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화 〉 루시아는 웃고 있다 (2)
* * *
“...설마 카르네아의 재학생 중 시험 규칙을 숙지하지 않은 멍청이가 존재하진 않겠지.”
2반의 담당 교수, 트리스탄이 다크서클을 짙게 늘어트린 채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겉모습처럼 까다로운 성격 탓에 학생들이 싫어하는 교수를 꼽으면 항상 상위권에 들지만...
나만은 그가 훗날 위험이 닥쳤을 때 학생들을 지키기 위해 가장 먼저 희생하는 교수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그런 취급에 조금 연민이 들었다.
“그럼 자리 순서대로 강당 위로 올라와 반지를 뽑아라. 모든 학생이 반지를 뽑는 대로 시험장으로 이동하겠다.”
시험은 형평성을 위해 학생들은 자신이 뽑은 반지에 적혀있는 숫자를 출발지점으로 시작한다.
가장 앞자리에 앉아있던 루시아가 강당 위로 걸어 올라간다.
또각, 또각, 또각.
루시아가 모습을 나타내는 순간 약간의 소란조차 사라지고 모두가 숨을 죽인 채 그녀를 바라보았다.
단순히 비현실적인 외모 때문만이 아니다.
우르엘라 가문의 차기 가주 다운 위엄.
평범한 발걸음마저 사람들의 시선을 휘어잡을 만큼 고귀함을 담고 있다.
냉정하면서도 고고한 루시아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나를 주인님이라 부르던 루시아와 정말 같은 사람인지 의심이 갈 정도였다.
“다음. 올라와라.”
반지를 손에 낀 루시아가 내려오자 트리스탄이 다음 학생을 호명했다.
그렇게 빠르게 뽑기가 진행되고 순서는 어느덧 내 차례까지 도착했다.
내가 뽑은 반지에는 74번이 새겨져 있었다.
‘나쁘지 않네.’
60번대가 베스트지만 70번 대도 나쁘지 않다.
이 정도면 여유롭게 잡아도 2시간 안에 ‘나무’에 도착할 수 있을 거다.
반지를 손가락에 가져가자 자동으로 크기가 조정대며 단단히 고정된다.
“반지에는 위치 추적과 생명력 감지가 걸려있다. 시험이 끝나는 24시간 동안은 절대로 빠지지 않으니 빼내서 번호를 교환하려는 헛짓거리하지 마라.”
계단에서 넘어질 뻔한 비비안을 마지막으로 추첨이 끝나자 트리스탄이 안경을 올려 쓰며 말했다.
“...이제 다 뽑은 것 같군. 그럼 숲으로 이동해라.”
중간고사의 규칙은 간단하다.
「숲 곳곳에 숨겨진 마력이 담긴 구슬을 찾아서 돌아올 것.」
이렇게만 보면 마력에 민감한 마법사들에게 너무 유리하지 않나 생각하겠지만.
시험의 설정상 구슬들은 마물들이 훔쳐간 것이다.
그러니 교수들은 설정대로 구슬을 마물의 몸속, 둥지, 혹은 배설물 사이에 숨겨져 놓았다.
즉, 관찰력이 있다면 마력감지와 관계없이 충분히 구슬을 찾을 수 있다는 뜻이다.
“무슨 시험을 하루종일 보고 그러냐.”
“빨리 찾고 나와서 놀아야지.”
“누가 먼저 찾는지 내기나 할까?”
시험장으로 지정된 숲으로 이동하는 동안 학생들이 웅성거리며 떠들어댄다.
이해는 간다.
설마 자기가 구슬을 찾지 못할 거라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 모양이니까.
카르네아 아카데미는 입학했다는 것만으로도 재능은 보장되어있다.
돈과 권력으로 입학한 5반조차 다른 아카데미에 간다면 상위권에 있을 정도로 말이다.
그러니 어찌 보면 자만하는 것도 당연하지만 이들 중 절반 이상은 구슬을 구경조차 하지 못할 것이다.
난이도가 문제가 아니라 애초에 시험이 그렇게 설정되어 있다.
73개.
숲에 뿌려져 있는 구슬의 개수다.
이 시험의 가장 악질인 부분은 구슬을 전부 찾는 걸 가정해도 절반 넘는 학생이 구슬을 가지지 못하는 거다.
...그러니 당연히 시험의 ‘진짜’ 목적은 구슬을 찾는 게 목적은 아니다.
물론 빠르게 구슬을 찾아 돌아오면 높은 점수를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불가능한 목표인 것을 알았을 때 얼마나 빠르게 포기할 수 있는가.
그리고 목표가 자신의 능력 밖의 일인지 알아내는 것조차 시험에 포함되는 거다.
아무리 재능이 있다지만 여기 있는 학생들은 이제 막 아카데미에 입학한 병아리들.
물도 식량도 없이 홀로 숲속을 헤매는 와중에 얼마나 상황 판단을 잘 할 수 있겠는가.
당연히 매년 지쳐 쓰러지는 학생들은 나타난다. 그래도 교수진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저 시험이 끝나는 24시간 뒤에 회수조치를 할 뿐.
그동안 다치면 어떻게 하냐고?
사실 오늘처럼 특별한 사태를 제외하고는 다칠 일도 없다.
....교수진이 풀어놓은 마물도 악질이니까.
[센트피디아]
일단 사람을 보면 달려올 만큼 흉폭하지만 마비 효과가 있는 독니 외에는 공격 수단이 전무하고 그 독니조차 교수진이 전부 제거한 상태에서 풀어놓아 학생들에게 해를 끼칠 위험은 없다….
