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8화 〉 망나니, 악역 영애, 의붓 엄마 (1)
* * *
마차 정류장 근처에 있는 고급 휴게실.
고귀하신 귀족과 부자들이 여름 땡볕이나 추운 겨울에 밖에서 기다리지 말라고 만들어 놓은 곳이지만 당연히 망해가고 있었다.
무시무시한 가격의 휴게실을 이용할 사람들은 보통 개인 마차를 가지고 있어 기다릴 필요가 없었고, 공용 마차를 타는 사람은 이런 곳에 사용할 돈이 없었다.
그런데 내가 왜 이곳에 있냐면 루시아와 비비안이 조금이라도 더 같이 있고 싶어 했기에 이곳으로 마차를 불렀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파산 직전인 관계로 돈은 루시아가 냈다.
나는 소파에 기대앉은 고개를 숙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하얗게... 불태웠다...’
함부로 정력제를 먹지 않을 것.
문자 그대로 몸으로 배운 교훈이었다.
‘침대 위의 왕자’를 얻은 이후 처음으로 정력의 한계를 느꼈다.
3P와 4P는 고작 한 명 분량의 체력이 추가되는 것이 아닌 최소한 제곱의 체력이 필요했다.
루시아와 비비안을 상대할 때는 두 명 다 동시에 절정에 이르게 할 수 있어 내 페이스에 맞춰 갈 수 있었다.
하지만 상대가 세 명이 되자 루시아가 기절해있는 사이 비비안이 회복해 달려들고, 비비안을 쓰러트리면 트리스티아가 회복해 달려든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정액이 짜내고, 짜내고, 짜내고, 짜내졌다.
보통 이 정도면 발기가 안될 만도 해지만 트리스티아제 정력제는 체력을 강제로 정력으로 변환해 사용했다.
...그 결과가 이거다.
[능력치]체력 20 (제한됨 5)
독이나 부상 때문에 체력이 제한 된 건 본 적 있어도 섹스를 하다가 이렇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4P는 체력이 30대 찍을 때까지는 절대로 금지다...’
트리스티아가 중간에 미약 제조를 하러 자리를 떠나지 않았더라면 끝장이었다.
“...흐윽...훌쩍....흐그윽....”
마차가 출발할 시간이 다가오자 비비안이 펑펑 눈물을 흘리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흐윽...유..유진님...저...저도..데려가면 안되나요...바,..밥도 조금만 먹을게요. 자, 잘은 못하겠지만 그래도 열심히 일 할게요...흐윽...그러니까...”
비비안이 평소에도 잘 울기는 했지만 이처럼 서럽게 우는 것은 처음 보는 일이라 당황스러웠다.
“..흑...흐윽....저...자신이...없어요...무서워요...언니가...주..죽일거에요....”
“...비비안 내가 말해지 않았느냐. 비앙카는 걱정할 필요 없다. 네게 손을 대지 않겠다는 맹세를 받았으니까.”
“..흑..그...그래도...”
비비안이 울면서 내 손을 붙잡았지만, 곧 비비안이 탈 마차가 출발할 시간이다.
안 그래도 3장은 다른 장보다 변수가 많은 장이다.
이럴 때 비비안이 마차를 놓쳐서 발생하는 나비효과까지 감당할 수는 없었다.
나는 비비안을 품 안에 끌어당겨 머리를 쓰다듬으며 속삭였다.
“...힘들 때는 반지를 나라고 여겨라. 반지가 너를 지켜줄 테니.”
“흐윽...흑..유...진님...”
시간이 아슬아슬할 때까지 안겨있던 비비안은 전쟁터라도 향하는 것처럼 터덜터덜 걸어나갔다.
‘...후우.’
창밖으로 비비안이 마차를 올라탄 것을 본 나는 마음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래도 이 정도면 큰 소란 없이 비비안이 가문으로 돌아갔다.
멘탈 관리가 덜 된 상황이라 도망칠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반지를 준 게 효과가 있었나 보다.
창가를 보고 있자 이번에는 푸른 깃발에 시계가 그려져 있는 우르엘라 가문의 마차가 들어오고 있었다.
“...마차가 도착했네요.”
