”

되살아난 타락은 유진을 보며 분노했다.

알 수 없는 공간에 갇혀있었다.

그 공간은 자신이 ‘타락’의 이름을 얻기 전, 한낱 마기에 불과했을 때를 떠올리게 했기에 ‘되살아난 타락’은 분노하였다.

나 역시 그런 ‘되살아난 타락’의 살기를 느꼈다.

하지만 그게 어쨌다는 건가.

녀석의 분노에 공포를 느끼기에는 이미 비앙카의 죽음이라는 압도적인 공포를 느꼈다.

‘신체 강화.’

내가 소리 없이 입술을 달싹거리자, 심장이 거칠게 뛰며 온몸에 피를 쏟아냈다.

[능력치]

근력 22 + 11 민첩 22 + 11 체력 25 + 11

지력 22 마력 24 행운 35

‘승부는 한순간.’

어차피 내 빈약한 마력으로는 전투를 길게 끌 수 없다.

─두근

신체 강화가 발동된 순간 ‘되살아난 타락’은 유진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되살아난 타락’은 이해할 수 없었다. 지금 녀석이 사용한 것은 마법이 아니라 고유능력이었다.

마법사는 마법을, 고유능력자는 고유능력을 사용한다.

이 세계가 존재한 이후로 단 한 번의 예외도 존재하지 않았던 규칙이란 말이다.

‘무슨 짓을 한 거지?’

힘의 강약과는 별개로 세계의 법칙을 벗어나는 유진에게 ‘되살아난 타락’은 불쾌감을 느꼈다.

‘...죽인다.’

타락한 성검이 내뿜는 마기를 온몸에 두르며 ‘되살아난 타락’이 유진에게 달려들었다.

콰앙─

신체 강화로 강화된 눈으로도 ‘되살아난 타락’의 움직임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어떤 기술을 사용할지는 알고 있다.

다른 사대 가문과 달리 혈족 마법이 존재하지 않는 칼리오페 가문에서 오직 후계자에게 전해지는 일곱 개의 식으로 이루어진 검술.

칼리오페류 1식 ─ 낙빙(?) ─콰아아!

검게 물든 성검이 유진을 머리부터 반으로 쪼개기 위해 떨어졌고.

콰아앙─

갑옷에 주먹만 한 구멍이 난 ‘되살아난 타락’이 뒤로 밀려났다.

‘되살아난 타락’은 이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유진은 어떠한 능력도 사용하지 않았는데 이 상처는 무엇이란 말인가.

“...”

[찢어발겨라─늑대─송곳니 (상급 특수 마법)] ­ [‘루시아’에게서 조교사로 생성됨, 위력 77.2%]

특수마법

원소 마법과 달리 특정 대상에 대해 효과를 극대화 시킨 마법이었다.

조건이 복잡하며, 마력도 많이 잡아먹고, 사거리도 짧다는 단점이 있지만, 지금처럼 어떻게든 조건을 완성하면 격 위의 상대에게도 치명적인 위력을 발휘했다.

‘...이 한 번으로 남은 마력 중 8할이 날아갔다.’

만일 ‘되살아난 타락’이 낙빙을 사용하지 않았더라면 귀중한 대부분의 마력이 허공으로 증발하는 셈이었지만.

나는 녀석이 낙빙으로 시작할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염동력」

‘되살아난 타락’이 잠깐 멈칫한 사이 송곳 모양으로 날카롭게 갈린 염동력을 망가진 갑옷 틈 사이로 날렸다.

─꽈앙!

염동력은 ‘되살아난 타락’ 마기를 뿜어내는 것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칼리오페류 3식 ─ 파빙(?)

녀석이 양손으로 성검을 붙잡고 옆으로 크게 베어내자 땅거죽이 견디지 못하고 뜯겨나간다.

나는 뒤로 물러나는 대신 몸이 바닥에 닿을 듯 내리 숙였다.

퍼억─!

튀어 오른 돌덩이들이 몸을 때려 살갗을 찢고 뼈에 금을 가게 했지만 그래도, 살아남았다.

“...”

내가 파빙마저 피하는 것을 확인한 ‘되살아난 타락’은 검을 멈추지 않고 반대로 잡아 대각선으로 내리그었다.칼리오페류 6식 ─ 극빙세계(?世?)

겉모습은 파빙과 비슷한 기술이지만 그 내용은 전혀 다르다.

저 검은 단순히 허공을 베어내는 게 아니다.

대기 중에 존재하는 기운 중, 냉기만을 제외하고 다른 것들을 전부 베어내 극빙의 세계를 만들어내는 기술이란 말이다.

‘기다리고 있었다.’

검을 피해내는 순간 알 수 있었다.

저 녀석은 승리를 확신하고 있다는 것을.

나는 더욱더 앞으로 달려 들어갔다.

쩌저적─

극빙의 세계가 찾아오고 예상했던 대로 다리가 얼음이 달라붙지만.

파칭─!

곧바로 깨지고 만다.

“...!”

투구로 얼굴을 가리고 있음에도 ‘되살아난 타락’이 놀란 것이 느껴졌다.