그러나 문제는 지네를 중형견만큼 크게 키워 놓은 것 같은 징그러운 외모였다.
온실 속에 화초 자라온 학생들은 물론이고 웬만큼 담이 큰 사람이 봐도 징그럽기 짝이 없다.
심지어 센트피디아의 종족 특성은 살아있는 먹이 위에서 몸을 비비대며 영역 표시를 하는 거다.
자, 생각해봐라.
지쳐 쓰러졌다가 눈을 떴는데 중형견만한 지네가 몸 위에 올라타서 꿈틀거리는걸.
...상상만 해도 소름 끼친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트라우마가 생기기 딱 좋은 시험이라는 거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말하지만, 포기는 자유다.]
마법으로 증폭된 트리스탄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동시에 방대한 숲 전체를 감싸고 있던 결계가 풀리고 진입이 가능해졌다.
[그럼, 시작해라.]
그 말을 시작으로 여기저기 움직이는 소리가 들린다.
나도 다시 한번 고개를 들어 유난히 높게 솟아 있는 나무를 보았다.
“가자.”
이제 히든 피스 찾기 시작이다.
***
샤샤샥
센트피디아가 수십 개의 다리를 움직이며 빠르게 다가온다.
「바람─칼날」
화면으로 봤을 때랑은 비교도 안 되게 끔찍한 모습에 인상을 찌푸리며 마법을 쏘아내자, 끼익 소리를 내며 목과 몸이 떨어져 죽어버린다.
끼이익
아니, 죽지는 않았다.
최하급 마물 주제 생명력은 얼마나 질긴지...
잘려나간 부위에서 녹색 피를 줄줄 흘리면서도 계속해서 꿈틀거린다.
‘으윽...’
마음 같아서는 마법을 한 발 더 먹여주고 싶지만, 만약 일이 꼬여 보스를 만날 때를 대비해 정신력도 마나도 아껴둬야 한다.
─퍽
그 대신 수박만 한 돌을 던져 머리를 뭉개자 그때야 정말 죽었는지 조용해진다.
“후우...”
제법 비위가 좋다고 생각했지만, 머리 없는 몸뚱어리가 꿈틀거리는 모습을 보고 있자 속에서 올라올 거 같다.
‘좋은 생각... 좋은 생각...’
메스꺼운 속을 다스리기 위해서 좋은 걸 생각을 해야 한다. 가장 먼저 떠오른 건 루시아의 얼굴이었다.
‘...루시아는 잘하고 있으려나.’
루시아가 센트피디아의 시체를 태울수록 내가 가진 타임 리미트도 늘어난다.
1장 보스인 ‘늑대’는 영악한 놈이다.
초반에는 저항할 수단이 없는 센트피디아만 잡아먹다가 힘이 축적되고 나서야 본격적으로 학생들을 습격한다.
그러니 늑대가 힘을 기르기 전까지 히든 피스를 손에 넣고 교수에게 달려서 늑대의 출현을 알리면 누구도 다치지 않고 끝낼 수 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봤다.
하늘의 대부분 울창한 나뭇잎에 막혀있음에도 작은 틈 사이로 커다란 나무 하나가 보였다.
저 나무를 기준으로 내가 사는 기숙사를 정면에 바라보고 3시 방향으로 대략 20분 정도 걸으면 늑대가 파놓은 땅굴이 나온다.
이것이 수 백회의 플레이 끝에 알아낸, 어떤 번호를 받더라도 굴의 위치를 빠르게 알 수 있게 만든 나만의 방법이었다.
“후우...다시 출발하자.”
그렇게 다시 한 시간 정도 걸어가자, 나무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나마 70번대를 뽑아 시작지점이 나무와의 거리가 가까운 덕에 빠르게 도착했다.
‘행운 덕인가?’
행운은 게임 속에서는 딱히 올릴 방법도 존재하지 않았고 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생각해 별로 중요하게 여긴 스탯은 아니었다.
하지만 오늘 반지 뽑기만 봐도 이런저런 사소한 곳에서 도움을 주는 듯했다.
“조금만 쉴까.”
가뜩이나 낮은 체력에 덥고 습한 숲속 날씨까지 더해지니 땀이 비 오듯이 흐른다.
그래도 서두른 덕에 아직 늑대가 등장하기에는 약간 시간이 남아있다.
등장하고 나서도 늑대가 히든피스가 숨어있는 땅굴 근처를 떠나갈 시간이 필요하니 약간의 휴식 정도는 괜찮을 거다.
그렇게 합리화를 마치고, 나무 밑동에 등을 기대며 체력을 회복하려고 눈을 감았다.
“어머?”
─오싹
등골에 소름이 돋는다.
움직이는 수풀 너머로 절대 들려서는 안 되는 목소리가 들렸다.
‘왜…?’
고작 1장의 보스 따위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위험한 게 이 목소리의 주인이었다.
바스락, 바스락.
잔뜩 긴장한 사이에 수풀을 해치고 누군가 나타났다.
....아니길 바랐건만 어째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화려하게 빛나는 금발과 루시아와 비등할 정도로 아름다운 외모.
그리고 두 시간이나 수풀을 헤맸다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먼지 하나 묻지 않은 교복이었다.
“먼저 오신 분이 계셨네요?”
금발의 소녀가 녹아내릴 듯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리아나 루멘하르크.
루멘하르크 제국의 1황녀라는 최고의 신분을 가지고 태어났지만, 신분과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부드러운 미소와 상냥한 몸가짐을 보여주는 자애로움으로 만인의 존경을 받는 제국의 태양.
'좆됐다.'
...그리고 나를 몇 번이고 데드 엔딩으로 이끈 장본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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