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화 〉 레이즈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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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두 여성에게 인적없는 골목길로 끌려가 몇번 쥐어짜이고 나니 내게서 기운을 뺏어가 쌩쌩해진 그녀들이 내 손을 잡아 이끌며 여기저기를 안내하기 시작했다.
“주인님, 여기가 그 저번에 주인님께서 칭찬하셨던 과자를 만든 곳입니다. 저번에 먹어봤을 땐 역시 갓 구운 게 더 맛있었습니다.”
그러면 이제 그 빵집에 들어가 이것저것 고르고 군것질을 하는거고
“아, 여긴 내가 장비를 맡기는 곳이야! 실력은 뭐... 그냥 그런거 같은데 진짜 딱 적절하게 가격을 받더라고 그리고 절적인 기준에서 그냥 그렇다는 거지 이 부근에선 여기가 제일 잘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러면 이 대장간에 들어가서 장비를 구경하고 하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이제 그녀들에게도 경지에 맞는 무장을 시켜줘야 하는데... 만화에서는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검사에게 가장 먼저 하는 것이 수도에 있는 대장간으로 가 각자 자신에게 맞는, 사람에 따라 다른 마나가 이동하는 경로대로 홈을 판 장인이 만든
사실 집밖으로 나갈일이 별로 없는 나와는 달리, 일단은 사용인의 신분인인 만큼 심부름 같은 걸 다녀올 일이 더 많은 그녀들이 이곳의 지리를 더 잘 알고 있었다.
하인젤의 경우는 꽃이 이쁜집, 과일이 신선한 집, 오고 갈때 풍경이 좋은 길 같은 걸 잘 알고 있었고, 레이즈의 경우는... 술이 맛있는 집, 스트레스 풀기 좋은(불량배나 양아치가 자주 나오는) 곳, 조용히 사람 썰기 좋은곳(...왜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등을 알고 있었다.
결국 처음 내가 생각했던, 내가 그녀들에게 좋은 곳 등을 알려주며 꽁냥거리기는 안되었지만, 그래도 즐거워 보이는 표정이어서 무척 다행이었다.
그렇게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보니 당연히 날이 어두워져 갔고 우리는 하인젤이 얘기해줬던 길중 하나인, 반딧불이가 자주 나와서 저녁 즈음에 오면 아름다운 광경이 펼쳐진다는 들판을 통해 저택으로 이동했다.
아니, 이동하려 했다. 한 괴한이 출몰하기 전까지는
“...정말이지 끔찍이도 집안에만 틀어박혀 있는군, 골드르크. 내가 얼마나 기다렸는지 아나?”
나는 그를 알고 있었다. 알렉이 아닌 나 ‘차수현’은 지금 우리의 앞을 가로막고있는 저 검사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리처드...”
왜 모르겠는가, 원작에서 하인젤의 심장에 손수 칼을 박아넣은 저 놈의 얼굴을 모를래야 모를수가 없지.
“흠...? 나를 아는가? 분명 아직은 내 이름은 알아도 내가 어떻게 생긴지는 모를 때인데...”
내가 그의 이름을 나지막히 내뱉자 그가 의아하단 듯 칼을 까닥이다가
까앙!
“호오, 이걸 막은 건가? 흠... 아직은 고작 익스퍼트일거란 생각에 왔던 건데. 일이 좀 꼬이겠군.”
내게 휘둘러진 검을 하인젤이 아까 구매했던 검으로 막아낸다. 뭐지?? 분명 알렉과 리처드가 처음 만나는 시점은 왕과 왕세자가 죽은 뒤로부터 1년이나 지난 시점인데?
“그리고 처음 보는 여자도 하나 더 있군... 뭐, 예전에는 못 봤으니 진작에 나가 떨어질 년인거겠지. 골드르크, 네놈의 싹은 여기서 미리 베어두마.”
뭔가 아까부터 하는말이... 혹시 저놈은 회귀 같은 걸 하는 건가? 말 한마디 한마디가 전부 만화에서의 우리를 알고 있다는 듯 말하고 있으니 이쯤되서 드는 의심은 저놈이 회귀자인가 하는 의심이었다.
‘그렇다면 저 놈도 이미 마스터의 경지에 올랐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도 우리는 저놈이 모르는 레이즈라는 카드가 있으니 분명 승산이 있어.’
하지만 아직 레이즈는 검을 뽑지 않고 있었다. 아니, 거기서 한술 더떠 아예 자리까지 만들어 앉아서 아까 구매했던 빵을 하나 개봉하고 있었다.
“알렉님, 이리로 와서 앉아. 간만에 재밌는 구경하겠네.”
