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화 〉2일차
나는 잡다한 생각이 길어지기 전에 컴퓨터 앞에 앉았다.
지금 어느 기사엔 우리가 우리나라에 없단다. 흔적이 잡히지도 않는다는데 어제 제니퍼가 가족이랑 나눈 대화 내용이라며 뜨는 기사도 있었다.
가족이랑 카톡도 했구나 싶어서 들어가보자 그냥 평범한 안부 카톡이었다. 뭐 별 일 없다느니 잘 버티고 있겠다느니 이런 내용이다.
나도 가족에게 카톡을 보내볼까 하다가 그만 뒀다. 어차피 잘 살아있는거 생중계 된다는데 의미 있을까 싶었다.
"으음..."
마리가 눈을 떴다. 그는 뭔 생각인지 벌떡 침대에서 일어났다가 다시 쓰러져 누웠다.
"괜찮나요?"
줄리가 가장 먼저 다가가줬다. 뭔가 큰 형님 노릇을 하려는데 이미 늦어 보였다. 오늘 게임할 때 그는 너무 성급했다. 하지만 마리는 줄리와 유일하게 팀이라고 생각했으니 그가 가는게 그나마 나은 선택이긴 했다.
"아. 줄리. 괜찮아요."
아 줄리? 애가 아직 잠에서 덜 깬 모양이다. 13살은 더 많은데. 으이? 이런 시덥잖은 생각을 하고 있자 마리는 다시 일어나서 거울 앞으로 갔다.
160도 안되는 키와 몸매가 보인다. 팔도 들고 다리도 벌리면서 살펴보는데 이미 여자의 몸이었다. 더벅머리에 몸매만 보면 여학생같아서 기분이 너무 나빴다. 범죄 느낌 물씬 풍겼다. 물론 학생이 맞긴 맞다. 겨우 20인데.
구석구석 살피던 그는 바지도 허리부분을 앞으로 살짝 벌려 보며 확인했다. 역시나 마리도 여성용 붉은색 스포츠 바지였다.
그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새끼손가락 만해진 거기에 충격을 받았나보다. 줄리가 오히려 당황해서 그의 어깨를 감쌌다. 나는 분위기와 안맞게 계속 나쁜 생각이 들어서 웃겼다. 우는 여학생을 감싸는 30대 아저씨 avi.
"저 아직 경험도 없단 말이예요. 흑흑."
우는 포인트가 저기였다. 자지를 써보지도 못하고 작아진게 눈물 포인트라니. 전세계인 앞에서 자지실종 분수쑈를 벌인건 기억 못하나보다. 계속 비관적인 생각을 하는 나의 뺨을 찹찹 때렸다.
제니퍼는 위로를 해줘야 하나 눈치를 보고 있었다. 근데 왜 내 눈치를 보고 있는지 참. 마음이 시킨다면 하는게 맞다. 물론 마리의 복장이 뒤집어질 가능성이 높지만 추천은 한다. 앞으로 한달은 지내야 하는데.
나는 나 논리적으로 생각하기위해 노력한다지만 내 사상을 남에게 강요하진 않는다. 남들도 나처럼 사고하기를 바라지만 여태 살면서 그런 경우는 너무 적어서 포기했다.
오히려 엘리스가 일어나더니 마리에게 갔다. 그리고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힘내라."
울던 마리는 인상을 팍 쓰고 엘리스를 쳐다 봤다. 눈을 찌푸리며 자세히 보더니 놀란 듯 눈을 팍 떴다. 그리고 잠시 후 얼굴이 벌개졌다가 양 손으로 자기 얼굴을 벅벅 문지르고 엘리스를 다시 쳐다보더니 다시 고개를 숙였다. 설마 엘리스한테 반한건 아니겠지? 아무리 그래도. 설마.
엘리스 또한 표정이 굳었다. 제발 내성이 없어서 그런 거라고 말해줘. 저 남자다운 말투와 목소리를 듣고 얼굴을 붉혀? 왜?
다시 고개를 든 마리의 표정은 누가봐도 부끄러워하는 표정이었다!
큰일이다. 마리는 가능충이었다. 얼굴이랑 몸매가 여성스러우면 원래 남자였건 남자 목소리를 내건 반응하는 놈이었다. 어제 엘리스의 변화를 보고 발기한건 이유가 있었다. 역시 5명이 모이면 한 명은 큰 일 치루는 놈이 있다더니. 사실이었다.
마리는 우물쭈물하다가 조그맣게 고맙습니다 하고는 자기 침대에 가 누웠다. 엘리스는 소름이 돋은 표정으로 내 옆에 왔다. 왜 내 옆에 오냐고.
