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조용히 출발 준비를 했다.
아직 어두웠다.
시야만 걷히면 바로 이동을 시작하기로 했다.
날이 푸르스름하게 밝아지며 어느 정도 시야가 걷히자 전술 팀장의 인도에 따라 이동을 시작했다.
이번에는 나를 선두로 F급 균열을 파죽지세로 돌파했다.
부산물은 균열 코어만 챙겼다.
당연히 F급 몬스터를 일일이 쪼개며 마석 캘 시간은 없었다.
그렇게 F급 균열 3개쯤 부수며 전진했을 때.
우린 다시 모여 회의를 할 수밖에 없었다.
“죄송합니다.”
전술 팀장 전규혁이 침통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뭐....그가 사과할 일은 아니었다.
남쪽이 그래도 허술해 보여 선택한 길이었지만.
이동하며 탐지 범위가 넓어지자 고등급 균열에 둘러싸인 건 매한가지였다.
예측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씨발!”
헌터들 사이에서 욕이 튀어나왔다.
이쯤 되면 헌터들도 동요할 수밖에 없었다.
좆 될지도 모른다는 게 슬슬 체감되니 당연했다.
(아저씨. 우리 괜찮은 거야?)
옆에 있던 재은이가 조금 불안한 얼굴로 조용히 물어왔다.
안심하라는 듯 재은의 엉덩이를 가볍게 두들겨주니, 그녀는 조금은 안심한 표정으로 내 팔을 끌어안았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결국 길은 두 가지다.
구조대가 올 때까지 버티냐 아니면 돌파냐.
“버티고 싶은 사람?”
내가 물었다.
“..........”
침묵이 흘렀다.
식량은 일주일도 안 돼 떨어질 거다.
저들도 안다.
버틴다고 F급 몬스터만 들이닥칠 게 아니다.
시간이 지난다면 차원 균열에서 불어난 D급, C급 몬스터도 들이닥칠 거다.
물론 내가 힘을 쓴다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진다.
보급도 좀비 세계에 갔다 오면 된다.
하지만 나는 이 세상에서 각성자라면 가지고 있는 육체 강화나 마력을 다루는 능력은 몰라도.
인벤토리나 로그인 스킬은 가능하면 밝힐 생각이 없었다.
만약에 내가 힘을 써 버틴다고 해도 희생이 없을 수는 없었다.
내 몸은 하나다.
몸이 여러 개가 아닌 이상 사방에서 몬스터가 몰려든다면 모든 곳을 커버할 수는 없었다.
이런저런 이유는 많았지만.
애초에 나는 언제 올지도 모르는 구조대를.
시간을 질질 끌며 하염없이 기다리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결론은 고등급 균열을 뚫어야 했다.
“최단 거리로 돌파한다.”
내 말에 헌터들 사이에 긴장이 감돈다.
그들도 말은 않았지만 예상할 거다.
꽤 많은 인간이 죽어 나갈 거란걸.
각성을 못 한 서포터들은 대부분이 죽을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그건 내가 아니라 다른 각성자였을 때의 이야기다.
“전술 팀장. 최단 거리 루트는?”
좀 내려오긴 했다.
그렇게 많은 거리를 이동한 것도 아니었다.
날이 어두워질 때까지 시간의 여유는 있었다.
“균열과 균열 사이를 돌파하는 건 어떻겠습니까?”
전술 팀장이 조심스럽게 의견을 타진했다.
나쁘지 않은 생각이었다.
잘 풀리면 좋겠지만.
균열 사이로 지나가다 꼬이면.
두세 개의 균열에서 몬스터가 몰릴 수도 있는 샌드위치 신세가 될 수 있었다.
더 좆될 수가 있었다.
그렇게 난장판이 되면 나도 이들을 어떻게 해주지 못한다.
전술 팀장도 그걸 모르는 건 아닐 거다.
아무리 봐도 이 전력은 D등급 균열 하나도 처리하기 간당간당한 전력이다.
그런데 그런 고등급 차원 균열들이 깔려있다.
그러니 그런 모험이라도 하고 싶은 마음일 거다.
전술 팀장으로서는 현재 상황에서 최선의 선택이기도 했다.
“아니.”
“예? 그, 그럼….”
“정면으로 차원 균열을 깨면서 돌파한다.”
“저, 정면 말입니까?”
전술 팀장이 아연한 표정을 지었다.
“그, 그건 안 됩니다. 전멸할 겁니다.”
이도훈이 끼어들었다.
“맞습니다. 정면 돌파는 무모합니다.”
낯익은 헌터 놈 하나도 이도훈의 말에 동조하며 끼어들었다.
왜 낯이 익지?
[임철우라는 인간입니다.]
수니가 누군지 알려줬다.
‘임철우?’
이름을 들어도 누군지 모르겠다.
얼굴을 자세히 보고 기억을 더듬는다.
‘아…. 식당에서 귀찮게 하던 놈이군.’
그들의 반대를 이해 못하는 건 아니다.
“한 번도 전투 없이 이동할 수 있을 거라는 낙관적인 생각을 하는 건 아니겠지?”
균열만 피한다고 몬스터를 만나지 않는 게 아니었다.
“그, 그래도.”
가느다란 희망에라도 기대고 싶은 모양이었다.
“내가 선두에 선다. 앞에서 오는 공격은 막아줄 수가 있지만 샌드위치 당하면 나도 감당할 수 없어.”
아무리 생각해도 균열 사이로 갔을 때 좋은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다.
“난 그렇게 결정했다. 반대하려면 따로 가든가 남든가 해. 따로 움직일 사람?”
다소 강압적이긴 했지만.
