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화
“여기에서 전염병이 발생해 태웠으니 그리들 아시게.”
“전염병요?”
“그렇다네. 그래서 이곳을 출입한 사람은 모두 따로 격리하게 됐으니 앞으로 여기는 당분간 마을사람들의 접근을 삼가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이렇게 대충 설명해 넘기는 방식으로 처리한 단양군수는 마을사람들이 돌아가자 최인범을 바라보며 지시했다.
“자네는 나와 같이 산적들을 잡으러 가세.”
“그러죠.”
여전히 타고 있는 당집을 떠나 김 초시 집으로 갔다. 이미 압수되었다는 많은 물건들은 어디론가 사라졌다. 아마도 관아로 보낸 것 같았다. 커다란 기와집은 완전히 풍비박산이 났다.
집안으로 들어가 보니 텅텅 비어 있고 사람의 그림자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모두 관아로 잡혀간 것 같았다. 창고나 집의 방문들은 모두 부서져 사방으로 널려 있었다.
‘흠! 포졸들이 무지막지하게 뒤졌군.’
장물을 취급하다 당한 멸문지화(滅門之禍)니 애처롭다고 볼 수는 없었다. 그러나 한 집안이 쉽게 무너지는 것을 보자 최인범은 장물을 취급하는 것으로 보이는 백삼수가 저절로 떠올랐다.
‘이번에 돌아가면 그 자식을 단단히 단속해야 돼.’
자칫하면 백삼수 때문에 자신도 이런 처참한 꼴을 당하게 될까 염려되었다. 반면교사(反面敎師)라고 남의 일이 내일과 같으니 교훈으로 삼아야 된다.
그동안 착호 부대 일에만 매달려 풍기의 동물농장이나 백두상단의 업무에 다소 소홀한 점이 있었다. 그래서 앞으로 백두상단의 사업에 대해 세밀하게 챙길 생각이다.
‘아무래도 상단을 직접 따라 다니는 것이 좋아.’
이런 생각을 하고 단양군수와 같이 김 초시 집을 한 바퀴 돌아보았다. 기와집의 구조는 전형적인 양반집의 형태다.
윤 진사 댁과 비슷하게 생겼으나 규모는 조금 더 커 보였다. 다만 대형 창고 밑에는 특별히 지하실이 크게 만들어져 있었다. 지하실의 크기가 위에 있는 창고보다 더 커보였다.
‘완전히 대형으로 비밀 창고까지 있군.’
산적 소굴을 알아낼 죄인들을 관아로 모두 끌고 갔다. 그 때문에 최인범도 단양 군수와 같이 관아로 가게 되었다.
관아의 옥사에서 많은 사람들이 끌려와 있었다. 옥에서는 여자가 지르는 고통스런 괴성이 계속해서 들렸다.
“으아악! 살려주세요. 제발! 저는 모릅니다. 흑! 흑!”
“네가 알 거니 실토해!”
“으아악! 흑! 흑! 저는 정말 몰라요. 그저 산적들이 물건을 가져오면 쌀과 바꾸기만 했어요. 살려주세요.”
관아로 돌아와 잠시 옥사 쪽을 바라보는 최인범은 비명소리에 그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심하게 고문을 당하는 사람은 아무래도 젊은 무당으로 생각되었다.
최인범은 슬며시 옥사가 있는 곳으로 가서 살폈다. 감옥에서는 한창 심한 고문이 가해지고 있었다. 예상과 같이 고문을 당하는 사람은 젊은 무당이다. 참으로 참혹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후우! 어찌 하다가 산적하고 정이 들어서 저런 험한 꼴을 당하나?’
여자의 팔자는 뒤웅박 팔자라더니 사내를 잘 못 만나 저런 험한 꼴을 당하고 산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남자도 여자를 잘 만나야 신세가 좋아진다. 못된 여자를 만나면 인생이 계속 꼬이게 된다.
최인범은 문뜩 이런 생각을 해보며 전에 젊은 무당이 자신에게 묘하게 추파를 던지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무당과 나는 악연이군.’
참으로 고약한 인연이자 끔찍한 악연이다. 그래도 자신이 처음으로 도움을 받은 젊은 무당이라 최인범은 심하게 고문을 당하자 조금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슬며시 감옥 안으로 들어가 한창 주리를 트는 고문을 심하게 가하는 형리에게 조용히 말했다.
