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4 미녀의 엉덩이를 향하여 (54/92)

#54 미녀의 엉덩이를 향하여

지혜는 나를 물끄러미 쳐다 보고 나서 고개를 끄덕였다. 물을 한 모금 다시 마시고 나서 입을 열었다.

"물론 이해 못하는 건 아냐. 하지만 몸 생각도 해야지. 빈속에 그렇게 술을 부어 넣으면 어떻하니. 난 그렇게 마시라고 애원을 해도 못 마시겠다."

"그게 직장인하고, 백수의 차이점 아니겠냐."

"직장인하고 백수의 차이라구?"

"절제된 자유하고, 방종 속의 자유라고 표현해도 옳겠지."

"후.....그래도 백수 때가 부럽다. 직장도 한 두 달이지. 기약 없 이 다닌다고 생각해 봐라. 끔찍하지."

선미는 무언가 생각을 하는 표정으로 싱크대 쪽으로 시선을 돌 렸다. 하얀 목덜미를 살포시 덮고 있는 검은 생머리가 무척이나 섹시하게 보였다. 그녀는 담배 한 가치를 다 피울 때까지 똑 같 은 모습으로 생각에 잠겨 있었다. 나 역시 뭐라고 할 말이 없어 서 얼큰하게 취해 가는 취기를 느끼며 담배를 피웠다. 가끔 가 다 옆으로 보이는 그녀의 젖무덤을 슬쩍 쳐다보곤 했을 뿐이다.

"난 씻고 집에 가 봐야 겠어."

꽁초를 빈 캔맥주 통에 집어넣은 선미는 내 앞으로 와서 내 이 마에 가볍게 키스를 하고 돌아섰다. 나는 고개를 끄덕여 주고 그대로 앉아 있었다.

선미가 옷을 갈아입고 집에 가겠다고 했을 때도 지혜는 일어나 지 않았다. 선미도 굳이 지혜에게 집에 간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은 것 같았다.

"난 좀 더 자야겠어. 아니 내일까지 잠들지도 모르겠어."

문 앞에서 내가 말했을 때 선미는 문을 열려다 말고 돌아서서 나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내 어깨를 와락 껴 않았다. 그녀의 입 술에서 치약 냄새가 상큼하게 풍겼다. 그렇다면 내 입안은 썩어 있다는 증거였다. 형식적으로 키스를 받아 주고 문을 열어 주려 고 손잡이를 잡았다.

"오늘은 푹 자, 지혜하고 아무 짓도 하지 말고. 알았지?"

선미가 내 눈을 갈망하는 표정으로 바라보며 부드럽게 속삭였 다.

"나도 피곤해."

나는 말을 해 놓고도 그 말이 지켜질지 의문을 가졌다. 지금 생각이야 아무 생각 없이 자고 싶지만 내 남성이 어떻게 돌변할 지 모르기 때문이다.

선미를 배웅하고 나서 얼마나 잤는지 모른다. 지혜가 흔들어 깨우는 통에 일어났다. 선미는 샤워를 했는지 타월로 머리를 휘 어 감고 있는 모습이었다.

"어서 일어나. 삼계탕 먹어 계속 술만 먹으면 어떻하니?"

"난 좀 자야 겠어. 아무 생각 없어."

이불을 끌어 당겨 푹 뒤집어쓰고 다시 잠을 청했다. 그러나 마 음대로 할 수가 없었다. 선미가 이불을 홱 걷어 부쳐 버렸기 때 문이다.

"너 정말 내 말 안들을 꺼야!"

"아함!......쩝쩝.......이래서, 하늘 가릴 지붕만 있으면 내 집이 좋 다니까."

지혜가 도끼눈을 뜨고 있는 것을 보니 계속 잠을 자기는 틀린 것 같았다. 눈을 비비고 일어나 앉으니까 또 두통이 밀려왔다.

검은색 비닐봉지 안에 들어 있는 마지막 소주 한 병이 생각났 다. 내일 당장 죽는 한이 있더라도 한 잔 더 해야겠다고 생각하 며 일어섰다.

"어딜 가는 거야. 이쪽부터 가."

내가 주방으로 가려고 할 때 지혜가 팔을 잡아당기며 목욕탕을 손짓했다.

제기랄, 이럴 줄 알았으면 선미 집에 갈 때 같이 갈걸.

선미를 따라 집에 가지 못한 게 못내 후회로 다가 왔다. 쩝쩝 거리면서 간단하게 얼굴이나 씻어야 겠다는 생각으로 목욕탕 안 으로 들어갔다. 세면기에 수도꼭지를 틀고 있는데 지혜가 또 나 타났다.

"내 이럴 줄 알았지."

지혜는 다짜고짜 샤워기를 틀었다. 그리고 곧장 내 알몸 위로 얼음장처럼 차가운 물을 뿌려 됐다.

"앗, 차거! 야! 너 날 심장마비사 시킬려고 작정을 한 거냐!"

정신이 번쩍 들면서 금방 온 몸에 소름이 돋는 것 같아 신경질 을 내며 밖으로 나가려고 문손잡이를 돌렸다.

"흐흐흐. 어림도 없지."

지혜는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욕조에 받아 두었던 물을 한 바가지 퍼서 머리 위에 쭈룩 부어 버렸다. 지혜를 한방 먹이지 않으면 도저히 참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얼굴의 물기를 훔쳐내 며 획 돌아섰다.

지혜는 그 순간에 샤워기의 물을 조절하고 있느라고 허리를 숙 이고 있는 상태 였다. 알밤 한 대를 내갈기려다 히죽 웃었다. 그 녀는 란제리에 삼각팬티만 입은 상태 였다. 몸에 딱 들어맞는 팬티를 입은 탓에 엉덩이 사이가 활짝 벌어져 있는 것을 봤기 때문이다. 웃음을 참으며 손가락 두 개를 모아서 마음속으로 숫 자를 세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