레이즈의 말에 리처드가 어이없다는 듯 웃음을 흘리기 시작했다. 아예 대놓고 고개까지 돌린게 하인젤은 상대로도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하하하하, 그냥 어리석은 계집이었나. 얼굴은 반반한게... 골드르크, 네놈의 장난감이냐?”
장난감은 무슨 장난감. 진짜 뒤지고 싶은건가? 이게 말을 함부로 하네? 진짜 마음만 같아선 당장 칼을 뽑아들고 저 주둥이를 잘라버리고 싶었지만 느낄 수 있었다. 지금 저놈은 나보다 분명한 한수 위 라는걸. 어쩌면 하인젤과 비슷할수도...
“알렉님, 그거 알아? 싸움 잘하는 사람은 자신보다 수준이 낮은 사람을 보면 아, 대충 누가 이기겠다를 알아. 근데 그 반대는 아니다? 수준이 낮은 사람이 높은사람을 보면 누가 이길지 정확히 알기 어려워. 아는 만큼 보인다고, 수준이 낮은 사람은 아는게 적거든.”
갑자기 저게 무슨 소리지? 아니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보다 빨리 하인젤을 도와서 저 죽일 놈의 목을 베어야…
“그리고 격차가 좀 나면 상대가 자신 밑인지 위인지도 분간이 잘 안가지. 위인 사람은 자신이 무조건 이긴다는 걸 알고. 그러니까 마지막 조언인데, 만약 니가 상대의 수준이 짐작이 안가는데 상대가 안도망가고 받아주잖아?”
쉬익!
하인젤이 한손으로 리처드와 검을 맞대고 있는 상태로 순식간에 빈 손에 빛으로만 이루어진 검을 만들어 내어 리처드에게 휘둘른다
“그럼 니가 처 발린다는 거야 좃밥새끼야.”
“하! 골드르크 역시 네놈도 돌아왔나보군. 그게 아니라면 네놈의 개가 벌써 이정도 수준까지 올라올 리가 없지.”
하지만 리처드 또한 가만히 당해주진 않았다. 하인젤의 다른손에 빛이 모여드는 걸 보자마자 뒤로 훌쩍 물러나며 본인도 광검을 만들어내기 시작한다.
“어... 진짜 저거 안 도와줘도 되는거야?”
마음만 같아서는 끼어들어 도와주고 싶었지만 나는 매크로 마냥 동작들만 하는 정도였기에 괜히 걸리적거리고 방해만 될 것 같아서 그냥 아까 레이즈가 말했던 대로 조용히 그녀의 옆에 가서 앉았다.
그녀의 곁에 가서 앉으니 레이즈가 자연스럽게 먹고 있던 빵을 반으로 잘라 내게 건내주었다.
“아니, 진짜 도와줄 생각 없...”
텁
내가 또다시 입을 열자 그냥 대놓고 내 입에 빵을 집어넣었다. 아 진짜, 그냥 말로 할 것이지 ...맛은 있네
“그냥 보고 있어. 내가 말했지? 대충 누가 누가 이길지 감이 온다고?”
뭐... 레이즈가 괜찮다고 하면 괜찮은거겠지. 작중 최강자로 꼽히는 하인젤을 넘어서는 재능을 가진(신이 그렇게 평가한) 그녀가 괜찮다고 하면 괜찮은 거겠지.
다만 걱정되는거라면 상대는 이미 작중에서 수많은 경험을 쌓아온 베테랑일텐데, 과연 지금의 하인젤이 그를 이길수 있냐는 거였다.
하지만 내 걱정이 무색하게 하인젤은 일방적으로 리처드를 몰아 붙이고 있었다. 적절한 유효타가 들어가진 않았지만, 조금씩 조금씩 리처드의 광검의 크기가 줄어드는게 하인젤이 조금씩 그를 압박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읏...! 이놈드을...!”
점점 수세에 몰리기 시작하는 리처드가 이를 악 물며 으르렁거리며 뒤로 물러나더니 기운이 다한건지 주저앉았다.
“...확실히 나쁘지 않은 솜씨였습니다. 그럼 이만.”
하인젤이 그런 그를 내려다 보며 마무리를 짓기 위해 검을 휘두르는 순간,
파사삭!
리처드가 흙을 하인젤의 얼굴에 집어던지고는 다급히 뒤를 돌아 도망가기 시작했다. 어어, 저거 놓치면 안되는데!
“야.. 야! 저거 잡아! 저거 무조건 죽여야 된다고!”
하지만 눈에 흙이 들어간 하인젤은 금방 털어내긴 했지만 눈이 잘 보이지 않는건지 비틀거리며 몇번 눈을 깜빡이는게 뒤 쫓을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내가 다급히 옆을 돌아봐 하인젤을 바라보았지만.
이미 그녀는 그곳엔 없고 대신 잘려나간 치마의 밑단만이 남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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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장, 젠장 젠자아앙!’
