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회차 히로인이 조교를 기억함-53화 (53/354)

〈 53화 〉 메스가키 + 조교 = M's가키 (2)

* * *

“...허억..허억...”

트리스탄이 허리를 굽힌 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온몸에 성한 곳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상처가 가득했다.

특히 어깨 부위는 살점이 통째로 떨어져 나가 피가 철철 흐르고 있었다.

...오우거의 손톱에 살짝 스친 것뿐인데 이렇게 되어버렸다.

‘약초를 챙겨 오길 잘했군.’

평소에는 이렇게 사용되는 약초조차 아까워 잘 사용하지 않았지만, 이번만큼은 긱마인드의 충고가 생각나 최소한의 분량은 챙겨 온 것이다.

부욱­

트리스탄이 넝마가 된 망토를 찢어 붕대처럼 만든 뒤 약초를 입에 넣고 씹었다.

입안에서 쓴맛이 올라오자 약초를 뱉어 붕대에 바르고 어깨에 가져다 댔다.

“....”

붕대가 상처에 닿자 끔찍한 고통이 느껴졌지만, 트리스탄은 신음 한 번 내지 않고 지혈을 마쳤다.

지혈을 마치고 주위를 둘러보자 온통 새하얀 눈으로 뒤덮여 있던 산자락은 피로 붉게 물들어 있었고 그 위에는 푸른색 피부를 지닌 거대한 오우거들의 시체가 널려있었다.

트리스탄이 천천히 시체를 향해 걸어갔다.

「바람─칼날」

잘라낸 오우거의 뿔을 포대에 담으며 트리스탄이 생각했다.

‘...뭔가 이상하다.’

트리스탄이 돈 때문에 아슬아슬할 정도로 위험 부담을 하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가 자살 지원자라는 뜻은 아니다.

트리스탄의 마법사로서의 실력은 두말할 필요 없이 초일류다.

자만하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초일류가 아니면 카르네아 아카데미에서 교수직을 맡을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오우거 토벌이 힘들기는 해도 조금만 조심하면 큰 문제가 없다는 판단을 했지만...

오판이었다.

산의 폭군이라 불리는 오우거라고 해도 결국 생명체다.

처음부터 상급 마법을 때려 박으면서 힘의 차이를 보여주면, 공포로 인해 어느 정도 틈이 생기기 마련이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아무리 힘의 차이를 보여줘도 두려워하거나 도망치는 녀석 하나 없이 끝까지 트리스탄을 죽이기 위해 달려들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이 오우거들은 단순히 난폭한 것만이 아니라 마치 누군가의 지휘를 받는 듯한 움직임으로 트리스탄을 압박해왔다….

쿵—

그때였다.

쿵—

마치 지진과도 같은 땅 울림과 함께 녀석이 모습을 드러냈다.

─크르르르

불길하게 꿈틀거리는 검은색 혈관이 온몸을 거미줄처럼 뒤덮은 핏빛 오우거.

“....”

핏빛 오우거는 지금까지 만난 오우거들과는 확연히 비교될 정도의 위압감을 지녔다.

일단 덩치부터가 다른 녀석들보다 두 배는 더 컸고, 두 갈래로 갈라진 뿔 위에는 곰 가죽을 걸쳐 쓴 채, 오른손에는 나무를 통째로 뽑아 놓은 것 같은 거대한 몽둥이를 들고 있었다.

─크아아아아!

핏빛 오우거는 자신의 부하들이 죽었다는 것에 분노한 듯 산이 떨리는 듯한 울음소리를 질렀다.

‘하...’

트리스탄이 헛웃음을 흘렸다.

누가 보더라도 포기하라 말할 정도로 절망적인 상황이었지만.

자신이 죽으면 홀로 남을 딸을 떠올리며 트리스탄이 어깨에 묶인 붕대 끝을 입으로 당겨 꽉 묶었다.

“...내일 강의에는 조금 늦겠군.”