"쟤 표정 봤어?"
다섯명 뿐인데 쓸데없는 분란 조장은 큰일이다.
"아마 동정이라 여자 얼굴 처음 가까이서 본 탓이겠지. 너가 가서 거울좀 봐봐."
"아! 나 개조사항 뭐였어?"
그걸 이제야 묻는 엘리스도 한심했다. 지금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데. 본인이 먼저 일어나서 물어볼 생각을 해야지. 똑똑한 편은 아니다.
"여성형 얼굴 개조예요. 7번째."
제니퍼가 대답해줬다. 아깐 살짝 쭈뼜대긴 했어도 확실히 마리보단 여자 경험은 있는 모양이다. 물론 성경험은 모르지만. 제니퍼는 20세와 22세의 차이를 보여줬다. 사실 거기서 거기지만.
엘리스가 아무리 여자처럼 보여도 확실히 남자같은 분위기가 강했다. 그가 이성으로 보인다고 전혀 생각을 못했는데 마리는 가능했나보다.
"엑! 진짜!"
그는 서둘러 거울로 가더니 자기 얼굴을 살펴봤다. 나였으면 일어나서 거울부터 살폈다. 포기한건지 너무 놨다는 느낌이 있었다. 키 잴 시간에 거울이나 좀 보지 참.
나는 또 계속 불평 불만이 많아졌다. 내 뺨을 또 챱 쳤다. 정신을 차려야 한다. 엘리스는 자신의 얼굴을 꼼꼼히 살펴봤다.
지금 얼굴에도 금발로 염색한 포마드가 잘 어울렸다. 역시 숏컷도 예쁜 여성이나 하는 것이다. 잘생긴 얼굴에 약간 변화를 주자 바로 예쁘게 변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할지.
주변을 둘러보자 나머진 얼굴 상태가 처참했다. 그러자 오히려 궁금해 지기도 했다. 어떻게 변할까.
침대에서 상체만 일으킨 마리가 보였다. 이제와서 자괴감이 든건지 마리의 표정은 썩어있었다. 진지한 고민을 펼치는 중인게 보였다. 나 가능충이었나? 이런 생각을 하진 않겠지만.
마리는 화장실을 향해 갔다. 이 고민을 그렇게 열심히 하진 않았겠지.
줄리에게 속삭이듯 부탁하자 그가 화장실 앞에 서줬다. 참 착한 아저씨다. 저사람도.
엉거주춤하게 소변기에 선 그는 작은 자지를 붙잡고 소변을 눴다. 왜 다들 양변기를 두고 저리 고생하는지 모르겠다. 마지막 자존심 같다.
멀리서 보면 진짜 여자가 서서 소변누는 것 처럼 보였다. 만약 이런 것에 흥미있는 사람이라면 녹화해서 돌려볼 수 있다는 점이 생각나자 소름이 돋았다.
주변에 소변이 많이 튀었는지 샤워기로 물을 막 뿌리고는 나왔다. 일을 다 보고 잘 안털렸는지 바지 앞에 살짝 얼룩진게 보였다. 하반신만 보면 더없이 음란해 보였다. 물론 난 아니다.
소변보고 휴지로 닦는 남성은 많지 않을 것이지만 우리는 익숙해질 필요가 있었다. 팬티의 소중함을 알았다.
갈 길이 멀었다. 나는 잠을 청하기로 했다. 내일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기 때문에 더 자놔야 했다.
제니퍼가 마리에게 가는걸 보고 나는 수면 안대를 썼다. 둘이 알아서 잘 말로 해결하길 바라는 마음 가득이다. 그래도 다들 본성은 착한 사람들인것 같다.
3일차
또 다시 기분나쁜 기상 소리에 눈이 번쩍 떠졌다. 이불은 갤 필요가 없었기에 내버려 뒀다. 마리는 아직도 얼굴을 이불로 덮고 있었는데 튀어나온 하반신은 영락없는 여성이었다.
참 신기했다. 이런 기술이 생겼다는 것도 처음 알았을 뿐더러 내가 그 대상이 되었다는게 가장 신기했다.
3일만에 다들 제 집처럼 편하게 구는 모습을 보면 이것도 신기했다. 전국에 송출중인걸 자각하지 못하는게 분명했다.
[여러분 오늘도 안녕하세요! 벌써 3일차 아침이 밝았습니다! 한 시간 뒤에 메인 게임장으로 갈 예정이니 준비해 주세요!]
벌써 다들 들은체도 안했다. 나는 양치하고 몸을 풀었다. 눈이 아직 감겨있는 제니퍼가 따라 와서 이를 닦았다. 나머지는 여기서 칫솔을 들어보긴 했나 싶다. 먹은게 없어도 자고 일어났으면 이는 닦아야지.
