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7화 〉 핑크 & 핑크 (3)
* * *
“...젖...소?”
양호 마망이 큰 충격을 받은 얼굴로 뒷걸음질 친다.
“...젖소라니...”
고개를 푹 숙이고는 한참이나 부들부들 떨어대는 양호 마망의 모습이 어딘가 위험해 보였다.
“...선생님?”
“으으으으으읏!! 도저히 못참겠어요! 젖소는 누가 젖소에요!!!”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인 아이리스가 단숨에 달려와 내 멱살을 잡고 흔든다.
“방학 내내 방치해놓고!! 돌아오더니 만나서 하는 첫 마디가 젖소? 지금 젖소라고 했어요! 그게 지금 저한테 할 말이에요! 최소한 사람이라면 미안하다! 그것도 아니라면 보고 싶었다고는 해야죠!”
“...미안해요. 보고싶었어요.”
나는 재빨리 태도를 바꾸며 사과를 했다.
이건 내가 무조건 잘못한거라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됐어요!! 여자한테는 같은 말이라도 엄청나게 듣고 싶은 때가 있지만 엄청나게 화날때도 있다고요!”
“...지금은요?”
“보면 몰라요!! 화날 때라고요!”
입술을 꽉 깨문 아이리스가 고개를 휙 돌렸다.
양호 마망이 이렇게까지 화를 내는 건 처음 봤다.
나는 다시 한번 머리를 숙여 사과했다.
“...미안해요. 실수였어요.”
“됐다고요!! 이제 몰라요!”
나는 화를 내며 양호실로 돌아가는 양호마망을 뒤에서 끌어안았다.
“화내지 마세요. 선생님은 웃는 게 이뻐요.”
“...늦었어요! 이, 이거 놔요!! 지금은 유진군이랑 이야기 하고 싶지 않아요!”
양호 마망은 저항했지만, 진심으로 저항하는 것 치고는 전혀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쪽─
나는 그런 양호 마망을 더 강하게 끌어안고는 목덜미에 키스했다.
“흐앗..! 지..지금 뭐하는 거에요!”
“선생님의 목덜미에 키스했는데요?”
“그..그걸 묻는게 아니잖아요! 왜 사람이 화를 내는데 키스를..!”
쪽—
다시 한번 키스하자 양호마망이 야릇한 신음을 흘렸다.
“흐읏...”
“...선생님 좀 민감해진 거 같은데요?”
“하으...조..조금전까지...모유를...짜고 있어서 몸이...가 아니라!! 유진군! 사...사람 말을 하면 좀 들어요! 지금은 유진군이랑 이런 걸....꺄악!”
몰캉—
나는 한 손으로는 양호 마망의 허리를 감싸고 다른 손으로는 젖가슴을 들어 올렸다.
“...모유량도 늘어난 것 같고요.”
실제로 목덜미에 키스했을 뿐인데 양호마망의 젖꼭지 부위가 젖어오기 시작했다.
“..지..지금..어디를..만지는...흐읏..!...전..전혀 안 듣고 있네요... 그리고 이것도 전부 유진군의 탓이 잖아요!”
“이게 제 탓이요?”
억울했다.
말실수는 무조건 내 잘못이 맞지만, 양호 마망의 모유에 관한 건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
‘...자기가 야하게 태어난 거면서.’
팩트로 때려주고 싶었지만 나는 양호 마망에게는 상냥한 남자이기에 꾹 눌러 참았다.
“...하읏...그..그래요! 모유를 짜다보니까...하아..읏..계속 모유량이 늘어난다고요! 흐읏...하아...예..예전에는 일주일에 두세번만 짜면 됐는데..읏.!..이..이제는 하루에도 세 번은..읏..! 짜야 한다고요..”
...내 탓이 맞는 것 같기도 했다.
그래도 임신도 하지 않았는데 하루에 세 번이나 모유를 짜내다니...
‘...조상님 중에 젖소 아인종이 섞여 있나?’
처음에는 농담으로 한 말이었지만 진짜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흐아...이..이거...어떻게..할거에요....”
“그래도 이 모유로 한 아이를 구하지 않았습니까. 자랑스럽게 생각하세요.”
“...하읏...그렇긴...하..지만...흐읏...!”
내가 유륜 주위를 살살 돌리자 양호 마망이 목을 젖히며 몸을 가볍게 파르르 떨었다.
“...하아...유진군...언제까지..읏...주무를거에요....옷이..다..젖었잖아요...”
떨리는 목소리로 속삭이는 양호 마망의 눈에는 색욕이 가득했다.
내가 부드럽게 웃으며 되물었다.
“위가요? 아니면 아래가요?”