­냉기저항이 극도로 상승합니다.­냉기계열의 친화력이 상당히 상승합니다.

설마 저 녀석도 내가 빙정을 섭취했을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을 테니까.

그러나 ‘되살아난 타락’의 망설임은 얼마 가지 않았다.

칼리오페류 2식 ─ 단빙(?)

칼리오페의 검술 중 가장 빠른 속도를 자랑하는 찌르기.

‘이건 피하지 않는다.’

머리를 향해 쏘아지는 단빙에 염동력으로 강화된 오른손을 날려 검의 궤도를 뒤튼다.

콰지지익─

오른손이 통째로 뜯겨나가며 불타오르는 듯한 고통이 느껴졌다.

‘하지만...’

이번에도 나는 살아남았다.

엉망진창이 된 몸이지만 어떻게든 ‘되살아난 타락’의 앞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

“...”

눈을 한 번 깜빡거리기도 부족한 짧은 시간.

‘되살아난 타락’과 내가 시선을 교환했다.

녀석이 내게 묻는 듯했다.

이렇게 망가진 몸으로 뭘 어쩌겠다는 거냐고.

녀석의 말대로 이미 마력과 체력 모두 바닥이다.

중급 마법은 사용할 수도 없고, 기껏해야 하급마법을 두세 번 사용 할 수 있을 정도.

내게 승산은 존재하지 않는다.

...라고 녀석이 생각하게 만드는 게 계획이었다.

[묶어라 (하급 특수 마법)] ­ [‘루시아’에게서 조교사로 생성됨, 위력 77.2%]

루시아와의 속박플레이 때 사용하던 마법.

일반적인 속박 마법이 중급 수준의 마력을 사용하는 것에 비해, 이 녀석은 하급에 마법에 필요한 마나 밖에 먹지 않는다.

이렇게 보면 상당히 가성비가 좋은 마법이지만 상대방의 허락이 없다면 사용할 수 없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존재했다.

‘...하지만.’

인정하기는 싫지만, 이 녀석은 나다.

그림자에 삼키지는 것으로 그것을 증명했다.

내가 허락하는 이상 녀석의 허락 따위는 받을 필요는 없는 것이다.

꾸우욱—!

‘되살아난 타락’을 묶였다고 한들 내가 사용한 것은 하급 마법이다.

힘을 한 번 주면 풀려 날 수준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 틈으로 충분했다.

「솟아라 — 그림자」

녀석이 묶여있는 사이 나는 그림자 속에서 목각 상자를 꺼냄과 동시에 염동력을 사용해 박살 냈다.

“....!”

그 순간 처음으로 녀석이 당황이 아닌, 경악하는 게 느껴졌다.

‘기어오는 공포’

이게 내가 가진 마지막 패였다.

허공에 뜬 촉수를 단숨에 입에 넣고 삼키자, 몸 안에서 벌레떼가 기어 다니는 감각이 느껴진다.

촤아악!

그리고 촉수의 힘으로 다시 돋아난 오른팔.

오른팔에 모든 힘을 집중시킨 내가 ‘되살아난 타락’이 쥔 성검을 날렸다.

“...!!”

성검을 놓친 녀석이 놀라 손에 뻗어보지만.

「삼켜라—그림자」

안타깝게도 이미 성검은 그림자가 삼킨 뒤였다.

“...오오오오오오오오오!!”

퍼억, 퍼억, 퍼억!

성검이 사라진 것을 확인한 ‘되살아난 타락’이 이성을 잃고 주먹을 계속 내리친다.

“....내....놔....!!”

금속을 긁어내는 듯한 녀석의 목소리.

“....좆...까...병신아...”

나 역시 쥐어짜낸 목소리로 답했다.

콰직─!

‘되살아난 타락’의 공격에 뭉개졌던 얼굴이 촉수의 힘으로 회복하고 뭉개지고, 또다시 뭉개진다.

얼굴뿐만이 아니다.

주먹이 닿는 신체의 모든 부위가 그렇게 뭉개진다.

...하지만 그걸로 좋다.

처음부터 멋있게 이길 생각 따위는 하지 않았다.

비겁하고 추할지라도 어떻게든 살아남기만 한다면 내 승리다.

“....그오오오오오오!!”

자신의 패배를 직감한 ‘되살아난 타락’이 분노에 찬 고함을 지르며 가슴에 주먹을 내리치지만.

툭—

더 이상 아프지 않았다.

“....그아...아...!!”

성검이 공급하던 마기가 사라지며, 마기로 유지하던 녀석의 몸 역시 먼지가 되어 떨어져 나간다.

툭, 툭, 툭.

갑옷 조각이 하나씩 떨어지며 ‘되살아났던 타락’이 먼지가 되어 흩어진다.

‘...겨우...살았네.’

살아있는 것 자체가 기적인 상황.

촉수의 힘으로 간신히 목숨을 부지하고 살아있지만, 뇌와 심장이 몇 번씩이나 터져나갔단 말이다.

─퉁

주인 잃은 투구가 눈 앞에 떨어지는 걸 본 순간.

의식이 꺼졌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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