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6화 〉 나비는 두 번 날개짓 한다 (6)
* * *
“....좋겠네요. 비비안?”
“루,루,루시아님...!”
루시아의 등장과 동시에 비비안이 제자리에서 정좌했다.
“죄, 죄송해요. 루시아님.”
“어머, 도대체 뭐가 죄송하다는 걸까요?”
“그, 그러니까 루시아님은 못 받은 반지를 저 혼자서 받아서...”
빠직하는 소리가 들린 건 착각일까.
웃고 있는 루시아의 이마에 혈관이 툭 튀어나왔다.
“하...하하하하. ....비비안은 참 재미있는 소리를 한다니까요.”
“히이익!”
루시아가 세상에서 가장 선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오자 비비안이 비명을 지르며 물러났다.
나는 즐겁게 놀고 있는 루시아와 비비안을 잠시 내버려두고 오랜만에 상태창을 확인했다.
[이름 : 유진 칼리오페]
[직업 : 고유능력자]
[칭호 : 영웅의 자질을 가진 자]
[능력치]
근력 13 > 20 민첩 13 > 20 체력 14 > 21
지력 11 > 20 마력 12 > 23 행운 25 > 34
[스킬]
[염동력 (Rank D)]
[바람─칼날 (하급 바람 원소 마법)] [‘루시아’에게서 조교사로 생성됨, 위력 67.9%]
[꿰뚫어라─대지—창 (중급 대지 원소 마법)] [‘비비안’에게서 조교사로 생성됨, 위력 57%]
[특성]
[침대 위의 왕자 (Rank B)]
[조교사 (Rank EX)]
[세계수의 축복 (Rank C)]
마침내 모든 능력치가 20대를 찍었다.
처음 이 세계에 떨어지고 모든 능력치가 10인 걸 확인했을 때 얼마나 절망했던가.
하지만 이젠 특성을 빼놓고 능력치만 보더라도 카르데아 아카데미 1학년 중위권 수준은 되었다.
‘정말 장족의 발전이다...’
물론 많이 발전했다고는 하나 저 둘에 비하자면 아직 한참 부족한 게 사실이다.
───
[이름 : 루시아 우르엘라]
[직업 : 마법사]
[칭호 : 제국의 달]
[조교도 : ???%]
[능력치]
근력 33 민첩 38 체력 30
지력 44 마력 49 행운 9
───
[이름 : 비비안 베아트리스]
[직업 : 마법사]
[칭호 : 없음]
[조교도 : 95%]
[능력치]
근력 15 민첩 13 체력 12
지력 49(제한됨 5) 마력 50(제한됨 5) 행운 8
───
루시아야 그렇다고 해도 비비안도 벌써 50의 벽을 넘었으니까 말이다.
아직 능력치가 제한 되어있기에 실질적인 마력은 루시아가 위겠지만 이 시점에 50에 도달했다는 것 자체가 감탄할 만한 일이다.
‘...나도 이번 기회에 능력치 좀 키워야지.’
칼리오페 가문에 돌아가면 바닥난 금화도 좀 채우고 영약도 한두 개 정도 먹어서 능력치도 성장시킬 생각이었다.
물론 가문에서 그냥 내주지는 않겠지만 거래로 쓸 만한 패는 이미 내 손안에 있었다.
“어서요? 그냥 보기만 한다니까요.”
“...아...안대여...이건..유진님이 저한테 주신 거에요...”
“....분명 손가락은 잘려도 다시 자라났죠?”
“히이익!”
둘이 즐겁게 노는 모습을 보자 피식 웃음이 흘러나오기도 했지만 이제 슬슬 준비해야 할 시간이다.
“장난은 그만해라.”
“유, 유진님...!”
비비안이 손가락에 낀 반지를 커다란 가슴 아래 폭 숨기며 내 등 뒤에 달라붙었다.
“....비비안. 지금 주인님께 버릇없이 무슨 짓인가요?”
“아니, 괜찮다. 그보다 예정보다 빨라졌지만, 내일 가문에 돌아가려고 한다.”
갑작스러운 말에 루시아는 잠시 눈을 동그랗게 떴지만 이내 부드럽게 웃으며 대답했다.
“네. 주인님. 그럼 떠날 준비하겠습니다.”
“에..에? 내일요? 그, 그럼 저, 저는...”
비비안이 불안한 듯 몸을 떨며 말했다.
비비안이 가문에서 어떤 취급을 받았는지 알기에 저 반응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걱정하지 마라. 네겐 재능이 있다.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면 가문에서도 널 함부로 대하지 못할 것이다.”
