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4화 〉 메스가키 + 조교 = M's가키 (3)
* * *
‘컨디션은..그럭저럭인가?’
학년 대전 당일, 비앙카 베아트리스는 스트레칭을 하며 몸 상태를 점검했다.
딱히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몸 상태였지만, 대부분의 1반 학생이 그렇듯 질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분명 1반에서 몇몇은 1학년 때 2학년을 꺾었음에도 자신이 2학년이 되자 1학년에게는 질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 인간이었다.
‘그래도 루시아 우르엘라는 힘들겠지.’
다른 1학년들은 전부 상대할 자신이 있었지만 1학년 수석 루시아 우르엘라만큼은 예외였다.
교수들 사이에도 루시아는 이미 아카데미 졸업반 수준에 가깝다는 소리가 들릴 정도였으니까.
‘가문도 외모도 재능도...,쯧.’
비앙카가 혀를 찼다.
속이 뒤집힐 정도로 짜증 나지만 가끔 저렇게 세계의 축복을 받고 태어나는 인간이 있다는 걸 인정 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또 한 명 세계의 축복을 받은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앙증맞은 키에 분홍색 단발머리를 한 작은 여자아이...처럼 보이는 에이미 교수였다.
에이미 교수가 1학년 학생들을 대련장으로 인도하며 소리쳤다.
"자, 빨리빨리 움직이는겁니닷...!"
에이미 교수의 트레이드마크 같은 혀 짧은소리가 울려 퍼지자 대련장 여기저기 피식 소리가 흘러나온다.
"열심히! 그리고 안전하게 대련하는 겁니닷...!"
양손을 허리에 올리고 있는 힘껏 근엄한 척을 하지만 외모가 어려 보이다 보니 애들이 어른 흉내를 내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과연 누가 저 모습을 보고 로레오스 교수 다음갈 정도의 무력을 지닌 교수라고 생각하겠는가.
그건 1학년들도 마찬가지인지 학생 중 한 명이 소리쳤다.
"에이미 교수님 오늘은 왜 안 어울리게 그렇게 힘줘서 말 하시나요?"
"안 어울리지 않습니닷...! 오늘은 일이 있습니닷! 2반의 트리스탄 교수님이 알 수 없는 이유로 결석을 하셔서 그렇습니닷..! 그래서 교수들 사이에서 가장 훌륭한 교수로 꼽힌 제가 대신 2반까지 확인해야 합니닷..!"
누가 봐도 다른 교수들이 귀찮은 일을 어리숙한 에이미 교수한테 짬을 때린 거지만, 스스로가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면 그걸로 상관없겠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에이미 교수가 깜짝 놀라며 입을 가린다.
"헉?! 트리스탄 교수님이 결석한 건 비밀인데 말해버렸습니닷..!"
눈을 크게 뜨고 발을 동동 구르는 게 진짜 저런 게 교수?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바보 같은 모습이었다.
"모두 방금 한 말은 잊는 것 입니닷…!"
"그러니까 트리스탄 교수님이 결석했다는 걸 잊으면 되나요? 아니면 에이미 교수님이 2반까지 담당하는 걸 잊으면 되나요?"
남학생의 짓궂은 질문에 웃음소리가 터져 나온다.
“이익...!”
얼굴이 창백해졌다가 붉어졌다가 색이 마구 바뀌는 에이미 교수가 바닥을 쿵쿵 밟으며 소리쳤다.
<에잇! 시끄럽습니닷!="" 모두="" 조용히="" 하는="" 겁니닷..!=""/>
—뚝
한순간에 떠들던 학생들이 입을 다물었다.
특별히 1반이 말을 잘 듣는 착한 학생들이라 그런 것이 아니다.
에이미 교수가 강제로 그렇게 만든 것이었다.
<언령/>
말로서 현상을 끌어내는, 지금까지 알려진 고유 능력 중에서도 최상급의 힘을 지닌 능력.
물론, 절대적인 건 아니다.
