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 양쪽에 한 명씩...
머리를 정으로 쪼는 듯한 통증에 눈을 떴을 때는 창밖에 어스 름한 어둠이 내려앉고 있을 때 였다. 머리가 너무 아파서 창문 밖으로 어둠이 내려앉고 있다는 것 만 확인하고 다시 스르르 눈 을 감았다.
무언가 꿈을 꾼 것 같았는데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았다. 누군 가에게 쫓기던 꿈을 꾼 것 같기도 하고, 벼랑 끝에 서 있는 나 뭇가지 위에 올라가 밑이 보이지 않는 아래를 내려다보며 식은 땀을 흘렸던 것 같기도 했으나 두통 때문인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으- 음."
창문 쪽에서 자고 있던 선미가 내 쪽으로 돌아눕는 기척에 눈 을 떴다. 선미는 배에 담요를 걸친 자세로 반듯하게 누워 평온 하게 잠들어 있었다. 둥그스름한 젖가슴 가운데 있는 젖꼭지가 형광 불빛에 반짝 빛났다. 아래쪽에는 음모가 가지런히 누워 있 는 꽃잎을 축으로 하얀 허벅지가 브이자 모양으로 펼쳐져 있었 다. 반대편에 있는 지혜는 늘 그랬던 것처럼 엉덩이를 내 쪽으 로 돌리고 태아처럼 누워서 자고 있었다.
난 이게 편해.
지혜는 내 팔을 배고 잠을 청하다가도 막상 깊은 잠 속에 빠져 들 찰나에는 등을 보이고 자는 습관이 있었다. 그런 지혜의 뒷 모습이 오늘 따라 무척이나 멀어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른 입맛을 다시며 일어나 앉았다.
"으.......음 일어났어."
선미가 눈을 부시시 뜨고 아랫배를 가리고 있던 이불을 펼쳐서 온 몸을 감쌌다. 잠기가 밝은 모양이었다. 하긴 선미가 잠기가 밝지 않았다면 어젯밤부터 오늘 오전으로 이어지는 섹스 파티는 존재하지도 않았을지도 모른다.
"좀 더 자. 난 물 좀 먹어야 겠어. 머리가 깨져 나가는 것 같 아."
"그러게 술 좀 작작 마시지. 계속 퍼 마셨잖어. 금붕어처럼."
선미는 금방 깨어났는데도 잠을 자지 않은 것처럼 눈동자가 갓 샤워를 끝낸 사람처럼 촉촉했다. 그러나 목소리는 무척이나 건 조했다.
"휴. 나도 모르겠다. 왜 그렇게 퍼 마셨는지."
"모르긴, 원래 그게 네 주특기 아니냐."
지혜가 잠결에 한마디하고 건너편에 있는 선미의 이불을 끌어 당겼다. 그리고 이내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래, 난 원래 술 빼면 시체 아니냐."
담뱃불을 붙이고 일어나서 팬티를 껴입었다. 주방으로 가서 냉 장고 문을 열고 생수병을 꺼냈다. 정신없이 몇 모금 마시고 나 니까 어느 정도 두통이 사라져 버린 기분이었다. 그때서야 식탁 을 보니까 엉망이었다. 빈 소주병하며, 캔맥주 통, 오징어 나브 렁이들이 한쪽 켠으로 밀려 나가 있었다. 가스렌지 위에는 기름 기가 굳어 있는 삼계탕이 차갑게 식은 체 놓여 있었다. 싱크대 에 있는 비닐 봉지를 들쳐 보았다. 안에 두 병의 소주와 캔맥주 몇 개가 들어 있었다.
욱!
술을 보는 순간 위장이 요동을 치며 건 구역질이 나왔다. 그래 도 억지도 담배를 피우려니까 눈물이 찔끔거리면서 또 구역질이 나왔다.
제기랄, 될 대로되라지.....
구역질을 잠재우는 길은 다시 술을 마시는 수밖에 없었다. 소 줏병의 뚜껑을 따서 병째 들고 콜콜콜 마셔 버렸다. 반 병 정도 마시고 나니까 위장에 짜르르 하는 통증이 왔다. 눈물도 삐져 나왔다. 의자에 앉아 억지로 담배를 피웠다. 그래야 요동을 치는 위장이 갈아 앉는 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어머! 또 술 먹었어?"
선미가 팬티 위에 와이셔츠만 걸치고 주방으로 들어오다가 대 책 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단추를 두 개 정도 열어 놓은 와이셔츠 옷깃 사이로 보이는 젖가슴이 무척이나 탐스러워 보인 다고 생각하며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어느 틈에 두통이 감쪽 같이 사라져 버린 것 같아서 였다.
"목이 타서......"
더 이상 위장도 쓰리거나 통증이 없었다. 하지만 목안의 찜찜 하기도 하고 텁텁한 그 무엇이 꽉 차 있는 듯한 기분은 여전했 다. 싱긋이 웃어 보이면서 의자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아무래도 술 너무 많이 마시는 것 같애. 걱정된다구......"
선미는 냉장고에서 생수병을 꺼내 들고 내가 손짓하는 의자에 앉았다. 물을 몇 모금 마시고 나서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 봤다.
"백수 생활 이 년만에 는 것은 술 마시는 거밖에 없는 것 같 아. 하지만 술이라도 마시지 않으면 세월이 정지해 있는 것 같 아서 견딜 수가 있어야지."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나는 매일 술을 마시지 않았다. 우선 매일 술을 마실 만한 돈이 없었다. 그리고 설령 돈이 있다 하더라도 지금처럼 꼬박 이틀 동안 술을 마신 적은 없었다. 하지만 왠지 위장이 찢어지도록 술을 마시고 싶었다. 어쩌면 선미와 지혜와 혼음을 했다는 죄책감이나 절망감 때문인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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