뭔가 획기적인 계획이 나오지 않는 이상.
나는 정면 돌파라는 선택을 바꿀 생각이 없었다.
“..........”
헌터들은 만족하지 못하는 표정이었지만.
딱히 대단한 대안도 없으니 결국 따를 수밖에 없다는 얼굴이다.
쓸 일 없을 줄 알았는데 이럴 땐 대장이라는 감투가 좋았다.
작전회의를 끝내니 옆에 있던 재은이 내 눈치를 보며 물었다.
“아저씨 우리 진짜 망한 거 아니야?”
들은 것도 있고 분위기가 씹창났으니 이해는 했다.
“음....너랑 나는 아니야.”
“진짜?”
“아무리 최악이라도 너 하나는 지킬 수 있지.”
“아저씨. 너무 로맨틱해.”
재은이 내 팔을 끌어안으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진아까지도 문제없을 거 같았다.
진짜 최악이라면 독하게 마음먹고 로그인 스킬로 좀비 세계에 갔다 오면 된다.
뭐….
A급 차원 균열이라도 터지지 않는 이상 그럴 일은 없을 거다.
이제부터는 상당히 빠르게 움직일 거다.
다들 적당히 체력을 보충하게 했다.
당연히 분위기는 쥐 죽은 듯 조용했다.
한동안 휴식을 취하고 사냥팀이 모였다.
얼굴들은 역시나 상당히 굳어있었다.
그들을 바라보니 서포터들이 잔뜩 짊어진 짐들이 보였다.
반면에 각성자 놈들은 몸이 가벼워 보였다.
아마도 어제 잡은 C급 몬스터 부산물인 거 같았다.
팀장에게 물어봤는데 F급은 몰라도 블루 드레이크 부산물은 포기할 수 없단다.
이런 상황에서 프로페셔널 하다고 해야 할지.
버리는 게 베스트이긴 했지만.
지들 목숨이다.
별로 터치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곤 해도….
각성자들은 육체 능력이 좋다.
마력 발현계 각성자들이 육체 능력이 약하다고 해도.
강화계에 비해 약한 거지
일반인보다는 좋았다.
그러니 강화계는 말할 것도 없었다.
서포터들보다 최소 두 배는 들어도 문제가 없을 거다.
“야. 최대한 나눠 들어.”
각성자 놈들에게 말했다.
“저희보고 짐꾼을 하라는 말입니까?”
또 이도훈 저놈이었다.
하지만 각성자들도 내가 짐을 들라는 말에 은근히 불만의 눈빛을 내비치고 있었다.
“짐꾼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내가 보기엔 너희들이나 서포터들이나 둘 다 짐이야.”
버리면 다 버리고 가지 굳이 각성자 놈들을 챙겨줄 이유는 없었다.
“마, 말이 너무 심한 거 아닙니까.”
각성자들이 이도훈의 말에 미약하게 동조했다.
현실을 일깨워 줄 필요가 있었다.
“그럼 나도 너희들과 함께 있기 싫은데 어쩌지? 내 여자들만 데리고 움직이면 문제없이 탈출할 수 있을 거 같은데. 그러길 바라는 건가?”
냉정하게 강화계 C급 하나와 D급 2명이 조용히 움직인다면 탈출하는 건 일도 아니었다.
내가 사냥팀을 버리고 탈출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자 각성자 놈들이 창백하게 질렸다.
“운호 님…. 저는 당신의 여자가 아닙니다.”
“크흠.”
진아에게는 지적당했다.
그녀도 은근슬쩍 내 여자의 범위에 포함했는데 역시나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하지만 짐을 나눠 들어야 한다는 말에는 동의 합니다.”
“그, 그건.”
진아까지 내 말에 동조하자 각성자 녀석들은 동요했다.
당연히 이제 구멍이 난 멤버 대신 용병으로 온 나는 이들에게 친분도 없고 믿음도 없었다.
어쨌든 내가 인도적인 차원에서 남아있다는 걸 상기시켜줬다.
진아가 우리와 함께 가지 않더라도.
나와 재은이가 사라진다면 전력의 상당한 부분이 날아간다.
내가 협박하니 결국 각성자들도 내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서포터들도 원래 하던 일이니.
일반적인 상황이었다면 문제는 없었겠지만, 평소와 다른 상황이다.
그래봐야 일반인이다.
이제부터 얼마나 달릴지 모른다.
체력의 한계에 부딪칠 거다.
이동하면서 쓸데없는 신파극은 보고 싶지 않았다.
최대한 빨리 이동하려면 부산물을 포기하거나 이렇게 나눠 드는 게 최선이었다.
그 드레이크 놈 부산물이 뭐라고 저렇게 들고 가려고 하는지 모르겠지만.
내 생각보다 훨씬 중요한 것일 수도 있고.
급하면 알아서 버리겠지 싶었다.
“감사합니다.”
전술 팀장이 내게 고개를 숙였다.
“뭐가.”
“서포터들을 신경을 써 주셔서….”
전술 팀장은 자기 마음대로 좋게 생각한 모양이었다.
“전술 팀장. 안내 부탁하지.”
“알겠습니다….”
우리는 빠르게 이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안 가 전술 팀장의 경고가 이어졌다.
“D등급 차원 균열입니다.”
차원 균열 주위에는.
중형차 정도 크기.
번들거리는 검붉은 피부.
네발짐승 비스름하게 생긴 몬스터 10여 마리가 차원 균열 주위를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저놈들 한 마리가.
D급 각성자 하나가 겨우 감당할 만한 몬스터였다.
-꿀꺽.
마른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모두 긴장으로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지, 지금이라도….)
누군가의 약한 소리도 들렸다.
“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