“저, 저따위가 재능이 있을 리 없어요.... 저는 유진님과 루시아님이 없으면 아무것도....”
“지금 내 말을 의심하는 거냐?”
“아, 아니요! 절대로 그런 건 아니에요.”
비비안은 펄쩍 뛰며 부정했지만, 사실은 나도 비비안이 아직 불안정 한 건 알고 있다.
본래 계획대로라면 앞으로 일주일 정도 비앙카를 더 조교 하면서 동시에 비비안의 멘탈을 어느 정도 보듬어 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황녀와의 약속으로 계획이 틀어졌다.’
황실에서 일주일을 머물러야 하는 이상 아무리 늦어도 내일은 가문으로 출발하는 것이 맞았다.
‘...그러니까 오늘은 일정을 압축한다.’
비비안의 멘탈 치유, 루시아와의 미래 계획, 그리고 3장에서 쓸 준비물 구매까지 오늘 안에 끝낸다.
“오늘은 산키샌 마을에 갈 것이다. 루시아. 너는 비비안과 함께 변장하도록.”
“네. 주인님.”
내 명령을 들은 루시아가 우아하게 허리를 숙이며 대답했다.
“후후훗...비비안. 제가 이쁘게 꾸며드릴게요.”
“자, 자, 잠시만.. 루, 루시아님...저..호..혼자서도..변장...”
“...너무 기대되네요. 자, 비비안. 이쪽으로 와요.”
“유, 유진님! 유진님...!”
루시아가 비비안에게 팔짱을 끼며 끌고 갔다.
비비안이 도축장에 끌려가는 소와 같은 눈빛을 보냈지만...
별일 없을 것이다.
아마도.
***
“오늘따라 사장님은 더 아름답네요.”
고귀한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귀부인이 목각상자를 계산대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어머, 그런가요?”
“네, 평소에도 아름다웠지만, 오늘은 특히 그런 거 같네요.”
“후훗. 기분 좋은 말을 들었으니 이건 서비스로 드리죠.”
트리스티아가 방긋 웃으며 상자 안에 미끈거린 젤이 담긴 병을 집어넣었다.
“어머나, 고마워라.”
“고맙긴요. 제가 고맙죠. 부인께서 사교회에 소문을 흘려주신 덕분에 손님이 많이 늘었거든요.”
“...한 번 써 보면 잊을 수 없으니까요. 그럼, 다음 신제품이 나오면 또 올게요.”
“네, 부인의 것은 따로 빼놓고 있을게요.”
평범한 잡담처럼 보이지만 실상을 아는 사람들에게는 얼굴을 붉힐만한 대화였다.
그도 그럴 것이 귀부인이 구매한 상자에 담긴 것은 그로테로스한 돌기가 잔뜩 솟아 있는 거대 딜도였으니까.
“흐..흐흡...아름답다고?”
귀부인이 떠나고 홀로 남은 트리스티아가 즐겁게 콧노래를 부르며 상품의 먼지를 털고 있었다.
그러면서 슬쩍 전신거울을 확인하자 딱 달라붙는 붉은 옷이 육감적인 몸매가 잘 드러났다.
사실 오늘은 평소보다 좀 꾸미긴 했다.
트리스티아의 고유능력으로 엿본 미래에는 귀한 손님이 온다고 했으니까.
‘슬슬 올 때가 됐는데….’
딸랑─
생각하기가 무섭게 문이 열리며 기다리던 손님이 나타났다.
“어머, 도련님? 오랜만이야. 여긴 무슨 일? 혹시 나 보러 왔어?”
트리스티아는 먼지떨이를 휙 던지고서는 유진을 향해 다가가 팔짱을 꼈다.
“...주인님이 불편해 하시니 좀 떨어져 주시죠.”
그리고 둘 사이를 가로지르며 루시아도 나타났다.
“...너도 왔니?”
트리스티아가 짧게 혀를 찼다.
미래 예지를 통해 유진이 온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누구와 같이 오는 것까지는 알 수가 없었다.
“손님에게 너도라니 오늘도 접대가 꽝이시네요?”
“...존중받고 싶으면 먼저 존중받을 만한 태도를 하는 게 어떨까?”
“어머, 미안해요. 나이가 들면 그런 거에 민감해지는지 몰랐네요.”
“하기야 자기 주인이 따먹히는 것을 보며 기절하는 것보다야 낫지 않겠니?”
“....손님한테 한 마디도 안 지시려고 하네요.”
“너도 마찬가지야.”
—까득
동시에 이를 간 루시아와 트리스티아가 서로를 죽일 듯이 노려보기 시작했다.