제니퍼가 나오고 나는 머리를 감았다. 맘같아선 샤워를 하고 싶었는데 다 보여지는 중이라 참았다.
머리를 말리고 스트레칭을 하는데 몸이 좀 더 가벼웠다. 밥을 한 끼도 안먹고 지내다 보니 배가 저절로 들어간 모양이다. 조금 더 접히는 살이 줄었다.
통통도 아니고 이젠 평범이었다. 이상하게 살이 사라지자 아쉬웠다. 있을 땐 빼고 싶었는데.
내가 준비를 다 하고 자리에 앉자 시간은 20분 정도 남아있었다. 그제야 줄리가 비척비척 일어나더니 이를 닦으러 갔다. 그나마 사람이었다.
솔직히 계속 자고 있다가 메인 게임장에 가도 어차피 우리 다섯이 다인데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다.
이젠 무슨 게임이 나오든 열심히 플레이 해주겠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눈을 감고 있다보니 시간이 다 되어 하얀 방으로 옮겨졌다. 연녹색 보다가 하얀방 보면 눈이 아프긴 했다. 이번엔 주변을 둘러보는데 나뿐이었다.
"음?"
그리고 MC 몬의 목소리가 들렸다.
[세 번째 게임은 바로 숨겨진 코인찾기 입니다!]
살면서 처음 듣는 게임이었다. 지뢰찾기도 아니고 코인찾기? 규칙이 궁금해졌다.
[이 게임 또한 규칙은 간단합니다. 말 그대로 자신의 코인을 숨기고 남의 코인을 찾으면 됩니다. 정말 간단하죠?]
이게 뭔 소리인가 하고 눈쌀을 찌푸리자 웃음소리가 울려퍼졌다.
[하하하! 농담입니다! 이 게임은 세단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1단계! 1부터 9라고 쓰인 박스가 있습니다. 이중에 가짜코인 두 개, 진짜코인 한 개를 드립니다. 그리고 맘에 드는 숫자에 세개의 코인을 각각 숨기면 됩니다. 뭐. 같이 담던 따로 담던 참가자 마음입니다.]
시작은 간단했다. 그럼 가위바위보처럼 결국 운빨 게임인가? 사실 실력은 벌써 체급 차이도 나고 불공정하기 때문에 운 게임이 제일 좋긴 했다. 어디에 적고 싶었는데 종이가 없어서 답답했다.
[2단계! 서로 만나 이야기를 나눈 후 돌아와 가짜 코인이 있는 박스를 터트릴지 아니면 가짜 코인을 옮길지 정할 수 있습니다. 최대로는 숫자 다섯개가 터질 수 있는 것이죠. 물론 한가지 행동만 가능하고 움직이지 않아도 됩니다. 진짜 코인은 옮길 수 없고 처음 정한 숫자 그대로 유지됩니다.]
결론은 운이었다. 내가 재수 없으면 다른 사람이 터뜨린 코인에 죽는다는거 아닌가.
[3단계! 하나의 가짜 코인에 당하면 사망이지만 두 개의 가짜 코인이 터지면 오히려 상자가 살아납니다! 하지만 3개 4개가 연줄연줄 터지면 점수가 마이너스에다 사망! 한 라운드 생존 시에도 승점 1점을 챙깁니다. 가만히 살아만 있어도 3점을 획득!
이렇게 3라운드가 끝나면 점수 계산입니다. 움직일 가짜 코인이 없어도 3라운드까지 진짜 코인이 살아있다면 점수! 1단계라도 진짜 코인이 사망한다면 사망!]
가짜 코인이 하나는 독이지만 두개는 득점이다. 하지만 세개 이상부터는 개손해다. 딱 2개 맞추기가 쉽나 이사람아. 그런데 1부터 9중에 모두가 하나씩 터뜨린다고 해도 내가 걸릴 확률이 얼마나 되겠는가?
[가짜 코인이 같은 공간에 있다고 같이 터지진 않으니 주의해 주세요! 터지는 방법은 1번부터 9번까지 순서대로 터지니까 같이 터져도 모두 동률은 아니라는거! 명심해 주세요! 다 같은 점수면 가장 낮은 숫자를 고른 사람이 더 높은 점수!
정리하자면 가짜코인 두개 폭발은 승점 1점씩 추가! 세 개 이상은 마이너스 점수에 사망! 코인을 살리면 승점! 누군가는 죽고 누군가는 승점을 챙기는 코인 게임! 먼저 숨길 시간 30분 드립니다.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