트리스탄이 중얼거림과 동시에 핏빛 오우거가 그를 향해 몽둥이를 휘둘렀다.

***

'오늘이 마지막이네.'

학년 대전이 있기 전까지 있는 마지막 실습 날.

나는 눈을 감고 숨을 길게 내쉬었다.

—‘죄송해요.죄송해요.죄송해요.태어나서죄송해요.’

며칠 전, 비비안은 정신을 차리자마자 내게 미친 듯이 사과했다.

─‘괜찮다.’

분명 비비안의 마력이 고통스럽기는 했어도 내가 시킨 일 때문에 벌어진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벌 줄 생각은 없었지만...

­‘흐윽...버, 벌 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는..쓰...쓰레기라 죄송해요’

라면서 비비안이 자해를 시작하는 것 보고 기겁해서 벌을 내렸다.

­‘켁헤...유..진님..켁..더...쎄게..해....주세요...

...그래도 웬만하면 몸에 흉터가 남지 않게 조절을 해가면서 벌을 주었지만...

결국, 마지막에 거품을 물 정도로 목을 조르고 나서야 간신히 비비안이 진정했다.

­'끄윽...끄으극...감...사..합...끄으윽..니...닷..!'

그때를 생각하니 또 한숨이 나오려고 한다.

루시아가 나에 대한 애정이 너무 커서 스스로를 낮춘다면 비비안은 자신을 낮춤으로써 내게 버림받지 않으려고 하는 것 같았다.

...사실 여기서 더 삐뚤어지지만 않는다면 비비안 같은 성격이 하렘 엔딩을 보는데 편리한 건 맞다.

그저 곁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 비비안은 감사하다고 생각할 테니까.

하지만 만일 조금이라도 더 엇나가면…?

...조금만 실수해도 자해하는 미친 비비안이 완성이다.

’절대 그 꼴은 못 보지...‘

비비안의 멘탈을 관리를 위해서라도 최대한 빠르게 비앙카를 공략해야 했다.

“...배짱이 좋군.”

반대편에서 내 대련 상대인 로레오스가 입을 열었다.

귀가 얼어붙을 것 같은 날씨인데도 로레오스는 실루엣이 드러날 정도로 얇은 셔츠 하나만을 입고 있었다.

“내 앞에서 한눈을 팔다니.”

로레오스가 힘을 주자 근육이 부풀어 오르며 셔츠가 찢어질 듯 팽팽해진다.

‘...저게 무슨 마법사야.’

로레오스의 육체는 마법사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단련되어 있었다.

웬만한 수준의 기사들도 저렇게 몸이 좋지는 않을 거다.

“...한눈을 판 게 아니라 교수님을 상대할 계획을 짜고 있었습니다.”

헛소리였지만 내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로레오스가 입술을 비틀어 올렸다.

“그래, 어디 계획을 한 번 들어 볼....”

「바람─칼날」「바람─칼날」

씨발.

선빵필승이다.

로레오스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바람의 칼날 두 개를 고속 영창으로 날렸다.

첫 번째 바람 칼날을 평범하게 손끝에서...

두 번째 칼날은 로레오스의 머리 옆에서 소환되었다.

촤악─

갑작스럽게 머리 옆에서 바람의 칼날이 소환됐지만, 로레오스는 허리를 살짝 숙이는 것만으로 당연하다는 듯 피해냈다.

‘...미쳤네.’

분명 완벽한 기습이었는데 마법사의 육체로 이걸 반응하는 게 말이 되나 싶었다.

“...확실히 계획이라 할 만하군... 설마 일주일 사이에 좌표지정을 배워왔을 줄이야.”

기습을 받았음에도 로레오스는 화를 내기는커녕 오히려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쉽지는 않았습니다.”

겸손이 아니라 진짜 쉽지는 않았다.