“흐읏..!...모..몰라요!...하윽....저...이제...이런 몸이...되버려서...시집 어떻게 가요.”
“저한테 오면 되잖아요?”
“...엣...흐에엣?!”
그 순간 양호 마망이 내 품에서 벗어나서 창가 앞까지 달려간다.
“...지..지금 유진군이 저한테 시집을 오라고 한 거예요?”
“그렇게 놀라는 이유를 모르겠네요.”
“노...놀라죠! 당연히! 이..이건...프...프로포즈..잖아요!!”
“서운하네요. 그럼, 저 말고 다른 사람한테 시집가려고 했어요?”
“...그건 아니지만...그래도 너무 갑작스럽달까...아니...그게 절대...싫다는건 아니고..”
양호 마망의 눈이 뱅글뱅글 돌아간다.
“....그래도 저, 저는...나이도 많고...신분 차이도 나고...유진은 칼리오페의 자제잖아요...”
“저는 나이 신경 안 써요. 신분은 음... 부인자리까지는 무리겠지만 첩이라면 괜찮지 않을까요?”
“...처...첩...?...지금 첩으로 제안받은 거였어요?…! 으으...그래도....유...유진군이라면...처...첩도...나쁘지는...아..아니...!..그렇다고...지금 당장한다는 건 아니고...좀 더...단계가...”
열심히 무언가를 쏟아내던 양호 마망이 갑자기 축 처진 목소리로 물었다.
“...저...유진군?”
“네. 선생님.”
“...유진군은 지금까지 관계를 맺은 여성이 있나요?”
“....”
내가 침묵으로 대답했다.
아무리 그래도 여성이 아니라 여성‘들’이라 말하는 건 양호 마망에게 큰 충격을 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여..역시..그렇죠...예상은 했지만... 유진군은 인기가 많군요...저는 이 나이가 될 때까지 결혼은커녕 관계도 한 번을 못 맺은 노처녀인데...하하하..”
양호 마망이 메마른 웃음을 흘리는 게 뭔가 스위치를 누른듯했다.
‘저렇게 비하할 필요는 없는데...’
사실 양호 마망이 치유사로 수행을 쌓기 위해 이곳저곳을 돌아다녀서 그렇지.
그것만 아니었으면 외모로 보나 성격으로 보나 양호 마망은 결혼을 하고도 남았을 거다.
‘나야 잘됐지만.’
화제를 돌릴 겸 나는 양호실에 가득한 가득 놓인 빵을 보며 말했다.
“...그러보니 요즘 빵에 빠지셨나 봐요? 이렇게 잔뜩 사시고.”
그러자 양호 마망의 얼굴이 또다시 빨개진다.
“...산 게 아니라 제가 직접 만든 거예요...”
“그래요? 선생님이 제빵에 관심이 있는 줄은 몰랐네요.”
“관심 있는 게 아니라... 꼭 배워야만 하는 이유가 있어서...”
“왜 배우셔야 했는데요?”
“...그...그게...”
내가 질문을 이어가자, 양호 마망의 얼굴이 붉어지다 못해 이제는 눈물이 글썽글썽 맺히기까지 했다.
...역시 놀리는 재미가 있는 사람이다.
양호 마망에게는 ‘침대 위의 왕자’를 사용하지 않아도 대사가 저절로 나온다.
“...모...모유가 너무 많이 나와서... 유진군이 사준 저장고는 한참 전에 가득 찼고... 그렇다고 누구한테 나눠줄 수도 없고...버리기는 아깝고... 그..,그래요! 전부 모유로 만든 빵이에요! 저러고도 모유가 남아서 요즘은 치즈도 만들고 버터도 만들고! 하여튼 우유로 만드는 건 다 배우고 있다고요!”
조금 자극했더니 술술 털어놓는다.
나는 양호 마망을 향해 방긋 웃으며 말했다.
“그럴 거라 생각했어요.”
“흐아아앙!...유진군 미워요...자꾸 그렇게 놀리기만하고... 제...제가 요즘 얼마나 힘들었는데...”
그 순간 나는 웃음기를 싹 지우며 되물었다.
“..왜요?”
어떤 새끼인지는 몰라도 가만두지 않을 거다.
카르네아에서 양호 마망을 힘들게 할 수 있는 건 나뿐이다.
“누가 선생님을 힘들게 합니까?”
“...가...갑자기...그렇게 무서운 표정 짓지 말아요.”
“괜찮으니까 말해주세요.”
“...누구 때문에 힘들다는 건 아니고...흐앗..!”
나는 아이리스의 어깨를 붙잡으며 말했다.
“선생님... 저 믿죠?”
“...네에...”