비비안만큼은 아니더라도 루시아 역시 눈물을 흘릴 것으로 생각했지만 의외로 멀쩡해 보였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주인님. 부디 몸조심하세요.”
하지만 평상시랑 다름없이 인사를 하는 루시아의 움직임이 아주 약간 느리게 떨어진 것은 착각일까.
“....”
“...주인님?”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있자 루시아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나는 그런 루시아의 손목을 잡아당기며 입을 맞췄다.
“하아..주인..님..쪼옵....”
혀와 혀가 뒤섞이며 달콤한 타액이 몸 안에 스며들었다.
루시아의 가는 팔이 내 등을 안으며 조금이라도 가까이서 느끼려고 한다.
나 역시 있는 힘껏 루시아를 끌어당겨 루시아의 체온, 촉감, 향기를 머릿속에 똑똑해 새겼다.
“...루시아... 너는 내 것이다. 잊지 말도록.”
“하아..하아...네에..어디에서나...그리고...언제나...저는 주인님의 것이에요..”
루시아가 흘리는 열띤 숨을 보자 다시 한번 입술을 훔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간신히 참아냈다.
“...하아...아무래도 더 있으면 못 떠날 것 같네요. 이만 가보겠습니다. 주인님.”
인사를 하고 휴게실 밖으로 반쯤 걸어나간 루시아는 갑자기 몸을 휙 돌려 달려오더니 내 뺨에 가볍게 입을 맞추며 속삭였다.
“...사랑해요. 주인님.”
그리고는 부끄러운 듯 웃으며 다시 문밖으로 달려나갔다.
나는 루시아가 뺨에 남긴 흔적을 매만지며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지금쯤 리아나는 신나게 계획을 세우고 있겠지.’
이 시점의 황녀가 내게 호감을 느낀 것은 처음이니 당연히 황실에 가는 것도 처음이다.
그러니 지금까지의 시나리오와는 달리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나도 전혀 모른다.
생각처럼 최악일 수도 있고, 생각보다 최악은 아닐 수도 있다.
그래도 어느 쪽이든 긍정적인 결과는 존재하지 않을 게 분명했다.
황녀는 지금도 나를 엿먹일 방법을 고민하고 있을 테니까.
물론 이 모든 것을 피하는 방법으로 황녀와의 약속을 무시한다는 선택지도 존재하기는 했다.
....그러니까 존재하기만 했다.
‘차라리 죽고 말지.’
황녀와의 약속을 깬다?
모르긴 몰라도 감당할 수 없는 후폭풍이 올 것이 분명했다.
‘하아...’
내가 한숨을 푹 내쉬고 있자 칼리오페 가문의 상징인 검은 방패가 그려진 마차가 도착했다.
‘...그럼, 이번에도 무사히 살아남기를 바라며...’
나는 알 수 없는 누군가에게 기도하며 문을 열었다.
***
예상과는 달리 칼리오페까지의 여정은 편안하기 짝이 없었다.
그 흔한 도적들의 습격들도 한 번도 없었고, 날씨도 북부로 올라가는 것 치고는 무난했다.
심지어 넓고 고급스러운 마차 안이라 그런지 멀미조차 나지 않았다.
‘...지겹네.’
처음에는 염동력 연습을 하며 시간을 보냈지만 그것도 이젠 지겨워졌다.
그래도 메인 스토리를 복기하는 것만큼은 매일 빼놓지 않았다.
지금까지 '아카조교사'가 계속 그래왔듯 3장도 데스 이벤트가 넘쳐흐르니 내가 놓친 사소한 점이 큰 위협으로 다가올 수 있었다.
‘3장에서 가장 큰 분기점은...’
차기 칼리오페 가문의 가주로 누구를 지지하느냐다.
칼리오페 가문의 후계자는 삼남 일녀로 이루어져 있다.
먼저‘에르덴 칼리오페’
장남이라는 정통성을 가졌고 외모와 검술도 뛰어나며 성실한 데다 백성들을 위한 마음씨를 가졌다.
좀 심하게 무뚝뚝하다는 점을 뺀다면 인간적으로 부족한 점이 하나 없었다.