리처드는 있는 힘껏 숲을 내달리며 소리없는 비명을 질러대고 있었다.
저번 삶, 그러니까 알렉 골드르크에게 목이 베이던 기억을 끝으로 정신을 차리니 어느새 9살의 자신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래서 그는 이건 신이주신 기회라 생각하며 있는 힘껏 수련에 정진해, 저번 생보다 훨씬 빠른나이에 마스터의 경지에 오르는 것에 성공하였다. 가문에 성대한 잔치를 열만한 일이였지만, 리처드는 그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대신 그 후부터는 혼자서 허공에 검을 휘두르며 지난 전투를, 자신이 맞붙어 왔던 상대들과의 싸움을 이미지 트레이닝했다.
그리고 그 모든 준비가 끝난후, 그가 가장 먼저 향한 곳은 저번 생의 자신을 죽인 장본인인 골드르크 가문의 집이었다. 듣기로는 최연소 마스터가 둘이나 나왔다고 하길래, 리처드도 만반의 준비를 했다. 그리고 비웃었다. 정보는 가장 큰 무기였다. 자신은 이미 알렉과 그의 충견 하인젤이 이미 벼려진 검이란 걸 알았지만, 그는 이미 전생에 그들과 상대한 경험이 있었다. 물론 벌써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것을 보아 그도 돌아왔을 가능성이 있었지만, 그래도 그는 자신이 있었다.
이미 한번 베어넘긴 상대가 있었고, 비록 졌긴 했지만 돌아온 후 수많은 이미지 트레이닝을 한 상대도 있었다. 한마디로 자신을 그들을 상대할 만반의 준비를 갖춘데에다가 기습을 할수 있다는 이점 또한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골드르크는 검도 뽑지 않고, 그의 충견만으로도 자신을 압박하기엔 충분했었다.
‘젠장...! 나도 그냥 암살단을 고용해서 머릿수로 밀어 붙여야만 했는데!’
아무리 마스터라 하더라도 사람. 둘까지는 어찌저찌 한다고 해도 합만 잘 맞는 다면 상대가 검을 잡은지 한달도 안되었다고 하더라도 다섯을 이길수는 없다는게 정론이었다.
리처드는 인정했다, 자신의 오만이었다고. 그리고 결심했다 지금 여기서 달아나는데에만 성공한다면 다음 저들의 얼굴을 보았을 때가 저놈들의 마지막이 되리라고.
뭐, 그게 이루어 질지는 모르겠지만.
“어디가냐 씨발놈아? 쳤으면 사과를 하던지 해야지. 때리고 도망가냐?”
어느새 아까 한가롭게 꽃밭에 앉아 빵을 주워먹던 메이드 하나가 어느새 자신의 앞에 서 있었다.
‘빠르다...!’
리처드는 재빨리 숨을 고르고는 검을 쥔 손을 고쳐 잡으며 생각했다. 그래도 상대는 해봤자 익스퍼트에 불과할 것이라고. 분명 전해 듣기로는 마스터는 두명이었으니, 눈앞의 저 짧은 치마를 입고있는 메이드에게 질 이유는 없었다.
“하하... 아무리 내가 힘이 좀 빠진 상태라고 해도 겨우 익스퍼트에게 질것 같으냐!”
휙!
하지만 그가 바라던 느낌이 아니었다. 그가 검을 다섯번 휘두를 동안 눈앞의 메이드는 겨우 세발자국만 움직여 그의 검을 정말 단 종이 한장의 차이로 피해내고 있었다.
‘큭... 역시 빠르다! 하지만 이년도 아슬아슬한건 마찬가지! 조금더 빠르게...! 그 두명이 오기전에 해치운다!’
그래서 그는 젖먹던 힘까지 다해 조금더 속도를 내며 검을 휘둘렀지만, 여전히 눈앞의 메이드는 종이 한장의 차이로 검을 피하고 있었다.
이쯤되니 그도 뭔가 이상함을 느낄수가 있었다. 아니, 아닐거야. 라면서 자신을 부정해 보지만 이내 그녀가 보여주는 광경은 그의 의욕을 떨어트리기엔 충분하고도 남았다.
“그래, 뭐 니가 익스퍼트한테는 안진다고 치자. 근데 병신아, 그걸 내앞에서 말해서 무슨 의미가 있는데.”
그리고 의욕이 떨어진 그의 검은 레이즈의 광검에 너무나도 쉽게 막히고 말았다.
“하... 하하하... 신은 무슨 빌어먹을.”
툭, 데구르르르
“응, 신이 빌어먹을 새끼인건 나도 인정해.”
그리고 레이즈는 방금 베어낸 사내의 품속에서 뭐 건질게 없나 몸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녀의 주인이 잡으라고 한 것을 보아 소매치기가 분명하다고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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