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침대에 누워 유나의 매끄러운 등을 천천히 쓰다듬으며 물었다.
“아버지가 빚을 졌다고?”
그녀의 부드러운 몸은 만지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네….”
사채업자가 이 일을 주선해 줬다고 한다.
그런데 한 번만 이 일을 해주면 아버지의 빚을 청산해준다고 했단다.
빚이 얼마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걸 네가 왜 갚으려는데?”
“지금까지 받아만 왔는데…. 그래도 이럴 때라도 도움이 돼야….”
“흠….”
몸매만큼이나 착한 마음씨였다.
“그거 구라 일 거 같은데….”
“네?”
유나가 순진한 눈을 똥그랗게 떴다.
“그놈이 네 아버지 빚 청산해준다는 거.”
내 말이 믿기 힘든지 유나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아니에요…. 그럴 리가...그럴리가 없는데….”
믿기는 싫겠지만 유나가 보기에 생각보다 믿을만한 놈처럼 보였나? 그 사채업자 놈.
나야 직접 보질 않았으니 잘 모르겠지만.
애가 순진해 보이니 꿰어내기도 쉽지 않았을까?
솔직히 대부업체에 그런 양심적인 놈이 있으리라 생각되지는 않는데.
양심이 있다면 그런 일을 하지도 않을 테고.
“한번 확인해 보던가.”
.
.
.
유나는 운호의 말에 불안감 느껴 최양규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 유나 씨. 일은 잘 끝내셨습니까?]
유나는 익숙하지만 꺼림직한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리자 자기도 모르게 몸이 굳었다.
“아. 네….”
[아이고. 수고하셨습니다.]
수화기 너머 최양규는 대견하다는 듯 말했다.
“그럼 아버지 빚은….”
[아! 그거 말입니다…. 죄송하게 됐습니다.]
유나는 최양규의 말에 불안감이 현실이 되는 걸 느끼며 가슴이 답답해졌다.
“네?”
[아무래도…. 한두 번 정도는 더 하셔야 청산이 될듯합니다.]
최양규는 정말 미안하다는 듯이 말했다.
“네? 저. 전에 분명히 한 번이라고….”
[아이고 그게 말입니다. 이쪽에도 시세라는 게 있어서 말이죠. 요즘 불경기라 그런지 경쟁자가 많아 유나 님 몸값을 생각보다 많이 받지 못했습니다.]
“그. 그런….”
유나의 목소리엔 억울함이 가득했다.
[경험이 있으시니, 다음은 더 편하게 하실 수 있을 겁니다. 그래도 뭐 한두 번만! 더 하시면 깔끔하게 청산되실 겁니다.]
한…. 두 번이라니 그것 또 어떻게 믿는단 말인가.
“.......”
운호의 말이 맞았다.
그는 처음부터 이일을 자신에게 한번만이 아니라 자신을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
[하하. 다음 일이 있을 때 연락드리죠. 제가 최선을 다해 이번에는 유나 양의 가치를 최대한 뽑아내겠습니다. 기대하십쇼.]
기대는 무슨 기대란 말인가.
그런 기대는 바라지도 않았다.
유나의 눈빛은 허탈함이 가득했다.
.
.
.
“왜 그렇게 시무룩해.”
침대 위에 기대고 있는 내게 시무룩하게 다가오는 유나였다.
그 처량한 모습은 남자의 보호본능을 일으키게 했다.
확실히 선천적인 남자를 홀리는 힘이 있는 아이였다.
그녀의 팔을 잡아 끌어당겨 안았다.
그 풍만한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으음…. 좋군.”
“아…. 아저씨.”
유나는 내게 적응이 됐는지 시무룩한 얼굴을 붉히면서도 거부하진 않았다.
“그놈들은 어차피 처음부터 널 놓아줄 생각이 없었을 거다.”
나라도 놓아주기 싫었겠지만.
“그…. 그런.”
유나는 울 거 같은 얼굴이었다.
“그 문제는 내가 해결해 주지.”
“네? 하지만 어떻게….“
“나 각성자야.”
“가. 각성자요?”
유나는 내가 각성자라는 사실에 놀란 모양이다.
놀랄 만은 했다.