그사이에 낀 유진이 관자놀이를 짚으며 말했다.
“안으로 들어가 있어라. 비비.”
“...네. 유진님...아...안녕하세요?”
비비안이 거대한 가슴을 흔들며 지나가자 눈싸움을 하고 있던 트리스티아가 고개가 휙 돌아갔다.
“...저....무시무시한 애는 뭐야?”
“내가 새로 거둔 아이다.”
유진의 말을 들은 트리스티아가 잠깐 눈썹을 올리더니 이내 한숨을 푹 내쉬며 계산대로 돌아갔다.
“...하아...어쩐지...됐어. 흥이 식었어.”
손을 휘휘 내저은 트리스티아가 턱을 괴고는 장죽에 불을 붙였다.
***
“그래서 도련님? 양손에 꽃을 끼고 무슨 일이야?”
과연 저게 손님을 받는 태도가 맞는지 의심 갈 정도로 트리스티아는 뚱한 표정으로 앉아 있다.
“이걸 의뢰하고자 한다.”
“흐음...”
내가 건넨 쪽지를 확인한 트리스티아가 인상을 찌푸렸다.
“...도련님. 또 어디서 수상한 걸 가져왔네. 이렇게 만들어 본 적은 없지만, 재료만 봐서는 효과가 너무 강한데?”
미래의 트리스티아가 만들 물건이니 아직 만든 적이 없는 것은 당연했다.
“그래서 못하겠나?”
“음. 이 정도면 선이 아슬아슬하지만... 도련님한테는 특별히 만들어 줄게.”
나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혹시 호감도가 부족해서 거절당했으면 어쩌나 싶었는데 간신히 통과한 모양이다.
트리스티아에게 의뢰한 건 감도 3.3배짜리 미약이다.
다음 장에서 공략해야 할 상대는 선천적으로 성감이 둔하고 참을성은 강했기에 이 정도는 사용해야 했다.
그렇다면 감도를 확 높이면 되는 게 아니냐! 싶을 수도 있지만, 감도가 10배가 넘어가게 되면 뇌에 직접적인 손상이 온다.
그래서 나온 것이 3.3배짜리 미약이다.
‘침대 위의 왕자’의 3배와 ‘미약’의 3.3배를 곱해 총 9.9배의 감도로 공략할 생각이었다.
물론 뇌만 손상되지 않을 뿐 이것만으로도 쾌락의 밑바닥까지 떨어지겠지만....
공략하지 않으면 내가 살해당하니 어쩔 수 없다.
가볍게 헛기침을 한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래서 가격은...”
“흐음... 도련님도 알겠지만, 원재료 가격만 해도 제법 나가고 심지어 하루 만에 끝내야 하니까 추가금도 붙어. 그래도 도련님의 얼굴을 봐서 최소한의 가격을 줄여도 이 정도?”
트리스티아가 건네준 쪽지에 적힌 금액을 보고 기절할 뻔했다.
‘...미친 거 아니야?’
비쌀 것이라고는 예상은 했지만, 도저히 남은 돈을 탈탈 털어내도 낼 수가 없었다.
“...혹시 다른 지불 방식도 가능한가?”
“어머, 몸으로 내려고?”
트리스티아의 눈이 여우처럼 휘며 입술을 핥았다.
“뭐, 그쪽으로 내는 것도 나쁘지 않지... 그러면 저쪽으로...”
탕─!
“제가 낼게요.”
책상 위로 묵직한 주머니를 올려놓으며 루시아가 끼어들었다.
“저기? 지금 분위기 파악이 안 되니? 나랑 네 주인과 이야기 하고 있잖니? 좀 빠져있으렴.”
“그러니까 분위기 파악을 하고 제가 대신 돈을 내겠다고 하는 데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다시 싸우기 시작하는 루시아와 트리스티아를 보며 내가 소리쳤다.
“....그만!”
한순간에 침묵이 내려앉은 가게.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자 나는 품 안에서 금화를 하나 꺼내 트리스티아쪽으로 튕겼다.
“....이게 뭐야?”
나는 대답하는 대신 뒤로 돌아 전시되어있는 상품 중에 뱀 그림이 그려진 유리병에 담긴 액체를 꺼내 단숨에 들이켰다.
불끈─!
마시는 순간 바로 효과가 찾아 왔다.
심장이 뜨거워지며 온몸의 혈관이 팽창된다.
특히, 평소에도 단단하던 내 분신은 지금은 정말 강철이라도 꿰뚫을 것 같았다.
“후우....”
나는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침을 삼키며 바라보고 있는 여인들에게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세 명 다 상대할 테니 전부 침대로 따라와라.”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