“여자인데. 너무 심하게 다루지 마시오. 그런다고 모르는 것이 말할 리가 없지 않소?”
이런 말에 험하게 생긴 형리는 심히 불쾌하다는 표정만 지었다. 표정으로 보아 ‘네가 왜 시비냐?’는 뜻이 분명했다.
그래서 최인범은 다시 부드러운 말로 형리를 다독였다.
“사람의 앞날은 아무도 모르는 법이니 너무 가옥하게 문초하지 마시오. 내가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잘 생각해 보시오.”
뭔가 뒤가 있어 보이는 의미삼삼한 말을 던졌다. 심하게 주리를 틀어 고문을 가하던 형리들은 이런 말에 조금 뒤가 구려서 그런지 그제야 주리를 틀던 동작을 멈추었다.
주리란 본디 주뢰(周牢)로 형벌에 해당하는 고문이다. 의자(주리틀)에 앉은 죄인의 두 다리를 한데 묶고 다리 사이에 두 개의 주릿대를 끼워 비트는 아주 가혹한 형벌이다. 주리를 틀면 다리가 부서져 불구자가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남에게 심하게 욕을 할때 ‘주리를 틀 놈’이라고 하는 경우도 많았다. 욕치고는 아주 심한 상스럽고 무서운 욕이다.
최인범은 거의 혼절 상태에 다다른 무당에게 다가가서 조용히 물었다.
“당집에서 산적들이 떠난 지 얼마나 됐소?”
흐릿해진 눈빛으로 최인범을 바라보던 젊은 무당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녀의 눈빛은 약간 빛나고 있었다. 그녀는 최인범의 과거 모습을 알아보았다. 어쩌면 자신을 구해줄 유일한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어 대답은 안하던 무당 최인범은 보자 쉽게 입을 열었다.
“오늘 새벽에요.”
“쌀자루를 지고 뒷산으로 올라갔지?”
“예. 뒷산으로 통해 자취를 따라가면 찾게 될 겁니다.”
이런 대답에 더 이상 물어볼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최인범은 형리에게 당부했다.
“내가 산적들이 사는 산채를 찾을 것이니 여기에 있는 무당에게 고문을 더 이상 가하지는 마시오. 더구나 신기가 있는 무당에게 이런 형벌을 가하면 나중에 그 보복을 어찌 견디려는 거요.”
“알겠습니다. 저야 뭐 감정이 있나요? 군수께서 시키니 하는 거죠.”
슬며시 협박을 가해 무당이 더 이상 고통을 당하는 일이 없도록 배려했다. 최인범은 죄인이 아닌 그저 정이 많은 여자라는 생각과 더불어 측은지심으로 그녀를 대하고 있었다.
감옥에서 나온 최인범은 동헌으로 가서 단양군수를 만나 요구했다.
“군수님, 저에게 서류 한 장을 써주세요.”
“무슨 서류?”
“산적을 잡기 위해 군수께서 저에게 협조를 정식으로 요청한다는 서류입니다. 그래야 제가 정상적으로 부하들과 같이 돕지요.”
구두로 협조를 요청할 것이 아니라 정식으로 협조를 원한다는 서류를 만들어 달라는 뜻이다. 그러자 단양군수는 얼굴이 환해지며 즉시 답해 주었다.
“알았소. 그렇게 해주지.”
군사의 동원은 최소한 도정을 책임지는 관찰사의 명령에 의해 움직인다. 그러나 지방에 나타난 도적 무리를 잡기 위해서는 지방 수령이 인근에서 있는 무관이나 장정들을 일시적으로 동원할 수 있다. 물론 군대를 조직해 동원함과 동시에 관찰사에게 통보해야 된다.
이런 절차를 무시하면 반역을 일으키기 위해 무력을 동원한 것으로 매도당하게 된다. 그래서 보다 안전하게 움직이기 위해 서류 절차를 요구했다.
서류를 작성한 단양군수는 서류를 넘겨주며 말했다.
“원하는 서류 여기 있소. 이제 숨어 있는 산적을 찾을 거요?”