“그럼 저를 믿고 말해주세요.”
“...읏...마..말할테니까. 웃지 말고 들어줘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양호 마망을 힘들다는데 내가 웃을 리가 있는가.
“...아무래도 카르네아 지하실에 악령이 있는 것 같아요.”
“....”
참아야 한다.
이번에도 웃으면 진짜 화낼지도 모른다.
“...핫.”
하지만 무리였다.
웃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웃음이 터져 나왔다.
“하하하하!”
저 나이에 아직도 귀신을 믿고 있는 양호 마망이 그저 귀엽게 느껴졌다.
“아..안웃는다면서요! 왜! 왜! 웃어요! 이...이것도 유진군이 말한 거잖아요!”
“...제가요? 언제요?”
전혀 기억에 없는 일이다.
양호 마망이 입을 떡 벌리며 말했다.
“어떻게 그걸 잊어요! 전에 양호실에 촛불이 잔뜩 있을 때 지하실의 악령을 부른 물건이라 했잖아요!”
“아....”
대충 그 상황을 넘기기 위해 한 말이라 까맣게 잊고 있었다.
“...너무해요. ...요즘...진짜로 지하실에서 불길한 느낌이 드는 거 같은데... 유진군은 비웃고 있고...”
양호 마망의 침울한 표정을 보고 있자 오늘은 이래저래 너무 괴롭힌 것 같았다.
“비웃은 거 아니에요. 선생님이 귀여워서 그랬어요. 그럼, 사과의 의미로 제가 악령을 퇴치하고 오겠습니다.”
'아카 조교사'를 플레이하면서 지하실에 뭐가 있던 적은 한 번도 없었기에있을 리가 없겠지만...
양호 마망의 기분을 풀어 줄 겸 맞춰주기로 했다.
“자...잠깐만요!”
내가 양호실을 떠나려고 하자 손매를 붙잡은 아이리스가 아랫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가지마요... 오늘은...그냥 안 보낼 거에요.”
“...금방 다시 올 생각인데요?”
“유진군 양심에 손을 얹고 생각해봐요. 유진군이 언제 그 말을 지킨 적이 있어요? 갈거면 저랑... 확실히 하고 가요.”
“그것도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내가 즉시 옷을 벗으려고 하자 양호 마망이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꺄아악! 유, 유진군 지, 지금 뭐하는거에요!”
비명을 지르면서도 손가락 사이로 뚫어지라 보고 있는 양호 마망.
“...야한 짓 하자는 거 아니였습니까?”
“아니...! 아니진 않지만...!”
“그럼 아무 문제도 없군요. 선생님도 벗으시죠.”
내가 양호 마망에게 다가가 옷을 벗기려고 하자 양호 마망이 뒤로 물러나며 소리쳤다.
“기다려요! 여, 여기서는 안돼요!...분명 누가 또 방해할테니까.”
양호 마망이 한없이 진지한 얼굴로 말한다.
내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설마요. 학기중이라면 몰라도 지금은 방학이잖아요. 누가 방해하겠어요.”
“그래도 안돼요! 항상 유진군이라 뭘 하려고 하면 무슨 일이 터졌다고요!”
“....”
말도 안 되는 걸 믿고 있는 양호 마망의 태도에 내가 황당해하고 있을 때.
똑똑—
“계세요?”
누군가 양호실의 문을 두드렸다.
“봐봐요...”
한숨을 내쉬는 양호 마망.
“...”
나도 놀랐다.
분명 아직 방학 중일 텐데 방해하는 사람이 있다니.
세계의 의지가 내가 양호 마망과 관계를 맺는 걸 방해하는 듯 했다.
“...유진군 일단 침대에 커튼을 치고 숨어있어요.”
내가 시킨 대로 몸을 숨기자 양호 마망이 문을 열었다.
“아, 바쁘신데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어디가 아프셔서 오셨나요?”
“아, 다쳐서 온 게 아닙니다. 선생님께서 방학 근무 특별 수당신청 서류를 제출하지 않아서요.”
“아...! 그..그거 따로 신청해야 하는 거였나요?”
“깜빡하시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서류도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한참이나 서류를 작성하는 끄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네, 감사합니다. 확인했습니다.”
직원이 끝난 뒤 양호 마망이 커튼을 젖히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봤죠...”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놀랍게도 양호 마망의 판단이 옳았다.
양호 마망의 성격상 본방에 들어가서 이런 일이 발생했다면 창피해서 한동안 얼굴도 못 봤을 테니까.
“...그럼 어떻게 할까요?”
잠시 심호흡을 한 양호 마망이 내 손을 붙잡으며 말했다.
“이..일단 내 방으로 가요.”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