잊어라, 자살해라 같이 대상의 정신이나 생명에 위협을 가하는 것은 거의 통하지 않고 지금처럼 조용히 하라는 명령조차 마력, 정신력, 체력 등 다양한 변수로 인해 통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말하는 것만으로 현상을 일으킨다는 것은 이 모든 단점을 무시할 만한 가치를 가지고 있었다.
'...나도...'
비앙카 베아트리스가 굳은살이 잔뜩 박힌 손바닥을 내려보았다.
만일 자신도 신체 강화 같은 능력이 아니라 저런 능력을 갖추고 태어났으면 무언가 달라졌을까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쓸데없는 생각을...’
비앙카가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의미 없는 가정이다.
다시 태어나지 않는 이상 고유 능력은 바뀔 수 없다.
알고 있음에도 이런 생각이 든 것은 카르네아 아카데미에서 거의 유일하게 자신보다 어려 보이는 에이미 교수라 그런 것일까.
"후우... 교수를 놀리면 어떻게 되는지 알았으면 이제 줄을 서는 겁니닷..!"
"...에이미 교수님... 교수님 때문에 혀 깨물었습니다.."
"우오아..! 미안..하지 않은 겁니닷...! 떠든 게 잘못했으니 그냥 입 다물고 빨리 번호대로 줄을 서라는 겁니닷!"
분명 학생들 말을 대놓고 무시하는데도 권위적으로 보이기는커녕 귀엽게만 보였다.
“후우... 대련장은 너무 높은 것 입니닷...!”
낑낑대며 대련장으로 올라간 에이미 교수가 메고 있는 작은 가방에서 종이를 꺼내 읽었다.
“....그러니까 1학년 잇센투레 쿠래타와 2학년의 비앙카 베아트리스는 올라오는 것 입니닷!”
비앙카가 눈을 살짝 크게 떴다.
설마 처음부터 불릴 줄이야.
그때, 1학년의 남학생이 계단도 밟지 않고 단숨에 대련장 위로 뛰어올랐다.
“제 상대는... 어? 음... 그러니까 선배님...이라고 불러야 하나요? 너무 작아..아니, 어려보여서...”
쿠래타가 입을 여는 순간 2학년 1반에 싸늘한 바람이 불었다.
큰일났네...
오늘 시체 하나 치우겠다...
....지금까지 비앙카의 신체 조건을 지적하고 몸이 성한 사람은 없었으니까.
“....”
비앙카는 대답하지 않고 싱긋 웃었다.
빠득
다만 주먹만큼은 더욱 굳게 쥐어졌다.
***
지금까지 1학년 5반의 승률은 0%
16번의 결투 중 전패였다.
그중에는 제법 잘 싸우는 애들도 있었지만 그래도 졌지만 잘 싸웠다. 수준이었지 승기를 잡는 것과는 거리가 있었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결과다.
시간의 흐름 만큼이나 정직하게 2학년은 1학년들의 전투와 마법의 숙련도가 다르다.
‘지금도 그렇고...’
지금 눈앞에 있는 스테이턴만 해도 1학년들과는 움직임이 달랐다.
호흡 사이를 날카롭게 파고 들어오는 공격과 가벼운 마법은 그냥 몸으로 받아넘기는 등 1학년들에게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전투 방식을 보여주었다.
개인적으로는 전사인 '스테이턴'보다 마법사인 '라드넘'이 상대하기는 편했겠지만 스테이턴도 그럭저럭 상대로 나쁘지는 않다.
‘...어차피 학년 대전 때 나오는 대전 상대의 종류와 패턴은 다 알고 있으니까.’
스테이턴이 왼쪽 발을 뒤로 당기면서 허리를 숙이고 턱을 살짝 당긴다.
패턴 4번, 회전베기의 자세였다.
회전베기는 대검을 양팔로 잡고 풍차 돌 듯 빙빙 돌면서 하는 공격이다.
한 번 원심력을 받기 시작하면 막기 힘든 기술이지만...
‘처음부터 못 돌게 하면 되지.’
「바람─칼날」
마법으로 신경을 돌리며 스테이턴의 발목 부분에 염동력을 줄처럼 늘어놓았다.
쿠웅!