‘하지만 정치에 관심이 없는 게 문제지...’
만약 에르덴이 정면에 나섰다면 둘째‘케일 칼리오페’는 감히 후계자 자리를 노리지도 못했겠지만 안타깝게도 에르덴은 외가 쪽에서 오는 지원조차 돌려보낼 정도로 고고한 남자였다.
둘째 케일은 망나니 소설의 빙의 전 주인공 같은 놈이다.
쓰레기 같은 성격과 버러지 같은 재능을 가졌다는 뜻이다.
칼리오페라는 배경을 가지고서도 카르네아 아카데미 입학시험에서 떨어졌으니 오죽하겠는가.
본래라면 후계자 나 이하로 후계자 경쟁에서 밀려났어야 했지만...
쌍둥이 여동생인‘레이카 칼리오페’와 어머니‘가르시아 마이샤’가 문제였다.
특히 어머니 가르시아는 권력에 대한 욕심과 그것을 얻기 위한 행동력이 엄청났다.
마이샤 가문 출신이 칼리오페의 안주인 자리를 차지했으니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마이샤 가문이 어떤 가문이냐면 거의 망했다고 잘 알려진 베아트리스 가문조차 마이샤 가문보다는 윗급이라고 한다면 이해하겠는가.
그런데 어떻게 마이샤 가문 출신이 감히 칼리오페 가문의 안주인이 됐냐면....
현 가주,‘에다드 칼리오페’를 강간했다.
에르덴의 어머니인 첫째 부인을 잃고 실의에 빠진 에다드 칼리오페가 술에 취해 잠든 사이에 침실에 파고들어 그의 씨앗을 받아냈다.
물론, 공식적으로는 서로 사랑하여 신분의 차이를 뛰어넘어 결혼했다고 하지만 뒷사정을 알고 있는 나로서는 어이가 없을 따름이었다.
그럼, 후계자 중 홍일점인 레이카 칼리오페는 어떤 인간인가?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악역 영애다.
역시 전생하기 전에 쓰레기 같은 성격을 가진 악역 영애 말이다.
그래도 케일보다는 나은 점은 머리만큼은 빠르게 돌아간다는 점일까.
‘하아...’
망나니, 악역 영애, 의붓 엄마...
이렇게 모와 보니 대표적인 소설의 악역을 다 모아 놓은 것만 같았다.
‘...하긴 그렇게 따지면 나도 만만치는 않지.’
칼리오페 가문의 삼남이자 가문에서 가장 특이하면서도 위험한 위치에 있는 게‘유진 칼리오페’였다.
언제나 그랬지만 특히 3장에서는 내 선택 한 번에 따라 가문의 운명과 시나리오의 결말이 휙 뒤바뀌는 터라 선택에 있어서 좀 더 신중해야만 했다.
히이잉—!
그때 말이 울음소리를 내며 마차가 멈춰섰다.
긴 여정 끝에 마침내 칼리오페 가문의 본성에 도착한 것이다.
내가 자리에 앉아 기다리고 있자 마차 문이 열리고 검은 정장 차림에 흰 백발을 뒤로 단정하게 넘겨 묶은 미중년이 부드럽게 머리를 숙였다.
“...알프레도.”
“오랜만입니다. 도련님. 그간 건강하셨는지요.”
인자하게 웃는 알프레도의 옆에서 구릿빛 피부를 가진 메이드가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엠마도 오랜만이군.”
“도련님! 너무 보고 싶었어요!”
환하게 웃는 엠마를 보자 나도 피식 웃음이 흘러나왔다.
“죄송합니다. 제가 모시러 가야 했는데...”
“괜찮아. 집사장이 바쁜 건 당연하지. 알프레도가 가문을 지켜줘서 마음 편히 학업에 집중할 수 있었어.”
“...허허, 도련님께서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도련님! 저도 열심히 청소하고 지냈어요!”
“그래, 엠마. 너도 고생 많았다.”
나는 엠마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부드럽게 웃었다.
평소에 내 본성을 알던 사람이 본다면 입을 떡 벌릴 정도의 친절함이었지만 당연한 일이었다.
....이들이야말로 내가 3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열쇠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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