정보 매체에는 많이 나오긴 하지만 게이트 쪽에서 생활하지 않으면 보기가 힘든 게 각성자였다.
그리고 평소에 다닐 때 마빡에 각성자라고 써 붙이고 다니는 것도 아니고 각성자를 보더라도 모르고 지나치는 경우가 많을 거다.
각성자는 일반인에게 선망의 대상이다.
물론 여자에게도 인기가 많다.
그 인기에 힘입어 유나도 내게 반해줬으면 좋겠지만 이 아이는 내가 각성자란 걸로 반해줄 아이는 아닌 거 같고….
“그놈들한테서 네 아빠 계약서를 가져오지.”
“계. 계약서요?”
“물론 그냥 준다는 소리는 아냐.”
“그런데…. 왜….”
유나는 내 갑작스러운 호의에 여전히 의문이 섞인 표정이었다.
“왜긴 왜야. 니가 맘에 드니까 그렇지. 넌 그만한 가치가 있어.”
솔직히 말하면 다른 놈들에게 유나를 안기게 하긴 싫었다.
“예?”
그녀의 탐스러운 엉덩이를 움켜쥐며 입술을 포갰다.
“아응…. 음....츕.”
내일이면 보내야 하는데 시간이 아까웠다.
.
.
.
“여긴가?”
유나와 한 번 더 한바탕하고 일을 처리하기 위해 차를 타고 달려왔다.
[네. 주인님.]
4층짜리 그렇게 큰 건물은 아니었다.
<양규 투자회사>
<하늘 출장 마사지>
두 개의 커다란 간판이 보였다.
그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시꺼먼 양복을 입은 험상궂은 남자가 내 앞을 슬쩍 막아서며 물어본다.
“사장.”
“예?”
“못 알아들었어? 사장 보러왔다고.”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읽었는지 내 눈치를 보며 눈알을 굴린다.
-텁.
남자의 머리를 움켜쥐었다.
“가…. 각성자!”
내 악력을 느낀 듯 남자가 경악했다.
-씨익.
“그래…. 각성자 님이다. 사장 어딨어.”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기기긱.
너무 세게 쥐면 머리가 터질 거다.
“아아악!!! 머. 머리가!!”
“그래. 머리 깨지고 싶지 않으면 말해.”
남자는 고통과 공포에 벌벌 떨며 말했다.
“제. 제발! 사. 사 층입니다!”
.
.
.
“사장님!!!”
-덜컹!!
부하직원 하나가 사무실 문을 급하게 열며 들어왔다.
최양규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뭐야? 소란스럽게.”
“쳐들어왔습니다.”
부하직원의 말에 최양규는 덕구를 시켜 애들 교육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뭐가 쳐들어와. 이 새끼야. 주어가 없잖아. 애들은 뭐하고.”
“아. 아무래도 각성자 같습니다.”
부하직원은 겁에 질린 듯했다.
“각성자?”
각성자가 도대체 왜 쳐들어온단 말인가.
뭐 먹을 게 있다고.
뭔가 각성자하고 부딪힐 만할 일을 했는가 하고 기억을 더듬어 봤지만 집히는 건 없었다.
애초에 노는 물이 달랐다.
하지만 자기도 F급 강화계 각성자였다.
5년째 제자리였지만.
이런 곳에 올 정도면 등급이 높진 않을 거다.
만만히 보일 순 없었다.
이내 밖이 소란스러워졌다.
-쾅!
문이 박살이 나며 거구의 사내가 천천히 걸어 들어왔다.
날카로운 눈매에 선이 굵은 얼굴을 가지고 있는 사내였다.
평범한 운동복 위로도 느껴지는 잘 발달한 육체가 인상적이었다.
최양규는 본능적으로 알았다.
이건 같은 등급이라도 이기지 못한다.
오랜 밑바닥 생활의 생존본능은 반사적으로 나왔다.
“저…. 저기 선생님 무슨 오해가…. 있으신 거 같은데...무슨 일로….”
“유나.”
최양규는 순간 무슨 소린가 했다.
“네?”
“유나.”
최양규는 머리를 필사적으로 굴렸다.
여자 이름이다.