스테이턴이 바람 칼날을 막는 대신 마력으로 강화된 몸으로 견뎌냈다.
방어에 사용하는 시간을 줄여 바로 공격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스테이턴이 회전하기 위해 발을 내딛는 순간 염동력에 걸려 균형을 잃고 넘어졌다.
"으엇?!"
...이것이 5반의 한계였다.
만일 3반이었다면 지금 상황에서 넘어지지 않고 균형을 잡았을 것이다.
그리고 1반이었다면 애초에 균형조차 잃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마법으로 공격하는 대신 넘어져 있는 스테이턴을 향해 달려갔다.
지금 패턴에서는 마법을 아무리 날려봤자 스테이턴은 대검으로 뒤로 숨을 뿐이다.
“읏..!”
설마 내가 다가올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듯 방어 자세를 취하던 스테이턴이 당황하며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지만 이미 나는 코앞까지 다가온 상황.
결국, 검을 휘두를 만한 자세를 취하지 못한 스테이턴은 검을 포기하고 주먹을 휘둘렀다.
후웅!
바람을 찢는 소리가 들렸다.
마력을 담은 주먹은 마치 돌덩이 같은 단단함을 지녔다.
몸이 약한 마법사들에게는 주먹을 대충 휘두른 것만으로도 커다란 위협이다.
하지만 이쪽은 매일 같이 로레오스랑 특훈을 하는 사람이다.
마력을 담았다고는 하나 로레오스의 주먹질과 비교 하면 한참 어설프다.
....왜 마법 전문 교수와 주먹질을 비교하는지는 몰라도 그러했다.
‘로레오스... 진짜 마법사 맞나?’
나는 날아오는 주먹을 고개를 오른쪽으로 틀며 피하며 동시에 손가락 두 개를 펴서 스테이턴의 목 앞에 가져다 댔다.
“...더 하실 건가요?”
굳이 이런 자세를 취한 건 생살여탈권이 내게 있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줘 교수진에게 점수를 더 받기 위함이었다.
“크읏....”
잠시 입술을 깨물던 스테이턴이 고개를 떨구며 말했다.
"...졌다."
처음으로 1학년 5반에서 나온 승리.
“...설마 1학년 한테 지다니..”
스테이턴은 1학년생에게 깨졌다는 패배감에 영혼이 빠져나간 표정을 지었지만 어쩌겠는가.
상대가 나인데.
우오오오!!
뭐야? 진짜 이겼어?
2학년을 이겼어?
믿고 있었다고!!
...모니터 너머로 봤을 때는 별다른 감정이 안 들었는데, 갑자기 무수한 악수 요청이 날아오니 참으로 쪽팔렸다.
"수고했다. 유진."
그때, 로레오스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등을 툭툭 두드렸다.
“교수님 덕분입니다.”
나는 고개를 숙이며 적당히 공을 돌렸다.
사회생활을 위한 것도 있고 실제로 로레오스의 특훈도 도움이 되었다.
"다음으로는 비비안 베아트리스..."
이름이 불리자 고개를 푹 숙인 비비안이 엄지손톱을 물어뜯으며 계단을 올랐다.
"지면안돼지면안돼지면안돼...."
...상태가 조금 이상해 보이지만 그래도 승리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중간고사 성적이 최하위권인 비비안이 나와 같은 B반이 되기 위해서는 이번에 압도적인 성장을 보여주어야 했다.
사실 제한 되었다고는 하나 능력치만 보면 비비안은 2학년 중에서도 상위권에 들기 충분했다.
그런데도 비비안이 승률이 바닥을 기는 건 순전히 비비안의 성격 탓이었다.
그래서 내가 마법의 주문을 속삭였다.
'반드시 이겨라. 만일 패배한다면...'
딱 저기까지만 말했지만, 뒷말은 비비안이 알아서 상상했을 것이다.
'그럼 얼마나 걸리려나.'
이기기야 하겠지만 그래도 각성하기 전이니까 5분? 어쩌면 그보다 길 수도 있을 것이다.
"시작...!"
콰아아아아앙!
시작과 동시에 비비안이 2학년생을 장외로 날려버렸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