주말 동안 루시아가 마력 포션을 물 마시듯 마시며 '마력 감응'을 해주지 않았다면 절대로 못 익혔을 것이다.

“마음 같아서는 더 칭찬해주고 싶지만... 마력의 흐름이 너무 잘 느껴진다. 마법이 생성될 때 마력이 잘 느껴진다는 건 그만큼 손실되는 마력이 많다는 거다. 즉, 효율이 많이 떨어지는군.”

“...”

로레오스가 말해주지 않아도 알고 있다.

‘좌표지정’은 사용할 수 있다는 수준까지만 올려놓았을 뿐 실전에서 사용하기에는 효율이 떨어진다.

루시아라는 사기적인 수단까지 사용하더라도 '좌표지정'을 완전히 소화해내기에는 내 재능이 부족했다는 뜻이다.

‘...그렇게 말하니 자신이 없어지네.’

내가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자신이 없었다.

비앙카에게 질 자신이 말이다.

어차피 내가 사용하는 마법의 위력은 ‘조교사’ 특성 때문에 고정이다.

더욱이 비앙카 전은 ‘초단기 결전’으로 끝나기에 마력 소모가 조금 커지는 건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마력 소모가 크게 느껴짐으로써 비앙카가 내 마법에 더욱 잘 반응해줄 테니 나쁠 것이 없었다.

“그래서... 계획은 벌써 끝인가?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자랑스러워서 할 만하지만 조금 아쉽군.”

“그럴 리가요.”

로레오스의 말에 내가 빙긋 웃으며 영창했다.

「바람─칼날」「베어라─바람─칼날」

로레오스의 앞과 뒤에서 거의 동시에 펼쳐지는 마법.

하지만 로레오스가 말했던 것처럼 내 좌표지정 마법에는 마력의 흐름이 커다란 만큼 어느 쪽이 중급 마법인지까지는 구분하기 어려울 것이다.

「불꽃─화살」

쿠웅­!

처음으로 로레오스가 마법을 사용해서 막아냈다.

“...중급 마법까지 배워왔다고? 거기에 마력의 흐름조차 페이크로 사용하고?”

로레오스가 이번에는 진심으로 놀란 표정이었다.

습득 난이도로는 중급 마법보다 하급 마법의 좌표지정이 훨씬 어렵지만 철저하게 실전파인 로레오스는 하급 마법보다는 중급 마법에 관심을 가지는데 당연했다.

“...진심으로 2학년을 이길 생각이군.”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학년 대전에는 반드시 이겨야지 2학년 때, 적어도 2반에는 들어갈 수 있다.

‘마음 같아서는 1반에 들어가면 좋겠지만...’

아무래도 그건 너무 지나친 바램이었다.

‘아카조교사’에서도 2학년 때 1반에 들기 위해서는 모든 조교 루트를 포기하고 그저 단련, 단련, 단련만 반복했어야 하니까.

...물론 이렇게 캐릭터를 키우면 메인이벤트에 참가하지 못해서 바로 베드엔딩이다.

'그래도 방학 중에 2장 메인이벤트 끝내고 거기서 ‘촉수’를 얻은 다음, 칼리오페 가문에서 정치질 좀 잘해서 적당한 아이템 하나만 건져오면….'

계획대로만 되면 2학년의 중간 고사전까지 단숨에 2반 상위권까지는 올라갈 것이다.

“그래... 네 생각이 그렇다면. 나도 약간 진지하게 상대해주마.”

찌지직­

로레오스가 몸에 힘을 주자 입고 있던 셔츠가 근육을 전부 담아내지 못하고 찢겨나간다.

후우우—

상의가 벗겨진 로레오스의 몸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씨발?’

도대체 저게 어딜 봐서 마법사란 말인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로레오스 교수는 마법사가 아니라 기사 쪽 진로를 잡아야 했다.

“그럼, 덤벼보거라 유진.”

로레오스가 대흉근을 꿈틀거리며 내게 말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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