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노쟈키81♠제19화 수렁으로 달려가는 기차(2)
그것도 지난번 처럼 성적인 묘사까지 섞어가며 말했을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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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혜가 지장을 찍어 준 각서를 쓱 읽어본 최언니는 그것을 소
중하게 접어서 쥐고 다혜를 묘한 시선으로 바라봤다. 그때까지
만 해도 다혜는 최언니가 자신을 김사장 때문에 놓치게 된 나머
지 억울해서 그런 시선으로 바라보는 줄 알았다.
"다혜야. 나 바쁜 일이 있어서 나가 볼 테니까 그렇게 알어."
김사장도 볼일을 다 봤다는 얼굴로 담배를 끄며 일어섰다. 다
혜는 마치 아빠를 보내는 는 듯한 감정으로 김사장을 대문 밖까
지 배웅했다.
"언제쯤 제가 여길 나가게 되나요?"
"전화할 께."
김사장은 다혜의 질문에 짤막하게 대답하고 뒤도 안 돌아보고
골목을 빠져나갔다. 다혜는 왠지 그에게 속은 듯 한 기분이 들
었다. 그 기분은 다시는 그를 보지 못할 것 같은 기분이기도 하
고, 자신이 무언가 엄청난 실수를 저질렀을 것이라는 두려움 같
은 것이기도 했다.
"후후후, 그 다음에는 최언닌가 하는 그년이 김사장이 너를 맡
기고 오백 만 원 정도를 빌려 갔다고 했겠군."
다혜가 마치 타인의 이야기를 하는 듯한 표정으로 긴 절망의
터널 속을 걷고 있을 때 잠자코 듣고 있던 민규가 불쑥 물었다.
"오빠. 그걸 어떻게?"
"김사장인가 하는 그 놈이 한 통속이란 걸 알았냐구?"
"네......."
"후후후, 난 그렇게 해 본적이 없지만 통상 시나리오는 그렇게
쓰게 되어 있지. 넌 빨이꾼 한테 걸려 든 거야. 그리고 그 김사
장이란 작자는 바람잡이에 불과 하고......."
다혜가 바람 같은 목소리로 기억하기 싫은 악몽 같은 과거를
털어놓고 있는 모습을 민규가 안됐다는 표정으로 보고 있을 때
였다. 방문이 노크도 없이 열리면서 혜미가 들어 왔다.
"분위기가 왜 이래?"
혜미는 슬픈 표정을 짓고 있다가 얼른 표정을 바꾸는 다혜를
바라보고 나서 민규를 험악하게 노려보았다. 자신이 없는 동안
다혜를 못살게 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번뜻 들어서 였다.
"킬킬, 심심해서 다혜 흘러간 과거 스토리 듣고 있는 중이었다.
근데 넌 지금까지 뭐하다 이제 오냐?"
"다혜야 오빠가 뭐라고 했는데. 그런 표정을 짓고 있었니?"
혜미는 민규를 노려보던 표정을 바꾸고 다혜를 향해 부드럽게
물었다.
"텍사스에 팔려 가게 된 이야기를 하고 있던 중이었어."
다혜는 왠지 속이 후련해 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 동안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이발사처럼 그 누
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하던 아픈 과거를 털어놓았기 때문이었다.
자연스럽게 표정도 밝아 졌다.
"그럼, 그 때 했던 그 이야기를?"
혜미가 다시 민규를 노려보고 나서 다혜에게 물었다. 만약 그
녀가 형부에게 당했다는 말을 털어놓았다면 둘 다 용서를 하지
못할 것 같았다. 같은 여자가 들어도 너무 슬픈 이야기를 다른
사람도 아닌 민규에게, 그것도 지난번 처럼 성적인 묘사까지 섞
어가며 말했을 것을 생각하니 질투심 비슷한 감정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아니, 천호동에 팔려 가기 전 까지 일이었어."
"그래. 아무튼 앞으로 저 인간이 그 어떤 것을 물어 봐도 절대
말하면 안돼. 나하고 약속 할 수 있지?"
혜미는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민규 앞으로 갔다. 민규는 이게
또 왜 갑자기 강짜지 하는 표정으로 이불에 기대고 있던 상체를
폈다.
"오빠도, 다혜에게 쓸데없는 질문해서 피곤하게 만들지 마, 묻
고 싶은 게 있으면 나한테 물어 보란 말야. 그리고 나하고 잠깐
나가 볼 데가 있어."
"이 시간에?"
민규는 재킷을 어깨에 걸치며 어슬렁거리는 걸음으로 혜미를
따라 밖으로 나갔다. 마당에 쏟아지는 별빛이 너무 아름다워서
한참 동안 하늘을 쳐다보며 혜미가 말을 꺼내길 기다렸다.
"나, 지금 어떤 경찰을 만나려고 해."
혜미가 민규 앞으로 다가오며 목소리를 죽이고 속삭였다. 경찰
이란 말에 민규가 너 미쳤냐 하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어떤 이윤지 모르지만 네 얼굴을 보니까, 꼭 만나고 말겠다는
얼굴인데. 난 흥미 없다. 원래 짭새들 얼굴만 봐도 두드러기가
나는 네가 아니냐."
민규는 주인 내외가 살고 있는 안방 문을 바라보며 고개를 설
래 설래 흔들었다. 그건 사실이기도 했다. 그는 지금껏 경찰로부
터 도움을 받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오히려 폭력배 일제
단속이나, 춘계 방범 기간이나 특별한 행사가 있을 때는 걸핏하
면 죄 없이 끌려가서 며칠 씩 구류를 살기 일수 였다. 그런 재
수 없는 경찰을 그것도, 낯설고 물 설은 묵호에서 만났다가 는
그 어떤 봉변을 받을지 모를 일이었다.
"오빠, 나 지금 심각해. 그리고 시간이 없어. 그러니까 오빠는
내가 그 사람을 만나 볼 동안 밖에서 망 좀 봐줘."
"나한테 망을 봐 달라는 말은 이해하겠지만, 심각하다는 건 그
종류가 뭐냐?"
"네가 묵호에 온 이유야. 그 사람 한태 한가지만 확인하고 나
면 여기 있어야 할 이유가 없어."
"그럼 전화로 물어 보지 그러냐?"
"전화로 말해 주지 않을 거 같아서 여관에서 만나려고 그러는
거야?"
"너 시방 여관이라고 했냐? 그것도 짭새를 여관에서 만난다.
햐! 이거야말로 완죤히 골 때리다 못해 골 죽이는 일이네."
민규는 너무 기가 막힌 나머지 말이 안 나올 지경이었다. 그렇
지 않아도 망치 일행이 눈에 시뻘겋게 불을 켜고 묵호 바닥을
이 잡듯이 찾아다니고 있는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여관에서 짭
새를 만나겠다는 혜미의 저의를 알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