“그래야죠.”
최인범은 단양군수에게서 동원서류를 받아 챙기고 나서 동헌을 나와 기다리고 있는 부하들에게 지시했다.
“모두 무장하고 동헌 앞으로 집합해.”
“넷!”
무명옷을 입고 있던 행정병들은 급하게 군복으로 갈아입고 전투 준비를 했다. 다소 부산하게 떠날 준비를 철저하게 했다. 무기를 하나도 소지하지 않은 배도치와 분대장들은 행정병들에게서 단창 하나씩을 양도 받아 무장했다.
바로 떠나는 것이 아니고 동헌 앞에서 마치 무력시위를 하듯이 도열해 떠날 준비만 했다. 단독으로 움직이지 않을 생각이라 단양군수가 움직이길 기다렸다.
이윽고 단양군수가 나와서 병방에게 지시했다.
“포졸들과 장정들도 모두 동헌 앞으로 모이라고 해.”
“넷!”
포졸과 지역의 장정들까지 모이려다 보니 시간은 점점 흘렀다. 드디어 초저녁이 되자 포졸과 장정들이 모두 모이게 되었다.
“이제 가시죠.”
“어디로?”
“우선 대강주막으로 가야 합니다.”
점점 날이 어두워지는 가운데 단양의 관아를 떠나 다시 대강주점으로 향했다. 전에 벌인 소탕 작전과는 전혀 다르게 너무 느린 출동에 배도치는 약간 이상하게 생각했다.
‘이거야 원, 산적을 도망가라고 시위하는 건지 도통 모르겠네.’
최인범이나 단양군수가 이끄는 군사는 대강주점에 도착해 그곳에서 하룻밤을 잤다. 새벽 일찍 불타버린 당집에 도착했다. 당집 주변을 자세하게 살피던 최인범은 칠복이 형제에게 명령했다.
“풍산개를 풀어!”
“넷!”
칠복이 형제가 풍산개를 풀어주자 풍산개들은 불타버린 당집 주변을 킁킁거리며 돌아다녔다. 드디어 냄새를 찾자 산속으로 이동했다. 빠르게 산으로 올라가자 그 뒤를 최인범과 부하들이 추적했다.
컹! 컹!
산을 급하게 오르는 최인범이나 부하들을 보며 단양군수가 혀를 차고 있었다.
“저런, 다들 산적들 보다 산을 더 잘 타네.”
“군수님, 저 사람들은 산에서도 저렇게 빠르게 뛰어다닙니다. 그러니 빨리 따라가야 합니다.”
“알았어.”
풍기군수나 아전들 그리고 포졸과 장정들은 숨을 헐떡이며 산을 급하게 올랐다. 점점 시야에서 사라지는 최인범과 그의 부하들을 뒤쫓아 가고 있었다.
한편 당집에서 서쪽으로 가게 되는 산 너머에 있는 산적들의 산채는 소란스러워졌다.
웅성 웅성.
당집으로 가서 물건이 무사히 넘어간 것을 확인하기 위해 정찰하던 놈이 급하게 돌아왔다. 그는 당집이 불탄 사실을 산적들에게 알렸다. 그리고 단양에서 정탐하던 부하가 산채로 돌아와 관아의 분위기를 알렸다.
“무당이 잡혔소. 아무래도 여길 떠나야 할 것 같소.”
“도망을 가자는 거요? 단양에는 군사가 없으니 싸웁시다.”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요? 단양의 관아에는 풍기 악귀가 나타나서 우릴 토벌한다고 군사들을 모으고 있으니 빨리 도망칩시다.”
이런 정보를 들은 산적들은 다들 놀라며 외쳤다.
“풍기 악귀가 나섰다면 승산이 없으니 도망칩시다.”
“그럽시다.”
산적들이라고 서로 왕래가 전혀 없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서로 연락을 주고받아 관군이 나타나면 큰 무리를 이루어 대적하기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죽령에서 도망쳐 월악산으로 도망치던 왕눈이 패거리가 이곳의 산적들에게 알려준 중요한 정보가 있었다.
풍기에 산적들의 천적인 악귀가 나타났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풍기 악귀는 최인범이고 벼락을 맞아도 살아난 무서운 사람이라고 했다.