‘콜걸 애들 중에 누굴 말하는 건가? 유나? 유나? 아…. 이번에 경매로 짭짤하게 챙긴….’
최양규가 최근에 영입한 눈여겨보고 있는 아이였다.
“아! 유나 양 말입니까.”
“됐고 나한테 넘겨.”
사내의 눈치를 보며 최양규는 소심하게 간을 봤다.
“예? 저희에게도 사정이라는 것이….”
눈을 굴려 주위를 살펴보자 덕구를 주축으로 부하직원들이 긴장한 기색으로 포진해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자그마한 용기가 솟아난다.
‘나도 각성자야. 다 함께 비벼보면 괜찮지 않을까?’
그 생각을 알아채기라도 한 듯 사내가 손을 들었다.
어느샌가 사내의 손에 터무니없이 거대한 망치가 들려있었다.
그리고 그걸 내리쳤다.
-쾅!!!
-우르르.
어마어마한 굉음과 함께 건물이 흔들린 거 같았다.
그 거대한 망치는 바닥에 반쯤 박혀있었다.
최양규는 머리가 새하얗게 변했다.
사내가 더 할 말 있냐는 듯 최양규를 내려봤다.
주변의 시꺼먼 부하들이 하얗게 질려있었다.
“넘겨.”
사내는 표정 없는 무심한 눈동자로 말했다.
‘시발! 좆됐다.’
저건 최양규 자신이 비벼볼 수 있는 각성자가 아니었다.
“아이고 선생님! 다 당연히 넘겨드려야죠!”
최양규의 허리가 90도로 꺾였다.
“이제야 말이 통하겠군.”
사내는 자기 자리인 듯 상석에 편하게 앉았다.
“그 아이와 관련 있는 계약서 나한테 넘겨.”
“예? 아. 그…. 그건. 다. 당연히 드려야죠.”
최양규는 그에게 얼마나 뜯길지 걱정이 됐다.
사내가 서늘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 유나라는 아이가 마…. 아니 딱해서 말이야.”
‘딱하긴 지랄. 딱 봐도 지가 맘에 들어서 가지려고 하는 거면서.’
누가 봐도 측은지심과는 거리가 먼 얼굴이었다.
“눈빛이 불순하긴 한데 그건 그냥 넘어가 주지.”
사내의 그 말에 최양규는 조금 찔끔했다.
‘시발 궁예도 아니고.’
그년의 미모와 몸매가 심상치 않다는 건 알았지만 이런 각성자까지 홀릴 줄은 몰랐다.
“공짜로 달란 소리 안 해. 그러니까 넘겨.”
.
.
.
최양규는 사무실 안에서 구멍이 뚫린 바닥을 보며 허탈한 눈빛으로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형님….”
덕구가 시무룩해 하며 최양규를 불렀다.
“됐다 잊자.“
“네?”
“뭐가 네긴 네야. 그럼 잊어야지 어떻게 할 건데?”
최양규는 한심하다는 듯 덕구를 쳐다보며 물었다.
“그. 그건.”
“딱 보면 몰라? 우리 같은 좁밥들이 건들 수 있는 각성자가 아니잖아.”
“그렇죠….”
“그렇게 큰 손해를 본 것도 아니고.”
‘무슨 능력이었지? 자연계? 특이능력? 덩치를 보면 강화계 같은데’
망치 같은 걸 소환하는 각성자는 특이해서 기억에 남을 만 한데 고위 각성자 중에 저런 사람이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소위…. 진짜 초인이라는 최소 C등급 이상인 거는 같았는데. ‘
자신의 선택을 되돌아봤다.
다시 생각해도 이보다 더 나은 선택은 없었다.
전부 다 강탈당해도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진짜 재수가 없었으면 몰살당할 수도 있었다.
최양규는 어두운 세계에 꽤 오랫동안 몸담아왔다.
딱 봐도 살인을 꺼리는 인간이 아니었다.
충분히 그럴 수도 있는 놈으로 보였다.
그런데 처음 행동과는 다르게 나름 깔끔하게 돈을 주고 계약서를 가지고 갔다.
사무실의 부서진 바닥을 제외하면 그렇게 큰 피해는 없었다.
생긴 것과는 다르게 신사적?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